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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우리 신화 - 우리 신들의 귀환을 위한 이야기 열두 마당
신동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9월
구판절판


책의 앞뒤에 실린 우리 신화 배경 지도이다.
공들여 이를 만들어낸 저자와 편집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하지만 동의가 안 되는 개념도 있고 내 나름의 상상도 있어
나 역시 가상지도를 만들어보자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의 경우 이승, 저승, 지하국, 하늘나라 등 4차원으로 지도를 구성한 반면, 나의 경우 하늘(하늘나라), 땅위(동쪽이 이승이요 서쪽이 저승), 땅속(이승의 땅밑에 지하국, 저승의 땅밑에 지옥) 3차원으로 지도를 구성한 것이 가장 다를 것이다. 굳이 달마가 서쪽으로 간 까닭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승과 저승, 부처세계와 사바세계를 넘나드는 우리 민족의 세계관을 생각한다면 이 땅과 이어진 서쪽으로 신화세계가 펼쳐져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또한 신화 역시 최소한의 사실에 기반한다 했을 때, 우리 조상들은 중국 어딘가의 불라국과 강남천자국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봄제비가 오는 나라, 또한 황사와 함께 역병이 오는 나라로서.
그보다 서쪽 인도야말로 부처님이 태어난 개비국이 있는 서천서역일 것이다. 혜초가 실크로드를 따라 파미르고원을 넘어 왕오천축국에 갔다왔듯, 당금애기는 박덩굴을 쫓아 셀 수 없는 산과 물을 넘어 시준님께 이른 건 아닐까.
기화요초가 가득한 서천꽃밭과 원천강은 저자의 그림과 달리 이승의 끝자락, 황천수를 건너기 전 어딘가로 생각했다. 사시사철 훈훈한 지중해 연안을 낙원처럼 여겼을 조상을 상상했고, 구체적으로는 개성상인의 이름과 그림이 남은 남부이탈리아를 떠올렸다. 그렇게 되면 황천수는 미지의 바다 대서양의 형상화라고 우길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까닭도 있는데 물을 건너는 모티브가 있냐 없냐에 따라 서천꽃밭과 원천강을 황천수 동편에 두고, 동대산과 저승은 서편에 둔 것이다. 저승에서도 북쪽에 북망산이 있다면 시베리아 벌판의 혹독한 추위와 그럴싸하게 어울릴 듯도 싶다.
이리 그려놓고 보니 3D 그래픽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도 생기지만 능력부족으로 여기까지. 다른 분들도 책을 읽으며 저마다 신화지도를 그려보는 것도 재미난 낙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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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2-12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신화를 세계 지도에 대입한다, 흥미롭네요. @.@

shindh 2005-02-19 0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책을 엮은 신동흔입니다.
신화지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고 지금도 고민중입니다. 제시하신 그림이 무척 재미있고 일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하도록 할께요. ^^
 
수상한 과학
전방욱 지음 / 풀빛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멋진 신세계"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두려움은 바로 내일의 공포가 되버렸다. 현재는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 미국의 주요 수출품인 대두와 옥수수에 집중되어 있지만, 만약 주식인 밀과 쌀로도 확대되고, 경제상호협상에 따라 우리나라가 이를 미국으로부터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면? 실험실 안의 터미네이터 유전자가 유출되어 다른 작물을 오염시킬 가능성은 과연 전무할까? 불임클리닉을 다니고 있는 내 친구의 난자는 무분별한 실험으로부터 안전할까? 등등.

하지만 오늘의 성장에 눈이 먼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격리되어야 할 히스테리 환자일 뿐이고, 대기업 산하 연구소들은 해석불능의 전문용어와 통계수치를 끌고와서 우리를 저능아로 폄하하곤 한다. 친환경적인 연구결과들도 존재하지만 이를 발표한 학자는 사이비나 이단으로 낙인찍히기 일쑤이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학문적 자살행위'를 감행한 전방욱씨는 참으로 용감한 사람이다.

