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분 후의 삶
권기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의지와 약간의 운, 그리고 신의 가호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7,000미터 높이의 날카로운 설벽에서, 홀로 빠진 망망대해 가운데서, 암흑의 지하 미로에서 끝까지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운 여름, 자칫 권태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내 생활을 단단하게 조여준다.

다양한 사람들이 겪은 다양한 생의 극한이 담겨있지만 책이 말하고 싶은 주제는 한 가지이다.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고, 삶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평범하고 무료하기까지 한 일상이 실제로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죽음 앞에서 발길을 되돌려 살아돌아온 사람들의 예를 통해 보여주는 셈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저 단순하게 그들이 겪은 일을 옮겨적었더라면 오히려 감동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은 거였다. 지나치게 문학적으로 이야기를 엮어내려 하다 보니 수필도, 소설도 아무것도 아닌 이상한 글이 되어버린 듯 하다. 좋은 책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작가의 욕심은 이해하지만, 때론 욕심을 버려야 오히려 잘 되는 일도 있는 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소짓는 발걸음 - 틱낫한의 걷기 명상
틱낫한 지음, 권도희 옮김 / 열림원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인간에게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옮겨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틱낫한의 말대로라면 두 발로 땅을 걷는다는 것은 "기적"이자 "진짜 행복"으로 가는 방법이다. 그는 "사람들은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땅 위를 평화롭게 걷는 것이 진짜 기적입니다. 대지는 기적입니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기적입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별 위를 걸음으로써 진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p.87) 라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이 작고 얇은 책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진짜 기적이고 행복인지도 모른다.

군데군데 실려있는 흑백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나도 그들과 함께 작은 오솔길을 걷고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언뜻 보면 다소 침울해 보이는 그들의 표정은 하나하나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름의 행복과 편안함을 내보이기 시작한다. 바람을 느끼며, 하늘과 풀들을 벗삼아, 발바닥에 느껴지는 땅의 감촉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그 길은 아무리 길어도 지루하지 않고 발바닥 아프지도 않을 듯 하다.

황금같은 이번 주말, 남편과 손잡고, 그리고 이제 5개월에 접어드는 내 뱃속의 아기와 함께 작은 오솔길을 끝없이 걸어보고 싶다.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마음이 충만하고 살아 숨쉬고 있음에 감사하게 될 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김용택 지음 / 창비 / 199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경기도 부천에서 30년을 살았다. 처음 부천으로 이사왔을 땐 아직도 시골같은 정서를 듬뿍 지니고 있어, 배가 고픈데 부모님이 안계시면 아무 집이나 문 열고 들어가 밥을 얻어먹고 다녔고, 김장도 온 동네 아주머니가 모여 함께 하곤 했다. 여름철 해질 무렵이면 동네 골목 끝 수퍼마켓 앞에 놓인 평상에 아저씨, 아주머니, 아이들 다 모여 어른들은 술을 마시고 아이들은 술래잡기를 하며 놀곤 했었다. 

중동에 신도시가 세워질 무렵, 나는 그 부근의 여고에 다녔었다. 선생님들은 "야! 저기 우리 집 올라간다." 하며 좋아하셨지만 나는 그 건물이 소름끼치게 싫었다. 복도 유리창으로 보면 넓은 논이 보이고, 그 논의 끄트머리에 지평선으로 해 넘어가는 게 보이고, 그 지는 해를 바라보며 자판기 커피 손에 들고 친구들과 속닥거리는 기쁨을 누리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천이 아파트촌으로 바뀌면서 내가 기억하는 정감있는 부천은 사라져갔다.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아파트에 살면서 결혼살림을 꾸려갔지만, 내 기억 속에 고향처럼 남아있는 부천의 이미지는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인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머물러있다.

김용택에겐 진메마을이 그런 잃어버린 고향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속엔 김용택이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낸 진메마을에 대한 그리움과 변해가는 농촌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이 한가득 담겨 있다. 천장에서 쥐들이 활개를 치고 다녀도, 차비가 없어 세 시간이 걸려 자취방까지 걸어가도, 기계에서 튕겨나오는 강냉이 받아먹다 정강이를 홀딱 데여도 가족, 이웃과 함께여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그 어린 시절...! 작가는 그런 개인적인 추억과 함께 마을 인물들을 구성진 어투로 소개하며 잃어버렸던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도 함께 일깨워준다.

나는 특히 '그 집'이라는 글에 마음이 찡했다. 6.25가 끝나 피난생활에서 돌아와 작가의 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에 관한 글이다. 초가지붕으로 구렁이가 지나가는 것이 보이던 단칸 방, 식구가 늘어나면서 한 칸 한 칸 아버지 손수 방을 늘려가며 살았던 집. 작가는 그 집에서 마냥 재미나던 어린 시절과 첫사랑에 가슴설레던 청년시절을 보냈으며, 집을 손수 지으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단다. 해와 달과 별과 온갖 벌레들이 함께 살았던 집에 대한 이야기는 가난하지만 자기들이 살 집을 자기들이 손수 지어 단출하고 수수한 삶을 살았던 우리네 할아버지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좋은 글이었다.

