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근하고서 일주일 조금 넘었다. 무관심과 소외, 맞지 않는 자리에 끼어있는 듯한 불편함이 불협화음처럼 계속 울린다. 한달 뿐이니까 참자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건, 한달 뒤에 만날 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예상 때문.
2. 머리를 조금 잘랐다. 기장 8cm정도? 숱도 많고 길이도 길어서 너무 무거웠다. 미용실 언니가 눈썹도 같이 밀어줬다. 지저분한 송충이 눈썹을 하다가 조금 정리된 눈썹을 보고 있자니 어색해 죽겠다. 이승환이 자주 말하던 가르마 이론이란 게 있다. 가르마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꾸면 본인은 너무 큰 변화에 어색해서 어쩔 줄 몰라하지만 아무도 못 알아본다는 것으로, 세상은 너 따위에게 관심을 갖지 않아!라고 자조적으로 얘기하곤 했다. 내가 꼭 그렇다. 난 거울 볼 때마다 무지 어색하고 누가 쳐다보면 눈썹 때문인가? 생각하지만 실은 아무도 눈썹의 변화를 모른다.
눈썹 정리를 혼자서 못해서 방치해온 것도 하나의 이유이고, 눈썹을 밀고 나면 그 자리에 도드라져 보이는 점이 신경 쓰이는 것도 또 내가 눈썹 정리를 못해온 이유 중 하나였다. 일요일은 방통대 기말고사 시험감독을 하느라 출근을 해야 했는데, 정감독으로 들어간 반에서 카드에 서명해주다가 팔뚝에 싸인펜 자국이 점점이 나버렸다. 부감독 샘이 얼굴에도 묻었다고 해서 거울을 쳐다보니 점이었다.(ㅡㅡ;;) 전호인님도 점 얘기를 하셨고, 저번 학교 선생님도 점빼라 하셨고... 올해 들어 점으로 인한 굴욕이 세차례다. 겨울엔 꼭 빼야겠다.(불끈!)
3. 토요일에 친구 생일이어서 만남을 가졌다. T.G.I에서 점심을 먹는데 에피타이져로 주문한 샐러드가 안 나오고 치킨 요리가 나왔다. 메인요리가 스테이크인데 말이쥐... 그래서 바꿔달라고 했다. 매장 쪽에서는 좀 싫었겠다 하면서도 미안하진 않았는데, 영화 시간이 금세 다가와서 급히 나오느라 디저트를 안 먹고 나왔다. 이럴 수가!
4. 쿵푸팬더는, 그냥 재미있는 정도였다. 인크레더블 이후 애니메이션으로 확 끌렸던 작품을 아직 못 만났다. 니모를 찾아서를 못 봐서인가? 재키 찬 목소리 출연했던데 어느 역할이었을까? 호랑녀가 졸리였던 것은 알겠는데...
5. 토요일 저녁에는 또 다른 약속이 있었다. 나의 야곱의 언니가 당첨되어 받은 성시경 콘서트 티켓. 연대 노천극장에서 우비 입고 비맞으며 노래를 들었다. 시경군은 오늘 군대로 갔다. 회한이 많았나 보다. 가서 무반주로 노래 많이 부를 것 같다고 하던데, 기왕이면 팬을 많이 확보하고 돌아오기를...
6. 우비 입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게 우린 서로 다 맘이 불편했다. 게다가 공연진행 상 이벤트로 준비해 준 촛불을 들고 있자니 더더욱 그랬다. 이게 광화문에서 들어야 할 촛불인데 거 참...;;;;
처음 계획은 공연 마치고 광화문으로 이동하자였는데, 야곱이 전날 화분에 물주다가 발목을 삐고 말았다. 지리산 산행 때도 멀쩡했던 발목이 거 참...;;;
결국 우린 어느 건물에 들어가서 물을 나눠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말한다. "알라딘 얘기가 절반이네요."
헉... 내 얘기의 절반이 알라딘에서 있었던 일, 알라디너들과의 이야기라니...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좀 무안해졌다. 반성도 좀 하려 하고... '나'를 잊지 않는 나를 만들어야지...
