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하는 얘기가 있다.

"인생에서 가장 싸가지 없는 시절이 중학생 때이다"

나를 생각해 봐도 그렇고
우리집에 지금 기거하고 있는 중학교 2학년짜리를 봐도 딱 그렇다.
어찌나 오만방자하고 지 생각만 하고 꼴보기 싫게 구는지!
한마디만 해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라드니 무서워서 말을 못 꺼낸다.

얘하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무척이나 갈등이 많았다.
그 와중에 어린 것이 약자라고 나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다.
내가 나쁜 엄마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얘기고
요즘은 내가 지난 시절을 참회하며 절대로 매를 들지 않고 잔소리를 하지 않고
내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공부를 잘하라고 요구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마음먹은대로 실천하고 있는데 참 쉽지가 않다.

그 중에 가장 내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것이 청소 문제이다.
여중생, 하면 연상되는 청초한 이미지, 아, 그런 건 도대체 누구네집 딸내미에게 해당되는 말일까!
완전 조폭 분위기로 학교 갈 때도 블라우스 윗단추 하나 끌르고 소매 둘둘 걷어부치고 다니는 것까지는 봐 줄 수 있다.
도대체 열다섯 꽃다운 여자아이의 방이 이럴 수가 있느냐 말이다.
사진 찍어 이곳에 올리면 열이면 열분 다 기절하고 말리라.
식사 전에 보면 밥맛이 뚝 떨어질 것이다.

먹다 남은 음료수잔 서너개 기본, 양말 서너켤레 둘둘 벗어 놓은 것 침대 위, 방바닥에 널부러진 것도 기본, 먹고 난 과자 껍데기 몇개 널부러진 것도 애교, 침대에는 자기 몸 눕힐 곳도 부족하도록 입은 옷, 보던 만화책, 책가방, 신발주머니까지 꼭 침대에 빈 자리가 있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늘어놓는 것도 필수사항이다.
먼지, 머리카락, 쓰레기 등등으로 방바닥은 조금도 빼꼼한 곳이 없을 뿐 아니라 책상 위는 만화용품, 물감 풀어 쓴 물통(시커먼 물이 한 가득), 만화책, 만화 그리다 만 것, 스크린톤 등등이 조금의 규칙성도 없이 그야말로 폭탄 맞은 것처럼 흩어져 있고, 매일 입는 교복이 구겨지건 말건 한번도 옷걸이에 걸어놓은 적이 없다. 그대로 목욕수건 세개와 둘둘 말아서 침대에 꾸길꾸길 뭉쳐져 있다.

아, 정말 필설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하고 기묘한 냄새까지 풍겨대는 이 난장판을 보고 있노라면 속에서 부글부글하는 것이 치밀어오르는데 아무리 평정심을 가지려고 해도 머리꼭지가 돌아버려 애한테 한마디를 안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아예 애 방문을 열어보지 않기로 하고 있는데 그래도 내 맘은 완전히 편해지지가 않고 방문 너머 저 폐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 드디어 못참고 문을 열어보았다. 애 없는 틈을 타서.(있으면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
그리고는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청소를 시작했다. 속으로 너무해너무해 하면서.
옷도 걸고, 옷걸이에 걸린 여름옷(이것도 내놓지도 않는다)도 빨래통에 넣고,
침대밑도 쓸고(헉, 우리교실 청소할 때보다 쓰레기가 더 많이 나온다)
침대정리 하고,
10여분 만에 말끔해진다.
속이 다 시원하다.

그 순간.
'아, 내가 못 참은 거구나!!!'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맨날 애한테 청소해 청소해, 방꼴이 그게 뭐야, 인간이 이래도 돼 등등의 잔소리와 함께 청소를 강요한 것은
애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든 거다.
자기는 조금도 불편하지 않고, 이 방은 자기가 사는 방인데
왜 엄마가 치워라마라 하느냐 말이다.

