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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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자동차를 비롯한 제품의 사용 설명서 내지는 사양을 뜻하는 단어인 스펙(specification)이 대한민국 청춘남녀의 표준을 척도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지금도 불철주야로 학교에서 학원에서 타인보다 좀 더 다양하고 강력한 사양을 장착하기 위해 오늘도 대한민국 청춘남녀들은 24시간이 부족하리만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스펙들이 어느날 갑자기 뚝딱하고 하늘에서 떨어진것은 분명 아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속에 살아가는 이상 스펙의 필요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기본적인 기능이 장착되지 않는 사람들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말하듯이 자연히 이 사회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지속되는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갖추고 있는 수많은 스펙이 한 종의 진화에 유효한 최적의 효용가치를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없이 그저 높이만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생각해볼만한 아주 작은 시간적인 배려도 없이 스펙의 숲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시점에서 <철수 사용 설명서>는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철수 사용 설명서>는 바로 이러한 스펙과 관련된 대한민국 청춘남녀와 그들을 둘러싼 기성세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사양이 외견상으로나 성능상으로 떨어진다고 생각되어 지는 철수를 통해서 바라본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회 고발적인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대표적인 사회고발소설인 조정래의 <허수아비춤>,  황석영의 <강남몽>, 그리고 박범신의 <비즈니스>등을 통해서 비뚤어진 자본주의 시스템 정착으로 인한 현상태를 무겁게 그리고 근원적인 물음과 고민하게 했다면 이번 <철수 사용 설명서>는 기성세대가 인지하고 있는 거대한 패러다임에 대한 반기보다는 소소하고 극히 개인적인 성향에 대한 화두를 제공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젊은 작가의 작품답게 기존 사회고발 소설에서 볼 수 있는 흔해빠진 무슨 무슨 담론같은 무거운 메세지를 삭뚝 제거해 버리고 활기발랄하게 작품를 끌어 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회 고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읽는 내내 독자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절로 '그래 맞어'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 상존하고 있기도 하다. 일종의 르포르타주같은 설정들로 인해 가독성을 높여 주기도 한다. 

소설인지 아니면 제목 처럼 무슨 가전제품 사용 설명서인지 헷갈리게 하는 유니크한 스트럭쳐를 도입하여 왠지 픽션보다는 팩트에 가깝게 느끼도록 독자들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스트럭쳐가 그동안 고착화된 문단의 틀에 신인작가의 새로운 도전으로 보여지는 신선함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순수하게 작품 내러티브만을 놓고 보게 되면 그 힘은 반감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철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남녀에게 동질감을 제시하면서도 특히 애를 키우고 있는 기성세대에게 정곡을 콕 찌르는 멘트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신문의 가십란을 훌터보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오지만  내러티브(내러티브라 표현할 수 있다면) 전반이 주는 이미지는 상당히 시니컬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이 기성세대의 올바르지 못한 사고에서 변질되었다는 생각에 씁슬함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또한 이러한 작품의 구조가(구조적 특성에 기인한 점이 클것으로 판단되지만)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포스를 다소 반감되게 하여 문학적인 깊은 인상은 기대하기 힘든 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문학계가 가지고 있던 일종의 철옹성에 과감하게 도전했고 형식적인 파괴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내러티브의 완성도가 눈에 거슬리지만 신인작가라는 점과 스프레드식의 소재을 감안할때 수긍할 수 있는 점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음 작품이 기대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이 가는 점은 그동안 표준, 정상, 불량이라는 산업자본주의적인 확정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들에게 개개인의 특성(사용 설명서)에 대한 작가의 접근의도와 이를 풀어내는 작품적 기법들(주절주절 하면서도 사건별로 특징화하는 르포형식)이 가슴에 와닿다는 것이다. 세탁기를 냉장고로 사용할 수 없듯이 확정사고의 틀에 도전한 작가의 정신만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바로 이러한 점이 외모도 훈남인 작가 전석순의 매력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향후 작품활동이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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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스트 윈터 -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이은진.정윤미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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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정치사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전쟁의 허와 실 그리고 그 내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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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1-09-1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하신 것이 언제 인쇄된 몇 쇄인가요? 그동안 지적되었던 용어나 번역의 문제들이 수정되었나 궁금하네요.
 
