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영화를 별로 보지 않는 내가 그녀가 나온 네편의 영화를 다 본 것은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의식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남자배우는 가끔 너무 잘 생긴게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장동건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꽃미남 배우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려고 온몸을 던졌고, 성공했다. 대한민국에서 연기력 있다고 인정되는 배우들을 보면 깎은 듯 잘 생겼다고 말하긴 힘들다. 최민식, 설경구, 송강호 이 대표적인 남자배우들은 그저 평범한 듯이 생긴 외모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그러나 여배우들은 아직도 인물이다. 연말 시상식에 그녀들이 드레스 입고 모여 있으면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 속에 문소리가 있다는 건 정말 신기하고도 기특한 일이다. 그녀가 고맙다.

내가 문소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당연히 박하사탕을 통해서였다. 내 남동생이 그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할 뻔 해서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에  영화의 줄거리 및 캐스팅된 배우들이 우리집 밥상머리에서 몇번 화제로 올려졌다. 문소리 얘기도 그때 나왔는데 연극을 하고 있다나 뭐라나 했다. 예쁘지 않은 평범한 외모란 얘기도 나왔던 듯.

사실 박하사탕에서 나는 그녀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설경구라는 듣도 보도 못했던 신인배우가 거대한 무게감으로 스크린을 압도했던 것이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 문소리는 어제 사과나무에 나와서 박하사탕 이후 2년 동안 아무도 자길 불러주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드라마에 캐스팅 되긴 했는데 1회분을 찍고 나니 여주인공이 바뀌었다고....("내 실력이 안 되었든지, 카메라를 들이대고 보니 TV에 나갈만한 인물이 아니었든지...."라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 2년동안 "그냥 기다렸다"고 그녀는 말했지만  그건 얼마나 초조하고 절망적인 순간순간이었을까. 그 순간이 없었다면 오아시스에서의 문소리는 없었을지 모른다. 나는 문소리를 보면 오아시스에서 몸을 뒤틀며 경찰서 캐비닛에 머리를 쾅쾅 부닥치는 모습과 함께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주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예쁘장한 외모(우리 학교에도 문소리보다 예쁜 처녀 선생이 한둘이 아니다)에 밋밋하고 조그마한 몸매로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가 되었으니 말이다. 매 순간 온몸을 던지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는 꿈이었을 것이다.

<오아시스>에 이어 <바람난 가족>에서도 문소리는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섬뜩하도록 삭막하고 황폐하고 처연한 모습이라니. 처녀가 어찌 저런 감정을 표현할 수가 있담. 그러다 그녀는 금방 <효자동 이발사>에서 빠글빠글한 오리지날 아줌마 빠마를 하고 어눌한 남편을 다그치는 사나운 여편네로 변신해 있었다.

 보통 여배우들이 꿈꾸는 뽀샤시한 모습으로는 한번도 스크린에 나온 적 없는 문소리를 보러, 나는 잘 발걸음 안하는 극장에 또 한 번 갈 것 같다.  그녀가 다음 영화를 찍고 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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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4-12-12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서재에서 글을 읽고 볼까..생각했는데, 시간을 모르고 있더군요, 내가.

그래서 그냥 넘겼습니다. 사실 열두시 가까운 시간이기도 했고....

전 문소리가 참 이쁘다, 라고 생각하는데...안그런가요?

숨은아이 2004-12-12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다 보니 박하사탕 말고는 본 게 없네요. 언제 한번 봐야지, 하고 늘 생각은 하는데...

하얀마녀 2004-12-1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째 문소리보다 깍두기님 학교에 있다는 <문소리보다 예쁜 처녀 선생들>이란 글귀에 시선이 집중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딸기 2004-12-1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추천 꾹...

nugool 2004-12-13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한 후배가 문소리의 코디네이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요즘은 모르겠는데 그때 들은 얘기로는 그냥 막 돌아다녀도 절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고... ^^(그 당시도 제법 유명세가 있었는데도 말이죠. ) 소탈하고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깍두기 2004-12-13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굴님/그렇군요. 그럴 줄 알았어요^^ 영화하면서도 스텝들에게 신경 많이 쓴다더라고요. <사과> 찍는 장면이 사과나무에 나왔는데 스텝들과 언니 동생 하면서 허물없이 지내는 장면이 꼭 대학 연극반 선후배 사이처럼 보이데요^^

딸기님/고맙습니다. 문소리가 이뻐서 해 주신 거죠?^^

마녀님/ㅎㅎㅎ 당연한 반응인듯(제 말은 절대 뻥이 아니어요^^)

숨은아이님/꼭 보세요. 근데 영화관에서 무지 감동받은 영화도 비디오로 보면 웬지 별로라서....

