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재밌다"는 것. 조지 오웰은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있었는데, '스스로 단어를 구사하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들을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며, 우리는 그의 재주와 능력을 통해 1920년대부터 40년대까지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 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었던 인도제국 경찰로서 그는 한 버마인 사형수를 외면하지 못 했고, 자신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사형장을 향하던 죄수가 무심코 웅덩이를 피하는 짧은 순간, '한 정신이 줄어들면 그만큼 한 세상이 좁아진다'는 통렬한 깨달음을 얻고 그걸 글로 쓸 수 있다면, 그는 운명적으로 작가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웰은 작가의 길을 걷게 되어 행복했을까? 그 자신은 순전한 이기심과 미학적 열정과 역사적 충동과 정치적 목적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좋으면서 나쁜 소설도 못 되는 쓰레기들이 출판사들과 그들의 광고로 먹고사는 신문사의 유대 관계 때문에 끊임없이 떠받들어지는 게 당시의 풍토였다. (사실 오늘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설이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고 예견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분명한 이유가 잇다. 가장 훌륭한 문학가들이 소설로 다시 돌아오도록 권유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설은 마치 현대판 묘비나 펀치와 주디 쇼처럼 형편없이 경명적이고 절망적이며 변질된 형태로 계속 존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제국주의 영국인인 자신이 싫었던 만큼 작가인 자신도 기껍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독설과 신랄한 풍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현실 속에서 나온 것이다. 구빈원으로, 빈민가의 여인숙으로, 유치장으로, 홉 열매 따기로 최하층의 생활을 자청하여 경험한 것은 객기나 변덕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부조리를 직면해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사명감이었을 것이다. 범죄자와 정신병력자, 부랑자에 대한 단종법이 합법이고, 비유럽인은 인간이 아니라고 여겼던 시대의 횡포 속에 그의 노력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이 시기에 얻은 폐병이 지병이 되어 결국 오웰은 47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니, "체험 삶의 현장"처럼 하루의 겉멋은 아니었음이 명백하다.

 

그렇다고 오웰이 냉소적이고 음습한 사람이었다고 여기진 말자.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과 경배가 즐거운 본능이었던 작가 또한 오웬의 모습이다. 

 

우리가 실제로 아프고, 배고프고, 놀라고, 감옥이나 휴가촌에 갇혀 있지 않는 한, 봄은 여전히 봄이다. 원자폭탄이 공장에 쌓이고, 경찰이 도시를 서성거리고, 거짓말이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고 있지만,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위를 돌고 있으며, 어떠한 독재자나 관료주의자라도 우리가 봄을 즐기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를 할 수 는 있을지언정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여전히 봄은 봄이라고 여기는 작가이기에 오웰은 정치적 목적으로 계속 글을 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조지 오웰은 결코 미래에 대한 절망이나 비관 속에서 동물농장이나 1984년을 쓴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희망적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코끼리를 쏘다"를 통해 조지 오웰의 전 생애를 명확하게 느껴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옮긴이가 오웰의 에세이를 고르고 고르는 과정과 자신의 생각에 따라 5부로 나누는 과정에 오웬 인생의 중요한 전기 중 하나인 스페인 내전에 관한 일련의 글들이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 스페인 내전후 뚜렷해진 오웬의 정치성향과 글쓰기의 목적이 드러나고, 내전 당시 부상과 지병이 도져 요양하는 환자의 눈으로 더욱 참담하게 제국주의의 실상을 폭로하는 "마라케시"를 만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마라케시"는 오웰이 식민지 경찰로서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쓴 글을 모았다는 1부에 있고, "나는 왜 쓰는가"는 작가로서 오웰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2부에 속해 있다. 차라리 마라케시를 2부로 묶는 게 오웰을 이해하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스페인 내전을 다룬 자전적 소설 "카탈로니아 찬가"를 일독하는 게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오웰은 스페인 통일노동당을 지지하며 사회주의적 대의를 위해 1936-37년에 걸쳐 스페인 의용군에 합류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38년 카탈로니아 찬가를 출판한다.)