<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2011년 6월 10일은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상징이자 요람으로, 이회영과 그 형제들 그리고 동지들이 그야말로 모든 것을 걸고 만들어 운영한 독립군기지다. 이회영은 여기서 배출된 전사들과 더불어 항일무장투쟁의 전위前衛에서 자유와 해방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우당 이회영에 관한 '본격 평전'으로는 최초라 할 김삼웅의 <이회영 평전>은 우당 개인의 일대기에 국한하지 않고 그와 관련된 당시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심층적.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보재 이상설, 단재 신채호, 석오 이동녕, 백야 김좌진 등과의 관계는 한국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씨줄을 형성하고 있으면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타임’의 트레이드마크라면 빨강 테두리와 함께 ‘올해의 인물’이 꼽힌다. ‘타임’이 처음 선 보인 빨강 테두리는 그 안에 담긴 정보는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 밖의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27년 ‘올해의 인물’로 대서양 단독 비행에 성공한 찰스 오거스터스 린드버그가 선정된 이후 수많은 매체들이 ‘올해의 여성’ ‘올해의 과학자’ ‘올해의 선수’ 등 다양한 타이틀을 선보였으나 아직 ‘타임’ ‘올해의 인물’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이 책은 ‘타임’이 역사를 기록만 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만들기도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 속에 담긴 일러스트레이션은 600여장.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타임’이 성공을 거두는 바탕이 된 비주얼까지 분석한다. ‘타임스타일’이라 불린 ‘타임’만의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과 그룹저널리즘, 포토에세이 등 ‘타임’을 창간 이후 세계 최고의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게 만든 강점들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본서는 대만의 광계출판사와 보인대학출판사가 공동으로 출판한「마테오리치 중국선교사」상, 하권을 완역한 책이다. 1582년 중국 선교를 목표로 마카오에 첫발을 내딛고 갖은 고난을 무릅쓴 노력 끝에 북경에 입성한 뒤, 선교 활동을 비롯한 관계 인사들과의 교류, 지도 제작, 각종 저술 등의 활동을 펼치다가 1610년에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이탈리아 선교사 리치의 생생한 기록들이 이 책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교에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당시 리치가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중국의 역사, 문화, 및 사회생활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내용 중에는 물론 중국 문화와 현상에 대한 서구인이 가지는 한계로 인한 오해나 착각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기록의 사실성과 함께 인간미를 배가시켜 주기도 한다. 이는 본 역서의 제목을 ‘마테오 리치의 중국견문록’이라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타 신부들의 활동을 포함하여 자신의 활동상을 직접 소개하고 있는 이 기록은 트리고의 라틴어본을 저본으로 영어본, 중국어본, 일본어본 등을 비롯한 세계의 각국 언어로 소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본은 소개가 되지 않은 현실에서, 본서가 이번에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원전에 가장 충실한 <손자병법>을 김원중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완역한 책. 이번에 선보이는 김원중 판 <손자병법>은 원전의 뉘앙스를 잘 살리면서도 술술 잘 읽히고, <손자병법>이라는 책이 형성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것을 철저히 이해할 수 있게 집필되었다. 손자의 전쟁이론에 대응하는 실제 전투의 사례를 <사기>와 <삼국지> <한비자> 등 당대의 텍스트들 속에서 선별하여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고도로 함축적인 손자의 전언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 점이 다른 번역서들과 차별화되는 이 번역본의 특징이다.

명청시대를 거쳐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손자병법>과 죽간본 <손자>의 차이, 조조를 비롯해 대표적인 손자 주석 및 자일스Giles 등 서구의 익히 알려진 영문판 자료를 검토하고, 제한된 범위지만 현대에 들어와 이뤄진 연구 성과를 두루 참조하여 사실에 맞고 이해하기 쉽도록 다듬었다. 그 과정을 통해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최신의 손자 연구를 반영한 번역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예수는 없다>의 오강남 교수가 곪아 터진 한국 종교에 던지는 시원한 화두. ‘신의 죽음’이라는 언명처럼 20세기에 종말을 선고받은 듯했던 종교는 9·11사태로 21세기의 문을 열었고, 이제 세계는 삶의 안녕을 확신할 수 없는 신들의 전장터가 되었다. 바야흐로 한국 사회 또한 근래에 들어 종교에 이해와 소통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다.

오늘의 한국 종교는 더 이상 사회 문제 해결의 열쇠와 등대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문제 자체로 변하여 갈등과 반목의 주역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오랫동안 비교종교학의 균형 잡힌 지성으로 한국 종교의 오늘을 탐문해온 오강남 교수는 그 까닭이 우리 종교와 종교인들이 ‘표층 종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종교, 심층을 보다>는 ‘혼자만 잘살려는’ 자기중심적이고 미성숙한 표층 종교를 뛰어넘어 종교의 심층, 즉 깨달음(영성)을 찾은 세계 여러 종교의 선지자들의 삶과 가르침을 소개한다. 

