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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샹떼 - 세계 영화사의 걸작 25편, 두 개의 시선, 또 하나의 미래
강신주.이상용 지음 / 민음사 / 2015년 4월
평점 :
영화를 무지막지하게 좋아한다. 한때 밥먹는 것보다 영화 보는 것을 더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아직도 영화를 좋아하지만 예전의 열정에 비하면 많이 사그라들었다. 신경써야 할 일이 많아지고 일에 치이다보니 극장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아 졌다. 예전처럼 재개봉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개봉작 시간을 놓치면 디비디가 출시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온라인상으로 봐야만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런데도 영화가 좋다. 무료한 일상을 탈피하여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으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떠한 예술 장르보다도 영화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예술장르가 되었고, 또한 가장 손쉽고 편안하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영화시장 규모도 해년마다 급성장하면서 할리우드 유명 스타들이 영화개봉에 맞춰 우리나라를 방문하거나, 할리우드보다 먼저 국내개봉을 하는 경우까지 일어나고 있을 정도다. 물론 이런 현상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외형상으로는 몸집이 크진 것 같지만, 몇몇 제작사와 배급사가 영화관을 독점하다보니 영화관객이 몰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의도적으로 영화관 몰아주기를 하여 관객수를 불리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면에서는 비디오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8,90년대에 비해 영화의 다양성은 더 떨어지는 것 같고, 또한 대중들은 영화를 단순히 오락거리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현재의 영화시장은 기이할 정도로 왜곡되어 있다. 컬트나 예술영화라는 장르가 각광을 받고 일반인들에게 키노, 스크린, 로드무비 등 영화 잡지가 읽히고 문화학교 서울 등 소규모 시네마테크 운동이 일어나던 그때가 오히려 지금보다 질적으로 더 풍성하지 않았나 한다.
최근 출간되는 영화에 관한 책들은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담은 에세이 형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에세이 형식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문학, 음악, 미술, 심리학, 철학 등 다른 예술장르나 학문과 통섭하는 글쓰기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읽을 만한 책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번역서는 번역 자체가 매끄럽지 않아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힘든 책들도 있다. 일반인들의 눈높이에서 쓰여진 책들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그에 반해 인터넷 상 각종 포털이나 블로그 등에는 영화에 대한 글이 넘쳐난다. 일반인이면서 전문가 뺨칠 정도로 영화를 분석한 글도 눈에 들어온다.
영화평을 읽는 것은 영화에 대한 사전적인 정보를 얻는 것이 주목적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단점도 있다. 자신의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영화를 보려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줄거리 정도만 이해하고 영화를 본다. 나 자신만의 눈으로 영화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자 강신주와 영화비평가 이상용이라는 두 사람이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영화를 읽고 서로의 영화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신선한 면이 있다.
영화는 시간순으로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영화라는 테크놀로지”에서는 영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뤼미에르 형제와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화를 시작으로 하여, 슬랩스틱 코미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버스트 키튼의 ‘설록 주니어’, 몽타주의 시조라고 여겨지는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전함 포템킨’, 표현주의 영화의 거장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코미디 영화의 거장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2부 “영화의 사려 깊은 의미”에서는 인상주의 화가의 대가 르누아르의 손자인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독일 영년’, 뮤지컬 영화하면 떠오르는 스탠리 도넌의 ‘사랑은 비를 타고’, 롱테이크의 미학을 보여준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 서부극의 신화를 깨뜨린 존 포드의 ‘수색자’, 삶과 인생을 성찰하게 하는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를 소개하고 있다.
3부 “영화, 욕망을 발산하다”에서는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 한국적 컬트 영화를 완성한 김기영의 ‘하녀’, 프랑스 영화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 무미건조하지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확대’, 저예산 좀비영화와 정치가 맞물린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독특한 영화미학을 보여준 루이스 브뉴엘의 ‘부르조아의 은밀한 매력’을, 4부 “불안한 영혼, 방황하는 영화”에서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뉴욕을 배경으로 중산층의 위선을 까발리는 우디 앨런의 ‘애니 홀’, 영상으로 시를 쓰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텔지아’, 중동 영화의 매력을 보여 준 압바스 키아로슽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혁명과 민중의 삶을 그린 장이머우의 ‘붉은 수수밭’, 벨기에 출신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 애니메이션으로 세계인을 감동시킨 마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배우 출신이면서 거장으로 거듭 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소개하고 있다.
워낙 유명한 영화감독들과 영화들이어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25편의 영화가 어떤 영화일지는 대충 알고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제는 전부 디비디로 출시가 되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구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이다(예전에는 ‘전함 포템킨’이나 ‘설록 주니어’ 등 초기 작품들은 비디오테이프로도 구하기 힘들어서 복사를 해서 보기도 했다). 선정된 영화들의 면면을 보면 영화사에서 한 획을 그은 영화들이다. 즉,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위해 선정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영화들은 너무 많이 알려진 것들이어서 영화에 대한 책을 읽으면 언제나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색다른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두 작가의 또 다른 시선을 읽을 수 있었고, 영화를 보고 소비하기 바쁜 요즘 시대에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점이 부럽기만 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