 

덧붙임) 많은 소설비평이 아마추어 비평가에 의해 행해진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경험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책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사람이 재능은 있지만 지루한 전문가보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다. -> 그 시대에 이미 독자리뷰에 힘을 실어주니 무척이나 흥겹게 단숨에 써내려갈 수 있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5-03-26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조선인님. 참 좋은 리뷰 읽었어요. 확실하고 분명하게 의미를 짚어내셨군요. 그러고보니 정말 많은 아마추어 비평가들이 문학계의 새로운 세력으로서 등장할 지도 모르겠어요. 글고 [카탈로니아 찬가]는 좀 지루하긴 했지만 요즘 현실에 비교해보자면 역사의 교훈 같더라구요. 정의를 실천하는 세력과 정의를 빙자한 가짜 세력에 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좋은 책이었어요. 그건 제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였거든요.

책읽는나무 2005-04-04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지금 저 이책 읽고 있어서 말입니다..제가 읽은 부분만 골라서 대충 읽었는데...음~
역시 조선인님 이시로군요..^^
책 다 읽고 나면 다시 한번 더 차근 차근 읽어보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또 주눅 들어 저는 리뷰 쓰기를 포기할지도...ㅠ.ㅠ
지난번 <수상한 과학>처럼 말입니다..ㅡ.ㅡ;;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흑백TV에 얽힌 최초의 기억은 내가 아는 유일한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의 암살과 장례식에 관한 뉴스였다. 어머니는 옷자락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셨고, 아버지 역시 눈시울을 적시진 않았으나 제법 목메어 하셨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 때 내 나이는 겨우 3살. 어쩌면 나의 기억은 진짜 기억이 아니라 뒤죽박죽 엉키고 엉뚱하게 짜맞추어진 공상일지도 모른다고 나조차 의심하고 있다. (혹은 그 이듬해 1주기 추모방송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 기억은 꽤나 여러 해가 흐른 뒤인데, TBC의 고별방송이었다. 쇼쇼쇼 같은 느낌의 프로그램으로 기억되는데, 나로선 이은하가 밤차를 부르다가 우느라 마스카라가 번져 시커먼 눈물을 흘리는 게 우습기만 했다. 특히 인상깊었던 건 당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남자 아나운서? MC?가 울었던 것으로, 어른남자도 우는구나 무척 신기하게 여겼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군인들 때문에 더 이상 똑순이를 볼 수 없다는 걸 무척이나 아쉬워했는데, 다행히도 KBS에서 달동네를 계속 방영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했다.

정말 그런 것만 기억나? 김일 레슬링은? 날아라 태극호는? 유쾌한 청백전은? 심문하듯이 따져 묻는 대학 동기 덕분에 아, 맞다, 그런 것도 있었지. 기억나!를 덩달아 외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생생히 기억나는 건 앞의 두 사건임은 여전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세상이 너무나 어수선하여 내일이라도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불안해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어우러진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일이든 거침없는 여장부인 어머니께서 지레 겁먹는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나 낯설었다. 게다가 전쟁이 나면 집을 놔두고 한뎃잠을 자며 거지처럼 떠돌며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주 무서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우리 부모님만 유난을 떨었던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우리 가족은 창경궁 후문 산동네에 살았는데, 동네 전체가 라면 사재기를 하며 흉흉한 분위기였다. 특히 1979-80년의 경우 골목에서 총 든 군인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었고, 고개 고개 넘어가면 탱크도 볼 수 있다고 오빠들이 말해줬었다. 심윤경씨는 휴교령을 딱히 언급하지 않았으나, 그 무렵-박정희의 장례식 때였는지, 5.18 계엄조치 때였는지 기억은 불분명하다- 초등학교마저 문을 닫았었다. 그날 나와 소꿉친구는 부모님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개구멍을 통해 초등학교에 숨어들어가 오후 내내 놀았었다. 결국 어머니와 고모, 오빠들에게 번갈아 흠씬 볼기짝을 맞아야 했지만, 하늘같은 고학년 언니, 오빠들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그네도 타고, 모래장난도 하고, 시소도 탈 수 있었던 게 마냥 즐거웠었다.

왜 이리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장황하게 늘어놓는가 하면, 심윤경씨와 동갑내기임을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윤경씨가 경복궁 뒤 인왕산 서쪽 자락에 살던 적에(실제로도 심윤경씨가 그곳에 살았음은 작가 사인회에서 확인했다.) 나 역시 그 지척에 살았음을, 인왕산의 동쪽 자락에 살았음을 수다 떨지 않으면 못 견딜 심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설령 이리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하여도 그녀야말로 모실할매요, 나야말로 동구할매라 우길 수도 없고, 엿장수 이야기가 늘어졌던 것처럼 동경하던 종로 이야기를 그녀와 나눌 기회야 없겠지만, 그럴 일이 없기에 더더구나 리뷰를 빙자하여 명주실 굵기도 안 되는 인연을 우겨보고 싶은 것이다.

