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할아버지의 서재를 방문한 뒤 부러움에 몇 자 적게 되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정을 잘 모르고 자랐답니다. 친할아버지는 제 부모님 결혼하시기 전 이미 돌아가셨더랬고, 외할아버지는... 예천에서 훈장하시던... 아주 옛분인지라 마냥 엄하기만 하셨지요.
외할아버지는 어느 정도로 엄하셨냐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도 민소매나 반바지, 무릎 위로 올라가는 짧은 치마, 맨발 등이 용납되지 않았고, 어른은 물론 오빠들과 겸상하는 것도 안 되었고, 소리내어 웃어도 혼이 났습니다.
사실 엄한 것만으로 정이 안 들리야 없겠지요. 어머니에 대한 '가시나' 취급에 어린 마음에도 분개했던 거지요. 친정어머니께선 제 이름 석자 쓸 줄 알고 덧셈, 뺄셈 할 줄 알면 됐다는 할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 중퇴를 한 뒤, 오라버니와 남동생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공장에 나가셔야했습니다. 저로선 못 배운 게 평생 한이신 어머니 '덕분'에 제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할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사라질 리 만무한 터라...
딸아이에겐 양가 할아버지에 대한 따스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지만, 딸아이의 외할아버지 역시 제 외할아버지랑 큰 차이없는 분인지라 걱정됩니다. 그러니 시아버지를 자주 찾아뵙는 게 제 몫인 듯 한데... 이 시점에서 한 마디... 이보셔, 신랑, 제발 주말에 잠만 자지 말고 본가에 좀 가자고요. 1달에 1번만이라도... 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