치카님/물론 이쁘죠. 겉과 속 모두....사과나무에서 보니 그렇더라구요^^


로드무비 2004-12-13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보셨구랴.

기대했던 대로더라고요.

"술은 내 친구!" 하는 것도 그렇고 참으로 사랑스럽습디다.

그나저나 님은 아바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하셨소?

문득 생각나서...ㅎㅎ

깍두기 2004-12-1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덕분에 잘 봤습니다^^ 그런데 생뚱맞게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시오? 그렇게 페이퍼에 써 놓고 보니 더 못하겠던데요. 그래서 후회중이죠. 하고 나서 쓸 걸, 하고...

바람구두 2004-12-13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소리 좋아요!
 
Happy SF - 과학소설 전문무크 창간호 1 ㅣ 과학소설 전문무크 Happy SF
행복한책읽기 편집부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SF를 처음 알게 된 때를 나는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 쯤,우리집에 아버지 친구분이 찾아오셨다. 그분은 그때 가장들이 실직을 하게 되면 가지는 직업(월부 책장수)전선에서 생계를 해결해 보고자 우리 아버지를 찾아오셨던 듯 하다.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 살림에 몇십권짜리 전집을 고르기 어려웠던 아버지는 소박하게 열두권짜리 전집을 골랐는데 그게 광음사의 SF전집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전집 열두권의 제목을 1번부터 말할 수 있다. <별나라에서 온 소년>부터 <우주전쟁>까지. 그 전집에는 선하고 인간보다 훨 나은 외계인부터 기괴하고 파괴적인 외계인까지 갖가지 외계인이 나왔고, 인간이 달에 가는 과정이 나왔고, 화성을 여행하는 소년소녀들이 나왔다. 그리고 동면을 통해 미래로 가는 사람도.....

그 신비하고 경이로운 세계는 어린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그 책을 중학교 때까지 몇십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댔다. 그리고 그걸로 끝. SF와 헤어졌다. 아마 관심을 갖고 뒤져보면 중고교 시절이나 대학 때도 SF는 출간되었겠지만 다른 책들에 눈을 돌리면서(중학교 때는 웬지 데미안이나 생의 한가운데, 이런 걸 읽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SF는 내 관심사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다 몇년 전 쯤, 종로서적엘 갔는데 거기서 이책 저책 뒤지다 그리폰 북스라는 걸 발견했다. 표지가 온통 시커먼 책이었다. SF? 어, 나 어린 시절 SF 좋아했는데.....그 때 산 책이 <중력의 임무>이다. 그 책을 읽은 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그리폰 북스 전권을 모으려고 했으나 그 땐 이미 시리즈의 대부분이 품절, 절판 된 뒤였다. 오호, 통재라. 그때부터 나는 인터넷 서점 곳곳을 뒤졌고, 대형서점이건 동네 서점이건 들르기만 하면 시커먼 책들을 유심히 보기 시작해서 지금은 열권 정도의 그리폰 북스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책이란 나왔다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참 일찍도 깨달았다) 나는 SF가 나오면 대부분 구입을 하여 책꽂이를 채웠다. 그리고 절판된 책들은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보았다. 그런 광기를 부린 덕에 나는 이 책 Happy SF에 나오는 '초,중,고급자를 위한 SF목록' 100여권 중 거의 60권에 이르는 책을 2,3년 새에 다 읽었다.

그렇게 읽어댔어도 내게 SF는 절대 만만한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이과 계통이 아닌 탓도 있겠지만 요즘 나오는 SF 단편집 같은 걸 보면 내게는 두 가지가 다 부족한 듯하다. 첫째는 소설 자체의 문법에 대한 이해이고, 둘째는 SF란 장르의 문법에 대한 이해이다. 두가지가 다 부족한 탓에 오래 전에 나온 SF의 고전은 어느 정도 이해가 쉬우나, 요즘 나온 신간들을 읽으려면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쿼런틴을 읽다가 머리털 다 빠지는 줄 알았다).

