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빨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실 거구

뼛가루 된 동생도 복직할 거구

아이도 다시 걸을 거구, 봄이 오면

나무도 겨울눈 열고 튀밥을 뱉을 거구

그렇게 모두모두 살아날 거구, 잘 살 거구  

 

프로포폴 10미리에 까무러쳤던 나는

죽음과 부활의 쾌감을 만끽했으나

몇 시간 마취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배 속 얼음에 제대로 까무러치셨다

 

급속 냉동한 간과 내장은 완속 해동 중 

 

이빨 없는 입은 삼키고 입 없는 이빨은 갉아먹는다

시간의 이빨은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을, 불멸의 가능성을 

죽은 상어의 우아한 균형을 좀 먹고, 예술가의 창고에서는

싱싱한 시체가 부패한 시체를 대체할 순간을 기다린다 

오, 호랑이 상어여, 포르말린 속에서 살아 있는 자로 부활하라!    

 

그러므로, 아이야

 

어느 날 죽음이 우리 방문을 노크 한다 해도

읽던 책장을 황급히 덮지는 말자

어느 날 시간의 이빨이 우리 목을 깨문다 해도

너무 큰 비명은 지르지 말자

 

황급한 비명은, 천기누설인즉,

어느 뼛가루가 흘린 것이었다

내가 죽었는데 세금고지서가 나오다니, 허허!

 

우리 인간이 죽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과 세금, 하느님 당신은 웃어주실 거죠?

우리는 정말이지 죽기 직전까지 내일 계획을 세우고

장래 희망을 논했단 말입니다, 흥!

 

 

*

 

 

-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실 거구(기형도)  

- 어느 날 죽음이 내 방문을 노크 한다 해도 / 읽던 책장을 황급히 덮지는 말자 (최승자, 빈배... )

- 포르말린, 포름 알데히드

- 살아 있는 자의 마음 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데미안 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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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적 성격의 꿈

 

 

 

 

 

 

아이가 다시 걷는 꿈을 꾼다, 매일 

 

 

*

 

 

눈뜨기 직전 노랑 주황 코스모스를 본다

꿈의 바깥, 코스모스가 진짜 노랑 주황이다 

멕시코산 노랑코스모스, 우주는 조화로워

다시 지긋이 감은 눈앞으로 파란색,

초록색 장미를 본다, 놀라워라!

 

루스커스는 시들지 않는다

촉촉하고 윤기나는 초록잎은

가지 끝에 물만 닿으면 마르지 않아,

루스커스야말로 불로초구나

 

루스커스의 불멸은, 그러므로  

유칼립스투스의 필멸에 견줄 만하다

 

유칼립투스는, 그 잎사귀는 기필코 마른다

끈끈한 점액질 초록 줄기에 동그란 블랙잭

튼튼한 갈색 줄기에 날렵하고 앙증맞은 파블로

부드러운 가지에 동글동글 빛바랜 꼬마 구니

흐느적대는 가지에 여유로운 동그라미 폴리안

초록 잎 속에 씨앗 같은 열매 품은 씨드 유카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한반도까지 푸르디 푸른 윤기를 잃고 바싹바싹 말라가는 모습이 너무 좋아, 유칼립투스 가지들을  마끈으로 칭칭 동여매, 원목 책장 기둥에 대못 박고, 참수당한 아이의 동그랗고 상큼한 해골처럼, 초록초록 매달아 두고, 유칼립투스여, 너를 향한 사랑 감추지 않으려니, 불멸하시라!

 

장미라고 모두 향기가, 가시가 있지 않듯이  

파란색 장미는 세상에 없다, 세상의 파란색 

장미는 모두 염색 장미다, 세상의 초록색

장미는 염색도 없다, 아주 없다, 그러므로

 

사피엔스는 조화로운 코스모스를 완벽히

점령하는 데 실패했고, 마찬가지로

꿈에 논증적 성격을 부여하는 데 실패했고

논증이 불가능한 그 꿈에 덧붙여

 

*

 

꿈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또다른 악몽

아이는 오늘도 걷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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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2-03-06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아프네요...아이가 다시 걷게 되기를...봄이 오면서 아이가 건강히 회복되어 튼튼한 다리로 걷기를 바랍니다. 푸른괭이님, 부디 힘내세요.

푸른괭이 2022-03-06 18:25   좋아요 0 | URL
어휴, 어째저째 적응이 돼서 더 나빠지지만 않아도 감사합니다^_^
 

 

 

슬픈 잡식동물

 

 

 

 

 

나는 한 마리의 잡식동물

쉰 살을 코앞에 둔 잡식동물

슬픈 잡식동물, 슬퍼하는 잡식동물이다

 

동생의 소재가 궁금하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어딘가에 있기는 한 거냐, 동생아

 

얼굴과 손이 작아서 슬픈 짐승

눈구멍과 콧구멍이 커서 슬픈 짐승

잡식동물이라 더 슬픈 짐승

 

멜랑콜리아, 라는 말은 멜랑콜리하지 않다

멜랑콜리한 잡식동물이 슬픈 잡식동물이 되어

애도를 넘어 멜랑콜리아에 절여졌다

 