저자는 '수상한 과학'이란 책을 통해 자신이 환경운동에 직접 관여하고 있음을 이실직고하였으며, 자본과 밀애하고 있는 학문을 비판하고 있다. 그의 내부고발은 참으로 거침없는데, 제1장 옥수수 소동에서는 국제적 권위를 자랑하던 학술지가 끝내 거대자본 앞에 무릎꿇게 된 경과를 일러주고 있고, 제7장 豚벼락, 돈벼락에서는 국내 생명공학 분야의 치부를 폭로하고 있으며, 제8장 섹시한 과학자에서는 황우석씨나 최재천씨와 같은 스타 과학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갑론을박하고 있다. 좌충우돌 정면승부를 하는 전방욱씨의 도전을 보자니, 그가 이 책을 출판한 다음 학계에서 얼마나 왕따당하고 있을까 무척이나 걱정될 정도이다.

나의 바람은 '수상한 과학'이 도화선이 되어 우리나라에도 유전자 변형 농산물뿐 아니라 유전자 변형 식품의 건강 위해성을 조사할 만한 지침이나 기구가 생기고, 현재 농림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이원화되어있는 관련 업무가 통합되는 것이다. 또한 유전자 변형 여부에 대한 라벨링이 유의미할 수 있도록 유전자 비변형 식품이 충분히 시장에 존재할 뿐 아니라 가격경쟁력까지 확보할 수 있길 바란다. 이 과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73.6%의 소비자조차 늘 유전자 비변형 식품을 선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일반 마트에서 두부를 살 경우  국산콩 두부를 사려면 미국산콩 두부보다 2배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여야 하며, 국산콩으로 만든 비지나 순두부는 아예 판매되지 않고 라벨링도 없기에, 세계에서 가장 유전자 조작콩을 많이 생산한다는 미국산 콩비지나 중국산 두부를 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굳이 아쉬운 점을 덧붙이자면, 글쓰기만큼이나 중요한 편집과정이 좀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2001년도 강릉대학교 기성회 학술연구조성비를 받은 것이 출판을 감행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면, 구체적인 저술기간은 아마도 2002년과 2003년이었을 것이고, 참고문헌은 2003년 말까지 골고루 아우르고 있다. 물론 2003년 12월 15일자의 신문기사는 편집과정에서 첨언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2003년 막바지까지 글쓰기가 진행되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1월 26일 인쇄라니, 얼마나 촉박하게 편집되었는지 감이 안 잡힌다. 그래서일까? 나는 실험용 쥐가 마우스(생쥐)와 래트(시궁쥐)로 나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방욱씨는 마우스와 생쥐를 구별해서 쓰기도 하고, 혼용해서 쓰기도 하니 도무지 헛갈린다. 또한 원어 표기 원칙도 일관성이 없어 어떨 땐 지명, 회사(연구소)명, 연구자명까지 모두 원어를 병기해 눈이 바빠지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름조차 원어병기를 생략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엇보다 도처에 널린 역어체를 읽어내다 보면 편집자가 좀 더 시간을 들여 손보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숨이 나온다. 삐딱하게 마음을 먹자면 연구실적 제출기간에 맞춰 인쇄를 부랴부랴 서두른 게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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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uko 2005-02-07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전에 이 책 읽었는데 이렇게 리뷰 쓰신 거 보니 몹시 반갑네요^^ 게다가 편집에 대한 아쉬움까지도 공감입니다...

딸기 2005-03-0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

책읽는나무 2005-03-1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사 읽었네요!..^^
공감입니다...그리고 때늦은 추천..^^

비로그인 2005-03-30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잘 읽었는데 조선인님의 리뷰, 깔끔하니 참 좋습니다..제가 의식하지 못했던 옥의 티를 잘 가려내주시기도 했구요. 음..추천 한 방 안 누를 수 없구만요. 꾸욱~
 
한+ 국어사전(중) - 개정2판
남영신 엮음 / 성안당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어떤 사전을 사는 게 좋을까요 알라디너들에게 물었더니 숨은아이님이 성안당 것을 추천해줬다.

직접 서점에 나가 확인해보고 역시나 믿을 만한 알라디너들이다 싶어 샀는데 오늘 더욱 만족.

다음은 껍데기에 관한 성안당의 설명이다.

