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여우님의 도둑이야기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우리 집안도 큰 도둑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결혼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땐데 친정어머니로부터 숨넘어가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부리나케 조퇴하고 친정으로 쫒아가보니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친정어머니께서 장사하시던 시절부터 쓰시던 금고-어른 하나는 족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음-채 도둑맞은 겁니다.

미리 사전조사와 준비를 철저히 한 듯 금고채 실어갈 수 있게 현관층계 바로 앞까지 용달차를 대었던 자국이며, 안방에서부터 현관층계까지 2사람이 금고를 끌고 가느라 바닥이 긁힌 상처며, 왔다갔다한 사람 발자국까지 선명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지병으로 당뇨가 있는 어머니께서 점심먹고 뒷산에 운동하러 갔다 온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 집을 비운 시간은 채 1시간이 안 되었고, 그 외 시간은 노상 집지키고 사시는 양반이었음을 감안했을 때, 집안사정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의 계획범죄라는 생각이 무럭 들만 하지요.

하지만 바쁘신 경찰나리께서는 영 시큰둥한 반응으로 어머니의 하소연을 건성 들었고, 어머니께서 용의자라 생각되는 두 사람을 왜 의심하는지까지 미주알 고주알 말씀하시는 것도 "수사는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안정이나 취해라"며 토막내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결사건으로 남아 있지요.

지금까지도 친정에서는 그 사건을 종종 얘기하곤 합니다. 도둑맞기 전 1년새 삼남매가 모두 결혼하게 되면서 맞춘 모든 폐물을 한꺼번에 도둑맞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부연설명 : 우리 삼남매나 그 새식구들이나 모두 폐물을 좋아하는 터가 아니라 시계, 반지, 노리개 정도의 예물만 교환했고 그나마도 각자 집에 보관하기 무서워 친정어머니 금고에 죄다 보관했더랬지요.).

제일 아까운 건 어머니의 녹음테이프와 평생 써오신 장부, 그리고 전화번호부입니다. 가난한 집안 남존여비의 고루한 외할아버지 밑에 태어나 초등학교를 2년만에 중퇴하고 공장을 다니면서 오빠와 남동생들을 모두 대학까지 보내고, 여동생은 제꼴 만들 수 없다고 할아버지께 대들어가며 여상까지 공부시키고. 당시로서는 노처녀인 스물여섯에 중매로 아버지와 결혼한 뒤 노름하고 술하는 사람이랑은 못살겠다며 친정으로 도망나왔다가 남의 집 귀신이 왔으니 같이 죽어야한다며 식칼로 제목을 찌르신 외할머니 서슬에 할 수 없이 돌아섰고. 차마 다시는 도망치지 못하고 삼남매 낳아 키우며 보따리행상부터 시작해 동대문에 가게얻고 늦둥이 막내 초등 4학년 때 드디어 집을 장만하고. 자식 모두 대학 졸업시키고 이제 한시름 놓나했더니 벌어졌던 구구한 사건들... 큰오빠 수습하느라 환갑나이로 정수기며 보험 외판하니러 다니시고, 나 수습하느라 백방으로 쫒아다녀야 하셨고. 마침내 소원하던 대로 삼남매 모두 제 갈 길과 짝을 찾아 사는 거 보며 감사하는 이야기 등을 어머니는 틈틈히 녹음해두셨고, 장부와 전화번호부 여백마다 빼곡히 써두셨었는데...

어머니 칠순 기념으로 꼭 자서전 내드리겠다는 자식들의 약속과 당신의 바램이 도둑놈에 의해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차라리 집에서 금고를 털어갔다면 폐물만 챙겨가고 소중한 기록들은 두고 갔을텐데, 금고채 들고 갔으니 어머니 삶의 흔적들이 그들에게 함부로 버림받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분통이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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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4-2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 아우님, 어머님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런 세월들의 흔적을 녹음해두고 기록해두셨다는 것도 감동이구요. 물질이 메꿔줄 수 없는 소중한 것, 그 힘으로 살아가셨을텐데 말이죠.

