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과 킹크랩

 

 

 

 

이번 동지에는 먹었다 팥죽, 마지못해

액운을 쫓아야 하니까 새알까지, 꾸역꾸역

그런데 올해는 애동지라 팥떡을 먹어야 한답니다 

어쨌든 팥은 팥이니까 액운을 쫓아주세요

그런 믿음을 가지려고 합니다만 -

 

올해 동지는12월 21일, 올해도 성탄절은 25일

21일 밤 1미터짜리 조잡한 트리는 따사롭게 빛났고

새벽에 아이는 제법 아팠고, 사흘 뒤 그리스도 대신

킹크랩이 큼직한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왔다 

푹푹 쪄지며 투덜투덜 시큰둥한 다리를 쭉 뻗어갈 때 

한국산 솥 안에서 러시아산 킹크랩은 어떤 믿음을 가졌을까

이런 물음이 게딱지 속 싯누런 뇌수처럼 질질 흘러내린다

 

겨울이 저 지극한 정점을 찍자 정녕 밤이 짧아지는 것 같아

작은설을 축하하고 새해를 맞이할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고   

팥죽색 립스틱을, 하다 못해 죽이 된 팥이라도 바르면  

입술에 발그스레 혈색이 돌아 봄날이 오는 것도 같습니다만 -

 

유년을 회상하면 인간은 착해지는 법, 그렇다  

믿음이 없다면 인간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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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의 여러 이미지 중 가장 촌스럽고 그래서 맛깔스러운 것으로 골랐다^^; 저 '오봉' 너무 정겹다.

 

https://www.iksanop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88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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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집중해라, 집중하면서 삶을 회상해라, 과거를 회상하면 인간은 착해진다. / 중요한 건 믿는 것. 왜 믿음을 없애려고 하는가. (??) - <잠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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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10000recipe.com/recipe/6860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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薔薇, 얼어붙다

 

 

 

 

 

12월 엄동설한,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피려고 했을까요? 

장미의 가냘픈 절규로 청신경을 씻어낸다

앙상한 가지가 철제 울타리를 가로지르고

이파리는 초록의 흔적만 간신히 간직한 채  

오직 장미꽃 한 송이만 야멸차게 빨갛다

 

12월 여수 밤바다,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태어났을까요?

부엌은 후끈하고 곰솥은 뜨겁고 나는

홍합의 들끓는 절규로 또 청신경을 씻어낸다 

양식 홍합은 날카로운 입을 쩍쩍 벌리며

부글부글 분노의 싯누런 거품을 토해낸다 

 

장미의 凍死란 서글픈 死의 가능성

얼어죽은 것이 아니라 얼어붙어 박제된 것 

얼어붙음이 완료되기 직전 몰랑함의 감각

마지막 숨이 멎기 직전 생의 감각

살아 있음의 마지막 감각

그건 어떤 것인지 장미에게 물어보고 싶다 

 

 

 

*

 


 

 

https://360tv.ru/news/obschestvo/23-fevralya-v-lyubercah-vozlozhili-cvety-k-pamyatniku-voinu-osvoboditelyu-48131/

 

 

https://stihi.ru/2013/02/01/10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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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음

 

 

 

 

 

'제목'을 넣으라고 한다 떠오르는 제목이 없다

'무제'라고 쓰기 싫어 '제목 없음'이라고 쓴다

 

캐나다 설탕단풍나무 수액을 뽑아 시럽을 만들어요

에티오피아산 커피콩을 볶고 한국산 우유를 끓이고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가 커피 한 잔에

메이플라떼를 타서 마셔 봐요

우울에 먹히지 않길, 불안에 잠식되지 않길

이 모든 것이 꿈인가 싶네요

무섬증과 어지럼증과 구토에 시달리지 않길

 

죽은 자가 돌아온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죽은지 사흘 후가 아니라 20년 후의 부활이라면

아내는 젊은 신부 남편은 대머리 중년

엄마는 어린 새댁 아들은 건장한 청년

 

기괴한 광경이군

이런 유의 부활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아  

 

 

 

 

 

*

 

기괴한 광경이군/ 이런 유의 부활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아. -> <솔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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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버지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아버지 흘러내리신다 

일어설 때마다 어휴, 어휴

방바닥을, 벽을 짚으신다 

사랑하는 아버지 허우적거리신다

걸음을 뗄 때마다 지팡이를 흔드신다 

 

세상에 늙고 병드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더냐

아무렴 있지요, 젊고 병드는 것, 어리고 병드는 것

 

사랑하는 아버지 비에 젖으신다

물에 잠기신다, 혼자 발톱을 깎지 못하신다  

 

 

*

 

 

어제 문득 떠오른 싯구, 역시 이성복이었구나 ㅠㅠ

 

 

 

 

 

 

 

 

 

 

 

 

 

 

 

 

- 이성복 / <또 비가 오면>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내 기억에서는 '아버지'였는데 찾아보니 '어머니'였다. 청년 이성복은 주로 아버지는 욕하고 어머니(+누나)는 찬미한다, 그런가 보다^^; 암튼, 사십대에 더 많이 되살아나는 시, 읽긴 이십대에 읽었는데. 그대는 진정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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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희생

 

 

 

 

매정한 너한테 꼭 할 말이 있다

너 같은 놈은 우주로 보내면 안 돼

그곳은 모든 것이 연약하거든

깨지기 쉬운 것 투성이야

지구나 되니까 너 같은 매정한 놈을

받아주는 거다, 희생을 감수하면서

 

 

 

*

 

<솔라리스> 중 크리스의 아버지 대사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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