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 1
이인화 지음 / 살림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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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 전에...

  그의 글에 굶주렸던 무수한 시간들. 그 어두운 공백을 뚫고서 내 눈알에 들어와 박힌 이인화의 ‘인간의 길’. 돈의 궁함을 면죄부로 삼아 구입을 늦추다가 이제야 구입한다. 간헐적인 빗방울이 시내를 둘러싼 제일서적에서...98.10.21....

 

  읽고 난 후에...


이인화의 이 작품은 한 독재자가 3대에 걸쳐 밀려온 개인적인 사(史)와 함께 그가 끼고 있었던 시대적인 사(史)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 대한 무지한 나에게 소설은 조금이나마 ‘과거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는 착각을 일으켰다.

  소설 속에서 보인 작가의 주도면밀한 구성과 전개, 특히 뛰어난 표현력이 내 지성을 펌프질하게 했다. 소설의 끝이 여운의 다발이 되어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독서의 개울’에 발을 담구었다는 시원함이 있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 근대사와 현대사를 넘나들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인화의 글에 다소 농후한 성숙미가 보이긴 하지만 조금은 현학적인 표현들이 걸리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 작품의 탁월함’에 누를 끼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랜만에 ‘맛있는 소설읽기’를 먹어치웠기에 지적 포만감이 인다.

1998년 10월 22일, 목요일
Written By Kar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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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교양 (컬러판)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인성기 옮김 / 들녘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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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대한 책, 700페이지 넘는 책에 대해 무엇을 쓸까?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에 대한 느낌을 써야 한다는 강박obsession기제가 있었다. 내가 작가이거나 평론가는 아니더라도 책을 읽고 난 후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은 철칙으로 삼는 부류의 인간들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억보다 펜이 강하다’는 격언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다.
  무엇을 쓸까? 책에 나오는 많은 문장들과 이야기들을 들먹이면서 좀 더 밀도 있게 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지독한(?) 다듬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 없이 편하게 생각나는 대로 흔적을 한 번 남겨보고자 한다.

 

교양이 없다? 교양지식이 없다?-아찔소 시즌3를 보고서


  오늘 우연히 퇴근을 해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아찔한 소개팅 시즌3’를 보게 되었다. 익히 다들 알겠지만 퀸가나 아니면 킹가 한 사람을 두고 여러 명의 남자 혹은 여자가 그 사람의 마음에 들도록, 선택당하도록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오늘은 퀸가가 등장했고 6명의 남자들이 등장했다. 거두절미하고 20대의 한 남자와 26살의 대학생이 등장한다. 첫인상을 보기에는 20대의 남자가 개인적으로 훨씬 호감이 갔다. 하지만 23살의 심리학을 전공한 퀸카는 특이한 2단계 테스트를 치뤘는데 이른바 ‘교양시험(?)’이라고 할까? 솔직히 그것은 교양도 아니었다. 고급적인 지식도 아니었고 아주 단순한 영어문장 해석과 FTA(Free Trade Agreement)의 약자는 무엇을 뜻하냐? 뭐 이런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20살의 청년은 이런 것에 대해 진짜 무식했다. 영어와 공부와 기초지식과는 담을 쌓은 인물이었다. 한국의 수도 서울의 영어철자도 ‘soul’로 대답하는 무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성격적인 대담함으로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퀸가의 마음에 들었다. 퀸카는 교양의 수준을 따지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격과 매너와 인간관계의 자질이었다. 20살의 그 친구는 정말 교양에 대해선 너무나 무지한 친구였다. 학창시절동안 공부는 안하고 40번이나 되는 연애경험을 가졌고 무에타이 챔피언을 했다니...그 친구가 과연 어떤 인생의 여로를 가져왔는지 그림이 그려진다. 심하긴 심했지만 그 친구는 호감가는 성격으로 승부해서 결국 퀸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3살이나 많은 연상녀의 마음을 말이다. 결국 그 친구는 군대를 다음달이면 간다고 후에 밝히고는 퀸카가 아닌 ‘돈가방’을 선택했다. 돈가방? 그 안에는 100만원도 아니고, 10만원, 1만원도 아니고 ‘100원’이 들어 있었다! 정말 웃겼다.
 

  결국 Prologue는 텔레비전 이야기구나!