비로그인 2004-04-2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도둑 맞은 금고는 단순 금고가 아니었네요. 어머님의 발자취가 고이 간직된 그 보고를 ... 어찌.
장하신 어머님, 그리고 그 어머님을 위해 자서전을 헌사하겠다는 님과 님의 형제분들...
저도 분함과 함께 안타까움 물고 갑니다..

waho 2004-04-22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고까지 가져가서 찾을 수도 없으니 너무나 안타까우시겠어요. 속상하네요. 어머님의 추억을 도둑 맞은 거니 얼마나 속 상하실까...
 

 이라크 연대행동-팔루자 학살에 저항하자!
  
  다음은 이바 야시에비치로부터의 긴급한 보고이자 호소이다. 이바 야시에비치는 '광야의 목소리' 및 '이라크 점령감시'등의 단체에서 활동했고, 이라크(바그다드와 바스라)에서 8개월, 팔레스타인(주로 제닌 수용소)에서 6개월간 거주한 뒤 2개월 전 다시 이라크로 돌아갔다. 이바 씨는 바스라와 바그다드에 있는 동료들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다. 
 


  
  내가 통화한 이들은 10일 현재 팔루자에 머물렀던 파올라 쟈스피롤리(이태리인, '점령감시' 및 '바그다드로의 다리'에서 활동), 언론인 리 고든(영국인, NUJ, Tribune, Mail on Sunday), 그리고 팔루자에 가족이 있는 팔레스타인인 한 명이다. 이 팔레스타인인과 리 고든은 지난 사흘동안 부상자들을 팔루자에서 바그다드로 후송했다. 현재 피로 물들여진 이 도시에는 구급차 출입이 금지돼 있다. 다음은 이들이 전화를 통해 증언한 내용들이다.
  
  팔루자 현장 증언 1: 파올라 쟈스피롤리(이태리인, '점령감시' 및 인도적 지원단체 '바그다드로의 다리'에서 활동)
  
  팔루자에서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팔루자는 포위되어 있다. 470명이 살해됐고, 1천7백명이 부상당했다. 정전은 없다. 미국인들이 주민들에게 소개를 명령했다. 8시간 안에 떠나라는 말을 듣고 주민들이 팔루자를 떠났으나 이들은 사막에 갇히고 말았다. 미국은 B52폭격기로 폭격을 했다. (리가 사흘 전에 보낸 이메일도 이를 확인하고 있다.)
  
  '바그다드로 가는 다리(인도적 지원단체)'는 철수한다. 암만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내일 한 팀은 사드르시로 가서 약품을 전달할 것이다. 그곳에서는 50여명의 시민이 살해됐다.
  
  이름을 잊었지만 "고무줄"이라는 별명의 사드르시의 한 사제는 (내가 직접 만나 봤는데, 젊고 똑똑한 사람. 회교와 도덕적 행동율 등의 해석에 있어서 매우 신축적이라서 스스로 자신을 "고무줄"이라고 부른다. 굉장히 진보적이다) 나더러 떠나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자신의 신도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했다. 외국인들이 목표물이 될 것이다.
  
  외국인 6명이 추가로 납치됐다. 그중 4명은 이태리 경비회사 직원이다. 이들은 검은 제복을 입고 무기가 가득 찬 차를 타고 있던 상태에서 납치됐다. 바그다드는 아부 그레이브(바그다드 서부로 거대한 감옥이 있는데 죄수 1만2천 명이 넘쳐날 지경이다)를 제외하고는 조용하다. 그곳에서는 미국 차량행렬이 공격을 받아 군인 9명이 부상을 당하고 27명이 납치됐다. 맞다. 27명. 그러나 뉴스들은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나는 이것을 ○(이름은 허락받지 않는 한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에게서 들었다. 상황은 매우 매우 심각하다. 미군은 구급차에도 총을 쏘고, 저격병이 구급차를 따라 다니고 있다. 구급차조차 들어갈 수 없다.
  
  팔루자, 거기는 사람들이 사막에 있다. 그들은 팔루자를 떠났지만 바그다드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사막에 갇혀 있다. 그들은 난민이다. 처참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이라크인들은 자기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들에게 주고 있다. 양식을 가져다 주고, 모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도움과 지원을 팔루자에 주고 있다.
  