아, 맞어.
내가 그 꼴이 보기 싫고 어질러진 것을 참을 수 없고
딸은 아무렇지도 않다면
내가 청소를 하는게 맞는 거다.
왜 내 맘 편하려고 딸을 부려먹으려고 하나! 본인은 이 난장판에서 매우 행복하다는데!
그 생각을 하니 왜 이리 마음이 가볍고 웃음이 나는지^^

저녁에 딸이 돌아와 방을 열어보더니
"엄마, 내 방 청소했어?"
"응"(혹시 왜 맘대로 방에 들어왔냐고 성질낼까봐 긴장)
"감사. 설거지 할 거 없어?"

이런. 알고보니 이 녀석 꽤 괜찮은 녀석이잖아!
인생에서 제일 싸가지없는 시절=중학생, 이 공식 취소해얄까봐.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weetrain 2006-10-27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도 남방이나 블라우스 단추는 하나 열고 다녀요.
목이 굵어서;;;다 안 잠기거나 잠긴다고 해도;;목이 졸릴거 같아서요.(흐흑 ㅜ.ㅜ)
사실, 저는 1년 7개월 동안 청소를 안 했던 적도...;;;;;

아영엄마 2006-10-27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어제 딸냄이들에게 방청소 좀 하고 자!! 했는데 이궁~ 결국 너저분한 것들 치우지도 않고 자더군요. (한동안 설거지도 자기가 한다고 하고, 대청소한다며 잘 치우더니 한 때인가벼...@@) 답답하면 자기가 치우겠지 싶어서 일단은 안 치우고 두고 있는데 정 못 볼 것 같으며 그냥 내가 치우자 그러고 있어요.

ceylontea 2006-10-27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그렇지만..
그 시절 엄청 안치워서 엄마랑 늘 그걸로 다툼이 끊이지 않았어요... ^^
본인이 불편하지 않음에야 그냥 둔다가 제 의견이지요..
그리고.. 전 나중에도 청소 대신 안해줄거랍니다.
그 난장판이지만.. 버려야 할 것처럼 보이는 폐휴지에도 나름 무엇인가를 적어놓았는데, 어느날 엄마가 참다 못해 청소를 해버려서 성질을 냈던 적이 있거덩요... --;; (당근 그 종이가 없어졌고.. ^^)
그냥.. 그렇게.. 저역시 제 딸이 크면 그냥 냅둘랍니다. ^^

저에 비하면 깍두기님 따님은 너무 다정한 것 아닌가요? ^^

가랑비 2006-10-27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와 설거지의 멋진 딜에 박수를 보냅니다. ^___^

paviana 2006-10-2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첨에 읽을때는 몇년후 제 모습 같아서 엄청 긴장하고 읽었는데,
마지막으로 가니 아 역시 하면서 흐뭇해집니다.
우리집 아들내미도 딱 저만큼만 되었으면 행복할거같아요.^^
참 술생각이 나셨으면 저한테 전화한통 하시지 그러셨어요. ㅎㅎ

바람돌이 2006-10-27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에서 제일 싸가지 없는 시절=중학생, 이 공식 진리걸랑요. 취소하지 마세요.
한 번 말 들으면 아홉번 말 안듣는게 이 시절 애들이잖아요. 뭐 매일 보며 삽니다. ㅠ.ㅠ
남의 새끼도 속터져 미치겠는데 나중에 내 새끼도 저럴걸 생각하면 울화가..... ^^
그나마 다 그런거 알면 좀 낫죠 ^^

sooninara 2006-10-2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생때 제방 청소도 안했어요^^ 지금도 엄청 청소 귀찮아라 해요.
남편이 저에게 맞춰서 지저분해도 참고 살아남기 하고 있어요.
아니면 자기가 청소해야 하니까...
설거지 할것도 많았나요? 궁금.

물만두 2006-10-2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울 엄니는 방청소 안해주세요^^;;;

mannerist 2006-10-2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 참 누구 생각나서. ㅋㅋㅋ

깍두기 2006-10-2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님, 누구? 엄마?

