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금)

점심시간 좀 지나 해람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반 아이 중 하나가 확진 판정을 받아 방금 조퇴했다는 것이다. 즉 그 집 부모는 1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뒤 확진 나올 때까지 애를 나흘 동안 버젓이 어린이집에 보낸 것이다. 집에서 계속 해열제를 먹였기 때문에 열이 안 나 어린이집 체열 검사도 다 통과했던 것이고.
부랴부랴 조퇴해 작은애를 데리고 집에 왔고 어린이집에서 쓰는 이불이랑 옷 죄다 삶고 양치물잔이랑 칫솔도 소독했다. 다행히 아이는 아무 증세가 없고 잘 놀고 잘 먹었다. 

11월 7일 (토) 

학교 가는 토요일이지만 혹시 몰라 마로도 결석시켰다. 딸아이는 받아쓰기 시험 안 본다고 좋아했다. 

11월 8일 (일) 

주말 내내 멀쩡하고 오후 체온도 정상이었는데, 자기 전 열을 재보니 둘 다 38도가 나왔다. 

11월 9일 (월) 

밤새 틈틈이 열을 재보니 서서히 열이 떨어져 아침에는 37도가 나왔다. 그래도 혹시 몰라 둘 다 결석시켰고, 동네병원에는 1차 검사키트조차 없다고 하여 거점병원에 갔다. 2시간을 기다려 1차 검사를 받으니 둘 다 양성 판정이 나왔고, 해열제와 감기약과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  
마로의 경우 16일 예방접종을 앞둔 터라 접종 여부를 결정짓기 위해 아예 2차 검사까지 받았다. 2차 확진 판정을 받을 경우 예방접종은 안 받아도 된다고 했다. 학교와 학원, 어린이집 등에 1차 양성판정을 통고했는데, 해람이 어린이집은 전염자가 너무 많아 오후에 휴원 조치가 내려졌단다. @.@
다행히 아이들은 약간의 미열 외에는 아무 증상이 없었지만 일단 저녁부터 처방받은 감기약과 타미플루를 복용했다. 초등학교 2학년 30kg 마로는 타미플루 30mg 2알 총 60mg을 아침 저녁으로 1일 2회 5일간 복용해야 하고, 4살 14.5kg 해람이는 45mg 1알을 처방받았다. 
문제는 타미플루가 캡슐이라는 건데, 마로는 한참을 고생하다 간신히 삼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해람이는 도저히 방법이 없어 거점약국에 문의를 해보니, 어린아이의 경우 타미플루를 물에 녹여 복용시켜도 무방하다고 했다. 단, 타미플루가 무지하게 쓰니 그 맛 때문에 비위가 약한 애들이 토하거나 캡슐을 억지로 삼키려다가 목에 걸려 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즉 부작용으로 토하는 경우보다 억지로 타미플루를 먹이려다가 토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꿀물에 타미플루를 녹여 복용시킬 것을 권했다. 해람이의 경우 생사과쥬스에 꿀을 약간 탄 뒤 타미플루를 녹여 먹이니 맛있다고 잘 먹었다.
작은애가 자기 직전 열이 38도 5부까지 올라 해열제도 먹였다. 

11월 10일 (화)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로의 경우 미열도 사라졌지만 계속 약을 먹였다. 해람이는 약간 열이 있는 편이라 자기 전에만 해열제를 추가 복용시켰다. 아무 증세가 없어도 5일간 지속복용해야 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다가 뒤늦게 증세가 악화될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 전염시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란다.

11월 11일 (수) 

이제 두 아이는 미열조차 없이 정상이다. 하지만 처방받은 약은 해열제 빼고 계속 먹였다. 그런데 저녁 약을 먹이려고 보니 해람이 약이 하나도 없었다. 옆지기가 마로 약과 해람 약이 용량이 틀린 줄 모르고 해람이 약을 마로에게도 먹인 것이다. 즉 60mg을 처방받은 마로가 실수로 90mg을 오늘 아침까지 계속 복용해온 것이다. 옆지기는 '난 아빠도 아냐'라며 패닉상태에 빠졌다.
거점병원에 문의한 결과 최종 복용 후 6시간이 경과된 뒤라 위세척도 소용 없고, 구토나 복통, 설사를 하면 즉시 응급실로 오란다. 다행히 딸아이는 아무 증세가 없지만, 해람이 약이 모자라 추가처방을 받으러 가보니 둘 다 확진 판정이 나와 있었다.
가족 내에 여러 명이 타미플루를 복용할 경우 다양한 용량이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45mg과 30mg의 곽은 똑같이 하얀 색이지만 45mg은 주황색으로 표시되어 있고, 30mg은 연두색으로 쓰여져 있다.

