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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 윌리 ㅣ 웅진 세계그림책 26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3년 9월
평점 :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는 모두 소중한 존재이지만, 두 사람의 역할과 느낌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엄마라 할지라도 아버지의 존재를 홀로 다 메꿀 수 없을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은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 아버지가 아이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 직접적인 화법을 피하고 간접적으로 에둘러 말하는 책이다.
우리의 윌리는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고릴라(침팬지)이다. 소심한 성격의 윌리는 축구를 하고 싶어하지만 축구화도 없고 좀처럼 선수들 틈에 끼이질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가던 윌리는 아버지가 젊었을 때 입었던 옷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으로부터 축구화 한켤레를 받는다. 그림자로만 보여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윌리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집에 돌아온 윌리는 옷을 갈아입고 단추를 꼭꼭 채우고 양치질을 4분 동안 꽉 채워서 하고,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그치기 전에 침대로 쏙 들어간다. 이 부분이 참 인상깊었는데, 아이에게 '규범'으로 일러준 규칙을 아이는 꼬박꼬박 잘 지킨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 앞에서 먼저 질서를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그치기 전에 침대로 쏙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무서워서였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도 그랬으니까. (사실 지금도 공포영화 예고편이라도 본 날은 화장실 다녀오기 무섭다. 특히 물 내리는 소리가 너무 크다ㅠ.ㅠ)
아침에 일어나면 윌리는 똑같은 과정을 반대로 하면서 역시 모범적인 아이로 돌아간다. 길을 걸을 때에는 바닥에 금도 밟지 않으면서 다니는 윌리. 어찌보면 꼼꼼한 성격이지만 또 어찌 보면 몹시 소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윌리는 축구화를 신고 날듯이 달려서 주전선수로 뽑히게 되고 시합 날짜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악몽에 시달리며 늦잠을 잤고, 겨우 일어나서 달려나갔을 때에는 소중한 축구화도 집에 두고 가버렸다. 기다렸던 경기에 늦을까봐 다른 신경 쓸 새 없었던 윌리는 금도 마구 밟으면서 달려간다. 소중한 축구화의 부재로 경기를 망칠 꺼라고 위축되어 있던 윌리는 자신의 축구화 없이도 경기장에서 날듯이 달리며 멋진 경기를 보여준다.
이제 소심쟁이 윌리는 온데간데 없다. 윌리는 지금껏 마법같은 축구화 덕분에 자신이 잘 뛸 수 있었다고 믿어왔지만, 윌리 자신은 이미 훌륭한 선수로 거듭나 있었던 것이다.
책 속에서는 축구화를 전해 준 인물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의 뒤에서 말없이 아이를 응원해 주는 듬직한 인물로서의 아버지를 독자들은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만날 수 있다. 윌리의 성격이나 습관, 그리고 표정과 행동 변화를 짧은 페이지 안의 그림 속에 꼼꼼히 녹여놓은 앤서니 브라운의 실력에 다시금 감탄한다. 윌리 화이팅(>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