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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자기가 가진 지식이 전부인양 고집하려 할 때, 우리는 고지식한 사람이 된다. 어떠한 논리로 그 지식의 테두리를 깨려해도 절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하나의 지식에 매료된 사람은 사상에 세뇌당한 사람마냥 무섭다고 하나 보다.
나 또한 그런 지식으로 나만의 테두리를 형성하며 살아왔다. 고전문학, 특히 한문학을 전공하면서 한문학이란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며 투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현대문학이나 서양문학에는 감히 손조차 대어보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그건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우주를 얘기할 때처럼, 머나먼 어떤 미지의 세계 비슷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만의 지식에 갇혀 살던 나에게 크나큰 깨달음을 주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이 책이다.
이 책은 보려하지 않았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읽으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하는 표현이 맞겠지만. 하지만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사랑의 감정이 불연듯 찾아오듯, 그렇게 찾아왔다. 제목만 들었을 땐,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듯이 수필도 아닐 뿐더러, 그렇다고 고전문학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쉬쉬하고 있던 그 때, 고도원 선생님 책을 빌리려 도서관에 가게 되었다. 한참 고도원 선생님 책을 뒤적이다 보니깐, 그 옆에 이 책이 있지 뭔가? 책의 제목을 봤다기 보다, 지은이의 이름을 봤다고 하는 게 맞겠다. '고미숙'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라는 짧은 헤깔림과 동시에 '호모쿵푸스''열하일기 웃음...'이란 단어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랬던 거다. 그렇게 집어들고 한번 펼쳐본 책은 내 손을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고미숙'이란 검증된 메이커, 이상의 내용이 거기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수유+너머의 탄생에서 지금까지의 활동 과정, 그런 과정 속에 수많이 오고 갔던 '코뮌'에 대한 고민들이 담겨 있다. 그런 담론을 펼치는 가운데, 그 때까지 느꼈던 여러 사유들을 맘껏 펼쳐낸다. 기존 체제에 대한 반발, 기존 지식이 지닌 한계성 등을 저자의 시원한 필치로 펼쳐보인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바로 그런 걸거다. 어려운 내용조차 쉽고 재밌게, 그러면서도 알차게 쓸 수 있는 것. 바로 그런 점에서 '고미숙 선생님'이 쓰신 글이라 하면 왠지 모를 신뢰가 되는 것이지만...
'코뮌'에서의 활동은 자기 영역에 국한 되지 말고, 동서양,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사유하기, 어떤 특별한 규칙이랄지 체계는 두지 않되, 서로에 대한 배려하기 등 기존 담론을 뛰어 넘는 어떤 것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벅찼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자기의 역량을 맘껏 펼쳐보일 수 있다는 것, 그건 어떤 틀에 들어가 그 안에 자기를 맞추느라 자기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또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돈이나 명예욕에 대한 욕심만 버린다면) 그것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깨달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읽으며, 공동체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또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승과 제자는 하나다' 얼마나 놀라운 화두인가. '敎學相長'이 스승과 제자의 경계를 확실히 나눈 것이라면, 고미숙 선생님의 이런 담론은 앞으로 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나의 편협한 지식관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좀더 너른 방향으로 유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모처럼만에 만난 백미와도 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