11월 12일 (목) 

옆지기는 말짱한데, 나의 경우 약간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나 싶어 거점병원에 가서 1차 검사를 받아보니 음성이 나왔다. 아무래도 단순한 몸살인가 보다. 우리나라 사람의 약 20%가 이미 면역항체를 보유하고 있다는데, 아마도 옆지기와 내가 운 좋게도 그 경우에 포함되나 보다. 

11월 13일 (금) 

그동안 든 비용을 계산해봤다.
송해람: 1차 검진비 35,300원 + 2차 검진비 39,200원 + 추가 처방 7,200원 = 81,700원
송마로: 1차 37,300원 + 2차 56,000원 = 93,300원
나: 1차 37,300원
총 212,300원이 소요되었는데, 다음주에 등교/등원하려면 진단서(각 1만원)를 떼가야 하니 232,300원이 들 예정이다. 한 부모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우리 집이 입은 경제적 피해인 것이고, 옆지기는 경우에 따라 손해배상소송도 불사하겠단다.
4살반 7명 중 1명 빼고 전부 전염되었으니 피해 액수는 100만원이 넘고, 아침저녁으로는 반 구분없이 통합보육을 하니 다른 반 아이들도 그 애에게 전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전염되지 않은 집 부모도 어린이집 휴원 조치로 여러 모로 피해를 입었을 거다.
우리가 더 걱정하는 건 그 집 부모가 이번에만 그릇된 행동을 할 것이냐 라는 문제다. 수족구며, 장염이며, 아폴로 눈병이며, 독감이며, 어린아이들에게 위험한 전염병이 한 둘이 아닌데, 앞으로라고 무책임한 행동을 안 한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결국 학부모운영위원회에 건의하여 퇴소 등의 징계를 요청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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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종플루 유감 - 일년 사이 껌이 된 거니?
    from 조선인, 마로, 해람의 서재 2011-01-03 18:33 
    지난해 겨울 전 세계가 신종플루의 악몽에 시달렸다. 타미플루 품귀현상이 빚어졌고, 휴교령/휴원령이 난무했고, 전 국민 백신접종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 딸아들 역시 신종플루가 걸려 온 가족이 결근/결석하며 노심초사했으며, 천식이 있어 고위험군에 속하는 나는 애들과 격리(?)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올해. 현재까지 확인된 신종플루 사망자는 총 3명. 배우 유동숙씨, 수도권 30대 남성, 전북 여중생...  작년과 달리
 
 
섬사이 2009-11-1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있을 수가.. 다들 얼마나 예민해져 있는 시기인데 말이예요.
한편으로는 휴교나 휴원 이야기를 들으면 맞벌이 하는 집은 참 곤란하겠다, 하는 염려가 되기도 해요. 그런 부분에 대한 세심한 조처도 마련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마로와 해람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조선인님과 옆지기님도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고생하셨어요.

후애(厚愛) 2009-11-13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조카가 감기인데도 혹시 몰라서 밖과 집안에서도 마스크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서요...
어찌 사람이 생각이 없을까요...
제가 화가 납니다.
마로와 해람이가 건강을 회복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리고 조선인님도 건강 꼭 챙기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11-1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저희 회사는 가족중에 환자가 나와도 나오지 않도록 하고 있어요 놀랍군요 그 부모는!

아이들이 고생이 많았겠어요. 휴 어서 이 소동이 지나가야 할텐데요.

마노아 2009-11-13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큰 조카는 한 명 검사받는데 최종 20만원이 넘었던데 뭐 이렇게 비쌌을까요..;;;;
양성 판정 받고도 어린이집에 보내다니, 너무 황당해요. 마로랑 해람이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ㅠ.ㅠ
플루 걸린 사람도 그렇거니와, 아닌 사람들까지, 모두가 너무 피로함을 느끼고 있어요. 어서 잠잠해져야 할 텐데요...

