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음악과 대중 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90
최유준 지음 / 책세상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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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왜 듣는냐"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서 듣는다"라고 할 것이다.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이 이루어지는 곳은 비단 음악에 대한 것만은 아닐것이다. 우리가 즐기는 다양한 많은 문화생활 즉, 영화나 미술 등 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는 것만큼 그 대상물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예술 음악과 대중 음악이라는 이분법에 대한 것은 그러한 "좋음"에도 그 이면에 이데올로기가 작용한다는 것을 간파하며,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예술 음악은 좀 더 고상하고 어렵고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이고, 대중 음악은 그에 비해 좀 더 하급의 음악이고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 음악과 대중 음악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은 서로간에 소통이 없이 자신들만의 것을 고수해 온 행태에 기인하며 이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그러한 무의식적 사고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허구적 이분법은 음악 장르간의 소통을 막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있어서의 음악 담론을 방해하며 좀 더 풍요로운 우리의 음악적 생활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그러한 폐해를 지적함과 동시에, 그 대안으로 음악 자체 즉 음악 내적인 것에 치중하는 자율음악론과 음악 외적인 것을 중시하는 실용음악론으로 구분하기를 권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지은이의 생각에 동조할 것으로 본다. 음악을 꼭히 예술 음악이니 대중 음악이니 하면서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또한 그러한 구분을 통해 음악간의 서열을 은연중에 강요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말이다. 음악이나 예술은 인간의 미적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삶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면 그 소임을 다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지. 아마 이는 지은이의 견해에 의하면 실용음악론에 가까운 생각일 것이다.

지은이의 이러한 생각은 파격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여태 음악을 들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한번쯤 가져 본 생각이니 말이다. 지은이는 바로크 음악, 음악 평론가 김관, 데카르트 이론 등을 곁들여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런데 김관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거친 듯한 글쓰기는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합리적이라는 음악과는 약간은 동떨어진 느낌이다.

어떤면에서는 지은이가 주장하는 실용음악론과 자율음악론이란 구분법 자체가 예술 음악과 대중 음악이라는 구분에 대한 또 다른 이분법적인 사고가 된되는 것은 아닌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을 담고 있는 내용이 중요하듯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나 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사고의 전환이 없는 마당에 이런 말바꾸기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한다.

문화는 즐기는 사람이 없으면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물론 예술가의 자기 만족적인 것들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그 소비주체가 있어야만 어느 방향으로든지 발전가능한 것이다.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실용음악론이니 자율음악론이니 하는 것도 그러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구태여 음악을 장르로 나누기 보다는 건전한 음악적 소통이 중요한 것이고, 그 소통은 누가 어떻게 하라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레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라 본다. 요즘처럼 음악이나 미술, 영화에서 크로스 오버 즉, 퓨전화 현상이 활발한 것도 그러한 양상의 일부분이라 할 것이다. 예술은 진화화고 발전하는 것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음악교육을 받아온 세대를 지나 이제는 문화의 다양성을 흡수한 사람들이 문화공간을 자리잡고 활동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흡수한 음악적 다양성을 꼭히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감각으로 쏟아내고 있다.

문화는 큰 흐름이다. 그 흐름의 가운데는 소비자들이 있다. 소비자의 판단에 맡겨두는 것이 진정한 문화의 힘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제껏 논의되어 온 예술 음악, 대중 음악이란 구분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를 실용 음악, 자율 음악이라고 구분지을 필요도 없다. 형식이 내용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 구분 짓기 좋아하는 것은 평론가들이지 일반인들은 아니라고 본다. 일반인들은 그저 음악을 소화하고 이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지은이의 이 소고는 그런 면에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조금은 전투적인 글쓰기로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많지만 이제껏 음악 자체에 대한 글들이 많이 없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음악이란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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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전: 이론과 비평 한나래 시네마 12
수잔 헤이워드 / 한나래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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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영화가 대중들의 가장 큰 오락거리이자 문화를 즐기는 수단으로 된 적은 없었을 거다. 많은 대중매체들에서는 앞다투어 영화를 소개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단순한 흥미위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영화를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목마름의 연속인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책이라고 본다. 영화를 단순히 일회용 소비재처럼 여기기 보다는 두고 두고 음미하면서 그 매력을 탐구해보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영화 외적인 것들에 대한 것의 이해도 영화를 보는데 있어 즐거움과 함께 기쁨이 되지 않을까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영화에 대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여태 지나쳐왔던 것들을 영화적 목소리로 재미나게 들려주고 있다.

