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어느 시인이 강원도 두메산골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근을 가서 수업시간에 혹시 백일장에 나가본 경험이 있는 학생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어떤 학생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어투로 시인에게 말했다. 선생님 여기는요, 백일장이 아니라 오일장이래요!-21쪽

닥쳐 시리즈.
거북이 아저씨가 민달팽이를 보면서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전속력으로 달려도 시속 오십 센티를 넘기지 못하는 놈도 동물로 분류되냐. 그러자 민달팽이가 대답했다. 닥치세요. 아저씨는 저처럼 다리가 하나도 없으면 짱돌 그 자체예요.-22쪽

연가시라는 생물이 있다. 일급수 이상에만 서식한다. 철사벌레라고도 한다. 실같이 단순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일정 기간 곤충의 몸속에 기생하다가 성충이 되면 곤충의 뇌를 조정해서 곤충이 물에 뛰어들어 자살토록 만드는 생물이다. 때로는 인간들도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쾌락의 늪에 뛰어들어 자멸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 의식 속에 이성을 마비시키는 허욕의 연가시가 기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23쪽

소나무는 멀리서 바라보면 참으로 의연한 자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까이서 바라보면 인색한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소나무는 어떤 식물이라도 자기 영역 안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소나무 밑에서 채취한 흙을 화분에 담고 화초를 길러보라. 어떤 화초도 건강하게 자라서 꽃을 피울 수가 없다. 그래서 대나무는 군자의 대열에 끼일 수가 있어도 소나무는 군자의 대열에 끼일 수가 없는 것이다. -25쪽

예술이 현실적으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카알라일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그렇다, 태양으로는 결코 담배불을 붙일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태양의 결점은 아니다.-51쪽

간만에 외롭지 시리즈
법이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못하는 나라에서 어찌 제헌절을 공휴일로 기념하겠습니까. 한글이 만인에게 나랏말씀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어찌 한글날을 공휴일로 기념하겠습니까. 365일 닥치고 포맷,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라는 포스팅을 올리면서 조낸 외롭지 말입니다.-96쪽

때로는 어떤 사람의 성공이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99쪽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122쪽

영국 사람이 영어를 잘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국 사람이 영어를 잘 하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영어는 잘 하면서 한국말은 잘 못하는 건 캐안습이다. 일찍이 퇴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 손자가 뜰 앞에 천도복숭아가 있는데 먼 데까지 가서 개살구를 줍고 있구나. 즐!-128쪽

감성마을로 오는 길에는 몇 개의 표지판이 있다. 새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4km. 물고기가 헤엄치는 방향으로 2km. 표지판에는 방향을 지시하는 새와 물고리가 한 마리씩 그려져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악하악, 너무나 화살표에 익숙해 있어서 뻑 하면 다른 길로 빠져버린다. 뿐만 아니라 도로의 일정 부분은 내비게이션도 감지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불만을 토로하지만 아놔, 모르시는 말씀, 인공위성 따위가 어찌 선계로 가는 길을 안내할 수 있단 말인가.-129쪽

가지고 싶은 건 한없이 많은데 주고 싶은 건 하나도 없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 끝없이 먹기는 하는데 절대로 배설은 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뱃속에 똥만 가득 들어차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139쪽

오늘만 어린이날
도시에 있는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다시 몇 군데의 학원을 순례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때 초등학생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라. 학원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초등학생들의 표정이 하루 종일 잡무에 시달리다 집으로 돌아가는 40대 일용직 노동자의 표정과 흡사하다. 어린이는 나라의 새싹? 아놔, 새싹에 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말라 죽는 줄도 모르냐?-148쪽

오늘도 인간반성
티끌 같은 노력으로 태산 같은 보상을 바라지 말라. 그런 사람이 축적할 수 있는 재산은 티끌같이 미흡한 존재이유와 태산같이 거대한 불평불만뿐이다.-179쪽

후배가 담임을 맡았던 학생 중에서 시험을 보면 수학점수만 월등하게 높은 녀석 하나가 있었는데 후배의 판단에 의하면 어떤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그렇게 높은 점수를 얻어낼 재목이 아니었다. 어느 날 후배는 은밀하게 녀석을 다그쳤다. 솔직히 말해라 커닝했지. 그러나 녀석의 대답은 의외였다. 마음을 비우고 찍었어요. 후배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언어영역은 왜 점수가 그 모양이냐. 녀석이 대답했다. 아는 글자가 많이 나오면 마음이 안 비워져요. 실화다.-194쪽

인간반성
대부분의 동물들은 먹이가 생기면 서열이 높은 우두머리가 먼저 차이를 차지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닭의 우두머리는 다르다. 서열이 낮은 놈들이 먹이를 배불리 먹을 때까지 주위를 경계해 주고 자기는 제일 나중에 먹이를 먹는다. 우리는 가끔 머리가 나쁜 사람을 닭대가리에 비유하지만 탐욕에 사로잡혀 부모형제도 몰라보는 인간들이 늘어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아놔, 만물의 영장, 닭과 함께 살아갈 면목조차 없는 입장이다.-209쪽

지성을 초월한 대화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인간.
조까. 명색이 새인데 날아서 쫓아가지 미쳤다고 걸어서 쫓아가냐-뱁새.-222쪽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진리는 아니다. 때로는 지식의 백태가 끼어 정작 보아야 할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238쪽

인간은 '알았다'에 의해서 어리석어지고 '느꼈다'에 의해서 성숙해지며 '깨우쳤다'에 의해서 자비로워진다. 그런데도 제도적 교육은 후덜덜, 죽어라 하고 '알았다'를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한다. 즐!-249쪽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08-07-1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읽어봐야 할텐데...ㅜ.ㅜ

마노아 2008-07-17 17:37   좋아요 0 | URL
학교 도서관에 신간 도서 오던 날 바로 찜하고 대출해 왔어요. 히힛^^

순오기 2008-07-17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외수 책은 한권도 안 읽어서 이양반을 알수가 없어요.
밑줄 긋기만 봐도 좋은데요~ 수고하셨어요.^^

2008-07-18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8-07-1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용어도 좀 짱으로 아시는 듯^^ 전 무릎팍 도사에 나와서 나방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아요. 저녁 무렵이면 자신의 창가에 나방들이 모이는데 이외수 선생님이 그러셨대요. 오늘은 야동 안 튼다. 일찍 들어가 자라. 입담도 보통이 아니시고 참 멋있으세요. 물론 몇몇 생각들은 저와 좀 안 맞지만.

마노아 2008-07-18 00:02   좋아요 0 | URL
저보다 더 많이 아시더라구요. 연구하시나봐요^^ㅋㅋㅋ
야동 얘기 책 속에 아주 많이 나와요. 담배 하루에 7갑을 피는데 2갑으로 줄였다면서, 이제 야동만 줄이면 된다고^^...

연두부 2008-07-18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외수씨 책은 한권도 안읽어 봤는데..함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ㅎㅎ..책 살때는 꼭 노아님 땡스투 누르고 삽죠..

마노아 2008-07-18 14:26   좋아요 0 | URL
엽기적인(?) 도인의 풍모를 자랑하시는 분이죠^^ 알라디너들의 우정의 땡스투로 무르익는 독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