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고, 집어치우고, 새출발하라!
Q
이성 친구가 있습니다. 학교 때부터 늘 붙어 다녔어요. 우리가 동성이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도 했구요. 집안, 연애, 꿈 등 시시콜콜 서로의 과거, 현재, 미래 계획까지 알고 싶고, 들려주고 싶어 하는 그런 사이죠. 이제 그 친구 결혼식이 한 달도 남지 않았어요. 신부 역시 제게 소중한 친구입니다. 그들 결혼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친구 이상으로 좋아하고 있단 생각이 들더군요. 주변에 물었더니 모두들 어이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걸 정말 몰랐냐더군요. 제 화젯거리는 늘 그 친구와 있었던 일뿐이었고, 연애할 때처럼 설레어하는 게 다 보였다고. 저는 지난 실연의 여파로 다른 연애를 긍정적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겠다며 최선을 다해 살금살금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이 혼란한 감정이 당황스러워서 미칠 지경입니다. 고백할 용기도 없고 그러지도 않을 겁니다. 그럼 우리 관계는 완전히 어그러질 테니까요. 친구가 저를 얼마나 의지하는지 알고, 또 친구 행복을 깨고 싶지도 않아요. 하지만 막상 그 친구를 보면 괴롭고, 그 앨 영영 잃는 건 더 두렵습니다. 절에 들어가야 할까요. 아님 친구 결혼 생활에 대한 상담 역할이나 하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려야 할까요.
A
0. 음. 당신 건은 투스텝으로 진도 나가야겠다. 당신 우정의 진실, 그리고 고백. 왜냐. 보자.
1. 일본서 수입된 ‘야오이’란 게 있다. 여성 작자에 의한 여성 독자를 위한 소프트코어 남성 동성애물. 만들고 즐기는 이 모두 헤테로섹슈얼 여성이란 점에서, 동성애 문학과도 차별되는 이 깨는 장르가 일반 여성에게 먹히는 이유, 뭐냐. 거친 애정 공세 펼치는 섹시가이에게 내숭 떨다, 겁탈에 준하는 섹스에 결국 복속하는 자, 여기선 여자가 아니라 야리야리한 꽃미남, 남자다. 배역에 감정이입은 가능하되 나는 안전하다. 대리행위자가 나와 같은 여자, 아니니까. 연상 공포, 없다. 감정이입의 정서적 안전거리, 확보되는 게다. 그렇게 야오이는 젊은 여성들의 포르노그래픽 판타지로 기능한다.
1-1. 실연으로 내상 입은 자들의 자기보호 방책 중 하나가 바로 이 이성 관계로부터의 필사적 거리유지다. 당신이 실연 후 다른 연애, 생각도 않고 살금살금 살았다는 거, 그게 그 짓이다. 그 남자와의 관계에, 추호도 의심의 여지 없는 우정,이란 제목 쾅쾅 박아 넣은 거, 역시 같은 짓이고. 우리가 동성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 … 이성 간 우정, 동성 우정엔 결여된, 성적 긴장 으레 존재하기 마련이다. 동성이 더 좋았을 거란 사발은, 그래서 치게 된 멘트. 혹여 느껴 버릴까봐. 느끼면 간격 무너지니까. 지금 안전 상태가 기뻐, 그걸 견고히 하고픈 무의식이, 그런 오버로, 스스로에게 확인사살 하는 거지.
1-2. 그렇게 구축된 우정, 일종의 ‘관계’ 판타지다. 안전거리 확보한 채 거절 공포 없이 누리는 유사 애정행각. 다들 눈치 챘는데 왜 본인만 몰랐나. 관계는 제목을 따른다. 우정이라 제목 달면 또 우정인 양, 제목 부합되게, 관계 작동한다. 그 제목만으론 더 이상 스스로에게 사기 치는 게 도저히 불가능한 지점에 덜컥, 도달할 때까진. 바로 지금 당신처럼.
2. 자, 그럼 고백 파트. 하면. 그 남자, 처음엔 주뼛주뼛할 게다. 허나 곧 으쓱해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심리적 절대 우위에 선 그에게 관계의 일방적 주도권, 넘어간다. 더구나 그 남자 결혼한다. 잃을 게 없다. 아내 외에 덤, 얻는 거지. 당신은. 풀린다고 풀려야 그 아내 몰래 가끔 섹스, 정도, 하겠지. 십중팔구. 그 주위 맴도는 관계위성 된다. 진상이지 뭐.
2-1. 당신이 ‘관계회피’증후군 피해자 아니었다면, 입 다물고 그 부부 깨지길 정한수 떠놓고 빌며 때를 기다리라 했을 게다. 물론 당신은 따로 연애하면서. 그런데. 당신은, 고백 하는 게, 낫겠다. 왜냐.
2-2. 당신이 고백하지 않겠단 이유가 그가 당신 많이 의지하고 또 그 행복 위해서란다. 소설 쓴다. 당신이 그 자 엄만가. 제 앞가림도 못해 비구니 되겠단 주제에, 시방 누굴 걱정해주나. 지금 당신이 챙겨야 할 건 제 짝 찾아 결혼까지 할 그 자가 아니라 당신이야. 당신, 그의 행복을 위해 이 땅에 온 존재 아니라고.
3. 사랑했다, 통보하고, 떠나시라. 물론, 결혼한다니, 아까워서, 감정 폭주 하는 걸 수 있다. 또한, 말이란 게 자기실현성이 있어, ‘사랑’, 뱉어놓으면 실제론 그렇지만도 않았건만 그리로만 드라이브하는 힘, 있다. 그리하여 당신을 그 관계에 더 얽어맬 리스크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지금 당신에게 절대 필요한 건, 처절한, 자기고백이다. 자기기만적 유사연애였다고 인정하시라. 그렇게, 친구 아니라, 연인으로, 이별해야 한다. 그렇게, 일단락, 지어야 한다. 그리고 엉엉 슬퍼하시라. 그 다음, 진짜, 시작하시라. 쉽지 않을 게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 행복 위에 이 땅에 온 거다. 자기 인생 갖고 소설 쓰는 거 아니다.
PS - 나이 들어 가장 비참할 땐 결정이 잘못됐었다는 걸 알았을 때가 아니라 그때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단 걸 깨달았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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