혹자는 박정희 암살사건이 소설에 등장하는 게 뜬금없다 하나, 1972년생인 우리로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육영수 여사가 영부인이고, 박정희가 대통령인줄 알았는데, 뿔 달린 빨갱이가 아니라 자기 경호원에게 박통이 암살당했다는 건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무너지는 사건이었다고 항변하고 싶기도 하다. 나야 전두환을 직접 마주친 적은 없지만, 대머리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 체신이 떨어질텐데 라는 어머니 말씀에 역시 대머리인 아버지가 발끈했던 기억 또한 선연하다. (심지어 전두환은 어린 시절 내 꿈에 즐겨 출연했던 단골이기도 하다. ) 그처럼 우리 어린 시절에 깊은 골을 남긴 기억을 어찌 자전적 소설에서 빼먹을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동갑내기로, 비슷한 공간을 살았기에 대신 변명하는 게 가능하다고 둘러대면 너무 우스운 뻐김일까. 그러나 부끄러움 없이 내가 주절거린 것은 그만큼 동갑내기 작가, 그것도 어엿한 작가를 만난 기쁨이 커다랗다는 뜻이 되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03-18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3-18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홋 어머님은 어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대머리 관련해서...) 그리고 오자 하나 있어요. TBC를 TBN이라고 쓰셨네요

조선인 2005-03-1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태님 지적 고맙습니다. 그러고보니 대머리 얘기에 후편도 있네요. 우리보고는 절대 대머리 운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죠. 군인들이 잡아간다고. -.-;;

2005-03-21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 국어사전(중) - 개정2판
남영신 엮음 / 성안당 / 2005년 3월
절판


가시내 {명} 계집아이

남쪽 바다 봄 물결의 따스한 사랑을
일찌기 모르던 뭍의 나그네여,
五月이 가기 전 이 봄이 다 가기 전
더 갈 수도 없는 우리네 땅
비린내 나는 마지막 港口에 들러,

가시내랑 가시내랑 술이라도 마시다가
이윽고 떠나는 기적소리 귓전에 울리면,
波濤처럼 멀리 밀려 가는
저 바위들의 儒達山을 향하여
손이라도 흔들어라!
마지막 손이라도 흔들어라!

김현승 - 다도해 서정

(예문으로 시 한 편이 통째로. 멋지죠? 껍데기는 가라에 이어 2번째 발견 ^^)-2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조숙영 옮김 / 르네상스 / 2004년 6월
장바구니담기


329쪽 세계지도

적도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세계지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보기는 했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이사실을 50여 년 전에 독일의 연구자인 Arno Peters가 밝혀냈다.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세계지도는 벌거벗은 임금님이었다.
우리가 배운 세계지도는 3분의 2를 북반구에, 나머지 3분의 1을 남반구에 할당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가 유럽 전체 면적의 세 배나 넓지만, 지도에서 유럽은 라틴아메리카보다 넓다. 인도는 스칸디나비아보다 세 배나 넓지만, 지도에서는 더 작아보인다. 미국과 캐나다는 지도에서 아프리카보다 더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지만 실상은 전체 아프리카 면적의 2/3에 겨우 달하는 수준이다.
지도는 거짓말하고 있다. 제국주의 경제가 부를 강탈하듯이 전통 지리학은 공간을 강탈하고, 공식 발표된 역사는 기억을 강탈하고, 형식뿐인 문화는 발언권을 강탈한다.

Arno Peters(1916-2002)는 책장마다 같은 분량의 연표를 제작함으로써 이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발언권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카토르도법의 문제점을 발견한 뒤, Peters는 꾸준히 연구하여 1974년 새로운 세계지도를 만들어냈다. Arno Peters 지도는 모든 국가의 실제 크기를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발췌 : http://www.petersworldmap.org/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urblue 2005-02-22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모양이 어떤지 궁금했었는데. 가져갑니다. ^^

nemuko 2005-03-1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저도 가져갈께요^^
 
키다리 아저씨 그후 이야기
진 웹스터 지음, 정현정 옮김 / 거북선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안녕하세요, 원장님. 

아니, 샐리라고 부르는 걸 더 좋아하시죠? 하여간 반갑습니다. 

