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부터 가계부는 계속 적자입니다. 이래저래 정신없이 큰 일이 터지다 보니, 매달 조금씩 보험약정대출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요.

청년회가 잘 안 됩니다. 차라리 사투를 할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기초가 부실한 관점, 핵심이 아닌 주변에 대해 논쟁이 아닌 논란, 종국적 목표에 대한 방향성을 잃고 단기적 지형에 매몰된 근시안 등 갈수록 혼란은 중첩되고 있고, 동지에 대한 신뢰조차, 연대의 의지조차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또는 이회창 정권 하에 5년을 살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숨이 막혀 옵니다. 변질한 운동에 내리는 민중의 심판이 너무 가혹하다고 울부짖고 싶지만, 남의 탓 할 일은 아니겠지요.

아버지가 눈에 띄게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구완할 손은 모자르고,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부끄럽게도 형제간의 갈등도 생긴 상황입니다.

얼마 전 어머님이 덜컥 입원을 했더랬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친정보다 젊고 건강하다고 여겼던 시부모님이었는데, 아, 이제 시부모님도 연세가 드셨구나 뒤늦게 깨닫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갈수록 회사 업무의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승진을 한다는 건 책임이 늘어나고 역할이 달라지며 무엇보다 회사의 요구 수준이 높아진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한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회사를 다니는 건데,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과 회사에서 요구받는 나와의 거리감이 점차 커져 힘듭니다. 괴롭습니다.

내년이면 마로가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방과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합니다. 해람이의 경우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과 갈등이 커지고 있어 심란합니다. 한참 낯가림이 심한데 어린이집을 바꿔야 하나, 내가 참아야 하나,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하나, 여러 모로 고민됩니다.

무릎에 이상이 왔습니다. 전문적인 달리기 선수에게나 생기는 병이라는데, 진찰한 선생님도, MRA를 찍은 선생님도, 나를 보고 갸우뚱합니다. 저로서도 병명을 듣고 실소했습니다. 걷기 운동할 시간조차 모자르는 저에게 슬개골연화증이라는 낯선 병명이 우스웠습니다. 큰 병이 아니라 안심은 되지만, 장기치료가 필요해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 전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8시 출근을 위해 옆지기에게 인사를 하며 서둘러 나서는데 마로 뒤를 따라 해람이가 현관으로 쫄래쫄래 달려나왔습니다. 절 배웅한답시고 마로가 넙죽 절을 한 뒤 벌떡 일어나 꼭 껴안아주고 뽀뽀를 해주자, 해람이도 덩달아 뽀뽀를 해주겠다고 난리입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해람이의 뽀뽀를 연달아 받으면서 마음 속 가득 '아! 난 행복해, 정말 행복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라며 감동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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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11-14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힘이군요.
무릎 안조으시면 큰일인데 빨리 치료하셔야할것같아요.
마로가 벌써 초등학교에 입학하는군요.
그 어려움속에도 다이어리 이벤트를 하셨었네요.
이궁. 저도 님 행복에 보탬이 되어야할텐데~

Mephistopheles 2007-11-1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조선인님의 모든 문제가 원활히 풀리게 기합 넣어드릴께요 합~

홍수맘 2007-11-1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산다는 게 다 거기서 거기구나~" 하는 단순한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도 이렇게 "행복합니다" 라고 말하시는 님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위안을 얻어봅니다.
그런데 어찌 이리 제가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건지요.........

조선인 2007-11-14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다이어리 이벤트 때문에 적자난 건 아니구요, 갑자기 생긴 경조사, 어머님 입원 등에 쓸 여윳돈이 없었던 거에요. 제가 가계부 운전을 잘 못하는 탓이니 어쩌겠어요.
메피스토펠레스님, 넵, 전 지금 행복 충만입니다!
홍수맘님, 열심히 산다는 건 가장 구질구질할 때 작은 행복에서 미래의 원동력을 찾는 게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연두부 2007-11-14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지 않았던 것이 연이어 온 것처럼 해결도...기쁜소식도 줄을 이어 조선인님에게 들어오길 기원합니다..^^

마노아 2007-11-14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끝이 찡해졌어요. 감사의 추천 꾸욱 누릅니다. 부끄럽고 고맙고, 그런 마음이에요...

바람돌이 2007-11-14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게 왜 이렇게 갈 수록 힘들어지는지... 뭔가 하나쯤 끝났다 싶으면 다시 뭔가가 터지고...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힘내세요.

세실 2007-11-14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화이팅입니다. 역시 아이들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죠.
'힘들어, 힘들어'를 외치다가도 아이들의 전화 목소리에 스르르 피곤이 녹아 내립니다.
우리 함께 힘 내요~~

코코죠 2007-11-15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행복하시다니 오즈마 마음도 행복해져요^ ^

토토랑 2007-11-15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끝 찌잉을 넘어서..
눈물 훌쩍 입니다.

조선인 2007-11-15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두부님, 고맙습니다.
마노아님, 추천까지 해주시다니 부비부비.
바람돌이님, 저 다음주에 일본출장이에요. 아이들 대책이 없어서 아가씨에게 버리자는(쿨럭) 고민까지 하고 있지만 일정중에 하루 교토가 있어 여유시간이 있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히히.
세실님, 마로는 요새 저녁마다 아빠에게 전화하는데 아주 재미가 들렸어요. 덕분에 옆지기도 힘내고 있구요.
오즈마님, 우리 더 많이 행복해져요. 화이팅!!!
토토랑님, 이 와중에 님도 토토 동생 계획을? 속삭여 봅니다.

프레이야 2007-11-15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조선인님, 위로하려다 보니 이미 해람이가 다 해버렸네요.ㅎㅎ
무릎 안 좋으신게 걱정이네요. 건강이 최고인데요. 마로에게도 해람이에게도요.
잘 치료하시기 바래요. 그 와중에 일본출장이라니.. 잘 다녀오세요.
해람이 뽀뽀 나도 받고 시퍼라~~

2007-11-15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15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nemuko 2007-11-15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그래서 엄마들이 버티는 거라구요^^;;;;

조선인 2007-11-16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해람이가 뽀뽀를 너무 좋아해서 은근 걱정중입니다. 키득
11:56 속닥님, 아이구, 과하신 말씀을. 님이야말로 무슨 일이 있는건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또 12:58 속닥님, 넵, 의논 후 연락 드릴게요.
네무코님, 아이들이야말로 우리들의 자양강정제죠? ㅎㅎ

진주 2007-11-1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그래서, 엄마들은 아이를 둘 이상 낳나 봅니다.
짊어져야할 삶의 고통을 아이들은 녹여내는 은사를 갖고 태어나나 봐요.
착한 마로와 이쁜 해람이!

2007-11-19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7-12-05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그러게요, 제가 어찌 이런 복을 다 가졌을까요.
속닥님, 덕분에 쇼핑 잘 햇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