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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피쉬
오오사키 요시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이 살아오면서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과의 관계는 기억이라는 깊은 호수 속에 잠겨 있다. 이것들은 눈으로는 볼 수는 있지만, 손으로 다시 붙잡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기억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만약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당신을 위해 파일럿 피쉬가 되어 준 그 누구이다.’  [파일럿 피쉬]가 담고 있는 내용이다.  

이 책, [파일럿 피쉬]는 우리들이 살아 오면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 온, 그렇기에 일상적으로 항상 부딪치면서도 그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소재로 삼은 책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이런 소재 자체가 소설의 주요 테마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 왔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책 자체의 이야기 전개와는 상관없이, 주인공들이 겪게 되는 사건이나 서로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독자 자신의 지나간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내 모습을 만들어 준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과거에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다시 전화를 한다면 나는 뭐라고 반응할까?

나와 헤어진 그 사람은 지금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나 같으면 한 직장에 19년을 다닐 수 있을까? 그것도 남들에게 내 세우기 불편한 일을 하는 직장에서 등등.

 

그리고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들이 색 바랜 영화필름처럼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갈 것이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사람들에 대한 회상과 후회, 그리고 고마움의 감정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마음이 복잡해 질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심오한 철학이나 인간이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삶의 모습과 같은 거창한 이정표를 얻고자 하지 않았다. 단지,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깨닫지 못한, 내 안에 잠겨있는 깊은 호수 속을 한번 들여 다 볼 수 있게 나를 그 곳으로 이끌어 주기만을 바랬다. 오랜 시간 돌보지 않아 물이끼로 탁해진 호수의 수면을 걷어내고, 그 안에 고요히 잠겨 있는 과거의 아련한 추억들을 하나씩 수면 위로 끄집어 내 깨끗이 닦아 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 주기만을 바랬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느꼈기에. 그리고 저자 오사키 요시오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나를 그 곳으로 이끌고 간다. 그는 우리에게 대단히 소중한, 그리고 무척 큰 선물을 준 것이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만 더 덧붙여 보고자 한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파일럿 피쉬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의 파일럿 피쉬는 누구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바로 내가 나의 파일럿 피쉬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렇기에 함께 모여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 간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도, 사랑과 증오도, 그리고 고통의 거의 모든 것이 녹아 있다. 내가 누군가를 기쁘게 했다면, 그는 또 다른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었을 것이고, 내가 누군가를 슬픔에 잠기게 했다면 그 역시 또 다른 누군가를 울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라는 작은 잎사귀 하나가 호수에 떨어져 일으킨 잔잔한 파문은 호수 전체로 서서히 번져 갔을 것이고, 그러한 파장의 물결은 결국엔 나에게 다시 다가와 내 잎사귀의 갈라진 틈새 하나를 건들였을 것이다.

 

아마도 나의 파일럿 피쉬는 또 다른 누군가를 자신의 파일럿 피쉬로 삼고 살아 왔을 것이고, 나 역시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의 파일럿 피쉬가 되어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파일럿 피쉬들의 연결 속에서 내가 보낸 하나의 메시지가 결국 나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사람은 항상 받기만 하거나, 또 반대로 주기만 하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자신을 잊어버린채 항상 다른 누군가 만을 위해 살아가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기에. 가난한 자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조차 가난한 자, 그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심적인 평화를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너무 무리한 정의일까?

 

파일럿 피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지만, 분명히 자신의 역할을 고통스럽다고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삶 자체가 자신의 삶이라고 알고 있기에. 그리고 자신 역시 자신을 위한 파일럿 피쉬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대화처럼 파일럿 피쉬를 보며 불쌍하다고 느낀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살아 가는 이 세상에서 습득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위에 있는 자와 아래에 있는 자, 부리는 자와 부림을 받는 자, 버린 자와 버림을 받은 자의 이분 법적인 사고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긴 판단이 아닐까 하는.

 

과거 언젠가 나를 위해 살았다고 기억되는, 나의 파일럿 피쉬였다고 생각되는 그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그 순간을 고통이라고 생각하며 그 순간들을 보냈을까? 그리고 그는 지금, 그 순간을 되돌아보며 괴로워하고 있을까? 그래서 그는 불쌍한 사람인가? 우리는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오직 그 자신만이 알 뿐이다.

