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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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의 에세이. 강압적인 독서교육을 비판하고 책 읽기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육서적이 아니라 에세이이기 때문에 문체가 화려하고 그야말로 문학적이다. 번역체가 적응 안 돼 초반엔 고전했지만 읽을수록 깊은 맛, 감칠맛이 어우러진다.

작가는 아이들이 독서에 흥미를 읽게 된 것이 교사나 부모가 독서를 강요하고 책을 학습이나 시험의 도구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즐거움 이외의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무상성'이 보장돼야 독서의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두껍진 않지만 차분하게 곱씹으며 정독하기 참 좋은 책, 올해 만난 책 중 가장 즐겁게, 집중해서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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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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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9년에 미국의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 2명이 무차별로 총기를 난사해 교사와 학생 13명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의 범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아들의 사건을 반추하며 적어내려간 글이다. 저자는 딜런을 낳고 키운 17년을 꼼꼼히 돌아보며 어디에서부터 양육이 잘못되었는지, 부모가 놓친 것이 무엇이었는지 곱씹고 또 곱씹는다.

 

그렇게 곱씹는 과정을 거친 뒤 저자는 아들의 우울증과 자살 성향을 미리 알아채지 못한 점을 자책하고, 폭력적인 성향의 친구를 만나 우울증과 자살 성향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는 것을 탄식한다. 하지만 이런 조짐은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일 뿐, 당시에는 약간의 걱정과 아이에 대한 꾸지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는 것도 고백한다. 결국, 겉으로도 속으로도 별 문제 없는 중산층 가정의 자녀도 이런 사건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부모로서 아이의 성향을 모두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인 듯 하다.

 

물론 아무리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 해도 자식이라면 감싸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선 어떤 소리도 변명과 궤변으로 들릴 터, 게다가 자식의 범죄에 대해 공범의 책임이 더 큰 것처럼 표현하는 내용도 있어 누군가에겐 크나큰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속죄와 변명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변명을 변명같이 보이지 않기 위해 많은 사례나 책 내용, 통계를 인용하고 전문가로서의 자기 경력을 강조하지만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 줄타기가 너무도 위태해서 책을 읽는 게 불편하고 화나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위태로운 줄타기에 대해 응원을 해 줄 순 없지만 적어도 욕을 하거나 돌을 던지고 싶진 않았다. 엄마로서 아들의 죄를 짊어진 채 고통 속에 살고있는 그의 삶이 안타까웠고 그 고통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글로나마 자신의 가해자의 가족으로 사는 자신의 심경을 호소하고, 변명이든 속죄이든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녀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범죄자의 자식으로, 아내로, 부모로 살고있는 사람이 이런 책을 낸다면 그 책을 읽고 응원해줄 국민이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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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 - 도법스님 생명평화 순례기
김택근 지음 / 들녘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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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법'이라는 법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4~5년 전 쯤이었던 것 같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뉴스에서 본 것이 계기였다. 새만금과 지리산을 지키기 위한 삼보일배는 지나치게 세속화한 종교의 모습에 부정적이었던 나에게 무척이나 경건하게 다가왔다. 그 이후 천성산 터널 반대운동을 하는 지율 스님이 단식에 들어갔을 때, 함께 단식을 하던 스님의 모습을 보고 가슴아팠던 기억도 난다.

이 책은 그 도법 스님이 2004년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했을 때의 기록이다. 여기서 '탁발'이란 승려들이 걸식으로 의식을 해결하는 수행 방법이란다. 갖가지 탐욕과 환경 파괴로 멍들어가고 있는 산천을 보듬어 안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생명평화 탁발순례이다. 도법 스님은 허물어지고 파헤쳐진 산,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농촌, 갯벌이 사라진 죽은 바다, 이기심으로 더욱 황폐해져가는 도시 구석구석을 살피며 가슴아파한다. 세상 모든 것들은 연기로 맺어져 있고 어느 것 하나 함부로 생겨난 것이 없는데,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주변을 파괴한다. 그 파괴가 결국은 자신의 폐부를 찌를 것임을 모르면서...

그러나 스님은 결국 그 안에서 희망을 본다. 스님은 순례길에서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p.218)며 작고 조용한 것들이 세상을 바꾸어 놓고 있다(p.218)고 이야기한다. '순례자의 기도가 호주 앞바다의 죽어가는 산호초를 살리고, 빙하가 녹아내리는 파타고니아, 잘려나간 숲 사이로 강물이 말라가는 아마존 밀림, 만년설이 흘러내리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가라앉는 몰디브 섬을 살릴 것(p.224)'이라고 말한다.

글쎄... 작가가 지어낸 것인지, 정말로 스님의 생각이 그러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스님의 이런 긍정이 슬프기만 했다. 해결될 기미 없이 가파르게 치닫기만 하는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님은 정말로 희망을 본 것일까? 이제 두 달 후면 태어날 내 뱃속의 아기에게 세상은 좋은 곳이라고, 희망은 정말 사람에게 있다고 이야기해도 괜찮은 것일까?