2009-11-13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9-11-13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최소한 옆지기나 저희 회사는 가족중에 신종플루 환자가 있을 경우 연차를 쓰게 하기 때문에 다행이었죠. ^^
후애님, 부모가 모두 휴가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어쨌는지 알 수야 없지만, 그 집 때문에 모든 부모가 다 휴가를 쓰게 되었으니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휘모리님, 아이들은 학교 안 가고 어린이집 안 가는 걸로 행복해 합니다. 게다가 엄마, 아빠 모두 출근 안 하니까 아주 싱글벙글입니다.
마노아님, 혹시 보험 처리가 안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무분별한 2차 검사를 막기 위해 1차 검사시 양성이 나오면 2차 검사에 보험 적용이 되거든요.
속닥님, 1차 검사의 신뢰도가 50% 선이라는 건 알지만 오후 되면서 미열도 떨어졌고, 다른 증세도 없어 일단은 믿기로 했습니다.

瑚璉 2009-11-13 14:36   좋아요 0 | URL
사실 그것도 문제인데 열이나 기타 증상이 없다고 해서 신종플루가 아닌 것도 아니라서요(-.-;). 참 어려운 일입니다.

드팀전 2009-11-13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든 날들이군요...그 집도 뭔가 사정이 있었던가 아니면 '열'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듯 합니다. 해열이라는 건 강제적으로 열만 내려주는 건데...

울보 2009-11-13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고생하셨겠네요,,
음 저런 부모가 님이 다니시는 어린이집만 있는것은 아닌듯해요,
학년이 올라가면 갈 수록 말안하고 보내는 부모들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참 씁쓸하지요,,
그나저나 아이들이 약 잘먹고 이제 괜찮아졌다니 다행이지요,
님도 옆지기님도 마로도 해람이도 모두모두 고생하셨어요,,
정말 신종플루가 언제쯤 잠잠해 질까요,,

조선인 2009-11-13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설령 신종플루라 하더라도 자가면역으로 이긴 거고, 다음주 출근해도 전염의 위험성은 없는 거 아닐까요?
드팀전님, 사정이 있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봐줘도 되는 건 아닌 거라 마음 다지고 있습니다.
울보님, 작은오빠가 입시미술학원을 하는데, 근처 고등학교가 휴교를 하고 생난리가 나도 희한하게 단 한 명도 신종플루 걸린 학생이 없데요. 데생지도 하느라고 근처만 가도 몸에서 열이 펄펄 나는 게 느껴지는데 절대 신종플루가 아니라고 한데요. 신종플루보다 입시가 더 무섭다니 참 안타깝죠?

水巖 2009-11-13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행이군요. 무책임한 부모란 사회에서 제거해야 할 존재입니다.
해람인 어린이집을 바꾸지 않아도 될런지요? 네식구 모두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모두들 고생했습니다. 그만큼 면역력도 강해졌겠죠.

꿈꾸는섬 2009-11-1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랑 해람이가 이제는 괜찮은듯해서 다행이네요. 고생하셨어요.
아이가 아픈데도 어린이집을 보낸 엄마는 정말 너무하네요. 징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만 생각해선 안되죠.

2009-11-14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9-11-14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힘들게 들어간 국공립이라 옮기긴 좀 그래요. 그 부모만 아니면 정말 좋거든요.
꿈꾸는섬님, 오늘 소견서 받으러 갔다 왔어요. 우리 애들은 너무 멀쩡한데, 그 와중에 어떤 애는 응급실로 해서 입원소속을 받더라구요. 참 안타깝더군요.
속닥님, 이런, 걱정이시겠어요. 어쩜... 부디 백신 맞을 때까지 무사하기 바랍니다.

antitheme 2009-11-17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이 많으셨네요. 그래도 요즘 뉴스를 보면 플루가 잠잠해진건지... 아님 더 큰 사건들이 많아서 눈에 안보이는건지 싶네요.
그래도 그만한게 다행이다 싶어요.

조선인 2009-11-17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ntitheme님, 신종플루 사망자 집계를 앞으로는 특이 소견이 있을 때만 발표하기로 방침이 바뀌었답니다. 그래서 잠잠해 보이는 걸 수 있어요. 쿨럭.

2009-11-17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9-11-18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3살 미만은 접종해도 효과가 없다던데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에휴~

같은하늘 2009-11-18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오랜만에 들렸더니 이런일이 있었군요.
그런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니까요.
그래도 마로,해람이 모두 가볍게 격고 넘어가서 다행이네요.
한시도 마음을 놓을수 없는 살얼음판 같아요. ㅜㅜ

조선인 2009-11-19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징계 여부를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중인데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겠어요. 전 아주 강경파로 찍혔답니다.

2009-11-20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9-11-2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마로랑 해람이는 화요일부터 등교/등원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야말로 늘 고마운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