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난다, 생각나. [고백]말이지? 내가 그 때 추천해준 책이잖아. 나도 읽으면서 엄청 놀랐었어. 그 때는 항상 최고의 책만 사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서는 책을 골랐거든. 돈이 부족했었으니까. 그 책을 선택한 것은 잘한일이라고 끊임없이 생각했어. 평가를 이곳저곳 다 뒤지면서 골랐거든. 미치오 슈스케의 책도 그렇게 고른거야. 그건 그렇고, 데뷔작이 어쩜 그렇게 대단할 수 있디? 도서관에서 반 정도 읽다가 시간이 다 되어 덮었는데 도저히 그냥 잘 수가 없겠더라. 너는 어땠어? 그래그래, 딱히 어느 한 부분이 엄청나다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냥 대단한 작품이었어. 사회의 문제점을 콕 찝으면서 또 그것을 엄청난 줄거리와 흡입력으로 써내려가다니. 작가가 그 책을 쓰면서 조연들까지도 그, 뭐더라. 아, 그래. 주민등록등본을 작성했다는거 아냐. 어떻게 보면 대단한 작가지. 데뷔작에 공을 들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읽었던 데뷔작들은 약간 실망스러운 면이 많았거든. 그것들에 비하면 이 작가는 데뷔작부터가 벌써 추리소설에 한 획을 그을만한 작품을 써냈으니 너무 기대돼. 맞다, 데뷔작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얼마전에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 빌려줬지 않았나? 그치, 어땠어? 하하, 나도 솔직히 중간에 읽다가 그만뒀어. 도저히 계속 읽을만한 재미요소가 눈에 보이질 않더라구.

 

 

 

 

               내가 책 사들이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아직 깊이 들어가본 적이 없으니까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만 보고 책을 샀어. 물론 그 둘이 양대산맥인 것은 사실이고 이름만 보고 사서 건진 책도 있으니까 말야. 예를 들어 모방범이라던가? 게다가 보통 추리소설 입문을 일본으로 접할때는 게이고의 소설을 많이 읽잖아? 제일 무난하면서도 잘 읽히고, 또 많으니까. 너도 아마 게이고의 '유성의 인연'으로 추리소설의 길을 걸었었지? 내가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다만 그 때 너의 흥분은 정말 대단했었어. 반전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면서 호들갑을 떨었었지. 그 때 우리학교, 우리학년에서 아마도 나 혼자 추리소설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너는 내게 왔었을 거야. 나는 물론 게이고라는 작가를 알고있었고. 내가 그 작가를 처음 접한 작품은 '악의'였어. 나도 그 당시에는 추리 소설에는 초보나 다름 없었고 다양한 이야기를 접해보지 않았었기에 충격이 컸어. 딱히 추리소설만의 반전이나 그런 것보다는 소재에 더욱 놀랐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 상황을 그려내는거야. 지금 생각을 더듬어 보자면 요즘 독하게 이슈가 되고있는 청소년 성폭행이 내용이었던 것 같아. 생각해보면 끔찍했던 이야기지. 그래서 내가 더욱 충격받았기도 했고.

