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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버스 키스 1
요시다 아키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무지개를 실제로 보기 전 어린 시절, 일곱빛깔 무지개라 하여 나는 무지개란 것이 빨, 주,노,초, 파,남,보의 일곱가지 색깔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색동띠 같은 것이라고 상상하였다. 그러다 실제로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본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건 일곱 빛깔이 아니었다. 빨강과 주황의 사이에는 그 중 어느 색이라 말할 수 없는 희미하고 아련한 부분이 있었고, 그건 나머지 색들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호한 부분 때문에 무지개는 더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보였다. 그랬다.
사랑하는 감정도 그렇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이름 붙이기에 골몰했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동경인지, 이성애인지 동성애인지.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그렇게 명확히 구분지어지는 것일까?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러버스 키스에는 이처럼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한 때를 앓는 젊은이들이 나온다. 사기사와가 후지이를 보며 가슴 아파하는 것은 동경일까, 사랑일까? 미키가 친구 리카코에게 느끼는 감정은 우정일까, 사랑일까? 굳이 그걸 구분하려 들면 그들의 감정은 별로 안 아름다워 보일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 힘들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리하여 우리가 긍정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은 더욱더 넓어진다. 그들이 말한대로다. "변태는 세계가 넓어진다" 비록 "변태는 세상 살기 힘든"것일지라도 말이다. 변태들이 한 무더기 나오는 이 만화는 나에게 그걸 가르쳐준다.
작가의 그림체도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 약간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려진 인물들, 간결한 선이 그들의 사랑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소중하나 맹목적이지도 않게 잘 표현한다. 그리고 이 작가는 심리묘사에 매우 탁월한 것 같다. 사랑은 꼭 뜨거운 고백이나 프로포즈 만으로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어깨에 올릴까 말까 망설이는 손짓, 수건을 같이 쓰고 싶은 마음, 그 사람이 연주한 피아노곡의 제목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행동 이런 아무것도 아닌 듯한 장면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그래서 앞 장에서 무심히 넘어갔던 한 장면이 다른 장에서는 매우 의미있는 장면이 된다. 그것을 눈여겨 보는 것도 이 만화를 한층 흥미롭게 만든다.
깊고 서늘한 느낌의 만화를 만났다. 앞으로도 가끔은 꺼내볼 것 같은........무지개가 일곱 빛깔이 아니어서 더욱 아름답듯이, 이름 붙이기 힘든 모호한 여러 모습들 때문에 사랑이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