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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의 백지수표 -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19가지 특별한 주문
페기 맥콜 지음, 김소연 옮김 / 서돌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저자는 이 책에서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자다. 내 삶은 풍요롭다’는 말로 끝나는 (단순한) 암시가 아닌, 그 메시지와 동반된 시각적 이미지와 충만한 감정을 온몸으로 느껴라. 그러면 의욕이 충만해지고, 수많은 기회와 마주치게 되며, 마침내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난 이미 부자야.“라고 선언하며 그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만 있다면 꿈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다만, 잊지 말 것은 단순한 상상이나 바람이 아닌 그 상황을 실제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많은 돈이 예금된 통장을 보며 행복감을 느끼듯이 말이다. 우주를 움직여 ‘부’를 끌어오기 위한 에너지가 바로 감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부’를 얻을 수 있는 19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들을 요약하면 ‘첫째, ‘부’와 ‘돈’은 제한적인 것이 아니며, 공기처럼 무한하다는 것을 믿어라.‘ ’둘째, ‘부’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며 내가 이미 갖고 있다고 확신할 때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셋째, 현재의 상황에 충실하며, 항상 감사하라. 감사의 마음은 자신의 감정을 더욱 긍정적으로 만들어 준다.‘이다.
그러나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를 얻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실컷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면서도 ‘부’란 자기 손에는 닿지 않는 것으로, 자신은 도저히 가질 수 없으며,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만이 누리는 것이라고 단정 짓고 ‘부’를 가질 수 없는 이유만 줄줄이 늘어놓는다고 한다. 그런 좁은 생각과 편견이 (부를 막는) 장벽임을 모른 채.
저자가 말한 ‘부’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들은
첫 번째, ‘부(돈)’는 제한된 것이다. 띠라서 누구나 원한다고 다 가질 수는 없다.
두 번째, ‘돈 버는 사람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기에 내가 그들처럼 되기 전에는 ’부‘를 가질 수 없다. 근데 나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세 번째, ‘돈을 벌려면 정상적인 행동으로는 안 된다.’ 따라서 더럽게 살거나 아니면 청렴하게 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사람들은 ‘부’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부’는 제한된 것이기에 남보다 먼저 갖거나, 남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세금을 안 내거나, 남을 속이거나, 줘야 할 돈을 안 주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는 “나는 정직한 사람이니 당연히 돈을 못 벌수밖에 없지.” 생각하며 돈 없는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가질 수 없어 못 가진’ 것을 ‘가질 수 있지만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위로하면서.
상상할 수 없으면 감정을 움직일 수 없다.
나는 [시크릿]류의 책에서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는다. ‘정말 맞아!’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꿈이 실현될 것임을 믿고 확신하면서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이뤄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책에서 말하는 것과 내가 종교에서 배운 믿음이란 게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맨 날 입으로는 ‘믿습니다.’ 하면서 ‘진정으로 원한다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말을 안 믿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내가 모르는 것과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며 더 나아가 저자 말처럼 이를 감정으로 느낀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포르쉐’를 원한다면 내가 지금 그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앞 차를 따돌리는 순간의 긴장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상상력과 확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단순한 바람, 되면 좋고 안 되어도 그만인 모습이, 게다가 머릿속에서 급조한 상상이 어떻게 감정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현실적으로 꿈꿀 수 없는 것을 꿈꾸며 자신의 바람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것은 아닌지. (여기서 현실적이라는 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열악해 도달할 수 없는’ 이란 개념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 ‘감정적으로 이뤄졌다고 느낄 수 없는’ 이란 의미다.)
‘돈’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현대인들.
‘돈은 현대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교환도구’로써, 경제학자들의 말처럼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것과 바꿀 수 있는 카드의 조커(Jocker)와 같은 것이다.(‘돈(화폐)’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이 가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아니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의 가치가 교환가치를 넘어선 것 같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교수가 말한 것처럼 ‘마음이 허전하고 의지할 곳이 없다보니 대안으로 돈에 맹종‘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이 보낸 메일에 가끔 이런 말이 들어있다. “교수님. 요즘 제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하루 종일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면 하루가 그냥 지나가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요?” 이런 내용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오는 이유는 나도 한 때 이런 생각을 하며 내 자신을 학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물론 지금도 이런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있어야 학비도 내고,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 과외공부도 시킬 수 있고, 남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인정받으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우리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했으면서도, 하루를 마감할 때가 되면 항상 허전하다. 내가 뭐 때문에 살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나는 돈 벌기 위해 태어난 건가?‘
이제는 ‘부’의 개념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4년 전, 직장을 그만둘 때 무척 두려웠다.(퇴직하는 직장인들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겪을 것이다.) 안락한 목장을 떠나 황량한 들판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퇴직 후 육 개월 동안 나는 세상이 너무 두려워 사람도 거의 못 만나고, 낮에는 외출도 하지 못했다. 옆 집 사람이 “지금 이 시간에 왜 집에 있어요?” 라고 물을 것 같았다. 특히 오랜 세월동안 달고 있던 계급장을 떼고(명함 No, 직급 No, 회사브랜드 No, 안정된 급여 No) 맨 몸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나도 낮 설었다.
