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동그람과 지구의 무심함 






동글동글 아이의 뒤통수

자꾸만 집적거리고 싶어

태양을 도는 지구 같거든 


위성이 행성을 돌고 

행성이 별을 도는 건 

착한 일도 못된 일도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옳은 일도 틀린 일도 아닌, 

그저 그런, 자연의 일일 뿐,

어제 빛나던 별이 오늘 죽는 것도

그저 그런, 자연의 일일 뿐이야  


아이의 뒤통수도 동글동글 

해도 달도 지구도 동글동글

그리고 어쩜 저리도 무심할까!


나의 혈관에 활자와 숫자가 흐르고

뇌 주름 속을 기호가 헤집고 다니는 것도

역시 그저 그런, 거룩한 자연의 루틴일 뿐.





김상욱 교수의 강의 영상 참고. 제대로 읽은 책은 <떨림과 울림>뿐이지만, 강의를 자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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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하루를, 엊그제 죽은 남편에게   





1.


"잘 지내지? 많이 보고 싶다." 


2.


서로 본 체 만 체 하는 열둘, 열넷 해바라기들과

실실 쪼개며 담배 꼬나 물고 있는 해골은, 하나다 

상악과 하악이 다 드러난 해골의 잇새에 

시들어빠진 해바라기 줄기를 꽂아 주고 싶다 


3.


이국의 전망 좋은 방, 들판에 존재했던 들꽃을 고속도로변에서 스치듯 보았는데, 어딘가 이 세상 같지 않은, 그런데도 여기 내 눈 앞에 버젓이 있어서 되게 오묘하고 야릇한 느낌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돌연한 죽음을 엊그제 바로 내 옆에 보았는데, 어딘가 나의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엄연히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서 되게 요상하고 얄궂은 느낌, 마치 내가 스크린이나 TV 속에 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노란 금계국 사이로 얼굴을 내민 청보라빛 수레국화는 까마귀 나는 노란 밀밭 옆의 새빨간 양귀비처럼 낯설고 신비스러웠다. 사실 내가 지금 꽃이나 논할 정황은 아닌데, 예쁜 것 그렇게 좋아하던 내가 세상 예쁜 것도 없고 맛있는 것도, 신나는 것도 없는데, 이런 정황에서 뭔가 논할 것이라곤 참수당한 해바라기뿐인 것 같다. 


4.


"얼마나 먼 길을 갔는지, 다시는 안 올 모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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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7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괭이 2022-06-27 17:37   좋아요 0 | URL
음, 이건 픽션입니다^^; 물론 저도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남편이 있긴 하지요 ㅎ

2022-06-27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작약, 너무 한낮의 삶 







어제의 작약은 소담한 희망 

오늘의 작약은 너무 한낮의 삶

내일의 작약은 대참사다, 미련이 없거든요,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   





어제까지는 구슬처럼 동글동글 진홍색 작은 얼굴이었답니다 


오늘은 부끄럽지만 꽃망울을 터뜨려 보았어요 

둥근 겉꽃잎 믿고 속꽃잎을 피웠더니 

속내가 너무 활짝 드러나, 아, 음란스러워라!

가뜩이나 붉은 얼굴 더 붉어졌지 뭐예요

 

그래서 내일이 되자마자 적자색 꽃잎을 떨어뜨렸지요

동그란 제 몸 속에 바늘 꽃잎이 이렇게 수두룩하게 꽂혀 있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는 알아서 꽃잎이 툭툭 빠지네요 

이번 생이 너무 풍만했기에 다음 생은 없어도 된다는 듯 

우수수, 뭉텅뭉텅 한 옴큼씩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뭘 자꾸 하려고 그래 




____ 


장기하, 공중부양 


____


6월도 하순으로 가는 지금, 작약도 끝물이다. 올 봄여름 실컷 보았다! 




보다시피 대참사다. 



치우는 동안에도 떨어져 쌓인다. 



레드참이나 진분홍 작약보다 향기가 훨씬 진하고 꽃잎이 조금 얇은 것 같은 하얀 작약도 대참사는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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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괜찮아 





날은 이렇게 화창한데 아이는 24일만에 또 경련을 하고 

하늘은 이렇게 파란데 나는 싯누런 물똥이나 쏟아내고 


기적 같은 5월 아침, 아카시아가 찔레꽃 향기로 내 등을 

마구 찔러대는데 나는 딴청 피우며 오줌이나 찔끔, 그래도


오늘은 괜찮아, 다 괜찮아 

여전히 해맑게 웃을 수 있거든  



*


(2022. 5. 11.)


하늘은 이렇게 파란데,/나는 오줌이 찔끔 새고, 

바다는 이렇게 넓은데,/ 나는 오줌이 찔끔 새고














그럼 너는? / 괜찮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크게 웃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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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1반 장수풍뎅이






신록은 찰나, 이제 곧 녹음이 우거지리라

녹음 위에 장수풍뎅이 둘이 동화를 쓰리라 


오늘은 어린이날, 5학년 1반에서 냠냠콩콩

조붓하게 사랑을 나누자, 센바람 산들바람


강풍과 미풍, 곤충젤리 먹고 쌩쌩, 윙윙

딱지날개 균형 잡고 속날개 파닥파닥 날아보자 


교실 감옥은 천국, 학교 바깥 자연은 지옥이라네 

사육 상자 안에서 너무나 행복해, 그런데 말이죠!  


나는 암컷이 좋은 암컷, 나는 수컷이 좋은 수컷

강풍과 미풍의 동화 속에는 아기 풍뎅이가 없대요 


  

______




김광섭, <비 개인 여름 아침> 


초5-1 실과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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