 

나는 우리들이 파일럿 피쉬의 삶을 불쌍하게 바라보기 이전에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한 파일럿 피쉬의 삶을 사랑하고, 그런 행동을 기리는 세상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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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유다의 밀약 - 유다복음
로돌프 카세르 지음 / National Geographic(YBM시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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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의 이해할 수 없지만, 무엇인가 의미를 담고 있는 복음서

 

 

  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가슴 아픈 사연이 하나 있다. 그것은 종교때문에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2년 동안을 거의 붙어 다니다시피 했던 친구 한 명과 헤어지게 된 사건이다. 그것의 발단은 성모 마리아였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카톨릭 집안이다. 아버지쪽 집안도, 어머니쪽 집안도 모두 카톨릭 신자들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태어나자 마자, 나와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물론 물어 봐도 아무 말 못했겠지만, 차디 찬 성수로 세례를 받았고, 지금의 이름도 그 때 받은 세례명을 그냥 호적에 올려버린 것이다.

 

이런 집안 분위기 덕분에 유아세례를 시작으로, 국민학교 때 영세, 고등학교 때 견진 성사, 대학원 마치고 혼인성사, 이제 죽어가면서 종부 성사만 받으면 천주교 신자가 받아야 하는 세례는 다 받는 것이다.

 

태생교우란 천주교 내력을 가진 나에게 그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도전을 한 것이다.

 

! 너희 천주교 신자들은 왜 사람을 믿냐?

사람을 믿어? 예수님 말하는 거야?

아니 예수님말고, 마리아라는 예쁘장하게 생긴 예수님 엄마 말이야!

! 너 성모 마리아님에게 감히 예수님 엄마가 뭐냐? 넌 느그 할머니한테도 할망구라고 부르냐!

 

이렇게 말로 옥신각신하다 그 다음엔 몸싸움으로, 그리곤 주먹 싸움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발이 상대방의 얼굴로 가슴으로 왔다 갔다 하더니, 결국엔 피를 보게 된 것이다. 그 날 이후로 그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 지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언제인지 날자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주일미사를 보던 중, 갑자기 그 친구 생각이 났다. 그리고 성당 제단 앞에 놓여 있는 성모 마리아상으로 눈길이 갔다. 그 때 그 분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 친구가 그립죠! 누구의 잘못이든지 간에. 난 이미 축복을 받았고, 선택을 받았고, 하늘에 올라 성스러운 자리에 있어요. 세상의 누가 나를 미워한다고 해서 내가 버림받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나를 헐뜯는다고 해서 나의 성스러움이 사라지는 게 아니죠. 나는 이미 성스러움 그 자체로 있어요. 마치 하느님(하나님)의 존재와 성스러움이 인간의 평가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나를 위해서 화 내지 말고 사소한 일로 친구와 헤어진 자신을 생각하세요. 중요한 건 바로 자신 속에 살아 숨쉬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충만함이니까요.'

 

홀로 성스럽고 홀로 존재하는 신과는 달리, 인간에게 있어 종교란 이쁘다고 해서 십자가를 목에 걸고다니는 패션의 한 방법이거나, 일주일에 한번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의 정신과 영혼을 정화하는 명상과 같은 수준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한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뿌리박고 있는 그 사람의 근본적인 신념체계이자 가치관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종교의 이름으로 어떤 시대엔 수많은 여자들을 불태워 죽였고, 어떤 시절엔 자신의 종교를 강제로 전파하고자 조용히 살고 있는 나라를 침범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순수한 종교성을 이용해서 한 민족의 말살정책을 거리낌없이 선포하고 실행했으며, 또 언젠가는 신의 이름으로 대도시 한 복판에 있는 대형빌딩을 스스럼없이 비행기로 폭파하기도 했다.  

 

만약 이 책, 유다복음을 이를 심각하게 바라본다면, 세계의 3대 종교 중 2개 종교, 기독교와 이슬람교, 의 존재 기반을 흔드는 이단적인 악음(Demon Words)으로 보일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도 못한 새로운 종교분쟁의 씨앗이 될 수도 있는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다복음의 내용은 이 책을 감수한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 시대의 철학과 신화를 그대로 이어 받은 듯한, 그래서 그 때 살고 있던 사람들의 세계관과 우주관이 바로 진리라고 말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구약성서에서의 야훼, 신약성서에서의 하느님/하나님, 이슬람교의 알라 모두를 하급 신으로 규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신은 하급 신이며 그 위의 더 높은 천상에는 다양한 영계가 있고, 이러한 영계들 중 가장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은 영이 아닌 혼을 가진 사람은 셋의 자손일 뿐이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이 아닌 지식이 필요하며, 이 세상의 모든 중계자들은 모두 우리를 잘못된 곳으로 이끌고 있다. 등등