 

우선 저비스씨와 주디 애보트씨(미안해요, 난 결혼했다고 남편 성을 쓰는 게 싫어요. 아마 주디도 펜던튼 부인이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아무리 애보트가 전화번호부에서 나온 성이라고 해도 말이죠.)가 리페트 원장을 쫓아내고 당신을 존 그리어 홈 고아원 원장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축하드립니다. 

 

주디가 끔찍히도 싫어하던 F실이 영원히 사라지고, 당신의 소원대로 작은 집 여러 채로 이루어진 고아원을 새로 세울 수 있도록, 존 그리어 홈 고아원에 불이 난 것도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벳시가 토끼를 그린 노란 식당까지 불에 타버린 것은 조금 아쉽지만, 애당초 환기도 잘 안 되고 햇빛은 구경할 수 없는 북쪽 식당이었으니 상관없어요. 무엇보다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고, 알레그라도 무사히 구했을 뿐 아니라, 알레그라는 물론 두 오빠까지 함께 좋은 양부모를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심지어 말썽꾸러기 펀치마저 잘 하면 이대로 입양될 거 같죠? 

 

물론 로빈 맥클레이 선생님이 다친 것까지 잘됐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덕분에 두 사람이 서로의 진심을 고백하게 되었으니, 이 역시 전화위복이 아닐까요? 당장 맥클레이 댁의 못된 가정부 맥가트 부인을 내보내고 결혼하길 바랍니다. 편애하는 건 안 좋지만, 두 분이 개구장이 새디 케이트를 입양하면 더욱 좋겠어요. 이제 와서 하는 얘긴데 사실 전 고든 해로크씨를 싫어했어요. 미국의 정치인이라니, 아우, 일단 끔찍한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걸요. 그래서 당신이 고든씨와 헤어지고 맥클레이 선생님과 맺어진 것이 더더욱 기뻐요. 주디 부부도 이 사실을 알면 무척이나 기뻐할 거에요. 그 두 사람도 저 못지 않게 고든씨를 불신하며 맥클레이씨랑 새로 연결되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아마 틀림없이 그랬을 거에요.)

 

하지만 하나 더 고백하면 전 맥클레이 선생도 좋지 않게 생각했어요. 그의 전부인이 정신병자였고, 딸에게도 유전될까봐 걱정하는 건 알겠지만, 우생학의 열렬한 신봉자라는 게 영 마음에 걸렸거든요. 반면 샐리 당신은 교육의 힘을 믿잖아요? 그렇기에 "아이를 버리려는 부모들에게 - 아이들이 세 살이 되기 전에 아이를 버리시오"라는 이야기까지 했던 거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이 불쌍한 로레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맥클레이 선생 때문에 당신까지 우생학의 신봉자가 된 걸까 싶어 불안해지곤 했답니다. 더군다나 고든 씨에게 카라카크 집안 얘기를 들려줄 땐 정말 섬뜩했어요. "사회는 정신박약자들을 한 곳에 모아 격리시켜야만 해요. 그곳에서 평화롭게 천한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아이도 갖지 않고요. 그렇게 한 세대나 그 이상이 지나게 되면 정신박약자들은 흔적도 없이 없어지게 될 거예요."라니!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충격이었어요. 

 

저야 의사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니, 정신병이나 알콜중독이 정말로 유전되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생학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어요. 진 웹스터가 키다리아저씨 속편을 쓴 건 1915년 맞죠? 1901년에 이미 우생학에 근거한 최초의 단종법이 미국의 인디애나 주에서 통과된 뒤니, 이 소설은 우생학을 옹호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쓰여질 수밖에 없었겠죠. 웹스터가 이 소설을 쓴 이듬해 딸을 낳고 죽은 건 정말 안 된 일이지만, 그 때문에 우생학과 단종법이 얼마나 악용되었는지 보지 못한 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네요. 

 

대공황이 미국을 휩쓴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자그마치 30개의 주에서 단종법이 실시되었답니다. 그런데 정신지체자, 위험한 살인자, 성폭력범뿐만 아니라, ‘사회적 도착증 환자,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 질병이 있는 사람과 타락한 사람들’처럼 대단히 모호한 기준에 속하는 사람들까지도 불임시킬 수 있게 법이 제정된 거에요.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불임수술을 당한 사람들 대부분이 흑인이었다는 것이죠. 