  디트리히 슈바니처는 ‘교양’이란 책에서 교양인이라면 텔레비전의 무수한 프로그램에 대해서 담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가십과 이야깃거리의 주제가 되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에 묻어가는 삶은 그 사람이 과연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폭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어쩔 수 없이 젊은이들이 즐겨보는 TV프로그램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의 포문을 열게 되어 버렸다.

 

교양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

  20살의 이 청년, 정말 교양이 없다 정도가 아니라 ‘기초지식’조차도 없는 친구였다. 그 친구 그러나 매력이 넘쳤다. 교양은 이 친구처럼 ‘성격과 외모와 끼’로 여자친구와는 대충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교양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느정도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블루칼라의 노동자계층에 종사하진 않는다. 그런 업종에 종사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교양은 있긴 하다. 직업에 비례하는 것이 교양은 아니지 않는가?

 

  교양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인가?


  하지만 오늘날의 시대에 디트리히 슈바니처가 이야기하는 논점처럼 ‘교양’운운하면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부류가 얼마나 있을까? 오늘날의 교양은 디트리히 슈바니처가 이야기하는 역사의 이해, 문학에 대한 앎, 철학, 예술, 정치, 경제, 언어 등의 포괄적인 접근 보다는 다소 협소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저자는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장편소설이 대중의 인정을 받으면서 예술형식으로 승격했고, 영화는 1960년대에 와서야 지성인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미국 문화산업의 산물의 그늘에서 벗어나 교양의 자리를 꿰찼다고 말한다. 

 

  텍스트에 의한 교양과 미디어에 의한 교양


오늘날의 현대인들, 젊은이들에게는 텍스트에 의한 문화보다는 미디어에 의한 문화로 인한 교양의 소양을 더 많이 쌓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현세대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미디어는 텍스트에 근거하여 출발한다는 것이다.
 

교양에 대한 재해석과 재구성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현대에 있어 어떤 사람이 교양이 있는가? 교양에 대한 재해석과 범주 설정이 재구성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과연 오늘날의 외모지상주의와 물질지상주의의 판을 치고 있는 지상에서 ‘교양’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나름대로 지성mind의 도구를 내팽개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발전을 해가는 사람들로 국한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은 돈에 의해, 외모에 의해 그 사람이 ‘교양이 있다, 교양이 없다’로 판단되어질 수 있는 분위기의 사회이다. 그만큼 돈mammon은 시대의 우상으로, 시대의 커다란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이것은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가 없다.

돈으로 교양을 살 수 없다 

 

  돈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교양, 지성


  하지만 지성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겐 스승인 플라톤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재정적인 여유와 금전적인 확보가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자발적인 연구와 독서와 공부가 없었다면 과연 그가 우리의 지성사에 획을 그을 인물로 남았겠냐는 것이다.
  교양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외모지상주의와 물질지상주의 세상 가운데서도 교양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이 교양은 한 인간 개인의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지 간에 어느 정도의 지성의 연마와 개인적인 수고의 공력이 있어야 소유할 수 있는 소양임을 밝히고 싶다.

 

   Text가 말하는 교양


   이야기가 우리 현시대 즉 Context에 많이 국한되어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럼 ‘교양’이란 책,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쓴 Text에서 말하는 교양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보자.
  디트리히 슈바니처는 1977년까지 함부르크 대학의 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표제를 내걸고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저자는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교양'에서 먼저 교양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조망해주고 있다. 



역사는 두 가지 기원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천지창조 그림이다


  역사의 기원


  세계사의 기원을 헬레니즘과 히브리즘에서 즉 두 문화, 두 민족, 두 텍스트에 기초를 두고 출발한다. 그러면서 세계사를 훑고 있다. 인류의 수많은 텍스트들은 그리스로마의 신화와 성서로부터 수많은 아이디어와 source를 지금도 물려받고 있다. 이것은 인류의 끝까지 계속될 것이다. 저자가 독일인이기에 다소 편파적이긴 하지만 세계사를 유럽사에 국한시키지 않고 말 그대로 서양사 전체를 터치하려고 노력은 한다. 물론 동양사는 건드리지 못했다.



 

  교양은 성논쟁(여성)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제 1부 지식에서는 이러한 서양사에 대한 방대한 조망과 아울러 유럽의 문학, 연극, 미술사, 음악사, 그리고 철학사와 과학적 세계상까지 다루어준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에 대한 이해와 수많은 분야에 대한 지식적인 면모도 아우르지만 특히 1부에서 ‘성논쟁의 역사’라는 주제의 글을 삽입하고 있다. 그는 교양을 이야기하면서 인류에 있어 ‘여성’에 대한 언급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밝히고 있다. 그는
“...전체적으로 보면, 문화에 미치는 여성들의 강력한 영향력은 늘 사회에 문명 수준을 눈에 띄게 높여 놓았다는 점에선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 말한다.