다만,  "영화사전 [이론과비평]"이라는 우리 제목에 비해 "Key Concepts in Cinema Studies"라는 원제가 더어울리지 않았을까 한다. 한국식 제목으로 봐서는 영화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담은 것 같지만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영화에 관련된 많은 논의들 중에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의미에서 원제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한글목차에 따라 주요한 영화이론과 비평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지은이는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영화를 본느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정신분석학과 기호구조학과 같은 부분을 강조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읽기가 만만한 책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소재에 대해 어느 정도 기초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읽기가 그나마 수월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책장은 의외로 잘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위와 같은 글쓰기는 구태의연한 많은 영화 이론서에 비한다면 아주 참신하고 영화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하는 계기를 부여해 주기도 한 부분이다. 일반적인 내용이나 유사한 내용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영화를 보는데 있어 아니면 영화를 비평하는데 있어 남다른 시각을 가지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마춤인 책이다.

우리나라 식의 제목은 이 책이 가진 본 의미를 약간은 오도하는 느낌이 든다. 방대한 영화지식을 한권에 모아둔 영화사전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구조주의, 포스트 구조주의, 거리두기, 기호학, 디제시스, 비디제시스, 상상계, 상징계 등 영화이론으로서 우리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부분들에 대해 아주 상세하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오이디푸스 관점에서 쓴 글들은 아주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영화를 그런 식으로 본다는 자체도 재미난 내용이었지만 그러한 것들을 전제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감독들도 우리가 겉으로 보는 감독의 영화 만들기와는 또 다른 것들이 영화 이면에 숨어있다고 생각하니 눈에 보이는 영화가 전부가 아니라는 느낌에 그저 신기롭기만 하였다.

영화에 대대 조금 더 깊은 지식을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좋은 책이 될 것이지만 영화 전반을 다 알고 싶어하시는 분들에게는 지루한 책이 될 수 있는 책으로 되도돍이면 원제로 출간하여 소비자들이 잘못 판단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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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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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여백에 드리워진 먹선이 얼마나 아름답고 운치있는 줄을 이 책을 읽기까지는 몰랐다(이 책에 등장하는 우리 조상들의 채색화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옛날 할아버지 방에 가면 걸려있는 오랜 손때가 뭍은 그저 그런 그림이라고만 생각했다.


수업시간에 배운 렘브란트나 샤갈, 피카소의 그림과 같이 알록달록한 채색화에 익숙한 눈에는 그런 우리 조상들의 그림이 쉽게 들어오지 않았고, 실생활을 통해서도 접할 기회도 그렇게 많지 않다 보니 자꾸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 것이다.


이는 우리 그림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조건 우리 문화니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이제는 모든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그에 맞추어 사람들이 문화를 보는 시각도 비슷해지고 있으니 우리가 우리 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시각을 가지지 않으면 우리 조상들이 지켜온 우리의 고유 문화는 시간이라는 역사속에 등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우리 그림에 강한 애착을 가지는 것은 그림이라는 것이 단순히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서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 등을 반영하는 그야말로 문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우리 조상들과 같이 호흡을 하게 되는 것이다.


21세기는 문화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문화는 다양성을 잃고 서구의 시각 특히 미국 중심의 문화로 귀일되는 듯한 경향이다. 대중문화는 거의 미국 시장에 잠식당한 정도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런 시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하게 와닿은 책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애타는 마음(?)을 담은 강연 내용을 담은 것으로, 강연회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도록 강연 진행과정을 고스란히 책에 옮겨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청중에게 질문하는 내용이나 청중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이나 잠시 쉬기로 한다는 지은이의 이야기들은 읽는 독자들에게도 지은이의 강연회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친숙한 글쓰기와 커다란 그림 사진, 친절하디 친절한 지은이의 이야기는 책 속으로 푸욱 빠져들게 만든다.