               글 전개 방식도 좋았지. 그 때 내 입장으로는 그냥 좋기만 했어. 그 작가에 대한 무한신뢰에다가 무한기대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었기에 재미없어도 무의식적으로 '재밌다'하고 생각은 했어. 그렇다고 악의가 재미없었다는 건 아냐. 문제는 그 다음 작품이었지. 그 다음 작품이 '동급생'이었는데 아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었어. 내가 생각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미지가 와장창 깨져버렸기 때문이야. 나는 그가 엄청난 반전의 소유자라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추리소설은 그가 최고라고 생각해왔지. 물론 소문만 듣고 생각한 거였어. 실제로 읽은 책은 한 권 뿐이었는 데다가, 그게 그럭저럭 나를 만족시켜주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반전이 영 별 볼일 없더라구. 허무하기까지 했어. 마치 영화 '언노운'을 보았을 때 처럼. 영화 '언노운'알지? 완전 영화 개봉했을 때 [스포일러를 말하지 말라]하면서 정말, 가히 엄청나다 할 정도로 띄워주었잖아. 나는 거기에 또 반해서 영화를 굳이 찾아보았어. 책을 사려다 사려다 결국 못사서 영화를 봤지. 그런데 결과는? 충격적이었어. 나 오늘 충격적이라는 말을 되게 많이 쓰는데 심적으로 충격이 올 수 밖에 없었지. "이게 반전이야??! 이게 그 띄워주던 그 엄청나고 금밀하다는 그 반전이라고?!"하면서 패닉에 빠질 수 밖에 없었어. 그 정도로 허무하면서도 끔찍한 반전이었지. 또 다른 영화에 비유한다면 반전은 아닐지라도 '미스트'라는 영화의 결말을 보는 것과 비슷했어. 너도 봤었지? 충격적이었잖아. 바로 게이고의 '동급생'도 나에겐 그런 것이었어. 물론 그보다 임팩트는 적었지만. 내가 반전과 결말을 기다리면서 새벽 4시까지 읽어내려갔는데 결말이 허무했으니 정말 때려치워버리고 싶었지. 그렇게 끔찍했다는 건 아냐. 작가 특유의 흡입력은 살아 흘렀으니까 괜찮았지. 내가 그에게 기대했던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봐. 게다가 그 때부터 점점 나는 눈을 넓히고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까지 알게되었어. 우타노 쇼고가 보여주는 반전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나의 이상형이었어. 그의 작품을 읽고는 정말 울었어. 학교 자습시간에 보고 있는데 울어버렸어. 반갑고, 그런 작품을 써준데에 감사했찌. 그 때부터 히가시노 게이고는 내 책장 구석진 곳으로 숨어들었고.

 

 

 

 

               그렇게 히가시노 게이고를 멀리하다가 문득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작품을 내가 전부터 간과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마침 또 내가 읽은 그의 작품들은 그의 것들 중에서도 유독 지루하기로 소문난 것들이었어. 동급생은 언급조차도 되지 않는 작품이었지. 즉 나는 작가의 재미없는 작품만 읽고 그 작가를 평가한 거였어. 최고의 작품이라는 '용의자 x의 헌신'은 읽어보지도 않고 말야. 결국 한 번 읽어보고 결정하자 해서 며칠 전에 중고로 한 권 사들였어. 막상 사고보니까 또 흥분되고 긴장되더라구. 내가 책을 사들이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거리기 시작할 때부터 추리소설이라하면 그 작품이 빠지지 않는 곳이 없었으니까. 내가 그 때 왜 안 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니까. 하여튼 그 흥분을 못 이겨서 바로 첫 장을 폈어. 아마도 책 소개가 천재 수학자와 천재 물리학자였나 경찰이었을거야. 그래서 나는 천재 수학자가 살인을 저질렀구나 하고 생각했었어. 3년 동안이나 말이야. 그래서 첫단락을 읽고 있자니 약간 어색하더라구. 그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말야. 오랫동안 뿌리 박힌 나무를 제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또, 한 가지 더 있었어. 천재 수학자와 천재 물리학자의 뜨겁고 치열한 대결이 시작한다! 하는 문구를 읽고 생각나는게 뭐있어? 나는 수학자가 엄청나게 비열하고 간사하고 나쁜 놈이구나하고 생각했어. 비열하고 간사한 건 상황에 맞지 않는 듯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게 뭔지 알거야, 아마. 그런데 책에서 그는 엄청나게 부드러웠지. 여기서 또 이질감을 느껴버렸어. 책 한 권을 읽는데 이랬던 적은 처음일거야. 역시 책은 딱 보자마자 읽어야지, 이렇게 3년 동안 살까 말까 고민하면 안돼. , 들려주라고?