 

 

나사의 두 행성과학자가 보여주는 해와 달과 별들의 놀라운 이야기. 두 저자는 우주 가운데서도 지구와 가까운(?) 태양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50곳을 지구와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여기서 ‘장소’는 특정 장소뿐 아니라 사건이나 현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주와 지구의 극한을 비교, 대조하는 두 저자의 입담과 화려한 사진들에 눈과 귀를 홀리다 보면 여름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이 책은 우주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지구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지구에서 발생하는 여러 자연재해들이 과학적으로 어떤 이유에서 발생하는지를 자연스럽게 가르쳐준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독자는 지구라는 행성을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매 장마다 펼쳐진 우주의 극한들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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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지자본주의 -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 아우또노미아총서 27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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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등을 일컫는 자본주의의 개념에 익숙해져 있는 서평자에게 사실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은 상당한 곤혹은 가져다 준다. 그 개념의 인지에서부터 책의 내용의 인지에 이르기까지 솔직한 표현으로 선뜻 인지하기가 힘든 담론을 담고 있다. 우선 저자는 지금의 시대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나 금융자본주의 내지는 소비자본주의라는 정의보다 인지자본주의로 명명하고 있다. 그 근거에 인지노동이라는 개념이 들어있고 결국 맑스가 주창한대로 노동에 대한 착취 과정에서 노동을 인지노동을 대체한 개념 정도로 이해된다. 즉 그동안 노동이라는 개념이 물질적인 재화의 생산에 주력하고 기여하는 형태로 인식되었다면 인지노동은 이러한 물질적인 형태가 아닌 비물질적인 형태의 노동을 일컫는 말이다. 비행기 승무원의 억지미소에서 부터 작가의 창작과정에 이르기 까지의 일련의 노동형태에 대한 착취과정이 지금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현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출발점에서 시작된 저자의 담론은 기본적으로 맑스의 자본론에 그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지자본에 대한 담론을 펼쳐나가고 있다. 

맑스의 자본론이나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등 그리고 열거되고 참고되고 용인되는 일련의 학자들의 저작들이나 이론체계에 대한 기초적인 선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독자들에겐 상당한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책이다. 사실 이러한 선험적인 지적 담보를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읽어보더라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인문학적 소양의 심도를 떠나서도 만만치 않은 이론서임에 틀림없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면 챕터 끝부분에 수록된 도판들을 통해서 저자가 펼쳐가는 담론의 희미하지만 어렴풋한 개념을 시각화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위안을 찾고 싶어진다. 그만큼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결정적인 포커스를 너무 많은 곳에 너무 많은 형태로 흩뿌려 놓아서 오히려 몇장의 사진에서 오는 감흥보다 이론적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이러한 느낌은 책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서평자의 지적 무지함에 근거를 둔말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해석에 대한 담론들은 맑스를 비롯해서 그동안 많은 부분에서 논의되어 왔고 그에 대한 진보 역시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진척되어 왔다. 하지만 그 이념적 근간에는 항상 맑스의 자본이 존재했고 이를 기반으로 수많은 이론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지대,상품,노동,토지,자본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에서 인지노동이라는 개념에 대한 접근으로 새롭게 해석되는 자본주의의 접근이라는 측면에서 인지자본주의는 상당한 반향을 가져 올 것으로 보이며 현재 처해진 상황을 해석하고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다만 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내용의 간결화와 분량의 간소화를 통한 서브형식의 핵심서를 통해 일반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개론서 형식의 저작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가져보게 된다. 

흔히들 자본주의를 물질만능의 시대라고 한다. 자본(돈)과 물질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세상 그리고 그러한 사유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는 강요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비물질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종속되어 가는 지금의 상태는 오히려 물질만능의 시대보다 더 암울하고 무서운 세상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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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민음사 모던 클래식 47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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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은 <런던 스케치>를 통해서 각계각층의 런던 사람들의 삶을 모자이크화 하는 방식으로 불협화음 같은 래퍼토리를 한편의 내러티브로 통일화 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퍼즐의 조각들이지만 마치 성당의 그림처럼 각 퍼즐간의 일련의 규칙성이 내제하는 것 처럼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불협화음 같은 작품을 만나게 된다. 바로 레이철 커스크의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을 통해서 현대대인들의 삶과 일상 그리고 그 족적들을 엿보게 된다.  

