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3 - 인도로 가는 길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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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만났다. 1권에선 초기 불교에 대한 탐구를 2권에서는 인도 기행과 그 안에서 겪었던 일들을 풀어내다고 드디어 3권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제목이 무색해진다.ㅡㅡ;;) 그만큼 한 개인이 달라이라마를 만나는 일은 어렵고도 힘든 일이란 걸 알려주기 위한 편집 방법이 아니었을지.. 그게 아니면 나처럼 불교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하여 처음엔 기본 베이스적인 지식을 깔아놓고, 그 다음에 본격담을 펼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3권에서 드디어 본격담이 펼쳐지게 되니 나의 마음이 더 뭉클해진다.

  달라이라마에게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받았다고 했을 때, 도올은 소풍가는 어린이 마냥 기뻤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분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아니 난 감격에 찼던 것이다. 과연 정말 만나게 될까 했던 부질없던 걱정이 드디어 이루어지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던 것이다. 그렇게 둘이 같이 찍은 몇 컷의 사진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 였으니.... 참고로 난 기독교인이다. 그렇기에 달라이라마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적인 애틋함이 그런 감격을 줬던 것일까.

  그들의 대담은 지성과 종교성의 만남이었다. 난 솔직히 인간적인 물음들과 개인사적인 물음들이 오고 갈지 알았다. 그만큼 내가 도올에 대해 무지했다는 표현도 가능하리라. 하지만 나의 그런 생각과는 달리 도올의 논조는 분명했으며, 학구적이었으며 놀라움 그 자체였다. 확실히 박학다식하며 그 논리에 함몰되지 않은 깨어 있는 지성이라고 할만하다. 기독교의 일반론을 펴며 불교의 대세론을 들었다. 종교사 뿐 아니라, 미술사, 그리고 철학사까지 아우르는 도올의 논조는 자못 심각했으며 진지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걸 다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달라이라마.. 분명 영어라는 언어로 소통했음이 분명한데 그런 어려운 이야기들이 아무 거침 없이 오고 가고 있었고, 달라이라마는 도올의 그런 다방면의 박학다식함에 반했던 것이다. 그래서 첫째날 짧은 만남으로 예정되어 있던 시간이 훨씬 초과 되었으며, 그게 아쉬웠던지 달라이라마는 내일 또 오라고 하는 것이다. 그 부분에 이르러선 도올에 대한 고마움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가슴이 뭉클해져 있는 그 때, 달라이라마는 집회가 있는데 도올과 같이 가자고 한다. 그렇게 궁을 나섰을 때, 티벳 인민들이 달라이라마 앞에서 숙연해지며 조용해지던 광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제정일치의 본보기로서의 달라이라마와 티벳 인민들의 그런 모습은 제정일치가 끝난 현대 시대엔 대단히 기이한 현상이었던 까닭이다.

  도올과 달라이라마는 한번 크게 엇갈린 주장으로 갈등한다. 그건 책에 나와 있으니 보길 바란다. 그 부분에 이르러선 나까지도 왠지 손에 땀이 나도록 긴장이 되더라. 그렇게 이틀 간의 대담이 끝나고 달라이라마는 도올에게 '베이징에서 보자'라는 말을 하며 끝을 맺는다.

  3권이야말로 이 책의 가치를 최상으로 끌여주는 대작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1권과 2권의 탐구 없이 3권만 읽게 되면 그 재미와 감격 없이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한국 정부는 아직도 달라이라마의 입국을 불허하고 있단다. 안타까운 일이다. 중국의 눈치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는 한국은, 청나라때 조선의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 별반 다를게 없어 씁쓸할 지경이다. 달라이라마가 한국에 와서 큰 가르침을 펼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오길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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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2 - 인도로 가는 길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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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권에 와서야 왠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 찬다. 1권에서 초기 불교의 양상을 파고들며 싯달타의 깨달음의 과정과 초기 불교의 성립 과정을 파헤쳐 놓았기에, 기독교인으로서 불교에 관심이 없던 나에겐 새로운 학문을 탐구할 때처럼 막막하고 어려웠었다. 그럼에도 도올의 이야기를 이끄는 방식이 편안했기에 읽으며 하나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 뿐. 그런데 2권에선 진짜 인도 여행기가 실려 있다.