  나는 여기에 남고 싶지만 떠나야 한다. 다시 돌아와서 도움이 되려면 지금 떠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지 않는가. '바그다드로의 다리'는 그렇게 결정했다. 이태리인에게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타겟이 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태리는 나시리아를 점령하고 있는 카라비니에리를 포함해서 2천5백명을 파병했다. 나시리아에서는 여러차례의 저항군 공격이 있었고, 경찰서에 대한 강력한 공격에서는 군인 4명과 민간인 1명, 기록영화 제작자 1명, 카라비니에리 경찰 12명, 이라크인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와 리는 대단하다. 이들은 차를 몰고 팔루자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기를 여러 차래 했다. 이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고 있다. 진짜 이들은 대단하다. 이들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우리는 더 이상 여기서 도움을 줄 수 없다. 상황이 매우 매우 악화되고 있다.
  
  팔루자 현장 증언2: 팔루자에 가족이 있고 이라크 회교정당에 친구들이 있는 팔레스타인인
  
  우리 자신의 눈으로 그것을 목격했다. 주민들은 팔루자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고, 현재 수천명이 사막에 갇혀 있다. 바그다드로 오려는 사람의 행렬이 13km에 뻗쳐 있다. 미국인들은 이들에게 폭탄과,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은 모두 다, 모두 다 쏟아 붓고 있다. 이들은 가족들에게도 총을 쏘고 있다. 사막에 있는 이들은 모두 아이들이나, 노인, 여자들이다. 다른 이라크인들이 이들을 도우려 하고 있다.
  
  팔루자에서 미국인들은 병원들을 폭격했다. 아이들은 바그다드로 피신시키고 있다. 현재 아동 하나, 사실 어린 아기는 가족 25명이 살해됐다. 그 아기는 병원에 있는데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 한다. 지금 막 가족 25명을 잃었는데 왜 아무도 그 애의 곁을 지키지 않는가!
  
  미군은 집속탄을 투하하고 3-4미터씩 튀어오르는 박격포탄을 쏘고 있다. 공중에서 폭격을 하고 있다. 거리에 시체들이 즐비하게 쓰러져 있다. 미군은 정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폭격기들이 날아들어 와서, 이것은 내가 봤다, 폭격을 시작했다. 이라크인들은 저항하고 있고 팔루자에서 잘 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24-48시간 안에 대규모 공세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대적인 공격일 것이다. 미군은 거리를 하나씩 수색하고 공격해서 이 시를 재점령할 것이다. 이 근처에 있는 마을 (그 마을 이름은 잊었다)에서 이미 그렇게 했고, 팔루자에서 또 할 것이다. 제발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항의하도록 해달라. 대사관에 가거나, 나가서 무엇이던지 하도록 해달라.
  
  학살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외국인들이 필요하다. 외국인들은 무언가 할 수 있다. 우리는 항의시위를 할 것이고, 조 (조 윌딩, www.wildfirejo.org.uk)와 그 단체의 일원들이 내일 미군 검문소까지 올 것이다. 우리는 지난 3-4일동안 잠도 자지 못했다. 우리는 관심이 필요하다. 사진도 있고, 필름도 있다. 이것을 알자지라와 알 아라비야에 주었다. 이것이 알려져야 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달라. 우리는 내일 다시 들어 갈 것이다.
  
  팔루자 현장 증언 3: 리 고든 (영국인, 언론인 Tribune, Mail on Sunday)
  
  이제 시작이다. 제발 들어와라. 하지만 나와 ○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미쳐가고 있다. 외국인들이 온다면 안전하지 않다. 팔루자의 ○○ 사제는 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매우 험악하게 되고 있는 것이다.
  
  곧 외국인들이 살해되기 시작할거다. 사람들이 절박한 심정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집, 고양이, 개, 모든 것이 폭격받는 것을 목격했으니 이들은 공격하기 시작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이 작전이 닷새만에 끝날 것이며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 전역에서 터지고 있는 전선에 투입돼 있는 군인들을 불러들일 것이다. 그리고는 최후의 결정타를 먹일 것이다. 그 어느 누구의 안전도 보장할 방도가 없다.
  