 

 

 

 

 

 

 

 

 

               일단 이거부터 알아 둬. 이 책이 얼마나 유명하냐, 하니 영화로도 만들어졌어. 책을 영화로 만들었을 때 성공한 건 거의 없어. 내가 아는 성공작은 해리포터나 도가니, 트와일라잇 정도 뿐이니. 아참 한국으로는 친정엄마도 좋았어. 각설하고 영화는 보진 않았는데 대충 사진을 보다보면 누가누군지는 알잖아? 이 영화는 참 캐스팅을 잘했더라고. 저 검은 티의 여배우는 내가 생각한 책의 주인공과 거의 흡사해. 뒤의 딸도. 아아, 미안해. 내가 소개를 안했구나. 이 책은 이 두여자가 문제야. 전체 스토리가 이 두여자로 인해 쓰여져. 앞의 여자는 야스코이고, 뒤의 여자는 야스코의 딸인 미사토야. 엄청 착하고 평범하게 생겼지? 그런데 이 두여자한테는 문제가 한 가지 있었어. 바로 도미가시 신지라는 야스코의 전 남편이지. 야스코는 현재 아는 분의 도시락가게에서 카운터로 일하고 있지만 전에는 호스트였어. 그것도 꽤 이뻐서 잘나가는 호스트였지. 도미가시는 그 시절에 만난 남자야. 처음에는 사업도 번창했었기에 돈을 잘 썼어. 미모도 훤칠해서 야스코는 아마 한 눈에 반했겠지. 첫눈에 반하지 않았더라도 서서히 그런 기류가 생겼을거야.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했고 미사토를 낳았을거야. 잘 기억이 안나네 미사토의 아빠가 도미가시였나? 아마 그럴거야. 그런데 사업이 망해버린거야. 도미가시는 그때부터 본성이 나왔지. 야스코의 돈을 뜯어다가 도박으로 다 날리고 폭력에 욕설까지, 여자에겐 해서는 안 될짓을 했지. 결국 야스코와 미사토는 도망다녔어. 그러다가 현재 사는 집까지 온거고. 편안하게, 이제는 도미가시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났겠지 하고 맘 편히 살아가고 있을 때 도미가시가 다시 나타났어! 끈질기다, 참. 나는 이런 남자가 되지 않아야지. 어우, 이런 남자는 내가 봐도 주먹을 한 대 날리고 싶어. 한 여자의 인생을 그렇게나 망쳐놓고도 또 다시 망치려고 찾아오다니. 도미가시가 변명이라고 댄게 뭔지 알아? " 나 이제 변했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 " 그래놓고서는 제대로 된 직장도 아직 구하지 못한 상태였어. 야스코는 당연히 그를 받아줄 수 없었지. 그렇게 만나자마자 퇴짜를 놓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어이쿠야, 이 놈이 집까지 찾아버렸네? 모녀는 궁지에 몰렸어. 아 참, 미안 아직까지는 아냐. 도미가시는 간접적으로 돈을 요구했어. 소파에 앉아서는 다시 합치자는 둥 이상한 소리만 지껄여댔지. 야스코가 십만엔을 꺼내자 그제서야 가려는 듯 일어났어. '나중에 또 올게'라는 무시무시한 한 마디를 남기고서는. 이 말을 듣고서는 못 참았나봐. 미사토는 꽃병을 들고 도미가시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어. 미사토는 야스코의 딸이라고 했지? 배드민턴을 하기 때문에 팔 힘이 좋아. 하지만 그 도발은 도미가시를 미치게 만들었어. 그는 결국에는 꾹꾹 눌러오던 본성을 드러낸거야. 미사토의 목을 졸랐지. (읽은 지 며칠 되서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목을 졸랐다거나 계속 때렸을거야) 그 모습을 보는 야스코는 또 어떻겠니. 도미가시 못지 않게, 아니 더욱 심하게 이성을 잃었을거야. 염치가 없고 뻔뻔한 것도 싫지만 자신의 딸을 죽이려고 하는 모습은 정말 인간말종 이하였지. 결국 그녀는 살인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선택했어. 두 모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살인 말고는 그들이 그에게서 벗어날 방도는 없었으니까. 아아, 교살이었어. 요즘 전기장판 많이 깔잖아? 그 연결선, 그걸 코드라고 하던가? 그걸로 목을 졸랐지. 일본에서는 고타츠. 