 

즉 단종법은 장애인과 범죄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법률이었을 뿐 아니라, 유색인종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된 악법이었답니다. 당시 미국의 우생학회는 미국내의 백인종이 유색인종들보다 우수하며, 그중에서도 북유럽계 백인(Nordic white)이 가장 우수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곤 했으며, 1924년 미정부는 동양계의 이민을 거의 중단시키고 남·동구계 이민을 크게 억제시키는 이민법을 제정하기도 했어요. 결국 우생학이니, 단종법이니 하는 건 유래없는 대공황과 실업난 속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유색인종 이민자들과 더 이상 노예로 부려먹을 수 없게 된 흑인들을 차별하고 '없애기' 위해 발달한 것이랍니다. 

 

1967년에야 비로소 미국내의 모든 주에서 단종법이 사라졌으나, 이때는 이미 6만여 명이 단종수술을 당한 뒤였답니다. 더욱이 미국의 단종법은 독일의 뉘른베르크법 제정에 영향을 끼쳤는데, 그 결과 히틀러는 600만명의 유태인과 유색인종을 학살했어요. 정말 끔찍한 일이죠? 

 

그러니 샐리, 지금이라도 우생학에 대한 생각을 고치길 바랍니다. 물론 현명한 당신이니까 "성격을 멋있게 바꾸어주는 것"처럼 맥클레이 선생의 잘못된 생각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오, 생각보다 편지가 길어졌군요. 비록 100여명의 아이들과 매일같이 씨름해야 하는 당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저 역시 한숨 자고 출근해야 하니 이제 그만 인사할게요. 잘 자요. 

 

* 추신 : 편지가 늦어져서 미안해요. 당신을 알게 된 지 20년 만에 편지를 쓰다니 전 정말 게으르군요. 게다가 엉뚱하게 우울한 얘기를 많이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은 유전 얘기만 꺼내면 화내는 고든씨가 아니잖아요? 요즘 제 관심사가 이런 것뿐이라 어쩔 수 없었음을 당신이라면 이해할 거에요. 다음엔 좀 더 기운나는 편지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리고 사과의 뜻으로, 또한 당신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마음으로 별 다섯개를 함께 보냅니다. 이건 주디에겐 비밀인데요, 전 주디랑 키다리 아저씨의 사랑 이야기보다 당신이 존 그리어 홈 고아원에서 벌이는 소동이 훨씬 더 재밌어요. 존 그리어 홈 고아원을 뒤집고 있는 샐리 맥브라이드 원장님 만세!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코죠 2005-02-1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그 후에 이런 일이 있었군요 :) 오오, 너무 너무나 재미있게 읽어버렸어요! 게다가, 이십 년 후에야 도착하는 이 달콤한 편지를 몰래 훔쳐보는 재미란!

로드무비 2005-02-20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지 형식의 리뷰, 근사하군요.
정말 사랑스러운 글이에요.^^

바람돌이 2006-04-24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살때는 거북선 출판사께 없어서 푸른나무에서 나온걸로 샀는데요. 위의 저문장 - "사회는 정신박약자들을 한 곳에 모아 격리시켜야만 해요. 그곳에서 평화롭게 천한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아이도 갖지 않고요. 그렇게 한 세대나 그 이상이 지나게 되면 정신박약자들은 흔적도 없이 없어지게 될 거예요."이 그냥 "정신박약은 유전적이어서 과학의 힘으로 어쩔수 없다고 하더군요"라는 한 마디 말로 바뀌어 있어요. 푸른 나무께 완역본이 아닌건지 아님 청소년들이 보기에 적절치 않아서라고 생각했는지 달라져 있네요. 이책을 청소년들이 많이 본다고 생각하면 전혀 옳지 않다고 결론이 난 이런 생각은 삭제하는게 맞다고도 생각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과감한 이런 삭제가 맞을까 싶기도 하고... 싱숭생숭합니다. ^^

조선인 2006-04-24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즈마님, 앗, 부끄러워요.
로드무비님, 헤헤, 왠지 키다리 아저씨의 리뷰는 편지 형식으로 쓰는 게 옳다는 생각이들어서요. 아, 뒤늦게 뻘쭘.
바람돌이님, 사실 저의 키다리 아저씨 그 후 이야기는 거북선 것도 아니에요. 책표지며 안쪽 표지까지 죄다 날아가 어느 출판사인지 확인 불능. 세로글씨 판본이구요. 워낙 옛날 책이라 곧이곧대로 번역되었던 건 아닐까 싶네요.

sooninara 2006-04-2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집에 있는 책 확인해 봐야지.

sooninara 2006-04-2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도 거북선 출판서꺼네^^
저 문장 찾으러 다시 이책을 읽어봐야겟군.(난 읽을때 별생각이 없었나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