  나는 당신이 유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왔다가 일주일 후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아마 내일 살해될 것이다. 들어와라, 하지만 우리는 여기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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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4-19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탄식만 납니다. 퍼갈게요.
 

수암할아버지의 서재를 방문한 뒤 부러움에 몇 자 적게 되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정을 잘 모르고 자랐답니다. 친할아버지는 제 부모님 결혼하시기 전 이미 돌아가셨더랬고, 외할아버지는... 예천에서 훈장하시던... 아주 옛분인지라 마냥 엄하기만 하셨지요.

외할아버지는 어느 정도로 엄하셨냐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도 민소매나 반바지, 무릎 위로 올라가는 짧은 치마, 맨발 등이 용납되지 않았고, 어른은 물론 오빠들과 겸상하는 것도 안 되었고, 소리내어 웃어도 혼이 났습니다.
사실 엄한 것만으로 정이 안 들리야 없겠지요. 어머니에 대한 '가시나' 취급에 어린 마음에도 분개했던 거지요. 친정어머니께선 제 이름 석자 쓸 줄 알고 덧셈, 뺄셈 할 줄 알면 됐다는 할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 중퇴를 한 뒤, 오라버니와 남동생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공장에 나가셔야했습니다.
저로선 못 배운 게 평생 한이신 어머니 '덕분'에 제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할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사라질 리 만무한 터라...

딸아이에겐 양가 할아버지에 대한 따스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지만, 딸아이의 외할아버지 역시 제 외할아버지랑 큰 차이없는 분인지라 걱정됩니다. 그러니 시아버지를 자주 찾아뵙는 게 제 몫인 듯 한데... 이 시점에서 한 마디... 이보셔, 신랑, 제발 주말에 잠만 자지 말고 본가에 좀 가자고요. 1달에 1번만이라도...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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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4-04-19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수암입니다. 제글때문에 부러움을 느끼셨다니 미안하군요.
저는 어렸을때 외할아버지가 안계셨거던요. 외가엔 외할머니와 이모 한분이 전부 였었죠. 친구들이 외삼촌이나 외할아버지 이야기하면 참 부럽더군요. 우리 친 할아버지는 무척 엄하셔서 우리 아버지는 물론 그 앞에서는 앉지도 못했죠. 식사하실때면 전부 두손을 앞에 모고 서있었죠. 다만 손주들은 예외였는데 나는 공부를 썩 잘해서 20명 가차운 손주들 중에 귀염을 받었지만 그래도 무서워서 짙은 정은 못 느꼈답니다.
나는 딸만 둘이고 손주는 아직 진석이 혼자라 이녀석이 사랑을 독차지한답니다.
옛말에 떨어지면 날로 멀어진다고 하듯 자주 만나면 정이 들고 그런거죠. 친,외가를 막론하고 자주 찾어뵈면 아이들도 사랑받지 않겠어요. 난 사흘만 못보면 안절 부절 한답니다.

노란장미 2004-04-21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고향이 예천이냐...내가 태어나서 고등학교까지 자란 곳이 예천이잖냐..
울집 아직도 안팔고 그대로 있다..지금도 울 부모님 예천 가 계시잖냐..........

조선인 2004-04-2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노란개나리님이 누구신지?

조선인 2004-04-2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바뀌어서 누군가 했다. 알고보니 현혜구나. ^^
 

여우님의 주문을 접수했답니다.

탄생목은 자작나무더군요. 사진은 톨스토이 생가로 가는 자작나무길이랍니다. 일부러 사이즈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나무가 마음에 드신다면 검은비님의 자작나무 그림도  강추합니다.


 

 

 

 

 

 

 

 

 

 

 

 

 

 

 

 

 

탄생화는 레제다 오도라타라는 이름의 허브인데 꽃말은 매혹이더군요.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채 다른 사람들을 유혹시킨다나? 그런데 괜찮은 이미지가 없어 생략했습니다.

탄생석은 진주.

 

 

 

 

 

별자리는 쌍둥이좌.