여성의 성이 교양의 수준을 더없이 업그레이드 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2부 능력에서는 ‘교양인들이 의사소통할 때 사용하는 규칙들: 절대로 건너뛰어서는 안 되는 장’이라고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제1부 지식은 540페이지 분량을 할애하고 제2부 능력은 그 나머지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교양의 큰 장애물, 텔레비전


  저자는 앞에서 내가 잠시 이야기했던 텔레비전의 한계에 대해서 언급한다. 왜 텔레비전이 바보상자인가? 왜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들이 약간의 지루함과 얼마되지 않는 순간들을 참지 못하고 조급해하는지에 대한 진단을 저자는 ‘미디어’에 두고 있다. 미디어의 핵인 텔레비전은 시청자들을 조금이라도 지루하게 해서는 아니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역동성이 생명이다. 그러기에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텍스트 사이에서 미디어에 익숙한 젊은이들은 거기서 오는 약간의 불편함도 감수하기를 꺼리는 것이다. 저자는 글과 말, 구어와 문어가 주는 의미가 또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교양은 템포늦추기 즉 서행의 훈련이 요구된다.


‘독서는 완전히 몸에 배기까기는 조깅처럼 매일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독서는 조깅과도 같다. 훈련이 요구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저자가 ‘세계의 여성과 남성을 위한 지역학’의 장에서 유럽과 미국, 각 나라에 대한 지역적인 특성과 민족적인 차별성과 기질을 말하는데, 여기서 저자는 자신이 독일인이지만 다소 객관적인 시각으로 각 나라의 스타일을 이야기해준다. 나는 독일인, 독일민족이 세계대전에 대한 깊은 회한과 자성의 빛을 띠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실패의 그림자가 다소 깊다는 것에 놀랐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독일인들의 히틀리의 망령이 잔재해 있다는 데서 또 한 번 놀랐다. 

 

  교양의 또 다른 장애물들


  디트리히 슈바니처는 교양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을 ‘텔레비전(미디어)’라고 꼽았고 또한 남성들에게 있어 치명적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 모든 성에 차이는 있겠지만 자동차를 비롯한 몰취미의 영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남성에게 있어 교양의 심각한 장애물은 바로 스포츠다. 

 

  교양은 의사소통을 풍성하게 하는 양식이다


  저자는 ‘교양의 포기할 수 없는 전제들 중의 하나는 현대사회에 대한 심도 있는 인식이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은 현대사회를 산업 혁명 이전의 유럽사회와 비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양은 이를테면 ‘자기 진단, 자가 진단’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를 안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상태를 자가 진단했어야 했다. 자가 진단의 능력이 또한 교양의 능력이기도 하다. 이것은 단순히 한 인간의 개인 안에서는 그치는 자가 진단의 능력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차원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양은 다른 이들과 대화를 단절시키는 고급스럽고 오만방자한 그 어떤 지식의 덩어리가 아니라 모든 관계-한 개인 안에서의 자아와 자아의 관계,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사회), 개인과 우주전체 등-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의사소통의 양식’인 셈이다.

교양은 대화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양식이다.

 

  마지막 대목에는 연대표와 문화표와 추천도서가 적혀 있다. 디트리히 슈바니처는 ‘세계를 변화시킨 책’들의 주제와 요약서를 독자들에게 만들어주고 있고 ‘더 읽으면 좋은 책’으로 몇십권의 책을 추가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 나온 책들은 전부 저자의 지역중심성이 강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온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그 중에 곰브리치의 ‘세계사’를 한 번 읽어볼까 싶어 인터넷에 주문해 두었다. 기대된다. 


  교양, ‘Long Run’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나는 30대에 이 책을 읽었지만 20대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부러울 뿐이다. 교양의 독자들이여, 롱런하시길!!!
 

여담...이 책은 내가 대구 상인동 롯데백화점에서 몇년전에 선을 보고 난 후 구입한 책이다.

맘에 대개 안 들었으니 이렇게 두껍고 비싸고 양장본의 책을 구입해서 대리만족을 얻을라고 했나? ㅋㅋ


Written By Karl21

이 글은 네이버 감성지수 36.5글에서도 게재된 글이기도 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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