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흑백TV에 얽힌 최초의 기억은 내가 아는 유일한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의 암살과 장례식에 관한 뉴스였다. 어머니는 옷자락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셨고, 아버지 역시 눈시울을 적시진 않았으나 제법 목메어 하셨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 때 내 나이는 겨우 3살. 어쩌면 나의 기억은 진짜 기억이 아니라 뒤죽박죽 엉키고 엉뚱하게 짜맞추어진 공상일지도 모른다고 나조차 의심하고 있다. (혹은 그 이듬해 1주기 추모방송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 기억은 꽤나 여러 해가 흐른 뒤인데, TBC의 고별방송이었다. 쇼쇼쇼 같은 느낌의 프로그램으로 기억되는데, 나로선 이은하가 밤차를 부르다가 우느라 마스카라가 번져 시커먼 눈물을 흘리는 게 우습기만 했다. 특히 인상깊었던 건 당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남자 아나운서? MC?가 울었던 것으로, 어른남자도 우는구나 무척 신기하게 여겼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군인들 때문에 더 이상 똑순이를 볼 수 없다는 걸 무척이나 아쉬워했는데, 다행히도 KBS에서 달동네를 계속 방영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했다.

정말 그런 것만 기억나? 김일 레슬링은? 날아라 태극호는? 유쾌한 청백전은? 심문하듯이 따져 묻는 대학 동기 덕분에 아, 맞다, 그런 것도 있었지. 기억나!를 덩달아 외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생생히 기억나는 건 앞의 두 사건임은 여전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세상이 너무나 어수선하여 내일이라도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불안해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어우러진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일이든 거침없는 여장부인 어머니께서 지레 겁먹는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나 낯설었다. 게다가 전쟁이 나면 집을 놔두고 한뎃잠을 자며 거지처럼 떠돌며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주 무서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우리 부모님만 유난을 떨었던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우리 가족은 창경궁 후문 산동네에 살았는데, 동네 전체가 라면 사재기를 하며 흉흉한 분위기였다. 특히 1979-80년의 경우 골목에서 총 든 군인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었고, 고개 고개 넘어가면 탱크도 볼 수 있다고 오빠들이 말해줬었다. 심윤경씨는 휴교령을 딱히 언급하지 않았으나, 그 무렵-박정희의 장례식 때였는지, 5.18 계엄조치 때였는지 기억은 불분명하다- 초등학교마저 문을 닫았었다. 그날 나와 소꿉친구는 부모님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개구멍을 통해 초등학교에 숨어들어가 오후 내내 놀았었다. 결국 어머니와 고모, 오빠들에게 번갈아 흠씬 볼기짝을 맞아야 했지만, 하늘같은 고학년 언니, 오빠들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그네도 타고, 모래장난도 하고, 시소도 탈 수 있었던 게 마냥 즐거웠었다.

왜 이리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장황하게 늘어놓는가 하면, 심윤경씨와 동갑내기임을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윤경씨가 경복궁 뒤 인왕산 서쪽 자락에 살던 적에(실제로도 심윤경씨가 그곳에 살았음은 작가 사인회에서 확인했다.) 나 역시 그 지척에 살았음을, 인왕산의 동쪽 자락에 살았음을 수다 떨지 않으면 못 견딜 심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설령 이리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하여도 그녀야말로 모실할매요, 나야말로 동구할매라 우길 수도 없고, 엿장수 이야기가 늘어졌던 것처럼 동경하던 종로 이야기를 그녀와 나눌 기회야 없겠지만, 그럴 일이 없기에 더더구나 리뷰를 빙자하여 명주실 굵기도 안 되는 인연을 우겨보고 싶은 것이다.

혹자는 박정희 암살사건이 소설에 등장하는 게 뜬금없다 하나, 1972년생인 우리로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육영수 여사가 영부인이고, 박정희가 대통령인줄 알았는데, 뿔 달린 빨갱이가 아니라 자기 경호원에게 박통이 암살당했다는 건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무너지는 사건이었다고 항변하고 싶기도 하다. 나야 전두환을 직접 마주친 적은 없지만, 대머리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 체신이 떨어질텐데 라는 어머니 말씀에 역시 대머리인 아버지가 발끈했던 기억 또한 선연하다. (심지어 전두환은 어린 시절 내 꿈에 즐겨 출연했던 단골이기도 하다. ) 그처럼 우리 어린 시절에 깊은 골을 남긴 기억을 어찌 자전적 소설에서 빼먹을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동갑내기로, 비슷한 공간을 살았기에 대신 변명하는 게 가능하다고 둘러대면 너무 우스운 뻐김일까. 그러나 부끄러움 없이 내가 주절거린 것은 그만큼 동갑내기 작가, 그것도 어엿한 작가를 만난 기쁨이 커다랗다는 뜻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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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8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3-18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홋 어머님은 어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대머리 관련해서...) 그리고 오자 하나 있어요. TBC를 TBN이라고 쓰셨네요

조선인 2005-03-1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태님 지적 고맙습니다. 그러고보니 대머리 얘기에 후편도 있네요. 우리보고는 절대 대머리 운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죠. 군인들이 잡아간다고. -.-;;

2005-03-21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