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딸아이를 데리고 친구 집에 놀러갔다. 

친구는 나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모교에서 같이 교생실습을 했다. 

결혼 시기는 달랐지만, 둘 다 결혼 후 임신이 되지 않아 같은 병원에서 비슷한 시기에 시험관 시술을 받았고,  

같이 성공해서 3주 차이로 아이를 낳았다. 그것도 둘 다 딸아이를... 

게다가 같은 동네에 살고있기까지 하다.  

둘 다 육아휴직을 한 뒤 아기돌보기에 전념하고 있는 터라, 

심심하거나 육아 때문에 힘들 때 종종 서로의 집을 오가며 이야기도 나누고,  

아기들끼리도 친해질 수 있게 얼굴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점점 이 친구를 만나는 게 두려워진다. 

내 딸은 사람들이 이렇게 순한 아이는 본 적이 없다고 할 만큼 순둥이인 반면 

친구 딸은 까칠 대마왕인 것... 

자기 장난감을 못 만지게 하는 건 약과고, 내 딸의 장난감도 자기 걸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자기 장난감을 돌려달라고 두 손을 모아 "주세요"를 하는 내 딸아이의 얼굴을 꼬집고, 

어깨를 밀어 넘어뜨리기 일쑤다. 

내 딸은 그저 서서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서럽게 울고, 

차마 친구 딸을 야단치지 못하는 나는 그저 딸을 안고 토닥거리기만 한다. 

다른 사람을 먼저 때리진 말아야겠지만 때리면 맞으라고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 딸아이를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큰 소리로 말했다. 

"석영아, 친구가 때리면 너도 같이 때리고, 꼬집으면 너도 같이 꼬집어! 먼저 때리진 않아도 맞지는 말아야지~" 

딸아이는 내가 하는 소리를 듣더니 자기 볼을 꼬집고, 자기 배를 때리는 시늉을 한다. 

그러더니 이내 손을 내저으며 자기 얼굴을 쓰다듬는다. 

때리면 안되고 이렇게 쓰다듬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 내가 그렇게 가르쳤지. 가끔 인형을 던지고, 내 머리를 잡아당기길래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인형이나 사람은 "예쁘다~"하면서 쓰다듬어줘야 하는 거라고... 

내가 가르쳤었다. 

그랬던 엄마가 같이 꼬집고 같이 때리라 했으니 15개월 짜리도 그건 아니다 싶었던가 보다.

그냥 계속 이렇게 키워도 괜찮은 걸까? 

조금은 독하게, 조금은 영악하게, 조금은 싸가지없게... 그렇게 길러야하는 건 아닐까?

"그래, 네 말이 맞아. 친구는 때리면 안되고 예쁘구나~ 해줘야지." 

겉으론 이렇게 대꾸하면서도 난 속으로 계속 외쳤다. 

"그래도 석영아, 맞지만 말고 너도 때리고 꼬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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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다가 정오쯤 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내복 위에 두꺼운 겉옷을 입히고, 그 위에 또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혔다.  

친정엄마가 사주신 털모자도 씌우고, 목도리도 둘러줬다. 털장갑도 씌워주었다.  

마스크는 안쓰겠다고 떼를 써서 목도리를 코까지 올려 눈만 빼꼼하게 나오게 한 뒤,  

아장아장 걷는 딸의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밖으로 나와 갑자기 찬 바람을 쐬니 깜짝 놀란다.  

밖엔 아직도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눈이 딸아이 키의 절반 정도까지 쌓여있다.  

장갑을 벗겨 쌓인 눈을 만지게 해주니 화들짝 놀라서 손을 내젓는다.  

손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낯설고 싫은 모양이다.  

아직 눈이 남아있는 길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짧디 짧은 15개월 인생에 처음으로 눈길을 밟는 내 딸...  

발 밑에 닿는 미끄러운 감촉이 어색한지 몇 걸음 걷다가 엉거주춤 주저앉는다.  

일으켜 세워 다시 걷게 해줬으나 역시 또 엉덩이를 땅에 붙여 주저앉고 만다.  

그리곤 나를 올려다보며 팔을 벌린다. "엄마, 안아줘." 딸아이의 몸짓 언어...  

한 팔에 딸아이를 안고, 그새 빨개진 딸아이의 코에 내 코를 부벼본다.  

더운 콧김이 전해진다. 향긋한 딸아이의 입김도 함께...  

10분도 채 안되는 짧은 나들이... 딸은 오늘의 눈길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마도 나는 눈을 만져본 뒤 내젓던 딸아이의 손짓을,  

몇 걸음 걷다 주저앉아 나를 향해 팔을 벌리던 딸아이의 모습과 표정을, 평생 잊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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