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하얀 여백에 드리워진 먹선이 얼마나 아름답고 운치있는 줄을 이 책을 읽기까지는 몰랐다(이 책에 등장하는 우리 조상들의 채색화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옛날 할아버지 방에 가면 걸려있는 오랜 손때가 뭍은 그저 그런 그림이라고만 생각했다.


수업시간에 배운 렘브란트나 샤갈, 피카소의 그림과 같이 알록달록한 채색화에 익숙한 눈에는 그런 우리 조상들의 그림이 쉽게 들어오지 않았고, 실생활을 통해서도 접할 기회도 그렇게 많지 않다 보니 자꾸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 것이다.


이는 우리 그림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조건 우리 문화니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이제는 모든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그에 맞추어 사람들이 문화를 보는 시각도 비슷해지고 있으니 우리가 우리 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시각을 가지지 않으면 우리 조상들이 지켜온 우리의 고유 문화는 시간이라는 역사속에 등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우리 그림에 강한 애착을 가지는 것은 그림이라는 것이 단순히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서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 등을 반영하는 그야말로 문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우리 조상들과 같이 호흡을 하게 되는 것이다.


21세기는 문화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문화는 다양성을 잃고 서구의 시각 특히 미국 중심의 문화로 귀일되는 듯한 경향이다. 대중문화는 거의 미국 시장에 잠식당한 정도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런 시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하게 와닿은 책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애타는 마음(?)을 담은 강연 내용을 담은 것으로, 강연회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도록 강연 진행과정을 고스란히 책에 옮겨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청중에게 질문하는 내용이나 청중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이나 잠시 쉬기로 한다는 지은이의 이야기들은 읽는 독자들에게도 지은이의 강연회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친숙한 글쓰기와 커다란 그림 사진, 친절하디 친절한 지은이의 이야기는 책 속으로 푸욱 빠져들게 만든다.


지은이는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낄 것”을 권하면서 논어의 맹야 편에 나오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말도 인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 말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하였다. 무릇 그림을 보려면 그림의 기초가 되는 원근법이니 명암이니 대조니 하는 형식적인 것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림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을 거부한다.


그림은 단순히 형식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것만큼 마음으로 읽어야 하며 또한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을 머리로만 봐온 나에게 그림에 있어서 전문가라는 지은이가 들려주는 위와 같은 이야기는 의외였고, 그야말로 신선함 그 자체였다.


그렇다고 지은이는 그저 감상적인 이야기만 늘어 놓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그림마다 일일이 세부적인 면에 대한 언급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이를 당시의 시대상이라든지 사회상 내지는 우리 조상들의 문화(도교, 성리학 등)와 결부시켜 풀어나가는 지은이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해박함 그자체였다. 지은이가 얼마나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지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지은이 말처럼 즐기지 않는다면 아는 것만으로는 이렇게 우리문화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는 힘들지 않을까 한다.


지은이의 우리 그림에 대한 설명을 따라 그림을 한점 두점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김홍도의 씨름에 숨겨진 이야기나 다시금 보게되는 송하맹호도의 위대함이라든지, 우리 병풍의 아름다움이라든지 여태 몰랐던 것들을 하나 둘씩 깨우치게 되고, 무엇보다 두번째 장과 세 번째 장에서 들려주는 우리 조상들의 우주관, 인생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그림에 관한 책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지은이는 수십년 동안 자신의 인생을 바쳐오며 터득한 우리 그림에 대한 생각을 이 책을 통하여 아주 재미나고 쉽고 편하게 체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지은이의 걸출한 입담은 한점 한점의 그림들이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그림이라기 보다는 생동하는 생명 그 자체로 느껴지게 한다. 이는 지은이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할 정도로 지은이의 빼어난 글쓰기가 엿보인다(물론 지은이가 책을 목적으로 쓴 글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우리의 것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도 하지만 이는 21세기 모든 문화가 획일화, 규격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 즉,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자 하는 지은이의 객관적인 우리 문화 엿보기라고 할 것이며 우리에게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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