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넓은 우주에 우리뿐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 낭비 아니겠니?
(If it is just us, it seems like a awful waste of space?)

- 영화 <콘택트>에서 조디 포스터가 분한, Dr. 앨리 애로위의 대사

 

커피향 공유하는 커피 만드는 노총각의 독백..... 이랄까?`

된장, 감동 먹었다. 그 어떤 향긋한 커피향보다 더 진하고 강렬한 향이었고, 기똥차게 볶아서 내린 그 어떤 커피의 알싸함보다 짜릿한 맛이었으며, 행복감을 전파하는 커피의 고운 마음씨보다 더 강력한 행복 바이러스였다. 

 

조디 포스터. 쉰 한 살의 직업이 배우인 이 여자. 1월 13일, 한국시각으로는 14일, 제7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쳤다. 압축하자면, 이렇다. "나, 동성애자다." 커밍아웃. 물론,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 조디 포스터에 조금 이상의 관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철 지난 유행가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알고 있던, 나는 훅~ 갔다. 시상식이라는 공개석상에서 내가 누구인지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 여전히 '다른 나'에 대해 거부감과 차별을 내면화한 세계를 향해 똥침을 날릴 줄 아는 사람. 신선하고 멋있다. 그 카리스마, 반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뻔할 정도로.

 

왠 오버냐, 하겠지만,
전사 같은 강인한 이미지의 조디 포스터라지만, 공개석상에서 그런 고백을 위해선 얼마나 큰 마음 졸임과 고민의 순간이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라. 몇 번이고 심호흡을 가다듬고, 할까 말까를 놓고 번민을 거듭했을 순간. 그리고 마침내 입을 떼면서 다가왔을 환희. 그 심연 같은 마음을 이해하는 건, 스트레이트인 나로선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저 굳센 팔뚝에 매달리고 싶을 정도다. 이토록 사랑스럽고 멋진 여자라니.
이 여자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 나는 감사한다. 

 

 

 

대개의 경우, 시대가 여성상을 만든다. 그러나 드물게 어떤 여성은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열거나 세상에 스스로를 증명함으로써 견고한 세상의 벽에 금을 가게도 한다. 조디는 맞다. 후자다. 조디에게 훅 감동 먹으면서 나는 확인했다. 내가 혹하는 여성은 타인의 생이 아닌 자기만의 서사와 캐릭터로 자신의 생을 꾸리는 여성임을. 

 

내가 나임을 아는 것.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고? 천만에.
지금 물어보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슬퍼하고 싫어하는지.
어려운 일이다. 알면 알수록 거부하고 싶은 나도 있다.
그럼에도 나를 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를 알면,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조디는 그래서 삶을 기적으로 바꿨고, 그 기적으로 세상을 다시 변화시키는 놀라운 여성이다.
악전고투. 그리고 '내가 나'임을 증명하고 연출한다. 세상은 그것에 감동하며 바뀐다. 나는 조디가 '내가 나'임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이 좀 덜 슬픈 곳이 되리라 믿는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음, 세상이 너무 좆 같잖아. 쉬파.

 

 

로자 룩셈부르크도 그랬다. 생뚱 맞지만, 조디의 외침을 들으면서 로자가 떠올랐다. 연관성? 없다. 단지, 1월 15일 즈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919년 1월 15일, 사회주의 혁명의 꿈은 암살당했다. 만땅으로 마흔 여덟을 채우지 못한 채. 사랑과 혁명의 화신이었던 로자의 94주기.

 

그래서 15일의 커피는, 사회주의 국가의 커피로만 블렌딩한 혁명 커피, 로자.

 

또 15일에 슬픔이 뚝뚝 묻어난 이유는, 또 하나의 혁명이 시들었기 때문이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별세하셨다. 누구냐고? <감각의 제국>! 엉뚱한 장면 상상작렬하느라, 그 안에 품은 오시마의 혁명적 송곳을 놓친다면 아쉽고, 또 아쉽다. 그는 금기된 것을 깨부숨으로써 혁명을 꾀했다. 군국주의 일본의 국가적 광기와 검열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하고 비판했다. 로자 위에, 오시마의 스러진 혁명의 꿈이 겹쳐졌다.

 

그리고 나는 오늘,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조직의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 잠시 잊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문제에만 너무 매달리느라. 나는 아직 인간이 되긴 멀었지만, 삶이 점점 더 재밌어진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절망 뿐인 세상에서도 생은 그런 세상을 때론 배반하기도 한다. 물론, 잠시일 뿐이겠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찰나의 배신이 즐거운 것을.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 그래, 그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조디 누나를 통해 꿈꾼다. 내가 누구인지 거리낌 없이 말해도 괜찮은 그런 세상.
지금, 혁명까지는 회의적이라도, 그런 세상, 내가 누구인지 말해도 괜찮은 세상,  

 

아름답다.

그런 세상에 어울리는 커피,

당신을 위해 짓는다.

 

 

뷰티풀 & 굿럭.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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