직장을 그만둔 후 가장 두려웠던 것은 돈 문제다. 퇴직할 때 받은 퇴직금도 곧 바닥날 터인데 그 후 어떻게 살 것인지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직장인일 때 받던 연봉에 맞춰 가계부는 커질 때로 커진 상황이라 더더욱.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는데, 바로 일에 선택 기준이었다. 나는, 일전에 잠깐 이야기한 것처럼, 헤드헌터에게 전화가 오면 엉뚱한 조건을 제시했다. 당장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학교 강의를 위해 일주일에 이삼일은 회사출근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헤드헌터들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기업고문으로 취직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일주일에 이틀 출근하겠다고 하니 당황하지 않겠는가.(아마 이런 상황에서 기업체에 근무할 방법은 사외이사나 자문위원 같은 직책밖에 없을 것 같다.)
‘부’라는 말은 ‘풍요로움’과 같은 의미 아닌가?
당시 내가 이런 조건은 내건 것은 ‘돈’이 필요 없거나 직장 다닐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도리어 간절히 원했다고 하는 데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겁도 없이(?) 내 걸게 된 것은 ‘부(돈)’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기 때문이다. 즉 ‘부’라는 게 ‘통장에 들어있는 돈’만으로 측정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 ‘부와 돈’은 ‘여유로움과 풍요로운 삶을 위한 수단’이지 여유로움과 풍요로움 그 자체는 아니라는 생각, 따라서 ‘부’란 개념을 ‘돈’이 아닌 ‘풍요로움’으로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에게 ‘돈’ 대신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물론 돈 많다고 과시하려는 사람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집안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 널고 아이에게 점심을 차려주는 것도 풍요로움을 주는 소중한 일이었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미소 짓는 것도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일이며, 한 평생 고생하신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도 과거에는 느껴보지 못한 풍요로운 일이었다. 특히 새벽에 글을 쓰고, 학교에서 강의할 때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줄 것이 있다는 마음에 더욱 알찬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백만장자라고 모두 여유롭고 풍요롭지 않으며, 지갑 속에 돈 천만 원이 들어있다고 세상 고민이 다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는가.(예전에 내가 자살을 생각했을 때 받았던 연봉이 억 단위였다) <몰입>을 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것처럼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먹고 살 수만 있다면 그 이상의 돈은 행복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에 감정이입하면 되지 않을까.
저자는 ‘부’를 얻으려면 실제 ‘부’를 얻은 것처럼 느끼고 풍요로움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으로 바라보며 항상 감사하라고 한다. 그러면 ‘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다.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돈 벌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는데?’ 고민하지 말고 실제 부가 생긴 것처럼, 그래서 풍요롭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느낄 수만 있다면 나머지는 우주가 알아서 해 준다는 것이다.(인간의 뇌는 현실과 감정이 동반된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상할 수 없는 생각하려 애쓰지 말고 우리가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 그 모습을 꿈꾸면 되지 않겠는가?
나는 ‘부’를 풍요로움으로 대체했지만, 당신은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나는 요즘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이런 시간을 허락해 준 ‘신’에게 감사하게 된다.(물론 그런 자리에 있게 해준 선배님에게도 고마움을 느끼고) 그리고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듯한 안락함을 느낀다. 직장인일 때는 느껴보지 못한, 직급과 결재권을 흔들며 폼 잡을 때는 상상도 못해본 풍요로움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풍요로움’의 감정을 마음 한 가득 느끼며 그런 감정과 함께 살고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눈앞에 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이런 감정이 많은 돈이 들어있는 통장을 바라보는 마음과 같다면, 그래서 이런 감정이 [끌어당김의 법칙]을 움직일 수 있다면 ‘부’는 자연스럽게 내가 느끼는 풍요로움에 맞춰 따라오지 않겠는가.
나는 ‘부’보다는 ‘풍요로움’을 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책에서 말하는 백만장자의 모습은 잘 모르겠지만 풍족한 마음으로 커피 한잔 마실 때의 모습은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지 상상하지 어려운 ‘돈’을 생각하기보다 ‘풍요로움’을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내가 상상하며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최적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도 당신 나름대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리는, 그래서 주위사람들을 보며 ‘감사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겠는가. 세상이 요구하는, 남보다 앞서기 위해 필요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얻어야 하는 뭔가가 아닌 진정으로 당신의 영혼이 기뻐 춤출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상상하며 감정적으로 느낄 수 그런 것 말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원하는 감정이입. 쉽지는 않지만 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
물론 이런 마음을 갖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자주 ‘경제적인 문제’때문에 고민도 하고, 내일 일을 걱정하며 안절부절 못할 때가 많다. 게다가 통장에 든 돈이 바닥날 때면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 들어올 때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심호흡을 하며 아래 말을 생각한다.
‘오늘 나는 내 희망과 꿈을 이루기 위해 정확히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내가 걱정해서 달라질 것은 무엇인가?’
'걱정 대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이 일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대답은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일을 찾아하면서 일이 해결되리라 믿고, 현재의 풍요로움에 감사하자는 것이었다. 고민한다고 안 될 일이 될 리도 없고, 두렵다고 해서 누가 나를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해 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탱큐! 스타벅스]에 나오는 마이클 게이츠 길처럼 60 넘은 노인이지만 커피 잔을 나르며 그 일에서 만족과 풍요로움을 얻는다면, 그리고 그 감정이 진심이라면 저자 말대로 나의 풍요로운 에너지가 우주의 에너지를 움직여 내가 바라는 모습에 한 발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여지라도 생길 것 같다.
‘부’를 ‘돈’ 대신 ‘풍요로움’으로 바꿔보자는 것.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