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에게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59
최영미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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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예쁜 언어로 시를 쓰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이번 시집엔 특히 그녀의 화난 목소리가 더욱 크게 담겨있는 듯 하다. 이전의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에서 잠시나마 느꼈던 소녀같은 감상은 완전히 걷히고, 세상을 향한 불만과 불화의 목소리만 가득해 시집을 읽는 동안 목구멍이 칼칼해지기까지 했다.

그녀는 "잔치가 끝난 뒤에도 설거지 중인 내게 죄가 있다면, 이 세상을 사랑한 죄밖에"(52p) 없는데, "한 번도 제대로 저지르지 못했으면서 평생을 속죄하고 살았다."(52p)며 "제기랄"(52P) 욕설을 씹고,

요즈음의 진보에 대해 "관념으로 도배된 자기도취와 감상적 애국이 연구실에서 광장으로, 감옥에서 시장으로 나온 흑백논리가 종이에 인쇄되어 팔리는"(91p) 처지로 전락했다며 "이것이 진보라면 더러워서! 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91p)고 일갈한다.

시집 앞부분의 "돼지"와 "여우"에 대한 시들이 분명 누군가를 염두에 둔 듯 하고, 뒷부분으로 갈수록 험해지는 시인의 절망과 좌절, 그리고 분노가 그 돼지와 여우 때문인 듯도 한데, 정치의식 부족하고 문학적 센스까지 결여된 나로서는 그게 무엇인지, 누구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 시를 읽어내기가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58p)며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 따위가 시냐고 책장을 사납게 덮는 비난 속에서도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시를 나는 믿지 않는다."(97p)고 당당하게 외치며 계속해서 싸우고 사랑하고 화냈으면 좋겠다.

그녀의 곁에, 겁 많아 함께 화내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같은 독자도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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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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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난 툭하면 책을 읽다가 울곤 했었다. 그 당시 나를 울렸던 책들의 제목은 이제 몇 개 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책을 읽으며 울고 웃던 그 때의 기억들은 메말라 가는 나의 감수성을 반성하게 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언제부턴지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세상살이의 팍팍함 때문인지, 세상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기막힌 일들도 많고, 그 일들이 나에게도 비켜갈 수 없다는 진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인지...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다시 10대로 돌아간 듯 눈물을 찔금거릴 수 있었다. 아마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허삼관의 매혈기가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란 인물이 자신의 피를 팔아 삶을 꾸려나가는 이야기다. 농사로는 근근이 풀칠만 할 수 있었던 가난한 시절, 그는 피를 팔아 번 돈으로 장가를 간다. 큰아들이 이웃집 아이를 다치게 해 치료비가 필요할 때도, 가난하여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는 식구들에게 맛난 음식을 사주고 싶을 때도, 병들어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야 할 때도, 그는 피를 판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긴 많은 에피소드는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어찌 그렇게 쉬운 단어로 지루하지 않게 책 한권 분량의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배고픔에 지친 아들들에게 상상으로나마 음식을 만들어주던 부분이다. 아직은 부모라는 역할을 맡아보진 못했지만 그게 부모 마음 아닐까? 상상 속에서나마 자식을 굶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큰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매혈 여로를 걷는 허삼관의 모습 역시 진한 감동을 준다. 자신은 인생의 재미를 다 보았지만 아직 아들은 젊은데다 장가도 못가봤으니 자신이 피라도 팔아 살려야 한다는 그의 말에 어찌 무덤덤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까?

소설은 허구지만 소설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사람의 진리는 결코 허구가 아니다. 이 책에는 몇 십억의 로또 당첨금으로도 살 수 없는 인생의 진리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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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리처드 바크 지음, 이은희 옮김 / 한숲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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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건 중학교 때였다. 좋아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해준 것을 계기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메시아가 현대에 나타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쓰여졌다는 이 소설은 제목대로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실재라고 믿고있는 것이 실은 환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속삭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갈매기의 꿈"보다 훨씬 재미있고, "갈매기의 꿈"보다 훨씬 더 깊이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갈매기의 꿈"에 묻혀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이 책이 부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 반 학급문고로 꽂아놓고 "선생님의 추천도서" 목록에 올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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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차 미카 어른을 위한 동화 13
안도현 글, 최성환 그림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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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13"이란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느리고 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보내는 안도현의 짧은 소설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속도에 매달려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겉모습에 현혹되어 마음을 들여다볼 줄 모르며, 군중 속에서 제대로 외로움조차 느낄 줄 모르는 현대인들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 같다.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뻔한 내용이 조금은 걸리기도 하지만 읽고나면 순수해지고, 내가 걷고있는 삶의 방향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의미있는 책이다.

책에 나오는 기억에 남는 구절을 옮겨적어 본다.

"점점 빨리 달리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될지도 몰라. 빨리 달리는 데 취해있으면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될 거야." (p.69)

"외로움이라는 특혜는 자기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 외로움 때문에 몸을 떠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외로움을 느껴볼 시간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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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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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박한 지식과 무한한 상상력을 지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꽁트집이다. 단편이라 하기에도 짧은 여러 개의 작품들이 보기 좋은 삽화들과 함께 실려있다. 처음엔 그냥 가볍게 읽을 생각이었는데, 점점 읽다보니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날카로운 풍자가 담겨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황혼의 반란>은 늙어가는 부모님을 곁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하찮게 여기고 단지 젊은이들이 부양해야 할 짐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부양할 노인들이 실은 몇십년 간 자신들을 부양하며 희생해왔던 사람들이고, 젊은 자신들 역시 언젠간 노인이 된다는 걸 언젠간 깨달을 수 있겠지...

 

인간을 먼 발치에서 마치 외계의 생물이 관찰하듯 써내려간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역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어릴 때 우리가 사는 세상에 거인이 나타나 인간을 애완동물 취급하고 잡아먹기까지 하면 어쩌나.. 철없는 고민에 시달린 적이 잠깐 있었는데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주는 작품이었다. 동시에 우리가 동물이라는 이유로 식용으로, 또는 애완용으로 함부로 다루는 수많은 생명체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작품이기도 했다.

 

각 작품의 양이 워낙 짧아 이런 주제들이 깊이있게 다루어지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쉽긴 아지만, 언젠간 이 작가가 이러한 주제를 깊이있게 천착해 재미와 의식을 함께 담은 새로운 작품을 또다시 세상에 내어놓으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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