 

 

 

 

 

 

 

 


 

 

 

 

 

 

 

 

 

 

 

음... 그런데 생일만으로 이미지를 검색하기엔 아이디가 아깝더라구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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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4-17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껍니까? 와우~~이렇게 이쁠수가요...자작나무길 느므느므 맘에 듭니다. 저 길로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톨스토이가 글을 썼다는 거지요?..에잉 울 동네는 왜 저런 길이 없는건지..암튼 고생 많으셨어요^^.땡큐 퍼갑니다.

달아이 2004-04-18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예쁘네요. 우리 큰애 별자리가 쌍둥이 자리인데, 우리 아이에게 이미지 복사해 줘도 될까요? 파란 여우님께 허락받아야 하는 건가?

조선인 2004-04-18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별자리 이미지가 반응이 좋네요. 여우님께 드린 것도, 혜경언니께 드린 것도 다 카가야 그림이구요, 일본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에요. http://www.kagayastudio.net/에 가시면 기타 별자리의 그림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조선인 2004-04-18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감사합니다.

waho 2004-04-2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작 나무 길이 너무나 아름답네요. 톨스토이가 저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었군요
 

제맘대로 언니라고 불러도 아무 반응이 없길래 최소한 부정적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해 계속 언니라고 부르겠습니다. 언니 서재 갈 때마다 속상한게 있어요. 지붕은 멋드러지게 바뀌었는데도 아직까지 공개사진은 그대로... 그래서!

마침 오늘 일과가 시디 굽는게 다인지라 얼렁뚱땅 이미지 검색을 해봤습니다. 언제인가 언니 탄생화가 용담화라고 했던 기억이 나 그거에 맞췄어요. 생일이 9월 16일 맞아요? 실은 제 음력생일이 9월 16일인지라 대단한 우연이라 생각했거든요.

탄생석 : 사파이어


 

 

 

 

 

탄생화 : 용담화


 

 

 

 

 

탄생목 : 라임나무

 

 

 

 

 

별자리 : 처녀자리



 

 

 

 

 

 

 

 

 

 

 

 

 

 

 

별자리 그림은 일부러 안 줄였어요. 누르면 큰 그림이 떴으면 좋겠어서. 그런데 마음에 안 드시면 어쩌죠? 혹은 생일이 틀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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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4-14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 아우님, 난 정말 왜 이리 복도 많은지... 진짜진짜 고마워요.
사실 서재지붕도 진/우맘께서 수리해주셨거든요. 그렇게 얹어놓고 보니 서재이미지사진랑 어찌나 안 어울리던지 내내 고민하다가, 에이 모르겠다, 이러고 있었거든요. 제가 이런 걸 뭘 못하걸랑요. 어떻게 올리는지 몰라가지구스리... 흥흥... 제생일은 음력 8월 5일, 양력 9월16일 맞아요. 님은 음력 9월16일~~ 냉.열.사님이 안겨주신 용담꽃도 어찌나 어여쁘던지 올리고 싶어도 침만 흘렸죠. 근데 아우님이 주신 이미지들 중 처녀자리가 제일 맘에 들어요. 사파이어도 좋아하지만...
어케 올리죠? 좀 가르쳐주세요~~

조선인 2004-04-1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마음에 드시는 그림 위에서 오른쪽마우스버튼을 눌러 그림을 저장한 뒤
서재관리->2번째 탭의 이미지 설정->나의 이미지 직접 등록하기를 하시면 되요.
마음에 들어하신다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별 웃긴 애가 오지랖 떤다고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거든요.

프레이야 2004-04-1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님, 해냈어요. 더듬거리며... 헉헉...
클릭해서 확대하여 보니까 더 멋져요. 영원한 처녀 아줌마^^ 서재랍니다.
사랑해요. 뽀뽀해주고 싶어요.

. 2004-04-1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전 용담화 추천하려고 했는데 벌서 결정하셨네요. 선인님 마음이 참 이쁘시고 혜경님도 복이 참 많으십니다.

조선인 2004-04-1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파란여우님... 토요일에 또 땡땡이쳐볼까봐요? 이러다 짤리면... 님 텃밭에 꼭 취직시켜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