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 ㅣ 청년사 고학년 문고 5
최나미 지음, 정용연 그림 / 청년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셨고, 나를 알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에 나오는 엄마가 나라는 것은 다 동의하실 것이고.
(무엇보다 나는 이 동화의 엄마와 나이도 같고, 자식들과 가정을 위해서만 살고 있지 않은 것도 같고,
그걸 그렇게 미안해 하지 않는 것도 같고, 또 뭐 아무튼 기타 등등)
이 책에는 또 하나의 '나'가 있는데.
이 집의 큰딸 '가희'다.
가희의 하는 짓과 성깔머리가 어렸을 때의 나와 얼마나 비슷하던지
전혀 웃긴 이야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배꼽을 잡았다.
치매 걸린 할머니와 한방 쓰라는 말에 딱 잘라 거절하는 야멸찬,(그래서 결국 그건 만만한 동생몫이 된다)
엄마가 일하는 데 찬성하고 엄마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면서도
결국은 엄마가 자기 도시락 안 싸 줄까봐 그게 가장 걱정되는
이 싸가지 없고 이기적인 아이는
딱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이다.
나도 좋은 건 다 내 차지에다가 내 물건 동생들이 건들지도 못하게 했다.
책을 읽다 기억난 게 있다.
친척들이 놀러와 밥을 먹는데
따뜻한 밥이 모자라서 찬밥이 두 그릇이 나왔다.
하나는 당연한 듯이 엄마가 드시고, 한 그릇을 나를 줬는데
내가 '난 찬밥 안 먹어!'라고 말해서 그 찬밥은 결국 남동생 몫이 되었다.
내가 찬밥을 싫어했냐면 그건 아니다.
그냥 그 찬밥을 '내가' 먹어야 한다는 게 싫었을 뿐이다.
근데 가희가 어렸을 때의 내모습이랑 닮아서 그런지
나는 이 야멸차고 인정머리없는 아이가 싫지 않다.
착하디 착한 동생은 엄마가 치매 걸린 할머니를 돌보지 않고 자기 삶을 찾아나서는 걸 이해 못하는데 비해
가희는 비록 결국은 자기 도시락 걱정을 하긴 하지만 엄마의 심정을 아주 잘 이해한다.
우리 엄마도 드디어 마흔이 되었잖아. 엄마한테도 시간이란 게 있어. 더 늦으면 엄마가 뭘 할 수 있겠어? 참, 그런데 엄마가 일 나간다고 내 도시락 안싸주면 어떻게 하지? 다시 학교 급식 먹으라고 하지는 않겠지? 아, 몰라. 진짜 짜증 나.
엄마 아빠가 별거하는 건 아무렇지 않게 친구에게 말하고 다니면서도
살 빼려고 에어로빅 하는 건 절대 비밀인
얄미운 아이가 난 왜 좋은 거지?
나랑 닮아서?
그것도 그거지만
별거니, 이혼이니, 가정불화니 하는 유쾌하지 않은 문제를
질질 짜고, 우울하고, 축축하게 만들지 않는
그 건조함이 마음에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인지도?
그건 그렇고
이 책에 나오는 아빠가 대한민국 평균적인 남편의 모습이라면
아직도 대한민국 여자들의 삶은 참 괴롭고 힘들겠다.
시부모가 치매 걸리면 당연히 며느리가 꼼짝 말고 집에서 봉양해야 하는 건가?
아들딸이 주루루인데도?
내 부모도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나는
영락없는 가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