  그런 덕에 맘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인도를 나도 따라서 여행한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여기서 놀라게 되는 건 도올의 지식적 깊이 뿐 아니라, 하나 하나 세밀히 관찰할 수 있는 그의 관찰력에 있다. 나도 간혹 고전의 자취를 쫓아 다니지만, 그렇게 세밀하게 관찰한 적은 없다. 불상이나 탑, 그리고 비석을 보면서 시큰둥하게 그냥 있는가 보다라고 생각하지, 그걸 연구하고 탐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는 게 없으니, 별 감흥이 안 올 수 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도올은 다르다. 하나의 사물을 보고 그 안에서 미술사적 가치, 불교사적 가치, 문학사적 가치 등등 모든 방면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맘껏 사유할 수 있다. 그렇게 자기의 지식만을 뽐낸 것이면 오히려 보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그가 가지는 인간적인 나약함까지 들어 있다보니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 까지 한다.

  이 책 덕에 인도의 문물과 불교의 자취를 알 수 있었으며, 도올의 사유 방식에 새삼 놀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권보다 더욱 수월하게 읽으며 인도를 탐구할 수 있었던 2권이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이 생각날 정도로 따스하면서도 인간 도올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하는 달라이라마의 모습들.. 그런 여운으로 2권을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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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1 - 인도로 가는 길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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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화보집을 방불케 할 정도의 스케일을 가진 책이다. 참고로 난 기독교인이지만, 그래서 불교를 한번도 깊이 있게 배워보질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서 조금이나마 불교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도올과 달라이라마와의 만남. 이것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일이다. 달라이라마,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가 누군지, 뭐하는 수도승인지도 몰랐던 나였다. 하지만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묘사된 판첸라마의 모습을 보고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런 인연으로 이 책까지 보게 되는 특수를 누렸으니 난 참 복도 많은 사람인가 보다.

  화보집 수준의 사진이 실려 있어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도올의 인도 여행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1권에서는 초기 불교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싯달타의 모습을 통해 어떻게 깨달음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에서 불교가 성립되게 되었는지 하는 문제들 말이다. 아주 자세하게 파헤쳐져 있으며, 나 같이 불교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고 흥미롭게 쓰여진 책이다.

  싯달타의 깡마를 정도의 정신적 수양, 그리고 그런 육체적 고통만이 수양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제 3의 길 '연기'를 깨닫기 위해 보리수 나무 밑에서 정진하던 모습, '연기'를 통한 윤회와 해탈의 깨달음 등, 초기 불교의 모습이 실려 있다. 그러면서 도올 특유의 견해들을 펼친다. 불상을 신성시 하는 우상화된 불교에 대한 비판이랄지, 사리에 대한 견해랄지 하는 것들 말이다.

  처음부터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사뭇 다른 논조의 글들이 펼쳐져서 당황하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잠시나마 불교를 알 수 있었던 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축복을 기본 삼아 그들의 만남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2권으로 넘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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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박지원 참 우리 고전 1
박종채 지음 / 돌베개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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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에 관한 기록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가운데, 우리에게 연암은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는가? 걸출한 실학자로 당대의 관습을 타파하고자 했던 지식인으로, 그것도 아니면 고집이 세서 도연명처럼 '獨也靑靑'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진 않는가.

  어떤 식으로 기억되건 연암은 왠지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위인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도 알고 보면 여리디 여린 사람이었을 뿐, 그리고 70~80년대 민주화 열망에 꽉차 시대를 고민했던 지식인들처럼 그도 당대 지식인으로서 우리 나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연암은 우리에게 참으로 멋진 선배이며, 좋은 스승임에 확실하다.

  이 책의 원제목은 '과정록'이다. 출처는 논어에 나오는 진항와 공자의 아들 伯鯉의 대화에서 비롯된다. 공자가 아들만 편애할거라, 아니면 아들에게만 뭔가 비법을 줬을 거라 의심하던 차에 백리에게 뭔가 특별한 걸 배운게 있냐고 묻는다. 그랬더니 백리가 말하길 "뜰을 지날 때 아버지가 부르시더니, 시를 배웠느냐라고 하길래 안 배웠다고 했더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하지 못한다. 라고 하시는 거예요. 다른 날에도 뜰을 지나고 있는데 예를 배웠느냐고 묻길래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세상에서 설 수 없다고 하셨죠"라고 대답했다. 그제서야 진항은 공자가 자식을 멀리 한다는 것과 예와 시를 배웠다고 말한대서 '過庭之訓(뜰을 지날 때의 가르침)'이 나왔다. 바로 과정록은 그런 아버지의 일상적인 가르침을 기록하고자 했던 박종채의 뜻을 담은 책이란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참 연암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성인정도로 치켜 세웠다가 실망함으로 깍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인간적인 면모가 그렇게 다정다감해 보이며, 그 안에서 그런 우뚝한 정신적 뼈대를 세울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이야기일 뿐 이니까.