아직도 고향에 남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작가는 학교의 아이들 숫자가 점차 줄어들고, 고향에서 젊은이들이 사라지는 세태가 누구보다 가슴아픈 듯 하다. 책의 맨 끝 '짧은 생각들'이라는 글에서 이런 세태에 대해 '그것이 진짠지 알지. (중략) 거기선 인간을 따뜻하게 감사고 눈물로 어루만지고 사랑으로 따독이는 인류애가 나오지 않아. 거긴 희망이 없어. 도시에서 저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재빠른 삶 속에선 인간을 구원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라고 가슴아픈 독설을 쏟아낸다. '인간의 냄새는 땅에서 나올 뿐이야. 땅에서만 창조가 있어. 사람의 꽃은 땅에서만 흙에서만 피어나 시들 줄 안다. 헛소리 같지만 신념과 믿음의 인간을 세울 수 있는 곳은 흙뿐이야.' 라며 한탄하기도 한다.

어쩌면 흙에서 인간의 신념과 믿음을 세우는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도시에서 희망을 만들고 사랑으로 따독이는 인류애를 만들어내는 것도 인간 아닐까? 작가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책의 마지막 줄을 '그래도 인간은 있어.'라는 말로 맺은 것은 아닐까? 

책을 덮은 후에도 그 마지막 말이 잊히질 않는다. 그래도 인간은 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도종환 지음 / 좋은생각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느끼는 도종환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다. <접시꽃 당신>에 실린 서정적인 시를 읽으면 감수성 예민한 소년 같기도 하고, 전교조 활동을 하다 해직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강직하고 심지 굳은 인물 같기도 하고,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을 들춰보면 한없이 자상하고 너그러운 스승님 같기도 하다.

어떤 게 그의 참모습일까? 작가는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재미있게 놀고 농담을 해대며 입이 찢어져라 웃는 모습"도 자신의 모습이고 "고요한 새벽 연못처럼 맑게 고여 있는 것"도 자신의 모습이며 "아이들과 뒤섞여 함께 즐거워하다가 흙탕물이 된 모습"도 자신의 모습이라고 얘기한다. 그의 내면에는 감수성 예민한 소년도, 강직하고 심지 굳은 청년도, 자상하고 너그러운 스승의 모습도 함께 어울려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다양한 모습을 차분하면서도 가감없는 솔직함으로 나타내고 있다.

책은 사랑에 대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특별한 사랑이란 특별한 사람을 만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을 만나 그를 특별히 사랑"(p.16)하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은 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넓어지게 마련이다. 작가는 "마을 어귀의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견디는 비와 바람을 채송화도 분꽃도 똑같이 겪으며 꽃을 피"(p.62)운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거겠지.

물론 그가 늘 모든 사람을 잔잔한 마음으로, 꽃으로 대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 마음이 괴롭고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안에서도 자신을 돌아본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미워해도 괜찮은가 하고... 그리고 탐탁치 않아했던 사람으로부터 작은 도움을 받은 기억을 끄집어내어 사람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어떤 사람이든 꼭 필요할 데가 있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긴다.

그는 맨 처음 <접시꽃 당신>에서 사람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던 그 때의 도종환은 아닌 듯 하다. 세월이 흘러 그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듯이, 젊은 기개를 지닌 청년 도종환은 '이제 그만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자신 속으로 고요하게 잠겨들기 위해 노력하는 초로의 신사가 되었다. 물론 그는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는 등 세상에 대한 관심과 비판의 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다만, 그 모든 활동이나 일 때문에 자신의 내면을 다치게 하는 우는 범하지 않을 만큼 깊어지고, 넓어진 것이겠지.

나는 아직 나 자신으로 침잠하는 것을 어색해하고 두려워하는 평범에도 못 미치는 사람이지만, 그의 글을 차근차근 소리내어 읽는 동안 한없이 마음이 따뜻해지고 맑아지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 뱃속에 있는 11주된 태아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엄마의 따뜻하고 맑은 마음을 느꼈기를 마음 깊이 바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199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류시화... 그의 이름에서는 왠지 모를 나른함과 고득함, 그리고 세상을 초월한 사람에게서 풍겨나오는 낯설음이 배어나온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은 류시화가 처음 펴낸 인도 여행기이다. 처음 출판된 것이 1997년이니 지금으로부터 10년도 전에 나온 책인데 아직까지 꾸준히 서평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그의 글이 기교와 유행에 기댄 베스트 셀러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또한 그의 글은 각박한 사회생활 속에서 마음의 휴식을 찾고싶은 사람들에게 많은 재산을 갖지 않아도, 높은 지위를 차지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가만가만 책장을 넘기면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남을 앞서지 못해 안달났던 마음은 더할나위 없이 차분해진다.

그러나... 인도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삶을 초월하여 바람불듯, 구름 흐르듯 그렇게 살고 있을까? 릭샤를 끄는 소년들, 거리에서 구걸로 먹고사는 어린이들,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성자같은 얼굴로 삶을 초탈하여 살고 있을까?

때로 각박한 현실을 초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의 책에서 삶의 아름다움이나 마음의 평화보다 삶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는 인도인들의 진짜 일상생활을 만나보고 싶다. '성자'나 '구도자'가 아닌 그들이 싸우고, 눈물 흘리고, 함박웃음을 짓는 그런 일상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