리뷰를 쓴다면서 엉뚱한 얘기만 계속 지껄였다. 그래도 언젠간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나와 SF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이 무크지는 나왔다는 것 만으로 별 다섯개를 줄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뭔가 해보려 했다는 것 만으로도. 그러나 테드창 작가선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구입한 나로서는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좀 점수를 깎아먹었고, 여기 실린 우리나라 작가들의 창작 SF에 대단히 죄송하지만 많은 점수를 줄 수 없어서 말이다. 특히 마지막 단편은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나같은 독자를 위해 이 출판사에서 세운 원대한 계획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텐데..... SF 총서 100권, 작가선집, 장편소설, 연대별 앤솔러지.....아, 원대한 꿈이로다. 행책이 망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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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4-12-09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분이 말씀도 안 남기고 추천을....감사할 따름^^

게으름이 2004-12-09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들에 그런 사연이 있었구랴...

깍두기 2004-12-09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다, 얘^^

하얀마녀 2004-12-0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을 위해서라도 행복한책읽기가 망하지 않았으면... 그나저나 60권이라니, 강하시군요.

깍두기 2004-12-1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하긴요, 이쪽 매니아들은 워낙 막강하여 명함도 못 내민답니다^^
 
러버스 키스 1
요시다 아키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무지개를 실제로 보기 전 어린 시절, 일곱빛깔 무지개라 하여 나는 무지개란 것이 빨, 주,노,초, 파,남,보의 일곱가지 색깔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색동띠 같은 것이라고 상상하였다. 그러다 실제로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본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건 일곱 빛깔이 아니었다. 빨강과 주황의 사이에는 그 중 어느 색이라 말할 수 없는 희미하고 아련한 부분이 있었고, 그건 나머지 색들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호한 부분 때문에 무지개는 더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보였다. 그랬다.


사랑하는 감정도 그렇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이름 붙이기에 골몰했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동경인지, 이성애인지 동성애인지.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그렇게 명확히 구분지어지는 것일까?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러버스 키스에는 이처럼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한 때를 앓는 젊은이들이 나온다. 사기사와가 후지이를 보며 가슴 아파하는 것은 동경일까, 사랑일까? 미키가 친구 리카코에게 느끼는 감정은 우정일까, 사랑일까? 굳이 그걸 구분하려 들면 그들의 감정은 별로 안 아름다워 보일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 힘들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리하여 우리가 긍정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은 더욱더 넓어진다. 그들이 말한대로다. "변태는 세계가 넓어진다" 비록 "변태는 세상 살기 힘든"것일지라도 말이다. 변태들이 한 무더기 나오는 이 만화는 나에게 그걸 가르쳐준다.


작가의 그림체도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 약간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려진 인물들, 간결한 선이 그들의 사랑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소중하나 맹목적이지도 않게 잘 표현한다. 그리고 이 작가는 심리묘사에 매우 탁월한 것 같다. 사랑은 꼭 뜨거운 고백이나 프로포즈 만으로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어깨에 올릴까 말까 망설이는 손짓, 수건을 같이 쓰고 싶은 마음, 그 사람이 연주한 피아노곡의 제목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행동 이런 아무것도 아닌 듯한 장면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그래서 앞 장에서 무심히 넘어갔던 한 장면이 다른 장에서는 매우 의미있는 장면이 된다. 그것을 눈여겨 보는 것도 이 만화를 한층 흥미롭게 만든다.  


깊고 서늘한 느낌의 만화를 만났다. 앞으로도 가끔은 꺼내볼 것 같은........무지개가 일곱 빛깔이 아니어서 더욱 아름답듯이, 이름 붙이기 힘든 모호한 여러 모습들 때문에 사랑이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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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4-12-0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한번 읽어볼까..생각중이었어요.

에고~ 읽을 책도 쌓였고, 바뿐디~ ㅠ.ㅠ (그래도 읽고싶다는 생각이..^^)

깍두기 2004-12-07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세요, 치카님. 1시간 밖에 안 걸립니다^^(두 권 완결이어요)

날개 2004-12-0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처음 읽을때보다 두번째, 세번째 읽을때에 더 재밌더군요..^^ 추천하고 갑니다..

로드무비 2004-12-07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손으로 세 번 산 책이로군요.

료 이케미의 <내가 있어도 없어도>(1~3완)도 꼭 읽어보시길...

