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인가 자동차를 비롯한 제품의 사용 설명서 내지는 사양을 뜻하는 단어인 스펙(specification)이 대한민국 청춘남녀의 표준을 척도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지금도 불철주야로 학교에서 학원에서 타인보다 좀 더 다양하고 강력한 사양을 장착하기 위해 오늘도 대한민국 청춘남녀들은 24시간이 부족하리만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스펙들이 어느날 갑자기 뚝딱하고 하늘에서 떨어진것은 분명 아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속에 살아가는 이상 스펙의 필요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기본적인 기능이 장착되지 않는 사람들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말하듯이 자연히 이 사회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지속되는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갖추고 있는 수많은 스펙이 한 종의 진화에 유효한 최적의 효용가치를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없이 그저 높이만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생각해볼만한 아주 작은 시간적인 배려도 없이 스펙의 숲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시점에서 <철수 사용 설명서>는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철수 사용 설명서>는 바로 이러한 스펙과 관련된 대한민국 청춘남녀와 그들을 둘러싼 기성세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사양이 외견상으로나 성능상으로 떨어진다고 생각되어 지는 철수를 통해서 바라본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회 고발적인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대표적인 사회고발소설인 조정래의 <허수아비춤>,  황석영의 <강남몽>, 그리고 박범신의 <비즈니스>등을 통해서 비뚤어진 자본주의 시스템 정착으로 인한 현상태를 무겁게 그리고 근원적인 물음과 고민하게 했다면 이번 <철수 사용 설명서>는 기성세대가 인지하고 있는 거대한 패러다임에 대한 반기보다는 소소하고 극히 개인적인 성향에 대한 화두를 제공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젊은 작가의 작품답게 기존 사회고발 소설에서 볼 수 있는 흔해빠진 무슨 무슨 담론같은 무거운 메세지를 삭뚝 제거해 버리고 활기발랄하게 작품를 끌어 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회 고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읽는 내내 독자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절로 '그래 맞어'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 상존하고 있기도 하다. 일종의 르포르타주같은 설정들로 인해 가독성을 높여 주기도 한다. 

소설인지 아니면 제목 처럼 무슨 가전제품 사용 설명서인지 헷갈리게 하는 유니크한 스트럭쳐를 도입하여 왠지 픽션보다는 팩트에 가깝게 느끼도록 독자들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스트럭쳐가 그동안 고착화된 문단의 틀에 신인작가의 새로운 도전으로 보여지는 신선함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순수하게 작품 내러티브만을 놓고 보게 되면 그 힘은 반감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철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남녀에게 동질감을 제시하면서도 특히 애를 키우고 있는 기성세대에게 정곡을 콕 찌르는 멘트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신문의 가십란을 훌터보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오지만  내러티브(내러티브라 표현할 수 있다면) 전반이 주는 이미지는 상당히 시니컬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이 기성세대의 올바르지 못한 사고에서 변질되었다는 생각에 씁슬함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또한 이러한 작품의 구조가(구조적 특성에 기인한 점이 클것으로 판단되지만)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포스를 다소 반감되게 하여 문학적인 깊은 인상은 기대하기 힘든 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문학계가 가지고 있던 일종의 철옹성에 과감하게 도전했고 형식적인 파괴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내러티브의 완성도가 눈에 거슬리지만 신인작가라는 점과 스프레드식의 소재을 감안할때 수긍할 수 있는 점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음 작품이 기대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이 가는 점은 그동안 표준, 정상, 불량이라는 산업자본주의적인 확정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들에게 개개인의 특성(사용 설명서)에 대한 작가의 접근의도와 이를 풀어내는 작품적 기법들(주절주절 하면서도 사건별로 특징화하는 르포형식)이 가슴에 와닿다는 것이다. 세탁기를 냉장고로 사용할 수 없듯이 확정사고의 틀에 도전한 작가의 정신만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바로 이러한 점이 외모도 훈남인 작가 전석순의 매력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향후 작품활동이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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