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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사춘기 시절, 난 툭하면 책을 읽다가 울곤 했었다. 그 당시 나를 울렸던 책들의 제목은 이제 몇 개 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책을 읽으며 울고 웃던 그 때의 기억들은 메말라 가는 나의 감수성을 반성하게 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언제부턴지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세상살이의 팍팍함 때문인지, 세상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기막힌 일들도 많고, 그 일들이 나에게도 비켜갈 수 없다는 진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인지...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다시 10대로 돌아간 듯 눈물을 찔금거릴 수 있었다. 아마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허삼관의 매혈기가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란 인물이 자신의 피를 팔아 삶을 꾸려나가는 이야기다. 농사로는 근근이 풀칠만 할 수 있었던 가난한 시절, 그는 피를 팔아 번 돈으로 장가를 간다. 큰아들이 이웃집 아이를 다치게 해 치료비가 필요할 때도, 가난하여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는 식구들에게 맛난 음식을 사주고 싶을 때도, 병들어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야 할 때도, 그는 피를 판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긴 많은 에피소드는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어찌 그렇게 쉬운 단어로 지루하지 않게 책 한권 분량의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배고픔에 지친 아들들에게 상상으로나마 음식을 만들어주던 부분이다. 아직은 부모라는 역할을 맡아보진 못했지만 그게 부모 마음 아닐까? 상상 속에서나마 자식을 굶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큰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매혈 여로를 걷는 허삼관의 모습 역시 진한 감동을 준다. 자신은 인생의 재미를 다 보았지만 아직 아들은 젊은데다 장가도 못가봤으니 자신이 피라도 팔아 살려야 한다는 그의 말에 어찌 무덤덤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까?
소설은 허구지만 소설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사람의 진리는 결코 허구가 아니다. 이 책에는 몇 십억의 로또 당첨금으로도 살 수 없는 인생의 진리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