 

그러나 긍정적으로 이 유다복음의 내용을 바라본다면, 이 복음은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필요한 지식을, 필요한 만큼 우리들에게 전달해 주는 고마운 복음이라고도 규정 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의식혁명]을 쓴 데이비드 호킨스박사는 인간의 정신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진화해 나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진화단계는 아주 낮은 단계, 즉 미움과 질투, 공포를 느끼는 수준에서부터 중간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있는 사랑의 단계, 그리고 그 위에 예수와 같은 수준의 정신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는 점진적인 진화가 아닌, 계단식의 진화로 발전되어 나가는 데, 이러한 진화는 인간 스스로가 발전시킨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어디에 선가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내려 받음으로써 이루어 진다고 한다. 불의 사용, 농경시대의 시작, 그릇과 무기 사용, 그리고 수많은 이론과 발명 등등.

 

그리고 [아직도 가야 할 길]로 유명해 진 심리학자 M. 스캇 펙박사는 이러한 정신적인 진화를 통해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의 목적지는 바로 우리가 태어난 곳, 즉 신에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한다.

 

호킨스 박사나 스캇 펙 박사의 논리가 맞다면 우리들이 어떤 사물이나 이론, 그리고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거리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는 이미 우리들이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정신 수준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본다.

 

띠라서 유다복음은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정신이 감내할 수 없는 시기에 만들어졌기에 어쩔 수 없이 오랜 세월 잠자고 있다가, 우리들이 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지금에야 비로소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라도 해석한다면 너무 허무맹랑한 논리일까?

 

유다복음은 분명히 현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의미하는 것이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지 간에. 그러나 나의 지적 수준이 부족하기에 , 그래서 유다복음이 어떤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지 지금 내가 가진 지적 수준으로는 알 수 없기에, 이 책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런 것도 있었구나 하는 것과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이 인간의 선택에 의해 정의 내려진 것이구나 하는 두 가지만을 이해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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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 고객에 미쳐라
케네스 블랜차드 외 지음, 조천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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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90년 대 초반에 고객관리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C.R.M이란 단어를 보게 되었고, 곧 이어 고객감동, 그리고 이제는 고객의 수준을 넘어 그들을 회사의 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 다음에는 또 어떤 말이 나올 지 무척 궁금하다. 그러다 보니 고객에 미쳐라는 책 제목 자체가 무척 친근하게 와 닿기는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인상을 독자에게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풍성한 말 잔치 속에서 ! 고객에 미쳐라 란 책의 내용이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이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기업의 서비스센터나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멋들어진 매장, 또는 별 다섯 개가 붙은 특급호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집 밖으로 나가면 바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가게, 1~2만원짜리 피자를 팔고, 멕시코 음식을 파는 평범한 음식점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의 피자가게는 우리나라에서 부대찌게와 삼겹살로 유명한 놀부 프랜차이스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음식점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에 주유소 사장을 맡아 주유소를 관리해 본 적이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주유원들의 생활과 그들이 받고 있는 임금,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직장과 삶에 대한 태도를 가까이서 바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8시간 근무로 받을 수 있는 하루 일당은 2만원 정도, 한달 내내 일하면 60만원~70만원정도가 손에 들어 온다. 그들의 손과 옷은 항상 기름에 젖어 있고, 주유를 하고 세차하는 것 자체도 육체적으로 그리 편안한 일은 아니다. 파트타임이 아닌, 정규 직으로 채용되어 일할 경우 한 달에 가져가는 돈은 90만원~100만원 수준. 이들이 생각하는 내일은 무엇일까?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면서, 도로에 떨어진 여러 가지 오물로 뒤범벅이 된 남의 차를 닦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물론 회사의 정책은 항상 고객만족을 떠나 열망하는 고객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지침, 감시, 평가,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해서, 이를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세부지침까지 꼼꼼히 만들어 보낸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말을 한다. 고객만족만이 주유소가 살 길이다. 아니 이제는 만족의 수준이 아니라,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본사의 정책은 본사의 경영진, 기획실, 그리고 본사의 영업사원에서 각 지사 관리 임원과 그 내용을 전달하는 지사 영업담당자를 거치면서 정말 중요한 내용, 즉 이 일을 왜 해야 하며, 이 일을 통해 현장 직원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은 사라진 채 매출을 올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장 담당자들에게, 그리고 주유소를 관리하는 사장들에게는 회사에 보고할 실적과 자기 손에 남게 되는 수익이 더욱 중요한 것이기에.

