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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국 ㅣ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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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운영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칼’을 통해 기억하는 저자의 작품이다. 짧은 소설이지만 그림까지 있어 어머니에 대한 독자가 가진 저마다의 기억을 생각나게끔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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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言이다.”(55p)
우리 어머니가 쓰던 칼은 어떤 칼이었던가?
어린 시절부터 자취를 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던 나, 주말에 잠시 얼굴을 뵙고 하룻밤 자고 주일이면 대구로 어김없이 올라와야 했던 기억이 난다. 대구행 버스에 오르면 언제나 내 손에 들려있던 어머니의 칼자국이 서린 반찬들, 때론 그 반찬통에서 김칫국물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때론 과일주머니에서 과일이 버스바닥에 흩어져 낭패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사춘기 소년인 나와 사춘기 소녀였던 여동생은 서로 그 반찬주머니를 들고 가지 않으려고 미루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그랬다. 교통수단이 대중교통이 거진 대부분이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흔적이 다분했던, 직간접적인 칼자국이 배인 반찬들은 언제나 맛있었지만, 그걸 운반하는 책임은 피하고 싶었던 사춘기 소년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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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곁에 늘 같이 생활하는 정상적인 부모가정, 자식들이 나는 늘 그리웠고 부러웠다. 매일 같은 공간에 숨을 쉬며 몸을 부대끼는 것이 때론 지루하고 보링boring한 일상일 수 있으나 나는 그 일상이 부러웠고 나는 자식을 낳으면 절대 떨어져 키우진 않으리라고 혼자서 다짐했었다. 부모님의 교육정책(?)에 의해 부리나케 대구로 전학오던 날, 난 흑백TV에서 재밌게 방영되고 있는 ‘바야바’였던가, 만화영화 ‘딱따구리’였던가 암튼 그걸 시청중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전학가야한다고 밤에 우린 무슨 피난을 가듯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 너무 갑작스런 전학행에 난 학교애들과 인사도 못하고 떠나왔다. 그땐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이별을 준비하고 아쉬움과 아픔을 충분히 느꼈어야 하는데 나와 여동생의 정서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배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첫째 아이 전학시킬 때의 영상이 떠오른다. 나도 급하게 아이를 인사시키고는 전학을 시켰더랬는데, 우리 큰 아이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칼자국’을 남긴 건 아닐까? 그런 생각...
어머니는 왜 그렇게 급작스럽게 전학을 서둘렀을까? 인사도 안 시키고 그렇게 움직이셨을까? 당시 학교에선 시골에서 도시로 넘어가는 전학생이 불어나는 관계로 우리가 전학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미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일단 행동파였기에 전학을 물리적으로 시키고 후에 서류나 시스템적인 부분을 해결하려고 했다. 내가 전학을 간 지 한참 후에 이전 학교에서 서류가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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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남들보다 더 교육 잘 시키고,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는 고된 농사일을 하기 위해 아침에 버스를 타고 시골에 가셨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이 되면 피곤한 육신을 이끌고 다시 대구행 버스에 몸을 실어 우리를 챙기셨다. 그땐 자가용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교육정책과 돌봄과 케어로 인해 우리는 주욱 대구에서 주말 부모-자녀 관계를 유지했다.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기도 했다. 부모님과 자주 뵙지 않으니 덜 다투게 되고 애틋함과 아쉬움의 감정의 여운이 남는다는 것, 근데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그게 아니다 싶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참 모르는구나, 참 몰랐구나 싶다. 얼마나 자식들이 보고 싶었을까?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갔었는데, 지금 우리 큰 애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진짜 성가시고 귀찮은 게 많고 손도 많이 타는 시기이긴 하지만, 어른들 말로 ‘애들이 제일 예쁠 때’라고...
자식을 떨어뜨려놓고 지낸 부모님의 마음...피곤하게 하루를 보냈어도 저녁에 온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물론 일상에서 우린 자주 눈치채지 못하고 무성의하게 보낼 때가 많다. 우린 무감각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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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칼자국』을 읽고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어머니의 마음에 새겨진 ‘칼자국’을 생각한다. 명절이 되면, 떠나려고 채비하는 장남인 나에게 어머니는,
“하룻밤 더 자고 가지 그러냐?”
할머니도 “벌써 갈라꼬 카나?”그렇게 대구하셨다.
그 말이 가슴에 내려앉아 생각을 하게끔 한다.
“하룻밤 더 자고 가지 그러냐?”
부모 마음 따로, 자식 마음 따로이다. 부모는 자식을 품에 두고 싶어하지만, 자식은 머리가 굵어지면 부모의 품을 귀찮아하고 성가셔하고 멀리 두려고 한다. 내 자식들도 머리가 점점 굵어지면 나를 귀찮아하고 성가셔하고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식으로 칼자국(?)을 선물하진 않을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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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내 준 밥상, 그 밥상은 어머니의 칼자국의 결과물이다.
어머니가 내놓은 모든 나의 교육적인 환경도 어머니의 결정에 의한 진로의 영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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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들이 많아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애들의 아버지이다.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내 속에 이런 수많은 신경질과 스트레스와 분노와 짜증의 DNA가 다분한지 매일 매일 연신 놀라 자빠지는 유형의 인간 아빠이다. 나는 필시 철인이 아니었더란 말이다.ㅠㅠ 문득 내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보낸 시간의 부재不在로 인해 내겐 ‘역할모델’의 후유증이 존재하는 듯.
부모의 본本을 보고 자녀가 배운다는 데 내겐 짤막짤막한 만남의 씬scene만 존재하지, 긴 일상의 장편필름film이 없는 게 아쉽다. 애들과 함께 지내지 못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아쉽고도 안타깝고도 아픔이 저민 그 가슴! 그렇게 한 평생 살아오셨고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것을 자녀들에게 주기 위해 달려오셨기에 더 이상의 불평과 불만의 토로는 무의미하고 추잡한 짓이라고 타박해 본다. 난 그래도 애들과 함께 좋든, 싫든 생활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할 수 있어야겠다 싶다.
나는 두렵고 떨린다. 나중에 우리 애들이 부모인 나를 원망하고 불평하진 않을지. 세상의 완벽한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이것이 내 한계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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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공유된 감정,
공유된 기억,
공유된 추억,
공유된 시간과 공간,
공유된 질감과 양감,
공유된 상처까지도(물론 이런 건 좀 빼고 싶지만).
‘함께함’(togetherness)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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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가운데, 어머니가 식당에서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셨다. 장례식을 마친 후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식당 부엌에 들어선 작가의 눈에 들어온 풍경, 설거지 꺼리가 이만큼 쌓여있는데, 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칼은 도마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갑자기 참을 수 없는 식욕이 밀려왔다. 뭔가 베어먹고 싶은 욕구, 내장을 적시고 싶은 욕구....’(77p)
그렇게 딸은 사과 아주 맛있게 베어먹는다. 씹는다.
10
어제 도서관에 앉아 리뷰를 짧게 메모하고 넘어가려고 앉았는데, 생각이 담쟁이 덩쿨처럼 세월과 기억의 담을 타고 들어와 글이 이렇게 길어져 버렸다. 이것만 쓰고 가야할 것 같다. 도서관 문이 곧 닫을 시간이다....
부엌의 칼을 볼때마다 김애란의 소설이 생각난다. 그리고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이런 소설이 좋은 소설이 아닌가! 일상의 한 편련에 의미를 부여하게끔 하는 소설 말이다...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