지은이는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낄 것”을 권하면서 논어의 맹야 편에 나오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말도 인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 말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하였다. 무릇 그림을 보려면 그림의 기초가 되는 원근법이니 명암이니 대조니 하는 형식적인 것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림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을 거부한다.


그림은 단순히 형식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것만큼 마음으로 읽어야 하며 또한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을 머리로만 봐온 나에게 그림에 있어서 전문가라는 지은이가 들려주는 위와 같은 이야기는 의외였고, 그야말로 신선함 그 자체였다.


그렇다고 지은이는 그저 감상적인 이야기만 늘어 놓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그림마다 일일이 세부적인 면에 대한 언급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이를 당시의 시대상이라든지 사회상 내지는 우리 조상들의 문화(도교, 성리학 등)와 결부시켜 풀어나가는 지은이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해박함 그자체였다. 지은이가 얼마나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지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지은이 말처럼 즐기지 않는다면 아는 것만으로는 이렇게 우리문화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는 힘들지 않을까 한다.


지은이의 우리 그림에 대한 설명을 따라 그림을 한점 두점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김홍도의 씨름에 숨겨진 이야기나 다시금 보게되는 송하맹호도의 위대함이라든지, 우리 병풍의 아름다움이라든지 여태 몰랐던 것들을 하나 둘씩 깨우치게 되고, 무엇보다 두번째 장과 세 번째 장에서 들려주는 우리 조상들의 우주관, 인생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그림에 관한 책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지은이는 수십년 동안 자신의 인생을 바쳐오며 터득한 우리 그림에 대한 생각을 이 책을 통하여 아주 재미나고 쉽고 편하게 체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지은이의 걸출한 입담은 한점 한점의 그림들이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그림이라기 보다는 생동하는 생명 그 자체로 느껴지게 한다. 이는 지은이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할 정도로 지은이의 빼어난 글쓰기가 엿보인다(물론 지은이가 책을 목적으로 쓴 글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우리의 것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도 하지만 이는 21세기 모든 문화가 획일화, 규격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 즉,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자 하는 지은이의 객관적인 우리 문화 엿보기라고 할 것이며 우리에게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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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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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읽기의 즐거움"

책 제목이 상당한 흡입력을 가지는 것 같다.

'왜 지은이는 그림을 본다고 하지 않고 읽는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제목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하나 둘 넘기면서 그 의문점은 자연히 해소되어져갔다.

내가 여태 알지 못했던 것들을 지은이의 글을 통해 깨우치게 되었던 것이다.