벌써 읽으셨다고요?^^;;;

깍두기 2004-12-0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저도 두 번 읽고 리뷰 썼어요. 추천 감사^^

로드무비님, <내가 있어도 없어도>라고요? 접수!(당근 아직 안 읽었죠^^)

superfrog 2004-12-07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는 원래 남성적인 느낌의 영화같은 작품으로 유명한데요, 혹시 기호에 맞으시면 바나나피쉬나 야차도 읽어보세요. 완성도 높은 작품이랍니다..^^(러버스키스와는 확연히 다르니 주의하세요.ㅎㅎ)

깍두기 2004-12-07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금붕어님. 그나저나 이 세상엔 왜 이리 재밌는 만화가 많은 걸까요^^
 
바람의 열두 방향 ㅣ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슐러 르귄처럼 고요하고 우아한 SF를 쓸 수 있는 작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SF라 하면 스페이스 오페라 정도를 상상하고 광선총이 난무하는 격전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마 이 작품을 읽으면 어리둥절할 것이다. 강물처럼 흐르며 나뭇잎의 속삭임처럼 소곤거리는 문체로 인간심리를 집요할 정도로 파고드는 글을 접하면 말이다.



이 책은 어슐러 르귄 초기 단편집이라 하는데, 단편집이라고 만만히 볼 것은 절대 못된다. 다 읽고 나서도 도무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르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어스시 시리즈나 어둠의 왼손을 먼저 볼 것을 권한다. 이 단편은 문장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루할 만한 글들이 꽤 되고 완성도도 다 각각이니 말이다.




 <셈레이의 목걸이><겨울의 왕>



광속 여행. 그로 인한 시간차, 내가 광속으로 여행하고 돌아오면 나는 늙지 않으나 내 고향 지구는 몇백년의 나이를 먹어버린다는 물리학의 명제를 가지고 이렇게 우아하며 우수어린, 슬픔으로 가득찬 환타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사람들은 이 세계의 전설과 사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과거는 신화의 영역이 되고 여행에서 돌아온 자들은 불과 몇 년 전 자신들이 벌였던 행동이 신의 몸짓이 되어버린 사실을 깨닫는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전설과 사실을 구분할 수 있을까? 우리의 광속 우주선이 다리를 놓은 시간의 틈을 어두은 광기가 잠식하고, 그 어둠 속에서 불확실과 불균형이 잡초처럼 자라난다" 위의 두 이야기들은 바로 이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신기해하며 들었던 전설이나 동화, "그곳에서 일주일 잘 보내다 왔는데 돌아와보니 70년이 흘렀다"는 이야기 같은. 우주시대의 전설 같은.





<아홉 생명>


 


복제인간에 대한 소설은 여러번 접해 봤지만 르귄의 아홉 쌍둥이는 과학적 사실과는 그렇게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설정만을 빌려왔을 뿐. 르귄은 여기서 인간의 태생적인 고독(나를 완벽하게 이해해 줄 파트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간은 원래 혼자라는)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나는 느꼈다. 그런 인간이 보기에 이 아홉쌍둥이는 너무도 완벽하다. 그들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설명이 불필요하며 능률적이다. 태어나서부터 쏘울메이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 때문에 자멸한다. 인간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존해 온 것이다. 고독은 인간에게 저주이면서 축복이다.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렘의 장편 <솔라리스>와 같은 이야기이다. 행성 전체가 하나의 생명인 것, 그리고 인간의 정신에 간여하는 것, 마치 거울처럼 인간의 감정을 반사하는 것. 인간이 그 존재를 만나 의심과 공포를 발산하였기에 그 존재는 그 감정을 그대로 인간에게 반사한다. 인간은 낯선 자(혹은 미지의 것)에게 신뢰와 호감을 보낼 수는 없는 것인가? 인간의 불신과 의혹은 결국 항상 제 발등을 찍어오지 않았던가? 이 이야기는 결국 우리들 마음 속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숲이, 아직 아무도 탐험하지 않은 끝이 없는 숲이 있다. 우리 각자는 매일 밤 홀로 그 숲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인간의 마음은 우주처럼 미지의 것이다.





<땅 속의 별들>



이 이야기는 땅 밑 어둠 속에서조차 별을 발견해 낸 한 창조적 정신을 가진 사람에 대한 찬사일까? 아니면 어떤 현상에든지 자신의 모습을, 기대를 투영해 내는 인간정신에 대한 연민일까?