 

이 운영하는 곳도 매장을 관리하는 직원의 대부분이 파트타임 직원들일 것이다. 이들 파트타임 직원들의 하루 일과는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것부터 남이 먹다 남은 그릇을 치우고 식탁을 닦는 일, 그리고 고객의 투정과 호통을 들어 주어야만 하는 힘겨운 나날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곳은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 잠시 스쳐가는 곳일 수도 있고, 급전을 마련하기 위한 임시 방편일 수도 있다. 게다가 자신의 미래를 그려 볼 수 있는 직장은 더욱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이런 직원들을 통해, 그리고 이런 직원들과 함께 매장 자체를 고객마니아 들이 모인 장소로 바꾸고자 노력하는 모습들을,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경영진들의 고민과 함께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제는 직원과 고객의 행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기업만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과 순식간에 죽어가는 사업을 살려내는 어떤 독특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업을 하면서 진정으로 고객을 통해 성공하고 싶어하는 경영자나 리더에게,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 고객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

 

둘째, 경영자의 꿈과 생각을 글로 멋들어지게 정리하는 것보다, 현장 직원들이 이것들을 왜 해야 하는지를 먼저 교육하고 설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셋째, 고객과 직원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결정했다면, 회사의 모든 정책 결정과 목표 수립, 업무 관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직원 개개인의 업무평가까지도 이를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넷째, 경영자 스스로가 고객을 만족시키고, 직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만이 기업을 키우고, 그 기업을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어야만 한다. 즉 이러한 경영자의 확고한 신념만이 고객을 위하고, 직원을 위함으로서 발생할 수 있는 단기적인 손실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아래의 세 가지 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첫째, 이 책은 고객관리나 조직운영에 대한 내용이기 보다는 현재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그리고 자신의 사업이 지속 가능한 사업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리더십에 대한 것이었다.  저자는 짐 콜린스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훌륭한 리더를 나타내는 두 가지 특징이 의지와 겸손이라고 했다. 의지는 비전, 사명, 목표를 추구하는 결단력이다. 리더십은 리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그들의 욕구를 위한 것임을 깨닫는 바로 겸손이다.

 

그리고 겸손에 대해 프레드 스미스의 말을 인용한다.

 

겸손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하여 나오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둘째, 현대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마지막 경영방식은 생산자나 판매자가 아닌 고객 입장에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같지만, 이를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너무나도 두려운. 

 

 

셋째, 우리도 ! 처럼 사업을 운영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맞는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당신이라면 어떤 문으로 가고 싶겠는가? (중략) 기억하라. 결코 늦지 않다. 얌! 브랜드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조직이 고객중심 기업을 만들 수 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관심만 갖지 말고 헌신하라.

 

나는 이 책을 통해 고객중심, 직원중심으로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의 수준을 넘어, 누구든지 직원, 고객과 함께 사는 세상을 그릴 수 있다면, 그리고 이를 강한 의지와 겸손을 가지고 사업을 운영한다면, 얌!과 같은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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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를 올려라 - QBQ 어드밴티지 법칙
존 G. 밀러 지음, 정명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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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언제나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우리 스스로에게 한 질문이던,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한 질문이던지 간에. 결국 우리의 모든 행동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실천으로 옮긴 것일 뿐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장된 말일까?

 

재미있는 점은 동일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대답의 내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건널목의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때 횡단보도 한 가운데에서 어떤 아이가 오도가도 못하고 혼자 서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우리가 누가 어린 아이를 저런 곳에 세워 놓은 거야! 아이 부모는 다 어디 있어? 라고 질문을 하게 되면, 우리는 부모를 찾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위험한 곳에 혼자 서 있네! 저 아이가 다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질문을 생각해 내면 아마도 우리는 어린아이를 안전한 길가로 데리고 오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 그 아이에게 다가가거나,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세우려고 하거나, 아니면 경찰을 부르려고 할 것이다.