  조정에 등용시키려 혈안이 되어 있었던 관리들과, 그들을 피해 도망다니던 연암의 이야기, 50대가 넘어 어쩔 수 없이 군수 자리에 앉아 선정을 펼치다 군민들이 선정비를 세우려 하자 만류했던 연암의 이야기, 중인들과의 아무거리낌 없던 교제 등등 웃지 못할 이야기들과 그의 결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결론 같은 건 없다. 그저 자기의 행복을 위해 살되, 그 행복이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거야 말로 최고의 삶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연암의 삶은 성공적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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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지음 / 그린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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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책을 읽어볼 생각은 추호에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서양철학이라면 더욱이 손사래를 치며 뜯어 말렸던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서양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놀라운 책과의 인연담이 아닐까.

  난 동양문학을 전공한다.(한문학 전공) 그렇다보니 당연히 동양고전(경서)에 익숙하며 동양 철학에 관심이 많다. 늘 읽으며 생각하는 거지만, 참 부질 없는 논란으로 서로간에 논변이 오고 간다. 理와 氣론이 대표적인 동양적 철학체계이고 그것으로 인해 조선 시대엔 당쟁이 심화되기도 했다. 어쩌면 한물간 그런 철학체계를 붙들고 수신, 중용 등을 읽고 있으니 맘 속 깊은 곳에선 답답증이 일 지경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와 하등에 상관도 없는 서양 철학을 읽는 다는 건 천지개벽과도 같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고미숙 선생님이 지은 '열하일기 웃음과 유머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게 되면서 부터이다. 그 책은 나의 전공 때문에 읽게 된 책이었는데, 그 안에 전혀 듣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개념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워낙 재밌게, 그러면서도 의미심장하게 잘 쓰여진 책이라 읽고나서 완전히 팬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잠시의 욕심이 동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나의 전공으로 답답하던 차에 그것마저 읽느라 골머리 앓느니 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발을 들여놓진 않았던 거다. 그럼에도 書緣은 왜 그다지도 즐긴지, 다시 고미숙 선생님이 쓴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게 된 것이다. 읽을 생각도 없었던 책이지만 놀랍게도 그런 어긋나는 만남들이 계속 되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그 놀라운 생각들과 코뮌이라는 생소한 단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정점에 서있던 이진경이라는 분에 대하여 관심이 동했던 거다. 또한 나의 전공만을 고집하며 우물 안 개구리로 몰락할 것이 아니라, 학문적 연대를 꾀하며 횡적 연대를 해야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다.

  이런 저런 생각들과 생각들이 만나서 결국 이진경님이 쓴 '노마디즘'을 접하게 되는 순간에 이르렀다. 하지만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책을 덮어야 했다. 나름대로 끈기있게 읽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너무 난해했고 어려웠던 까닭이다. 그렇게 포기하고 좀더 쉬운 책을 찾다가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놀라워라 책과의 끊임없는 연들이 말이다.

  이 책은 중세철학에서 탈근대철학까지의 계보를 꿰뚫고 있는 책이다. 중세철학이 '신학을 위한 시녀'의 역할을 했던 것에서 시작하여 인본주의적 철학이 대두되고, 이젠 그것마저 넘어서는 제 3의 철학이 대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끝을 맺는다. 내가 철학에 무지한 내가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철학을 완전히 다 알게 된 건 당연히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나에게 가능성을 주었고, 철학이란 결코 별개의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인간사, 정치사와 맞닿아 있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으며 나의 가야할 길에 대한 끊임 없던 물음들이 곧 철학이었다는 가르침을 주었던 거다.

  철학에 대하여 궁금한 마음이 있다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매우 쉽게 쓰여진 책은 아니지만, 자료도 풍부하고 읽으면서 이성의 허구와 가치관의 부조리 등을 맘껏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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