---------------------------------------------------------------------------------------------------

1) 무른 물체를 싸고 있는 단단한 물건

2) 속에 든 물건을 빼내고 겉에 남은 물건. 속에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것. 빈껍데기.
예문)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 껍데기는 가라)

3) 속을 싼 겉의 물건(예:이불 껍데기)

4) 화투의 끗수가 없는 패짝

---------------------------------------------------------------------------------------------------

예문으로 시 한 편이 통째 실리다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비록 2002년에 나온 뒤 아직까지 개정판이 안 나온 점은 안타깝지만 강추이다.

편집부가 아니라 남영신씨가 자기의 이름을 걸고 만들었다는 점,

고종석씨가 강추하는 사전이라는 점도 참고하시면 선택에 후회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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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1-1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

조선인 2005-01-1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렇게 물으시면 할 말이...
전해 들은 것인지라. -.-;;

릴케 현상 2005-01-1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씨가 이 사전을 추천한 글을 쓴 적이 있고, 오마이뉴스에서 헌책에 관한 칼럼 쓰는 최종규(?)씨도 이 사전을 추천하더군요...

숨은아이 2005-01-19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ㅇㅎㅎ 마지막 줄에 고종석을 "고영석"이라고 쓰셨어용. 그리고 2003년 1월에 새로 나왔어요. 그건 표지 사진도 뜨는데... /자명한산책님 그렇습니까? 이 사전 은근히 추천을 많이 받는군요.

조선인 2005-01-20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의 오타를 지적한 거군요. 전 그것도 모르고. ㅋㅋㅋ

마냐 2005-02-04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정말 대단한 사전임다. 시 한편이 통째로라니...상상이 안됨다. (왕뒷북 댓글, 양해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학고재신서 1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교 다닐 때 처음 이 책을 만난 후 참 오래 두고 두고 읽네요. 느낌표 선정도서가 되었을 때 함께 기뻐하며 이제야 칼라도판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도 했었구요. 하지만 보급판에 내용이 더 축소되어 나와 실망했던 기억이 더 사무치네요. *^^*
각설하고.
원래는 이 분야에 문외한이나 오래 벗하다 보니 눈에 띄는 점이 몇 가지 있네요. 다른 분이 지적한 사항은 제외하고 말씀드리면.

<보급판 기준>
- 98쪽 산수문전 도판의 좌우가 바뀌었습니다.
- 218쪽 청자죽절문병이 개인소장으로 나와 있으나 현재는 호암미술관 소유로 되어있는 줄 압니다.
- 250쪽 철채자기삼엽문매병의 경우 조선시대로 표기되어 있는데, 고려청자에 걸맞지 않아 보입니다.

저런 오기 수정보다 더 간절한 소망은 칼라도판 소장본 출판입니다. 출판시장 불황으로 많이 힘든 줄 아오나 예약주문 등을 받아 기획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늘 좋은 책을 펴주심에 고마움을 표하며 부탁드립니다.

* 제 서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라는 카테고리에 보면 몇몇 칼라도판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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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01-1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볼때마다 칼라도판이 아쉬워요.

참 좋죠??


마태우스 2005-01-1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낌표 전에 이 책을 사랑하신 분이 있었군요. 역시 알라딘에는 고수들이 많다니깐요^^

水巖 2005-01-11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이 책은 1994년版인데 조선인님의 수고로 개정되어 나왔군요.

고맙습니다.

조선인 2005-01-11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아뇨, 아직 개정되지 않았어요. 저도 얼마전에 정리한 거랍니다.
 
처녀치마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언제부터 소설을 꺼려했을까 생각해보니 96년이다. 속칭 '연세대사태'의 끔찍한 기억, 그리고 여성학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의 갈등, 그 둘의 장단에 놀아나느라 소설이 싫어졌다면 우스운 얘기일까. 나에게는, 혹은 지인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들이 후일담으로 쓰이는 게 못내 서러웠다면? 난 아직도 아픈데, 더 열심히 아파야 하는데, 이 생생한 고통을 완료보고서마저 서류철하여 문서보관실로 보내버린 과거사로 치부하는 거 같아 억울했다.