 

 

 

 

               자, 이제 전체 스토리를 12장으로 따진다면 1장 온거야. 너무하지? 그냥 소설 한 편 써도 되겠어. 이건 사건의 발단일 뿐이야. 도미가시의 죽음, 야스코 모녀의 살인. 이것으로 소설 한편의 끝이 정해져. 문제는 이 살인에 천재 수학자천재 물리학자가 어디에서 나타나냐 이건데... 내가 또 이야기하는 걸 빼먹었구나. 이러다가 오늘 우리 밤 새야겠어. 할 이야기는 너무 많이 남았고, 이거만 하고 있을 수는 없고. 할 수 없지. 밤 새는 수 밖에.

 

 

 

 

               일단은 천재 수학자 이야기를 먼저 하자고. 천재 물리학자는 어느샌가 나와있기 때문에 딱히 집중해서 안 읽어도 이런 부분은 금방금방 캐치하고 넘어갈 수 있어. 그럼 나는 지금부터는 훅훅 넘어가야겠어. 솔직히 1/12 정도의 내용을 설명하는데 내 목 아프게 오래 떠드는 건 듣는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어. 지금 시간이 12시 반인데 너 안 피곤해? 나는 지금 졸려 죽을 거 같애. 그래도 너가 추리를 아끼고 좋아한다고 하니까 내 목을 쥐어 감싸면서까지 이야기를 멈출 수 가 없겠어. 그래, 시작한김에 끝을 보자. 

 

 

 

 

 

 

 

 

 

               세련되고 젊어 보이는 남자, 즉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남자가 천재 물리학자고 그 앞의 후덕해보이는 사람이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야. 책에서는 살찌고 못생기게 표현되었는데 여기서는 그래도 일본에서는 평타 이상에 속하는 동네 아저씨처럼 나와서 더 보기 편했어. 영화에서까지 뚱뚱하고 기름기 좔좔 흐르게 나오면 이시가미가 너무 불쌍할테니까. 천재 물리학자의 이름은 유가와야. 일단 이름은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이시가미가 야스코 모녀의 사건에 관여하게 된 사유를 이야기해줄게. 이시가미는 야스코를 좋아해. 이게 이유야. 아직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 자세히 설명해줄게. 또 다시 말하자면 이시가미는 야스코를 좋아해. 그래서 매일 출근길에 그녀가 일하는 도시락 가게에 들려 도시락을 사가지. 야스코는 눈치채지 못하지만, 도시락 가게의 사장과 그 부인은 눈치를 챈 거 같아. 어느날은 그 손님이 다녀간 직후에 야스코에게 " 그 손님이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 "라고 말해줄 정도였으니 그 눈빛이 짐작이 가겠지? 그렇게 그는 야스코를 좋아하고 신경써왔지. 아마 그녀의 집에서 들리는 소리들도 꽤나 신경쓰고 있었겠지. 그랬으니 야스코 모녀가 도미가시를 죽인 직후에 그녀의 집 문을 두드렸을 테니. 야스코가 얼렁뚱땅 둘러대자 (그때는 벌써 야스코 모녀가 도미가시의 시체를 고타츠로 말아놓은 상태였어) 일단은 물러갔지만 다시 찾아와서는 무작정 쳐들어 갔지, 그녀의 집으로. 그리곤 직접 목격한 것처럼 살인현장을 하나하나 말하더니 해결책을 생각하기 시작했어. 야스코는 따를 수 밖에 없었지. 자신의 딸이 자수를 엄청나게 반대했기 때문이야. 미사토도 도미가시가 목 졸릴 때 그의 손을 잡고 있었기에, 엄마가 자수를 하면 나도 공범으로 철창행을 가게 된다고 말하며 엄마를 설득했어. 물론 자기보다는 엄마가 걱정됐었겠지. 나중에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를 통해서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시가미의 어수룩한 외모 뒤에는 백년, 아니 천년에 한 번 나올만한 두뇌가 회전하고 있는 중이었어. 뭐, 그랬으니 천재 수학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 당연하겠지. 그 명석한 두뇌로 그는 철저히 야스코를 위한 알리바이, 트릭을 준비했어. 가히 엄청나다고도 말할 수 있지. 어라? 잠깐만,

