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의 왕따 일기 파랑새 사과문고 30
문선이 지음, 박철민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교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동화는 놀라우리만치 아이들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담고 있다.
여기서 묘사하는 왕따 사건은 우리반, 내 옆반에서 올해, 또는 작년에 벌어졌을만한 일들이며
등장인물의 심리나 행동묘사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

미희라는 아이가 슬슬 '파'를 만들고 중심인물이 되어가는 과정,
공부도 잘하고 패션감각도 있고, 카리스마가 있어서 주위에 항상 친구를 몰고 다니는 미희라는 아이는
초등학교 교실 어느 반에나 들어가 보면 비슷한 아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인 정화도 그렇다.
중심세력에 끼고는 싶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조용히 속으로 동경만 하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아이, 많이 본 모습이다.
미희의 주변 아이들도 그렇다.
반에서 영향력이 커진 아이 주변에서 친위대를 형성하는 아이들은 꼭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4학년인데
그 즈음부터 시작해서 여자애들이 패거리를 만들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한번 무슨 '파'가 형성이 되고 나면
담임교사는 골머리를 썩는다.
남자아이들의 보이는 데서 주먹 날리는 단순한 싸움과는 달리
이런 경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투가 장난이 아니다.

내가 특히 이 책에서 감탄한 것은 여자아이들의 화장실 문화에 대한 묘사이다.
여자애들은 화장실을 자신들만의 친교공간으로 사용하는데
친한 친구들끼리 할말 있으면 공부시간에 화장실 간다고 하고 나가는 작전을 쓰기도 한다.
심지어는 같은 칸에 같이 들어가는 것이 우정의 돗수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지
둘셋씩 짝지어 한칸에 한꺼번에 들어가기도 한다.
여자애들의 인간관계의 각종 시소게임 및 밀고 당기기가 아마 화장실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책에서도 '양파'들은 화장실에서 자기들의 우정을 확인하고
할 얘기가 있으면 화장실로 불러낸다.

'양파'들이 우정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다른 아이들을 배척하는 모습,
자기들끼리 유치한 의식을 치르는 모습,
대장격인 미희의 부당한 횡포에도 아무 말 못하고 비위 맞추는 모습,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소외될까 두려워 대항하지 못하는 모습 등은
아이들의 단체생활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장면이며
그럴 때마다 난감함과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그 안에서 억울함과 두려움, 자기자신의 비겁함 때문에 괴로워하는
(미희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억울함,
나도 왕따되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 마음,
왕따되는 친구를 변호하고 놀아주지 못하고 자기도 왕따의 대열에 합류하는 비겁함)
주인공 정화의 심리를 따라가는 작가의 정확한 시선이 감탄스러웠다.
마치 정화의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외에 정화가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서
울면서 잠이 드는 장면의 묘사는 정말 훌륭했다.
아이들의 심리를 정말 잘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마지막을 해피엔딩으로 끝마치지 않는다.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던 정선이는 전학을 가고
미희의 잘못을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러나 깨끗하고 깔끔하게 끝내는 것보다
그것이 더 생각할 거리를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앞으로 미희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내가 미희라면 이제 어떻게 하는게 옳을까?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과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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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1-2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왕따가 중학교로 오면 폭력성까지 동반하게 됩니다. 참 난감하죠. 자기 반에 이런 경우가 생기면 담임은 그야말로 1년 내도록 이 아이들 뒤치닥거리에 시달리게 되고.... 그래도 미리 알경우에는 그나마 다행인데 그게 여학생들의 특성상 눈에 띄지 않고 은밀히 진행될때는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많아요.

깍두기 2006-01-2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는 그래도 아직은 자잘하게 일을 벌이죠^^
그래도 반에서 사소하게라도 저런 일이 일어나면 괴로워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안 이뻐 보여서....

반딧불,, 2006-01-2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전율을 느끼면서 읽었었어요.
...

깍두기 2006-01-2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반딧불님. 우리가 역시 눈이 일치하는군요.
좋은 작품을 보는 눈이 있달까.....^^

반딧불,, 2006-01-2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깍두기님 그게 아니라..
저희는 심리묘사와 아이들과 가까운 책에 열광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작품을 그닥 안좋아하더라구요..^^

깍두기 2006-01-2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저는 현실과 동떨어진 거 아주 좋아해요. (판타지 앤드 sf 팬이잖아요^^)
근데, 현실적인 얘기를 썼는데 그게 어딘가 어색하고 잘 안 들어맞으면, 그건 또 엄청 싫어요^^

반딧불,, 2006-01-2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오해받게 글을 썼군요.
맞아요. 제말이 그거여요. 현실적인 얘기에서 동떨어진 작품은 아무리 좋다고 극찬을 해도 싫여요.

깍두기 2006-01-27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별님.
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을 약간씩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듯.
하여간 이 책은...놀라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