7.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국 미사에 참가하려고 6시에 시청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앉아 있지만 주최측이 보이질 않는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알고 보니 엠프차량을 전경 차량이 통제해서 못 오고 계시다고 했다. 기다리는 중에 전경들 모여 있는 쪽에서 한동안 소란이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화악 달려든다! 첫 해 가르쳤던 졸업생 녀석이 내 앞에 서 있다. 쌍동이 학생이었는데 그 중 언니. 녀석은 팔짝팔짝 뛰며 너무 신나 한다. 6월의 마지막 날 행운을 가졌다고. 옛 생각이 나버린다. 녀석은 정말 예쁜 학생이었다. 내 수업을 즐겁게 기다려주었고, 반짝반짝 빛내며 경청했고, 수업 시작 전에 반드시 칠판을 사수해서 물청소까지 마쳐놓았던 아이였다. 가족들과 중국 여행을 다녀오느라 사도세자 수업을 못 들었던 게 지금도 너무 아깝다고 말을 한다. 사실 나도 그때 녀석이 못 들은 게 아쉬워서 따로 불러 수업 해줄까 생각도 했었는데...(그랬다면 너무 오버였겠지?)
최근 아이들과의 만남에서의 '보람'에 대해서 생각이 많았었는데 녀석을 만나고서 다시 기운 업했다. 열심히 달리자.
8. 녀석이 가고나서 또 한참 뒤 드디어 신부님들과 엠프 차량이 도착했다. 미사가 시작된 시간은 7시 반. 전국에서 올라오신 신부님들의 옷차림 구경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도 프란체스코, 도미니크 기타 등등... 소속에 따라 디자인과 문양이 다 다른가 보다. tv에서 보지 못한, 영화 속에서나 보던 그 옷들이 눈앞에 있으니 진짜 신기! 맨 마지막에 붉은 가사를 걸치신 스님 한분이 따라 들어오신다. 어쩐지 유쾌하고 즐거워진다.
기다리는 동안 시민 두명인가가 전경 차량에 끌려가 구타를 당했다고, 그래서 다른 시민들어 끌어내왔다고, 목격자를 찾는다고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아까 잠시 들렸던 소란스러움의 정체가 그거였나보다. 세상에나...ㅜ.ㅜ
미사는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말씀하시는 구절구절이 모두 옳아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가 내내 울렸다. 왼손이 아프면 오른손을 들고, 오른손이 아프면 왼손이 있다며 촛불을 든 우리의 팔을 격려하신다. 미사곡도 불렀지만 헌법제1조도 부르고, 광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도 빠지지 않았다. 광화문이 아닌 남대문을 향해 걷는 걸음 걸음.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는 신도들의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 있다. 정말 존경을 담아, 한없는 애정과 기대를 담아...
9. 11시쯤 귀가했다. 들어오면서도 뭔가 마음에 미심쩍은, 불편한 것이 있었는데 들어와 보니 눈앞에 선명해진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생각이 마비가 된다. 식은땀이 나고 호흡이 불편해진다.
화나는 일이 있고 부당한 일이 있을 때, 그것에 대해서 저항하고 반발하는 일을, 거의 못하고 살아왔다. 꾹꾹 눌러참고 그것이 폭발하는 일이 발생하면 다시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는 일이 반복. 그런데 상처를 준 사람은 제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에 뒤끝 없이 잊어버린다. 나는 기억하고 있는데... 그게 늘 불만이었다. 내쏟고 잊어버리는 당신이, 그때 말하지 못하고 잊지 못하는 내가...
머리 속이 온통 뒤죽박죽이다. 마음을 들켰다는 부끄러움과, 사과받지 못하고 보상받지 못한 상처에 대한 억울함과, 내 마음에 어떻게 자유를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막연함까지...
행복해지고 싶다고 자주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활짝 웃고 싶다고 또 소망한다. 거창한 꿈이 아니었다. 그냥 마음이 조금 편해졌으면 하고 바랐던 것인데, 실상 그건 커다란 바람일 것이다. 이런 날은 나의 야곱이 또 간절하게 생각난다. 언제 어른이 될 것인가...
10. 오후에 원티드를 볼 생각이다.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잠시간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럴 땐 액션영화가 짱. 근데 혹 영화 보고나서 더 화가나는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