 

 

 

 

               미안해. 전화가 좀 왔어. 벌써 박완서 작가님의 1주기가 며칠 남지 않았다네. 바로 어제가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꼭 1년이 되던 날이었는데. 마침 또 오디오에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혜진이 부른 '술이야'가 흐른다. 괜히 슬프네. 이 곡은 듣기만 해도 슬픈데 나한테는 한 사건이 연결된 곡이라서 더 마음에 와닿아. 가사를 곱씹어보다보면 어느샌가 가슴이 먹먹하지. 아, 됐고. 다시 책 이야기 들어가자.

 

 

 

 

               곧 야스코에게는 경찰들의 의심공세가 쏟아지기 시작해. 사건이 일어난 밤의 알리바이와 그 증거를 캐내거나 그녀의 얼굴도 유심히 살폈지.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어. 야스코가 자칫 잘못해서 당황하는 표정을 드러내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이시가미가 어떻게 훈련시켰는지 그녀는 무척 담담했어. 책으로 읽기에도 그녀의 표정이 그려지더라고. 도미가시라는 전 남편이야기에 불쾌해하는 그 표정이. 나는 또 걱정했어. 그래도 전 남편인데 이렇게 무덤덤해도 될까. 다행스럽게도 경찰은 그 점을 당연하다는 듯이 넘어갔어. 그것도 '' 남편이기 때문이겠지. 여하튼 이시가미는 참 많은 걸 시켰나봐. 영화관에 라면집, 노래방까지. 야스코 모녀도 참 힘들었겠어. 아마 영화관에서는 영화의 주인공 턱수염 끝자락만 보다가 나왔을 수도 있고 노래방에서는 노래 반주만 세차게 틀어놓고 딸과 함께 앉아 기도를 했을거야.

 

 

 

 

               이시가미는 철저했어. 그것도 엄청나게 치밀했지. 영화의 반권의 은닉 장소까지도 하나하나 명령했어. 또 야스코 집의 고타츠와 자신의 것을 바꾸는가 하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공중전화로 야스코와 소통했지. 그렇게 해서 며칠동안 버티는 것이 성공했어. 그런데 갑자기 이시가미에게 불똥이 튀기 시작했어. 아무리 찾고 찾아도 알리바이가 맞질 않자 경찰들은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눈을 돌리기 시작한거야. 하지만 직접적인 이유는 따로 있어. 바로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유가와는 이시가미와 같은 대학교를 졸업했어. 그리고 지금은 모교의 교수로 위치해있고 야스코를 담당하는 형사와는 절친한 친구사이지. 아아, 맞다. 야스코 담당 형사도 그 둘과 같은 대학교 출신이야. 담당 형사도 야스코네 집에 탐문 수사를 갔을 때 동기라는 사실을 알기는 했지만 인문계였던 자신은 자연계를 경멸하기에 말을 아꼈었지. 자, 그러면 어떻게 유가와가 이시가미를 의심하기 시작했느냐고 하면 나는 유가와의 빠른 관찰력때문이라고 해야겠어. 그는 유일한 이시가미의 친구야. 그래서 이시가미에 대해 조금은 알고있었지. 소위 말하는 베스트 프렌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가 외모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어. 그래서 이시가미가 야스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단번에 눈치챘어. 평소 다른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상관쓰지 않던 그가 야스코의 가게에 가게되자 자신의 스타일을 걱정하는 듯한 말을 내뱉게되지. 일반 사람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테지만 유가와는 아니었어. 이상하다는 사실을 바로 캐치하고는 그에대한 의심을 품기시작했어. 그렇게 극 전체의 흐름이 싹 바뀌게 돼.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서도 주인공의 사소한 의심으로 내용이 달라지게 된 것처럼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작품도 그와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되지.