지은이는 ‘옛사람의 눈길로 그림을 바라볼 것’과 ‘옛사람의 마음으로 작품을 느낄 것’을 권하고 있다. 통상적인 그림보기와는 다른 그림보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화보기에 익숙한 우리의 눈은 ‘원근법이니 명암이니 대조니 하면서 이 그림이 무슨 유파에 속하고 어떤 특징이 있다’라는 식으로 어떤면에서는 그림 외적인데 치중하는 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지은이는 “그림을 아는 사람은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일상 생활 속에서도 거기에 그려지는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데, 이는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우리의 그림에 대한 시각이 너무나 편협하고  잘못되어 있는지를 은근슬쩍 꼬집고 있다.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 조상들의 피가 흐르고 있음인지 지은이의 진솔한 이야기에 서서히 우리 옛그림의 참맛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은이는 달마상, 고사관수도, 몽유도원도 등과 같은 우리가 학교에서 미술시간을 통하여 알게 된 잘 알려진 조선시대의 그림 12점을 실어 두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너무 적은 량의 그림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지은이는 이 그림들에 대해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의 삶, 정치 및 사회생활, 불교, 주역 등의 각종 철학사상과 다양한 일화와 출전 등의 인용문 등을 통해 단순한 그림읽기를 넘어서 우리 전통문화와 조상들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은이는 그림 사이 사이에 우리 그림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색채, 원근법, 여백 등 우리 그림이 서양화와 다른 것들에 대해 설명하며 우리 그림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너무나 친숙하고 익숙한 것이 우리들의 문화이기에 어떤면에서는 너무 잘 안다고 치부해버리기 쉬운 것들이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미처 깨닫지 못한 나 자신의 우리 문화에 대한 무지몽매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두꺼워 보이지 않는 책이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책 두께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다. 지은이의 우리문화에 대한 애정과 다양하고 해박한 지식은 우리 옛그림에 대한 읽기를 넘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만든다. 지은이는 떠나고 없지만 지은이가 남긴 이 역작은 우리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인 지은이의 따뜻한 가슴으로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외국의 문물이 많이 유입되어 들어오는 사회에서 우리의 것에 대한 작지만 큰 사랑을 느끼기에 더없이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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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하여 알고싶은 두세 가지 것들
구회영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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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은이(김홍준 감독이 구회영이라는 필명으로 쓴 글들이다)가 월간 로드쇼 '도시에'난에 1990년 5월호에서 1991년 5월호까지 실렸던 글들을  엮은 것으로, 원래는 책을 의도하고 쓴 글들이라 아니기 때문에, 정연한 체계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 지은이도 책머리에 이러한 이 책의 단점을 이야기하며 독자들이 가장 끌리는 장부터 읽어나가기를 권하고 한다.

지은이의 이야기와 '영화에 대하여 알고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라는 제목만을 두고 본다면 이 책은 단순히 신변잡기적인 흥미위주의 영화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책은 의외로 괜찮은 글들이 많다. 영화의 역사나 장르 연구와 같은 부분은 짧게나마 영화사를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고, 제3세계 영화나 컬트 무비에 대한 이야기는 개론서 이상의 내용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문적이지 않고 쉽게 글을 풀어쓰고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았다.

다만 빔 벤더스에 대한 글이나 영화사상 걸작선(1895-1991, 91편의 고전)과 우리세대의 걸작(80년대 세계영화 100선)과 같은 부분은 영화가 중복되고 너무 한 방향으로 치우친 글쓰기가 아닌가 할 정도로 조금은 편중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지은이가 위에서 지적한 바대로 이 글 자체가 책을 전제로 쓰여진 글들이 아니어서 그렇긴 하다만. 이왕이면 책을 출간할 때 손을 좀 보든지 아니면 개정판을 내면서 손을 좀 봐주었으면 하는 느낌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80년대 비디오가 보급되면서 나타난 영화에 대한 관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홍콩 느와르에 대한 이야기는 그러한 시대적인 배경을 그대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우리 나라에서 영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비디오세대들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도 있다. 단순히 영화를 보던 세대를 거쳐 영화를 요모 조모 뜯어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글들은 당시 영화 관련 잡지들 여기 저기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디비디가 보금되면서 영화는 더욱 우리들 곁에 쉽게 다가왔음에도 영화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은 비디오시대 보다 못한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너무 영화를 너무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어렵게 구한 것에 애착이 가는 것처럼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물론 이는 불법이다)나 디비디를 통한 쉬운 구매경험은 언제든지 영화를 구해 볼 수 있는데 무엇하러 애간장을 태워가며 영화를 구해보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멀티플렉스를 통한 편향적인 영화의 보급에서 오는 다양한 영화의 접촉이 사라진 것도 한가지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앞서의 이유와 모순되기도 하지만 이는 영화와 디비디라는 매체의 차이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재의 시선에서 읽어보면 너무나 원론적이고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게된다. 하지만 지은이의 80년대 영화에 대한 강한 애착을 느끼게 하는 영화에 대한 열정은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은 80년대 비디오세대의 영화에 대한 보고서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각장의 글들이 균형감이 없다는 게 가장 큰 흠이지만(앞서 지적한 대로 책을 전제로 쓰여진 글이 아니어서), 편하게 영화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이나 영화이론에 대해 알고 싶은 초보자들에게는 쉽고 편하게 다가가는 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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