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이기담 지음 / 예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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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년 선덕의 부름이 다급하다. 명활산성에서의 비담의 반란이 이유로, 반란의 진압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나, 그들의 손에 황룡사가 들 것을 염려한 것이다. 황룡사는 선덕의 아버지 진평왕부터 꿈꾸어 오던 불국토 신라를 향한 염원 그 자체이기 때문이리라. 이 책 도입부와 결말은 유기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하나다. 선덕의 생명이 사그라드는 시기로 평생의 과업을 통해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으리라.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당당했던 선덕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줄거리가 되겠다.




유명인의 어린 시절이 그러하듯, 덕만의 총명함은 언니인 천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같은 성골이었기에 남자 성골이 없던 당시의 왕위 계승권은 천명에게 있었지만, 덕만이 더 적합한 인물로 지목된다. 남자 성골이 없다 한들 후일 춘추가 왕이 된 상황을 생각한다면 진골의 남자도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역시 덕만의 기품과 능력이 여자로서 왕의 자리에 오르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덕만의 자질을 살펴보자면 천명과 대비되는 부분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어린 시절 자매는 한 남자를 사랑하였다. 진지왕의 아들로 오랜 세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어 반란을 꿈꾸던 용춘이다. 반란을 계획하던 도중 덕만의 유명세에 다급해진 천명의 고백을 듣고는 주춤하던 그이지만, 곧 실행에 옮길 태세를 갖춘다. 천명의 여종 춘님에게 발각된 후, 천명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는데, 천명은 사랑하는 용춘을 돕고자 한다. 이 부분을 보고 있자면, 사랑에 헌신적인 천명임에는 분명하지만, 국가나 대업을 둔 이라고는 볼 수 없음을 알 수 있겠다. 아나들판에서 백제 포로가 된 장수에게 두루마기를 덮어주었던 덕만과 그로인해 반역을 꿈꾸는 이들에게 모함을 당해 죽음의 위기에 빠지면서도 이를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바꾸기까지 하는 덕만에게 경쟁이 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진평왕과 신료들과의 패권다툼에서의 결과로 어머니 마야황후가 궁에서 나간 뒤, 덕만은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해졌으며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왕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이 시기 더욱 깊어졌으며 이전에 드높았던 자신의 지위가 백성들 사이에서 잊혀지고 있음을 통해 왕위는 백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확고한 왕권과 백성들의 지지야 말로 신라에 가장 필요한 일임을 확신하게 되는 시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용춘을 붙든 이도 덕만이었고 왕위계승자로 지목된 이도 덕만이었다. 여자로서 사랑하는 이를 붙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보다 대업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보아야할 것 같다. 당시 진지왕계의 분란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그 선봉에 섰던 용춘을 회유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을 테니까. 가야계를 회유한 것은 김유신의 동생과 김춘추를 맺어준 일로 일단락되었고, 백성들을 하나로 통합해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는 것은 황룡사의 9층탑을 건립하는 일로 마무리 하겠다는 의지도 이루어졌다. 물론 반대의 여론도 드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선덕의 죽음 앞에서도 반란은 지속되었으니 말이다. 허나 이러한 선덕의 의지는 왕이 세상을 등진 이후에도 남아 하나의 뜻으로 기억되었다. 황룡사 9층탑에 대한 왕의 의지가 옆에서 왕을 모시던 신하들의 가슴속에 삼국통일의 의지로 남겨진 것을 알고 있다.




이 책은 선덕의 위업에만 치중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인으로서의 갈등을 언니인 천명과의 대비로 풀어나간 부분에서는 다른 팩션 소설에서는 없던 재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덕여왕에 대한 기록이 조금 더 살을 더해 상상력을 더욱 가미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조금 남는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큰 사건, 사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독자들에게 지루함 없이 전달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읽은 이소설의 큰 매력이 바로 그것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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