 

 

 

 

 

               헌신(獻身)     몸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잘못 그림을 그렸던 일이라는 것을 지금에야 깨달았다. 너무도 정교해서 마치 수학 공식과도 같다 생각했던 그 그림이 단 한 방울의 먹물로 망가졌을 때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먹물을 감싸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치 못했다. 그 먹물이 언제 그림에 튈지까지 계산하지 못한 나의 착오였다. 일이 틀어진 것은 전부 나의 착오였다. 먹물은 나의 손놀림에 의해서 그림에 튄 것이다.

 

 

 

 

 

 

              그의 작품이 늘 그렇듯 흡입력은 어느 작가의 것보다 뛰어나. 게다가 그의 작품에 비해서 반전도 그럭저럭 읽어줄만해. 나는 사실 감탄하긴했어.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한 신뢰가 회복된 건 아냐. 다작(多作)을 하는 것도, 우리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것도 좋아. 작품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아니야. 나는 그저 그의 작품을 읽고 감탄할 만한 장면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소한 의견을 품고있을 뿐이지. 그래, 그런거. 그래도 이것이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매력인걸 어쩌겠어. 무작정 그를 좋아하고 읽는 수밖에.

 

 

 

 

               미안했어. 내가 너무 횡설수설 이야기를 해서. 듣고 나서 더 책에 흥미가 떨어졌지? 누군가가 그러더라. 리뷰는 읽는자로 하여금 책을 읽지 않도록 만들어야한다고. 그렇게 만든거같아서 좋지만 영 찝찝하다. 그래, 이제 헤어지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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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1-27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가... 누구였더라? - 이 글 읽고 문득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내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헷갈려요. 아, 맞아. 신간서평단 도서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벽 거리에서>가 있었구나. 그 책은 개인적으로 별로였는데, 소이진님이 읽으신 이 책은 그래도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싶은 책이네요. 저는 이상한 게, 호평이든 악평이든 리뷰를 읽으면 책을 읽지 않고 싶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답니다. 불구경하는 그런 심리일까요? 'ㅁ'

이진 2012-01-27 22:28   좋아요 0 | URL
헤헤 히가시노 게이고는 꽤 유명할 줄 알았는데 수다쟁이님께서 모르신다니 안타까운걸요. 저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은 거의 다 별로에요. 엄청 흥미롭게 읽은 책은 없지요. 이제껏 4권정도를 읽었는데 그 중에서는 이 책이 그나마 나은 것 같아요. 0

버벌 2012-01-27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는 백야행 말고는 마음에 든 게 없었어요. 그 이름을 보고 저도 여러 책을 샀지만. 움 그의 꽤 많은 책을 사서 읽었지만 늘 실망을 해요. ㅎㅎ 늘 실망을 하고 늘 기대를 하고 늘 구입을 하고. 최근엔 뜸해졌지만. (제가 장르문학을 좋아해요)
미미여사와 게이고. 양대산맥 ㅎㅎㅎㅎ 저는 미미여사를 너무 좋아해요. 그녀의 문체가 좋거든요. 그래서 히가시노의 책을 구입을 않으면서도 미미여사는 읽지 않아도 의무적으로 구입을 해요. 그런 작가가 몇분 있어요 ㅎㅎ

이진 2012-01-27 23:12   좋아요 0 | URL
오우, 비벌님 저와 무척이나 비슷한 독서패턴을 지니신 분이로군요. 말하기 전에 일단 들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저도 장르문학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일단 사들이기 시작한 작가는 읽지 않고, 재미가 없더라도 계속 사요. 실망하고 또 기대하고, 실망하고 또 기대하고.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영 재미가 없는 작가이긴 한가봐요. 제 친구중에도 히가시노 게이고를 참 좋아하다가 데뷔작을 읽고는 영영 떠나버린 친구도 있으니까요. 미미여사는 무척 좋아요. 그저 여성 작가를 편애하는 제 마음일수도 있지만 그냥 좋아요 미미여사는. 읽지 않아도 의무적으로 구입하는 것도 똑같고 말이지요 ㅋㅋㅋ