<시야>


 


인간이 전 우주를 관통하는 진실(‘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을 깨닫게 되는 것(‘해탈’이라고 할 수 있겠다)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이 단편에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느님 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눈을 뜨고 신의 얼굴을 보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단지 한 인간의 얼굴을, 나무 한 그루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내 인생 전부를 버릴 겁니다...... 내가 원하는 건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나는 내 삶이 다시 돌아오기를, 내 원래 죽음을 원한단 말입니다!” 인간은 여러 방면으로 탐구하고 질문해 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궁극적인 해답은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질문거리가 없는 삶이란, 언뜻 생각하기에도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이 이야기를 읽고서 마음 깊이 속울음을 울지 않을 자 누가 있을까? 이것은 인류가 살아온, 지금의 문화를 이루어 온 과정에 대한 슬픈 우화이다. 너무나 적나라한. 우리는 오멜라스에 살고 있으며, 거기 살고 있는 행복하고도 고상하고 우아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 눈 닿는 도처에는 오멜라스의 한 지하실에 살고 있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고통이 나머지 모든 인류의 행복을 보장한다. 우리는 그 아이를 위해 깊이 슬퍼하고, 참회하며, 고통스러워 하나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진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연민은 그대로 우리의 자양분이 되어 우리의 문화예술을 이룬다. 그것을 견딜 수 없는 몇몇은 오멜라스를 떠난다. 도스도예프스키가 <까라마조프>에서 격정에 차 이야기한 ‘희생양’ 이야기가 여기서 너무나도 처연하게 변주된다. 우리는 그걸 보고 운다. 그러나 오멜라스를 떠나진 않는다. 거길 떠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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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2-0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요... 근데 줄이 좀....알라딘의 버그겠죠?

로드무비 2004-12-0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연민은 우리의 자양분이 되어 문화예술을 이룬다

고작 연민, 문화예술 질료의 그 어이없음이라니!

근사한 리븁니다. 추천!

깍두기 2004-12-0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그러게요, 이 줄간격 좀 빨리 해결해 주세요. 마태님이 알라딘 대주주 아닌가요?^^

로드무비님/맨날 근사하대. 창피하게^^
 
내가 만난 아이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하이타니 겐지로란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란 소설을 통해서였다. 그 책에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서툴지만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여교사가 나온다. 그들이 서로 갈등하고 사랑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매일 아이들을 마주 대하는 나로서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특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장애가 있는 친구를 아이들이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나의 일부분으로 여기게 되는 과정과, 세상을 외면하고 파리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괴짜 소년을 젊은 여교사가 진정한 관심과 동참을 통해 성공적으로 세상 한가운데로 불러내는 이야기, 그리고 쓰레기 처리장 문제를 통해 사람들이 '약자를 소외시키면 그 소외시킨 자가 인간적으로 못쓰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 이렇게 세가지이다.


이번에 나온 책 <내가 만난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평생 체험, 마주친 사람들, 그를 통해 작가가 깨닫게 된 것에 대해 쓴, 어찌보면 자서전 같은 이야기이다. 이 책을 보니,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 나온 저 에피소드들이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겠다.


작가는 무척 양심적인 사람이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면 진심으로 사과하면 되고, 남에게 선의를 베풀면 뭔가 뿌듯한 자랑스러움을 느끼며 자기 위안을 삼기 마련인데 이 사람에게서는 자기가 저지른 작은 잘못이나 자신의 위선 등등을 평생 참회하며 살아온 듯한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형의 괴로움을 외면한 것, 아이들에게 말로 상처를 준 것, 다른 사람의 선의를 이용해서 살아온 것 등을 한 순간의 실수로 치부하고 용서를 빌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의 본질이었다. 나는 그런 놈이었다'고 자책하며 그 반대편 대척점에 어린이의 낙천성과 상냥함을 위치시킨다. 그리고 끊임없이 배운다. 그리고 감탄한다. 고통받고 힘겨운 삶을 살수록 더욱더 빛나는 인간의 상냥함에 대하여.


교사라면 누구나 다음 말에 공감하며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상냥함과 낙천성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의 슬픔을 함께 나눌때만이 아이들 내면 깊이 숨어 있는 것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나는 이 작가처럼 '어린이는 가장 완벽한 창조물이며, 손상되어서는 안 되는 인류의 원형. 낙천적이고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이며, 바라보는 것만으로 우리 마음에 평화를 깃들게 하는 사상가' 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그저 어린이도 사람이며, 그중에는 좋은 놈도 있고 나쁜 놈도 있으며, 좋은 놈도 될 수 있고 나쁜 놈도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긴다. 다만 그들은 어른들보다는 좀더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진심이 좀더 잘 통한다. 아이들과 지내보면 그걸 알 수 있다. 어른에 대한 불신으로(그건 그 아이의 삶의 과정이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반항기를 풀풀 풍기는 녀석도 진심을 담은 따뜻한 웃음과 사심없는 대화(너를 꼭 변화시키고야 말겠어! 이런 마음이 배제된)로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가의 원칙과 방법론에는 동의하나, 그의 말에서 약간의 과장과 지루함이 느껴진다. 자꾸 동어반복을 하는 것도 그렇고, 자기 자신을 그렇게 자책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내가 덜 양심적인 인간이어서 그럴까?) 아이들은 하늘 저 위에, 자기 자신을 땅바닥에 놓고 그렇게 계속 비교하는 것도 좀 비현실적이다.


