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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인지, 엔도 슈사쿠는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을 선별하고 그것을 각각의 등장인물로 만들어내어 전체 이야기를 전개한다. 따라서 <깊은 강>은 그가 살면서 평생 고민했던 문제들과 그것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 종합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 된다.
이소베의 경우, 미쓰코의 경우, 누마다의 경우, 기구치의 경우, 오쓰의 경우. 등장인물 모두 각각의 경우는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찾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는 다른 어떤 것으로 덮어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은 결국 그것을 찾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나의 경우처럼.
그들은 자신이 찾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미쓰코는 그러한 자신의 상태를 공허감이라고 표현한다. 좋은 대학에 다녀도, 어떤 남자와 연애를 해도,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도,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려도, 그녀는 공허감을 느낀다. 이유를 알지도 못하고 정확히 설명도 못하겠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가 없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공허감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무엇으로도 덮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찾아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에 무엇이 비어 있는 것인지, 자신의 심연에 있어야 할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그 공허감을 안다. 화목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도 마음 한편에 공허감이 있을 수 있고, 재밌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공허감을 느낄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마음 깊은 곳에 공허감이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삶의 이유나 의미를 찾는 마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든, 채워지지 않는 그 마음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존재한다. 파스칼의 통찰이 그것에 대한 적절한 묘사이지 않을까.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신을 배제한 이후로, 인간의 마음에는 무한한 신을 잃어버린 자리에 무한한 공허가 존재한다고. 인간에게는 유한한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공허감이 존재한다고.
오쓰는 자신이 찾던 것을 예수에게서 발견한다. 그 자신의 표현대로, 예수에게 붙잡힌 오쓰는 결코 예수를 떠날 수 없다. 신학적 견해에 문제가 있다며 신부가 되지 못하고 유급을 당해도, 가톨릭 수도원에서 다른 수도사들에게 비판을 받고 배척을 당해도, 힌두교 수도원에서 힌두교인과 같은 모습으로 생활을 하면서도, 오쓰의 마음에는 십자가에서 모든 병고를 짊어진 볼품없는 모습의 예수가 항상 있다. 문둥병으로 짓물고 허기로 앙상한 늙고 추한 몸으로 코브라와 전갈의 독을 견디며 쭈그러든 젖가슴으로 인간에게 젖을 주고 있는 모습의 차문다 여신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는 깡마른 예수가 항상 오쓰의 마음에 있다. 그렇게 오쓰는, 죽어야 할 죄인을 대신하여 자신이 모든 비난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무력한 예수처럼, 경계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가장 비참하게 죽어가는 이들과 죽어야 할 범죄자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대신 내어주는 바보 같은 삶을 산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우스꽝스럽고 바보 같은 삶을 선택할까. 미쓰코에게 희롱당하고 버려진 개와 같던 오쓰를, 예수는 받아주었고 아무 말 없이 함께 하였다. 그렇게 오쓰는 예수의 사랑에 붙잡혔고, 그렇게 오쓰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통한 자들 편에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그들과 함께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오쓰처럼, 그리고 기구치가 만났던 외국인 청년 가스통처럼, 예수의 사랑에 붙잡힌 사람들은 그렇게 예수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소베의 경우, 미쓰코의 경우, 누마다의 경우, 기구치의 경우, 오쓰의 경우. 그리고 나의 경우. 표현되는 모습은 제각기 다르지만 우리가 결국에 찾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 우리의 심연에서 찾고 있는 그것은 사실 신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수가 보여준 것처럼 그 신의 모습이 사랑이라면, 우리는 그 사랑을 찾아야만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 비참하고 초라하도다.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겨 버렸고, 마치 멸시당하는 자인 듯,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의 조롱을 받도다. 진실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떠맡았도다. - P65
"하지만 난 인간의 강이 있다는 걸 알았어. 그 강이 흐르는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아직 모르긴 해도. 그치만 과거의 많은 과오를 통해, 자신이 무얼 원했는지 이제 겨우 조금 알게 된 느낌이야." 그녀는 다섯 손가락을 단단히 움켜쥐고 화장터 쪽을 바라보며 오쓰의 모습을 찾았다. "믿을 수 있는 건, 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짊어지고 깊은 강에서 기도하는 이 광경입니다." 하고, 미쓰코의 마음의 어조는 어느 틈엔가 기도풍으로 바뀌었다. "그 사람들을 보듬으며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픔. 그 안에 저도 섞여 있습니다." - P316
미쓰코는 백인 수녀에게 말을 걸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시는 건가요?" "네?" 수녀는 깜짝 놀란 듯 푸른 눈을 커다랗게 뜨고 미쓰코를 응시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수녀의 눈에 놀라움이 번지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그것밖에…… 이 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게 없는걸요. 저희들은." 그것밖에라고 한 건지, 그 사람밖에라고 말한 건지, 미쓰코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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