마녀고양이 2012-01-28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 헤어지자 안녕 에서 엄청 웃어버린.
너무 이쁘잖아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다양해요. 작품마다 느낌이 다르다니까요.
소이진님, 나중에 흑소소설, 괴소소설, 독소소설도 한번 읽어보셔요...
전 굉장히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예요. 좀 독특하고 기괴하고 뒤통수도 치고. 단편이예요.

X의 헌신도 좋죠..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은 솔직하게, 시간 땜빵으로 엄청 좋아요.
그치 않나요? 전 그의 작품을 거의 30권 이상 읽었지 싶은데. 이사카 고타로도 좋아해요.
물론 온다 리쿠의 열혈 팬이지만, 소이진님은 좋아하지 않으실거 같아서. ^^

이진 2012-01-29 00:35   좋아요 0 | URL
제가썼지만 너무 오글거리는 멘트어요.
흑소, 괴소, 독소는 눈 여겨보던 것들이었는데 당췌 손이 가질않는걸요.
한정된 돈에서 최고의 작품들만 쏙쏙뽑아내야하다보니.. 어쩔수없어요
오오, 시간땜빵용이라는 말이 딱인 것 같아요.
온다리쿠는 사람들 말로는 한 번빠지면 헤어나올수없다며... ㅋㅋ아직 저는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지만요.

노이에자이트 2012-01-2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추리작가일 겁니다.'백야행'은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만들었죠.손예진 한석규가 주연인데 이민정이 무술 유단자로 나오더군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중 <방황하는 칼날>을 권합니다.흉학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이 단지 청소년이란 이유로 성인보다 관대한 처벌을 받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아주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입니다.히가시노의 팬들도 걸작이라고 꼽는 소설이라네요.


이진 2012-01-29 21: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처음에는 히가시노 게이고밖에 몰랐답니다. 재미는 알아주나봐요. 친구들이 "이진아, 이 책읽어봤어? 진짜 재밌더라" 보여주는 책은 전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어요.

<방황하는 칼날>이라. 소년법이라면 일본에서 유명한 작품들에서는 조금씩 섞여있죠. 고백이라는 작품도 소년법에대해 아주 철저하게 다루는터라 정말 심오하게 잘 읽었습니다. 허허, 걸작이라니 한 번 꼭 읽어봐야겠군요. 마침 돈도 쌓였는데 ㅎㅎ

재는재로 2012-01-29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의 전작들 가가형사나갈릴레오 백야행등 초기발매작들은 괜찮은데
요즘 발매되는 백은의 잭이나 새벽거리는 좀 히가시노는 초기작이 더좋다고 생각되네요
흑소,괴소,독소중 그나마 괴소가 낳던데 동화를 재해석한 신데레라를 성공하려고 노력해
성공하는 단순한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기회를 만드는 자로 해석한게

이진 2012-01-31 18:49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에요. 요즘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알게모르게 발매가 되더라구요. 하도 많이 쏟아지다보니 사람들이 읽는 맛도 점점 엹어지는 것 같고 관심도 점점 떨어지는 것 같구요.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히가시노게이고의 위치가 약간 내려온 것 같기도 하지 말이어요.

아이리시스 2012-01-31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봤어요. 유명하잖아요. 완성도도 높았고. 영화도 보고팠는데, 소이진님 이 책에 이렇게 소중한 리뷰를^^ 귀여워요. 잘 봤어요^^

이진 2012-01-31 18:50   좋아요 0 | URL
헤헤, 이 책 정말 유명하죠. 저는 그 유명세를 타고 읽었는데 음, 느낌은 반반이어요. 딱히 소중해 보이지는 않는 횡설수설 리뷰이긴 하지만 감사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