특히 작가가 쓰는 말 중 '상냥함'이란 표현이 꼭 목 안에 걸린 가시처럼 계속 신경 쓰인다. 우리나라에서 '상냥함'이란 단어는 어쩐지 '진심과는 상관없는, 방긋방긋 웃는 친절한 태도'를 가리키는 것 같은 어감이 들지 않는가? 일본에서는 상냥함을 그런 식으로 쓰지 않는 모양이지? 그래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할 때는 뭔가 다른 말로 번역해 주면 좋겠다. 그래서 나 혼자 그 자리에 여러가지 단어를 넣어 보았다. 따뜻함, 따스함, 사랑, 친절함......내 생각에 그 단어는 따스함과 사랑, 그 중간쯤 어디에 위치하지 싶다.


그리고 내가 교사로서 정말 부러웠던 것은 마지막 쯤에 나오는 수업장면이었다. 소크라테스를 연상시키는 그 문답식 수업. 평소 어떤 연구수업을 보고도 감탄해 본 적이 없던 나는(내가 수업을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교류가 없는 형식적인 수업이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다) 이 책과 <나는 선생님이...>에 나오는 수업장면을 보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너무나도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인간이란 무엇인가, 상냥함에 대하여,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교사와 아이들이 철저하게 상호보완적인 질의응답을 통해,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키우는 그런 수업장면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교직생활을 마감하기 전에 그런 수업을 해 볼 수 있다면 정말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교사 자신이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아이들의 시행착오를 받아들이고, 아이들에게 정답을 내밀려고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기는 정말 어렵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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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바라는 점 :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띠지를 벗겨내서 버리는 일이 많은데, 그러기엔 이 띠지는 너무 지질이 좋고 앞뒤로, 책날개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네요. 띠지를 벗겨낸 속은 마음에 들구요. 띠지를 줄이고, 앞날개에 있는 작가소개를 다른 곳으로 옮겨 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드커버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의 내용상의 무게로 볼 때 굳이 하드커버여야 하는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뽀대나는 걸 좋아하여 하드커버를 선호하기는 하나.....그로 인해 가격차가 많이 난다면 좀 망설일 듯^^


제목 디자인은 좋은 듯하고, 책 본문의 행간은 좀 줄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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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2-01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이미 좋은 선생님이십니다. 이렇게 따뜻한 시선을 지니신 분인걸요^^

하얀마녀 2004-12-0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그런 수업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깍두기 2004-12-0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두분이 제게 양심의 가책과 마음의 부담을 팍팍 주시네.....^^

꿈처럼 2004-12-04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비평 감사합니다.... 책을 새로 만들때, 많은 참고가 될 것같습니다... 하이타니 선생님의 글에서 자책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셨군요... 저는 그저 자신과 타협하고 싶어하지 않는 치열함으로 느꼈었는데.... 읽는 분들 마다의 느낌이 다르니까요.... 그리고 저희도 '상냥함'에 대한 표현을 어찌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그 말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시는 군요.... 저자가 이야기하는 상냥함은 본성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우리말로 옮기는데 그 이상의 대안을 찾지 못했던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저는 '상냥함'을 '자기자신과 다른 사람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혹은 '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다른 사람과 진정한 화해를 하는 것', '배려하는 것' ... 등등 으로 받아들였거든요.... 그것은 때로는 생명, 그 자체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러는 것이 생명의 이상과 맞기에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저자는 아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선한 존재'로 생각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사회적,개인적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된 정도가 아주 적은 생명의 존재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교육의 가치를 이야기 하는 것같구요.... 쓰다보니 글이 번졌네요..^*^ 다시 한번 좋은 비평에 감사드리며 좋은 책을 만들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알라딘을 통해 좋은 글들을 만나게 되어 너무 고맙습니다..

깍두기 2004-12-0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장까지.....감사합니다. 책을 먼저 읽어보고 평해야 한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책임감이 느껴져서요. 제 리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만들어주세요.

픽팍 2005-03-18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어 보고 싶네요 소녀의 마음도 상당히 괜찮았는데
하이타니 겐지로 역시 책에서 진심이 묻어나온다고 할까요?
경험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못 쓸 글들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