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의 한편엔 늘 언니가 있다.

연년생이다 보니 정말 지겹게 싸웠고 친할땐 엄청스레 친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사건중의 하나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구 언니가 3학년일때 정도로 기억하는데 그당시 잠실 시영아파트에 살고 계시던 큰외삼촌댁 방문기다. 

우리집 앞에서 24번 버스를 타면 잠실시영2단지에서 내려 47동을 찾으면 되는거였다.  그런데 울언니는 무지 소심녀다.. 나처럼 되는데로 부딪혀 보자가 아니기에 모르는 곳에 안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때 방학이었고.. 땡볕이 내리쬐는 더운날.. 둘이 길을 나섰다..

저때가 맞는지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때까진 버스에 안내양언니가 있을때다.

언니 뒤에 바싹 붙어 앉아 조잘 거리면서 길을 가던중 안내양 언니가 2단지 내리실분 나오세요..

울 언니 야 내려야해 2단지래..

아니야 언니 여기 아닌것 같아.. 잘못들은거 아니야?

2단지 안계시면 통과...

아니요.. 여기 내려요...  울언니는 차가 통과한다는 소리에 내 손을 잡고 부랴 부랴 내렸다.

내가 보기엔 여긴 아닌데...

그렇다 우린 잠실 시영2단지가 아닌 그냥 잠실2단지에서 내린거다..(지금으로 따지면 신천역.. 우리가 갈곳은 성내역 다음 정거장인데..)

아니잖아..   그런데 그 언니가 2단지라고 하는거 들었잖아..

결국 둘이는 그 땡볕아래 걷고 걸었다.. 그러다 3단지 푯말이 나오면 다시 오던길을 뒤로... 그렇게 두세번 가니 나는 지쳐서 더이상 못걷겠다 하고 언니는 못걷는다고 나자빠지는 나를 업고 다녔다... 키도 엇비슷한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결국 나중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여기서 버스로 4정거장 정도는 더 가야 한다고 하는거였다...

주머니엔 땡전 한푼도 없고.. 결국 버스가 오면 사정해 보자고 하곤 24번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버스가 멈췄을때 사정얘길 했더니 (지금 생각하면 그당시엔 버스가 그렇게 난폭하게 안다녔기에 저런 여유도 있지 않았나 싶다.) 언니가 태워줬고... 지쳐서 곧 쓰러질것 같은 우리가 안되어 보였는지 친절하게 진주상가 있는데는 시영2단지니깐 다음부턴 잘 내려야 한다는등.. 그렇게 친절을 베풀어 주셨었다.

참 먼거리였다.. 초등학생이 걸어가기엔.. 그 당시엔 롯데월드도 들어서기 전의 허허 벌판이던 시절의 잠실이었다...

울 엄마는 항상 여윳돈을 안주고 손에 차비만 쥐어주곤 하셨다.. 이 사건을 계기로 차비에 조금 더 얹어 주셨지만.. (엄마말은 여윳돈이 있으면 군것질이나 나쁜것에 쓴다고 그러셨단다...)

어렸을때 일을 기억못하는 언니도 이 사건은 무지 충격이었는지 기억난다고 한다.

자기도 걷기 힘든데 왜 나를 업고 걸었냐고 하니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곧 죽을것 같았단다.   ㅋㅋ 그늘도 없는 길을 왔다 갔다 했으니 내가 더위 먹어서 그랬나 보다..

아마 나였다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긴데...

 

우리의 잠실에서의 길잃고 헤매기는 그 이전에 시작되었나 보다.

처음으로 아파트란곳에 가봤고 그러기에 동호수로 찾는다는걸 몰랐던 적이 있었다.

동전초코렛을 사러 간다고 했던 언니가 길을 잃었는지 안오고... 나는 똑똑하다고 자부하면서 언니를 찾아 나섰다가 나역시 길을 잃었다..

우리 자매가 만났던 곳은 잠실시영아파트 단지내에 있던 파출소... 크크 그곳에서 눈물의 상봉을 했다.

결국 삼촌이 우리를 찾으러 오기까지 그곳에서 아저씨가 사주는 과자먹으면서 놀고 있었다..

이후로 아파트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아파트에 가면 나는  순간적으로 헤맨다...

 

우리언니는 세상이 험해서 아이들끼리는 밖에 내보내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는 아이들을 참 강하게도 키우셨다고 해야 하는건가?

난 가끔 조카들에게 전화를 해선 어디로 나와 이렇게 잘하는데 그럴땐 언니가 미덥지 않은지 핸드폰을 쥐어주면서 수시로 확인을 한다.

어려서 길을 잃었던 경험이 무서워서 그런가??  

나중엔 내가 하두 뭐라고 하니깐 아이들 한테 핸드폰 쥐어주고 파파이스에 가서 맛있는거 사먹고 오라고 5천원을 쥐어서 보내놓곤 안절부절하다가 전화를 안받는다고 놀래서 뛰어 갔다 온 사람이다.

아이들이 언니가 말해준 길로 안오고 다른길로 오는 바람에 엇갈린건데.. 아이들은 어른보다 똑똑하다.

둘만의 모험을 하듯.. 엄마가 알려준 길 대신 새로운 길을 찾았던 거다.

오면서 이것 저것 구경하는 재미는 얼마나 쏠쏠했을까?     벌써 3년째다.. 내가 조카를 내 퇴근시간에 맞춰 버스 태워 보내라고 한지가...  언니는 도저히 도저히 못하겠단다..

같은 뱃속에서 나왔는데 어찌 성격은 이리도 다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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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10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경험 저도 있어요. 이모댁에 가는데 예전에요. 저만 믿었던 만순이, 하지만 저는 내릴 곳을 잊고 종점까지가서 다시 돌아와 겨우 내렸죠. 만순이는 언니 왜 안내렸냐고 물었고 저는 그때 차장 언니있던 땐데 그 언니 목소리가 작아서 못들었어. 그랬죠. 바로 옆에 있었는데요^^;;;

세실 2005-08-1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강하게 키운다고 밤에도 슈퍼 보내요. (제가 나가기 귀찮은 이유가 한몫 합니다^*^)
어제 아무 생각없이 "보림아 학원 자전거 타고 다녀" (버스로 3정거장 됩니다) 했다가 어머니한테 혼났어요....

인터라겐 2005-08-1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물만두님... 그때부터 재치가 있으셨군요....
세실님.. 어찌보면 3정거장 별거 아닌데 이 더위에 큰일날까 무서워요... 할머니 입장에선 큰일날 소리로 들리셨을께 분명해요..^^

로드무비 2005-08-10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들이 보통 좀 어리숙하죠?
동생에 비해서......
제가 딱 그랬거든요.
인터라겐님은 어린 시절부터 무지 야물딱졌네요. 귀여워라.^^

검둥개 2005-08-10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파트에서 한 번도 안 살아봤어요. 대학 때 과외하면서 아파트촌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헷갈리던지... 심지어 과외 갔다가 단지를 못 찾아서 지각하는 악몽을 꾼 적도 있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