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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박지원 ㅣ 참 우리 고전 1
박종채 지음 / 돌베개 / 1998년 9월
평점 :
연암에 관한 기록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가운데, 우리에게 연암은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는가? 걸출한 실학자로 당대의 관습을 타파하고자 했던 지식인으로, 그것도 아니면 고집이 세서 도연명처럼 '獨也靑靑'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진 않는가.
어떤 식으로 기억되건 연암은 왠지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위인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도 알고 보면 여리디 여린 사람이었을 뿐, 그리고 70~80년대 민주화 열망에 꽉차 시대를 고민했던 지식인들처럼 그도 당대 지식인으로서 우리 나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연암은 우리에게 참으로 멋진 선배이며, 좋은 스승임에 확실하다.
이 책의 원제목은 '과정록'이다. 출처는 논어에 나오는 진항와 공자의 아들 伯鯉의 대화에서 비롯된다. 공자가 아들만 편애할거라, 아니면 아들에게만 뭔가 비법을 줬을 거라 의심하던 차에 백리에게 뭔가 특별한 걸 배운게 있냐고 묻는다. 그랬더니 백리가 말하길 "뜰을 지날 때 아버지가 부르시더니, 시를 배웠느냐라고 하길래 안 배웠다고 했더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하지 못한다. 라고 하시는 거예요. 다른 날에도 뜰을 지나고 있는데 예를 배웠느냐고 묻길래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세상에서 설 수 없다고 하셨죠"라고 대답했다. 그제서야 진항은 공자가 자식을 멀리 한다는 것과 예와 시를 배웠다고 말한대서 '過庭之訓(뜰을 지날 때의 가르침)'이 나왔다. 바로 과정록은 그런 아버지의 일상적인 가르침을 기록하고자 했던 박종채의 뜻을 담은 책이란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참 연암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성인정도로 치켜 세웠다가 실망함으로 깍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인간적인 면모가 그렇게 다정다감해 보이며, 그 안에서 그런 우뚝한 정신적 뼈대를 세울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이야기일 뿐 이니까.
조정에 등용시키려 혈안이 되어 있었던 관리들과, 그들을 피해 도망다니던 연암의 이야기, 50대가 넘어 어쩔 수 없이 군수 자리에 앉아 선정을 펼치다 군민들이 선정비를 세우려 하자 만류했던 연암의 이야기, 중인들과의 아무거리낌 없던 교제 등등 웃지 못할 이야기들과 그의 결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결론 같은 건 없다. 그저 자기의 행복을 위해 살되, 그 행복이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거야 말로 최고의 삶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연암의 삶은 성공적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