시인 김택근의 글은 짧고 간결하다. 그래서 오히려 여운이 남는다. 그러나 스님과는 달리 자꾸만 거칠어지고, 자꾸만 황폐해지고, 자꾸만 고약해져가는 이 세상 속에서 살고있는 나는 책을 다 읽어도 전혀 희망이 느껴지지 않아 자꾸만 스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어린아이처럼 다그쳐 묻고 싶었다.

"스님, 정말로 이 세상에 희망이 있습니까? 정말로 사람이 희망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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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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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서재를 갖는 일이 꿈이다. 나 역시 신혼살림을 꾸렸던 17평 아파트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면서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서재를 만들 책장과 책상을 사는 거였다. 잘 정돈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천여 권의 책이 있는 내 서재에 들어와 앉아있으면 굳이 책을 집어들어 읽지 않아도 마음이 뿌듯하고 푸근하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또 하나 꼽는다면 그건 아마 남의 서재 구경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의 책꽂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발견했을 때의 친밀감, 나에게 없는 매력적인 책을 갖고있는 사람에 대한 질투 등의 감정들은 의외로 기분좋은 설렘이자 즐거움이다. 더구나 그 남이 유명 작가라면, 더할나위 없지 않을까..?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이런 취향을 잘 맞춰 기획한 '작가의 서재 탐방기'이다. 이문열, 김영하, 강은교, 공지영, 김용택, 신경숙의 서재를 직접 방문하여 사진을 찍고, 작가와 인터뷰한 내용을 실어놓았다. 집 공개를 꺼린 김영하 빼고는 자택을 직접 방문한 것이니, 충분하진 않아도 작가의 집에 얽힌 내용을 듣는 재미도 꽤 쏠쏠한 편이다.

웅장하긴 하지만 지나친 정갈함과 권위, 위엄이 느껴져 부럽진 않았던 이문열의 서재, 자택에 있는 진짜 서재에 대한 궁금증만을 키운 김영하의 연구실... 이 두 서재만 빼고 나머지 작가의 서재는 보고 읽는 내내 감탄을 내뱉었다. 특히 나는 넘치는 책을 주체못해 만년 '2학년 1반' 담임인 김용택의 교실이 맘에 들었다. 그렇게 책에 둘러쌓여 살고 있는 2학년 1반 아이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오는 8월 명예퇴직을 하는 김용택의 그 책들은 이제 어디로 옮겨질까...? 창호지 문이 정겹던 고향집 서재일까, 아니면 멀끔하게 단장된 전주 아파트의 서재일까...?

멋지게 꾸며놓고, 수천 수만 권의 책들이 쌓여있다고 다 서재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진짜 서재를 만드는 건 그 책들의 주인일 터, 때론 즐겁게 때론 분노하면서 읽은 책들과 함께 세월을 지나는 것, 책장이 누래지는 것처럼 책과 함께 나이먹어 가는 것이 진짜 서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보잘것없는 내 서재가 더 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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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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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나도 알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화가 난 건지, 창피한 건지, 속이 상한 건지... 슬픈 건지, 우울한 건지, 절망스러운 건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처럼 마음의 갈피를 잡는 일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더구나 내 나름대로는 잘 설명한다고 했는데 상대편이 "왜?" 또는 "뭐가?" 라고 물으면 그 때부턴 할 말을 잃어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다. "왜?"라는 질문에 주절주절 설명할 수 있으면 그게 어디 마음이겠나..?

이 책은 그런 모호한 마음의 갈피를 세세하게 짚어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외로움, 쓸쓸함, 권태, 심심함, 무료함, 허전함, 공허함, 적막함' 따위를 비슷한 색채의 마음으로 묶어 그것들이 마음에서 서로 어떻게 다른 무늬를 만들어내는지 조용조용 짚어주는 식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왜?' 그렇게 해야하는 것일까?

그저 모호하면 모호한 대로, 모르겠으면 모르겠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는 게 어쩌면 우리의 마음에 대한 예의 아닐까? 어차피 그 마음의 결을 짚어도 더이상 명료해지지 않는 바에야 그저 그렇게 내버려 두는 게 더 나을 듯 한데...

더구나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시인이 쓴 산문은 읽기 지겨울 때가 자주 있다. 지나친 은유와 비유, 반복과 대구는 처음엔 신선하게 보일지 몰라도 자꾸 반복되면 식상하고 재미없을 뿐이다. 차라리 담백하고 짤막한 아포리즘 형식이었다면 더 나았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다.

굳이 이 책을 권한다면 화가 나도, 창피해도, 속상해도 뭉뚱그려 "짜증난다."고 표현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적당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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