물만두님, 어머님이 워낙 현명하시잖아요^^

수니님, 억울하게도 설거지를 끝내버려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오ㅠ.ㅠ

바람돌이님, 사실 그 말 취소할 생각 그다지 없어요^^
중학교 선생님은 얼마나 힘드실까.....매일 하는 생각입니다.

파비아나님, 조만간 만납시다. 제가 번개 치면 번개같이 붙으세요^^

벼리꼬리님, 딜이 되지 않았답니다. 설거지도 해버린 바람에.....(억울)

실론티님, 제 어릴 적을 생각해 봐도 우리 딸이 훨씬 더 다정합니다. 제가 복이 많아요^^

아영엄마님, 아영이 혜영이는 아직 '아가'잖아요^^

단비님, 1년 7개월간 청소를 안하면 어떻게 되는지 매우 궁금합니다ㅡ..ㅡ

딸기 2006-10-2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재밌게 읽었어요. ^^

sweetrain 2006-10-2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요. ㅋㅋㅋ
아마 이사를 안 갔다면 그보다 더 버틸수도 있었을 듯.;;;;
지금은 청소 열심히 해요. ㅋㅋㅋ

진/우맘 2006-10-2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성, 당한거야!
청소에 감사하다 = 지도 더러운 것이 내심 불편했다...아니유?
결국은 더러움에 대한 내성이 누가 더 강한가, 인내심 테스트였네~ㅋㅋㅋ
그나저나, 에휴....웃을 일이 아니구만요. 내 앞날이 훤히 보이니....ㅠㅠ

날개 2006-10-27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중학교때는 울 엄마가 방청소 다 해줬어요.. 그치만 저는 제 딸방 청소 잘 안해준다는..^^;;;;;
효주 책상위에 해놓은 꼴보면 정말 확 쓸어버리고픈 맘도 있지만, 제 게으름이 그걸 이겨버리더군요..ㅋㅋㅋ

프레이야 2006-10-27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생 때가 생각나요. 엄마도 저에게 그런 감정들 느꼈겠지요. ^^

水巖 2006-10-2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들 속 안 터진 부모가 있었남요,

2006-10-28 0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6-10-28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니 이런 멋진 반전드라마가 다 있나.... 캡입니다요.

깍두기 2006-10-3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재밌어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전 그 말이 참 듣고 싶었어요^^

단비양, 제 딸을 절대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진우맘님, 맞습니다. 제가 진 거죠. 요즘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걸 배우는 중이라^^

날개님, 사실 저도 제 방 청소라고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엄마가 먼지 하나 없이 해 놓으셨죠. 그래놓고 이렇게 딸 원망을 하다니 참 양심도 없습니다^^;;;

배혜경님, 그러게요. 그 생각 하면 저는 지금 아뭇소리 말고 딸에게 잘해야 하는데.

수암님, 안녕하셨어요^^ 요즘은 별로 속 안터져요. 저렇게 생각하고 나니 속이 편해서요^^

속삭이신 내사랑 ㅇ님^^, 제가 님의 어머님 발뒤꿈치라도 쫓아가면 제 딸도 님처럼 예쁘게 클 수 있을텐데.

바람구두님, 아니라고 하시려다 보니 양심의 가책을 느끼셨나 봅니다?^^

올리브님, 우리 애는 맘 먹어도 삼박사일은 걸려요. 그냥 제가 치울래요^^

마태우스님, 괜찮았나요?^^

달콤한책 2006-10-30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글 재미있네요...중고등 시절에 저희 형제들도 엄마한테 여자들이 방 꼴이 이게 뭐냐는 소리 무지 들었지요...결혼하고 저는 깔끔 떠는 편인데...제 여동생을 보니 여전히 지저분하더군요. 따님은 감사하다는 말을 했으니 시집가면 살림 잘할 것 같네요. 저도 여전히 제 아이에겐(9살 남) 지저분하다고 뭐라 하니....인간은 까마귀 동물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