여성작가의 단편소설집은 더욱 질곡이다. 가정폭력, 성희롱, 낙태, 이혼, 어긋난 동성애 등 여성학의 어두운 테마만 어쩜 저렇게 골라내어 토막토막 정리해버리는가 싶고, 도대체 왜 천편일률적으로 우려먹나 싶어, 심지어 분기탱천해버리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선입관에 똘똘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처녀치마'를 읽으니 얄팍한 단편소설집을 열흘이 넘도록 붙잡고 있는 것이고, 찌그럭거리는 마음을 주체 못해 무슨 책으로 외도할까 궁리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기꺼이 포기하지 못하고 책에 매어지낸 것을 보면 권여선의 글이 대단히 매력적이라는 뜻도 되겠다. 답습되는 주제라 하더라도 주인공이 선명하게 살아 움직이면 내 얘기인 듯 착각되어 긴장감을 준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12월 31일"이 그랬고, "두리번거린다"가 그랬다. 처연한 듯, 의연한 듯 굴지 않는 여주인공들은 진짜배기였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굳이 단정하고 싶지 않은 오래된 친구에게 문득 전화해 만났다면, 구질구질하게 신세타령을 늘어놓고 싶지도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냥 짤막하게 "그동안 너 많이 생각했어" 혹은 "셋까지 되면 난 죽는다"라고 툭 던지고 돌아서면 그만이다. 굳이 때 지난 고백을 듣고 싶지도 않고, 주절주절 위로받고 싶지도 않기에.

암으로 한쪽 가슴을 도려냈는데 괜찮은 척 애써 마음을 다스리다 어쩌다 눈물 한 방울 또르륵 굴리는 사람도 있을 리 만무하다. “죽겠네, 또 울어”라고 푸념을 들을 정도로 호시탐탐 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게 진실이다.

알짜 인간들이 튀어나와 주니 어떻게든 다른 인물들과도 교감해보자 작정하고 되풀이 읽기를 거듭했다. 열의라는 기름칠을 해주자 끼긱거리며 하나 둘 움직여주는 걸 보니 마냥 어긋난 톱니바퀴가 아님도 증명되었다. 다만 끝까지 나와 어울려주길 거부한 것은 “트라우마”와 “그것은 아니다”였다. 이는 작가의 탓이라기보다 내 고집스러운 외면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것은 아니다”를 하루에도 서너 번씩 거푸 읽으며 곱씹었으면서도 내 것이 아니라고 억지로 밀쳐버린 것이다.

나로선 한때 투사였다는 명예훈장을 달고 제도권에 편입한 선배들이 고깝기 보다는 어찌 이용해먹을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게 된다. 하지만 ‘문’이나 ‘윤’과 닮은꼴 선배들의 모습이 오싹하게 겹쳐 떠오르면 대책이 안 서버린다. 철거투쟁이나 등록금투쟁을 하다가 폭력이나 사기횡령 전과를 단 선배들은 막연한 의심 속에 취직도 ‘입문’도 못 하기 일쑤이고, 마지막 희망인 고시마저 연거푸 낙방하면 ‘바깥세상’은 물론 우리들 눈앞에서조차 사라져버린다. 가까운 지인의 부음조차 전할 길 막연해져버린 선배와 동기들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면 권여선은 대체 뭔 심정으로 이런 글을 토해냈나 싶어 울컥해져 버리니 애당초 공정하고 후한 리뷰를 쓰기란 불가능하다.

권에게 미안해져버려 처녀치마에 대해서라도 알아봐야겠다 싶어 찾아보니 참으로 소박한 꽃이다. 백합과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야생초가 땅바닥에 잎사귀를 내려놓고 제 꽃대는 곧추 세운 모습을 보며 제목지은 구실을 마음대로 정해버렸다. 그늘지고 습한 구석에 자리잡고서도 기적처럼 윤이 나는 잎사귀를 빙 둘러 세우고, 난 꽃 같은 존재로 두고두고 살아가겠노라고 덧붙이고 싶었던 것은 혹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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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1-10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게 봤네요.

전 쓰는 것마다 껄렁껄렁한데......

추천하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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