도리스 레싱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연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은 토머스와 토니부부를 중심으로 토머스 형제 그리고 부모의 일상적인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을뿐 각각 구성원에 관한 이야기가 액자구조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딱히 그런 스트럭쳐라고 지칭하기도 힘든 한마디로 애매모호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1)토머스-토니부부  2)하워드-클로디어부부  3)레오-수지 부부  4)토니의 시부모  5)올가-스페판커플 이렇게 5가지 큰틀속에서 각각의 래파토리가 전개되고 시간의 흐름속에 일련의 순서와 무관하게 각각의 영역을 고수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이 전개된다. 하지만 액자소설의 전형적인 구조처럼 각각의 내러티브와 더불어 전체적인 하모니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유니크하게 다가온다. 물론 중심에는 남편과 아내의 역활을 바꿔서 생활하는 토머스-토니부부가 놓여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 부부의 내러티브가 중심으로 부각되지도 않는다. 마치 음악회 시작전에 화음이나 역활분담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자신의 영역에서 맡은 음율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라의 악단과도 같은 느낌이 강하게 전해진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대로 피아노는 피아노대로 관악기는 관악기대로 자기 본연의 音만 확인하겠다는 듯이 청객의 귀는 뒷전으로 사정없이 불어대는 음악회 시작전의 그런 분위기이다. 처음 음악회를 접하면서 그래도 내심 한번쯤은 상호간의 화음을 조율해보는 리허설 비슷한 것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여지 없이 무너지게 한다.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토머스-토니부부의 역활분담에서 기인한 첫 스타트가 왠지 새로운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그리고 다른 화음들(하워드-클로디어부부등)의 등장으로 뭔가 내러티브의 반전 내지는 작은 충격이나마 존재할 것 만 같은 기대감을 가지면서 책장을 따라 눈길을 진행시키 보지만 이들 악기(등장인물들)들은 정말 자기만의 음만을 보여줄뿐 더이상의 발전된 화음을 보여주지도 않고 그럴 의사 역시 없어 보일 뿐이다.(이는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로 엿보인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 처럼 말이다) 토머스와 클라라 엄마 헬런의 부분도 그렇고 토머스의 피아노 선생 동성커플의 경우도 그렇고 뭔가 다른 전개감을 기대하지만 작가는 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시종 일관한다. 마치 그 부분의 내러티브는 독자들이 알아서 적당하게 맞는 화음으로 조율해 보라는 듯이... (일면 상당히 무책임한 뉘양스를 남기면서...) 전체적으로 뭔가 더 있을것 만 같은 아니 꼭 있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지만 작가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심지어 음악회가 끝나고 러브콜을 받는 지휘자의 작은 즐거움마저 가져가 버린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문외한인 나 같은 경우 상당히 곤욕스러운 읽을거리를 접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딱히 명확한(최소한의 기준으로 보아도)내러티브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각각의 악기들이 발현하는 음의 특색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뭐 여기까지도 대충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스트럭쳐나 내러티브 확정성이 보이질 않는다는 점에서 음악회 시작전의 불협화음의 시간속에 어쩔수 모르는 불안감의 연속을 맛보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명확한 정리가 되질 않고 계속 가물거릴 뿐이다. 마치 큰 숲을 통과해서 나왔지만 정작 그 숲에 대한 생각보다  소나무 가지가 걸친 피걸러위의 햇살의 묘사나 마당으로 넘어오는 벚나무 가지를 통한 내면의 심리적 묘사를 하는 부분등의 상당히 시크한 일련의 문장과 단어들이 뇌리에 더 깊게 각인 되어버리고 등장인물들과 그들을 둘로싼 전체에 대한 특징적인 기억의 끄나풀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마치 작가가 처음부터 작정하고 끌어가는 변주곡에 자연스럽게 넘어간 느낌처럼 말이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이란 특정한 유명 정치인, 유명 연예인들의 삶이 하나의 표본이 되고 또 그렇게 인지되도록 매스미디어는 은근한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마치 나 자신의 삶이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지는 착각속에 살아가고 있고 또 그럴려고 열심히 노력아닌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것이 진정한 나의 삶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수도 없고 찾을 필요성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시대에 레이철 커스크의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은 색다르게 다가온다. 아니 정확하게 다가온다고 해야 할 것이다. 토머스-토니부부를 비롯하여 등장하는 커플들의 삶, 부부나 커플의 공통적인 삶, 그리고 각각 개인들의 삶은 전혀 화려하지도 않고 주목받지 않는 극히 평범한 일상적인 삶을 그리고 있지만 이러한 불협화음같은 삶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변주곡을 형성하듯이 우리네 인생 역시 별반 차이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뭐 특별할 것도 없고 튀는 음정이나 박자가 다소 있더라도 결국 거대한 관현악곡에 묻혀서 표시나지 않게 흘러가는 음악회처럼 보여진다. 음악회가 끝나고 난 뒤 뜨거운 감흥보다는 오히려 허전함이 더 크게 남는 현실을 반영한 듯 하여 자뭇 씁슬한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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