 

시장조사회사에서 정확한 자료를 모으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연구하고 고민하는 여러 과정들 중 가장 중요한 과정은 설문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조사결과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이란 결국 설문지를 통해 얻어진 자료를 여러 가지 통계기법을 활용해 하나의 방향성을 찾아 내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통계 프로그램이나 진단 방법을 동원해도 잘못된 설문지로 인해 얻어진 잘못된 대답의 오류를 이겨낼 방법이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던진 질문 그 자체가 우리의 대답과 행동을 결정할텐데, 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적합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일까? 이것이 [스위치를 올려라]의 저자가 가진 기본적인 의문이었으며,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에게 던지는 올바른 질문, The Question behind the Question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내 자신에게 또는 나와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던진 질문들을 생각해 봤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그러나 삶의 방향에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하나를 잊어 살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로 내가 어떤 결정을 하고 행동을 했던지 간에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은 바로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라는 점이었다.

 

직장생활 시절, 상관이 나에게 어떤 일을 맡기면 이런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이일을 누구에게 시키지? (Who) 이런 일을 왜 나에게 맡기지? (Why) 아니면 이 일이 언제나 끝날 수 있을까? (When) 이 때 만약 내가 이 일이 어떤 결과를 원하는 것이지? (What)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되지? (How) 와 같은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졌더라면 그 당시 내가 내린 결론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QBQ질문들은 What(무엇을) 혹은 How(어떻게)로 시작한다. Why, When, 혹은 Who가 아니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Why라는 질문은 곧장 불평이나 희생자적인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고, When질문은 꾸물꾸물 늑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Who는 비난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며칠 전 화장실에 세수하러 들어갔다가 바닥을 덮은 물에 미끄러져 크게 다칠 뻔한 적이 있었다. 그 날은 우리 아이가 샤워를 마친 직후이어서 화장실 바닥이 물에 흥건히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끄러지면서 순간적으로 세면대를 잡았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몸 어딘가가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 순간적으로 내 머리 속에 떠 오른 질문, 누가 화장실 바닥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어? 아마 이 질문을 잊지 않고 우리 아이를 만났으면, 그 아이는 그 날 나에게 무척 혼이 났을 것 같다. 샤워를 하고 나면 당연히 화장실 바닥이 물에 적을 수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또 야단치는 아빠 역시 샤워를 한 후에 물에 젖은 화장실 바닥을 그냥 놔두고 나온 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빠라는 이유 하나때문에.

 

그 순간 QBQ 가 떠 올랐다. 이런 질문이 과연 올바른 질문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리 아이의 행동 하나가 떠 올랐다.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온 후, 화장실에 다시 들어가 보면 아이가 깔아 놓은 듯한 수건이 항상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바닥이 물이 젖어 미끄러우니까 거기에 수건을 덮어 놓은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이 50이 다 되어가는 아버지가 이제 고2가 된 아들만큼도 문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질문를 스스로에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저자는 QBQ, The Question Behind the Question 질문 뒤에 숨은 더 좋은 질문, 을 이렇게 정의한다.

 

   “QBQ는 순간순간, 보다 훌륭한 질문들을 던지고, 보다 나은 선택을 함으로써, 모든 계층의 지도자들이 개인의 책임감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도구이다.

 

저자는 올바른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여건 속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차적인 사람은 바로 당사자 자신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주인의식만이 자신에게 닥친 문제의 원인이나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거나, 또 남이 해 줘야 한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대답을 하게 만드는 질문을 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는 한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뿐이다. 그리고 이 말에 동의한다면, 우리의 부정적이고 부적절한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방법중의 하나가, 우리 자신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던,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삶을 살아 왔던지 간에 상관없이, 그것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즉 우리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질문 뒤에 숨은 더 좋은 질문 The Question behind the Question 은 우리 자신을 한번 되돌아 보게 해 주는 것 같다.

 

    어떤 문제나 좌절에 봉착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먼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라거나 '언제 다른 사람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까?' 라는 질문으로 채워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질문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이해도 간다. (중략) 우리가 잠시 멈춰 서서 그런 상황에 처할 경우 가장 먼저 자연스럽게 떠 오르는 질문들의 뒤쪽을 살필 때에만 더 멋진 질문이 발견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라거나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같은 말들이다.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는 것은 초점을 우리 자신에게로, 그리고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로 돌린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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