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민음사 모던 클래식 47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도리스 레싱은 <런던 스케치>를 통해서 각계각층의 런던 사람들의 삶을 모자이크화 하는 방식으로 불협화음 같은 래퍼토리를 한편의 내러티브로 통일화 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퍼즐의 조각들이지만 마치 성당의 그림처럼 각 퍼즐간의 일련의 규칙성이 내제하는 것 처럼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불협화음 같은 작품을 만나게 된다. 바로 레이철 커스크의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을 통해서 현대대인들의 삶과 일상 그리고 그 족적들을 엿보게 된다.  

도리스 레싱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연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은 토머스와 토니부부를 중심으로 토머스 형제 그리고 부모의 일상적인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을뿐 각각 구성원에 관한 이야기가 액자구조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딱히 그런 스트럭쳐라고 지칭하기도 힘든 한마디로 애매모호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1)토머스-토니부부  2)하워드-클로디어부부  3)레오-수지 부부  4)토니의 시부모  5)올가-스페판커플 이렇게 5가지 큰틀속에서 각각의 래파토리가 전개되고 시간의 흐름속에 일련의 순서와 무관하게 각각의 영역을 고수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이 전개된다. 하지만 액자소설의 전형적인 구조처럼 각각의 내러티브와 더불어 전체적인 하모니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유니크하게 다가온다. 물론 중심에는 남편과 아내의 역활을 바꿔서 생활하는 토머스-토니부부가 놓여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 부부의 내러티브가 중심으로 부각되지도 않는다. 마치 음악회 시작전에 화음이나 역활분담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자신의 영역에서 맡은 음율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라의 악단과도 같은 느낌이 강하게 전해진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대로 피아노는 피아노대로 관악기는 관악기대로 자기 본연의 音만 확인하겠다는 듯이 청객의 귀는 뒷전으로 사정없이 불어대는 음악회 시작전의 그런 분위기이다. 처음 음악회를 접하면서 그래도 내심 한번쯤은 상호간의 화음을 조율해보는 리허설 비슷한 것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여지 없이 무너지게 한다.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토머스-토니부부의 역활분담에서 기인한 첫 스타트가 왠지 새로운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그리고 다른 화음들(하워드-클로디어부부등)의 등장으로 뭔가 내러티브의 반전 내지는 작은 충격이나마 존재할 것 만 같은 기대감을 가지면서 책장을 따라 눈길을 진행시키 보지만 이들 악기(등장인물들)들은 정말 자기만의 음만을 보여줄뿐 더이상의 발전된 화음을 보여주지도 않고 그럴 의사 역시 없어 보일 뿐이다.(이는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로 엿보인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 처럼 말이다) 토머스와 클라라 엄마 헬런의 부분도 그렇고 토머스의 피아노 선생 동성커플의 경우도 그렇고 뭔가 다른 전개감을 기대하지만 작가는 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시종 일관한다. 마치 그 부분의 내러티브는 독자들이 알아서 적당하게 맞는 화음으로 조율해 보라는 듯이... (일면 상당히 무책임한 뉘양스를 남기면서...) 전체적으로 뭔가 더 있을것 만 같은 아니 꼭 있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지만 작가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심지어 음악회가 끝나고 러브콜을 받는 지휘자의 작은 즐거움마저 가져가 버린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문외한인 나 같은 경우 상당히 곤욕스러운 읽을거리를 접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딱히 명확한(최소한의 기준으로 보아도)내러티브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각각의 악기들이 발현하는 음의 특색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뭐 여기까지도 대충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스트럭쳐나 내러티브 확정성이 보이질 않는다는 점에서 음악회 시작전의 불협화음의 시간속에 어쩔수 모르는 불안감의 연속을 맛보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명확한 정리가 되질 않고 계속 가물거릴 뿐이다. 마치 큰 숲을 통과해서 나왔지만 정작 그 숲에 대한 생각보다  소나무 가지가 걸친 피걸러위의 햇살의 묘사나 마당으로 넘어오는 벚나무 가지를 통한 내면의 심리적 묘사를 하는 부분등의 상당히 시크한 일련의 문장과 단어들이 뇌리에 더 깊게 각인 되어버리고 등장인물들과 그들을 둘로싼 전체에 대한 특징적인 기억의 끄나풀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마치 작가가 처음부터 작정하고 끌어가는 변주곡에 자연스럽게 넘어간 느낌처럼 말이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이란 특정한 유명 정치인, 유명 연예인들의 삶이 하나의 표본이 되고 또 그렇게 인지되도록 매스미디어는 은근한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마치 나 자신의 삶이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지는 착각속에 살아가고 있고 또 그럴려고 열심히 노력아닌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것이 진정한 나의 삶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수도 없고 찾을 필요성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시대에 레이철 커스크의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은 색다르게 다가온다. 아니 정확하게 다가온다고 해야 할 것이다. 토머스-토니부부를 비롯하여 등장하는 커플들의 삶, 부부나 커플의 공통적인 삶, 그리고 각각 개인들의 삶은 전혀 화려하지도 않고 주목받지 않는 극히 평범한 일상적인 삶을 그리고 있지만 이러한 불협화음같은 삶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변주곡을 형성하듯이 우리네 인생 역시 별반 차이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뭐 특별할 것도 없고 튀는 음정이나 박자가 다소 있더라도 결국 거대한 관현악곡에 묻혀서 표시나지 않게 흘러가는 음악회처럼 보여진다. 음악회가 끝나고 난 뒤 뜨거운 감흥보다는 오히려 허전함이 더 크게 남는 현실을 반영한 듯 하여 자뭇 씁슬한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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