잡식동물 한 마리의 뼛가루가

찹쌀 경단이 되어 뒷산 산책로에 흩뿌려지다

오며 가며 토끼도 먹고 다람쥐도 먹고, 외롭지 않아

 

토끼와 다람쥐는 초식동물인데

나와 동생은 잡식동물, 잡식이라 슬픈

슬퍼하는, 그런 잡식동물

 

 

 

*

 

프로이트, <애도와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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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肝

 

 

 

 

오늘의 간은 얇고 넓다

그래도 끝이 뾰족한 것이 엄연한 간

정성껏 저민 퍽퍽한 잿빛 간에다

당면 가득한 핏빛 순대를 싸 먹는다

부르고뉴 와인맛은 모르지만

부르고뉴 와인빛 버건디 순대를 좋아한다  

 

그 녀석, 무례했지

없는 버르장머리 때문에 잔뜩 부어오른 핏빛간을 저며

부르고뉴 와인에 적셔 먹었지, 대장에 말아서 말이야

 

대장과 간은 가까워 전이가 불가피하다

원격조정은 필요없다, 간을 지켜, 간을!

코카서스 산맥에서 도망쳐 온 토끼처럼

제우스한테 혼쭐난 프로메테우스처럼, 간을!

다시는 용궁에 떨어지지 않도록

다시는 독수리한테 쪼이지 않도록, 간을!  

 

오늘의 간은 아무래도 너무 얇다

쌈 싸 먹기 딱 좋은 잎채소 모양의 간

간엽에 말린 핏빛 순대의 맛, 너무 좋아  

 

 

 

*

 

윤동주, <간>. / <양들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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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벨라 타르의 마지막(열번째) 영화(라고 하는) <토리노의 말>(2011)을 보았다. 토리노, 말. 딱 봐도 니체. 니체 얘기는 많지만, 그 다음 그 말 얘기는 없다, 라는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소리를 켜두면 바람소리가 거의 대부분, 사람 말 소리가 거의 없고, 가끔 나오는 소리는 (헝가리어라) 거의 알아들을 수 없다. 슬라브어라 집시(쯰간), 요런 단어가 포착되긴 한다. 화면을 보면 온통 흑백, 시커멓고 어둡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모든 대상이 다 흔들리는 것 같고, 문제는 너무 롱테이크, 롱샷(??)이라, 10초 당겨서 봐도, 모든 것이 정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이건 아무래도, 여러 모로

타르콥스키의 극단 버전.

역시 소련-동구권.

미묘한 정신-영혼의 근친성은 결국 지리적 인접성, 정(치)체(제)의 유사성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토리노의 말>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나로서는, '감자'였다. 그래서 나도 감자를 삶아 보았다. 달걀도 삶았는데, 터져버렸다. 얼마나 호사스러운 식단인가.

 

 

총 (5박) 6일. 부녀는 매일 감자 하나씩을 먹는다. 우물에서 길어온 물로, 또 불러, 푹 삶은 감자. 뜨겁다. 껍질 까느라 고생. 첫 날은 아비를 비추고 둘쨋날을 딸을 비추고, 그 다음은 자세히 못 봤다.(보충 요) 문제는 웬 남자가 다녀간 다음(종말 얘기) 말이 먹기와 움직임을 멈춘다. 집시가 다녀가고 (책 한 권을 주고) 그 다음 우물이 마른다. 그다음에 먹는 감자는 당연히, 삶은 것이 아니라 그냥 불에 구운 것.(정확한지 확인이 필요하다.) 힘들어진 부녀는 짐을 싸서 떠나지만, 정말이지 너무 보기 힘든 장면인데, 나무 한그루만 휑덩그레 서 있는 언덕 너머로 갔다가 다시 온다. 카메라가 그대로 있다 ㅠㅠ (<고도>가 생각난다.) 그다음, 불이 안 붙는다 ㅠㅠㅠ

 

그리하여,

6일째 식사는 생감자. 날감자...ㅠㅠ

 

이 참혹한 비극의 원인이 뭔지 모른다. 영화에서 얘기되지 않는다./못한다.

또 하나, 6일이 되어 보니, 그토록 힘들어 보였던 1일이 제일 행복했던 것이다. 말도 움직여 주고 그래서 할 일도 많고 물도 있고 불도 있고 뜨거운 삶은 감자도 있고 등등.

또한 반대로, 불가항력적인 이유(말 부재, 물 부재, 불 부재~) 때문에 할 수 있던 일이 하나씩 없어짐으로써 삶은 더 단순해진다. 에너지-엔트로피. 그래서 결국엔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다. 날감자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불도 없이, 물도 없이. 죽음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아니, 좋든 나쁘든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 삶의 종착역이다. 쉽게, 그러나, 얘기하지는 못하겠다.

 

*  

 

네이버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덥썩 채널-지면 하나를 맡게/갖게 되었다. 덕택에, 겨울방학에 끝내야 할 번역이 자꾸 미뤄진다. 에효, 할 수 없지 -_-;;   

 

https://contents.premium.naver.com/kimyeonkyung75/knowledge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5EAMjPspEAQ&t=45s

홍보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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