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 1
빌 포셋 지음, 권춘오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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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작든 크든 사건은 예견은 있지만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그것은 예견되는 사건의 결과를 두고 당사자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기도 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이와는 대조적으로 혼자의 힘에 의해 선택하고 결정되는 독재적이고 전제적인 경우도 있다.이 경우에는 개인의 이념과 사상,전통과 관례 등에 의해 사건,사고가 결정되기도 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어찌되었든 과거의 역사를 읽어 가다 보면 조금만 더 현명하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일처리를 했더라면 수많은 인명희생,물질적 손실 등도 덜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BC 1390년부터 2006년)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느끼는 점은 역사가 실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실수에 의해 역사가 만들어진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인류가 시작되고 인류의 문명을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으로 남긴 이후부터 후세는 그것에 기초하여 해석을 하게 된다.먼 옛날의 기록물들은 신화적인 영웅,전설,토템미즘에 의한 것들이 많기에 절대적으로 객관적이고 신빙성이 있다고는 볼 수가 없다.그러나 이러한 기록물들은 당대 누군가에 의해 지시되고 지시된 것을 기록한다든지 제3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것들일지라도 당대 사회를 이끌었던 황제,교황,군주,군통솔권자 등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은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이러하기에 지난 역사의 부분 부분을 읽어갈 때에는 신중하고도 냉철한 자세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역사를 바꾼 100가지를 쓴 저자는 교수,작가,게임회사 대표 등의 화려한 경력을 소유하고 있다.실수 아닌 실수가 역사가 되어 후세에게 교훈을 안겨 주기도 하고,하나의 사건이 시대상황 및 환경변화에 의해 인류의 발전을 진일보하게 한 사건들도 많다.당대의 사건들이 획일적으로 모두 실수에 의한 것들이다라고는 단정지을 수가 없는 것이 흔히 일상에서 발생하고 조우하는 예기치 않는 돌출변수들이 많다는 것이다.그 단적인 예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계기가 사라예보 사건이라고 알고 있는데 당시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대공은 자신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을 방문하겠다고 우겨대는데 대공의 운전사는 길을 잘못 들게 되면서 어처구니 없는 세계대전의 화마로 휩싸이게 된다.

 

과거의 역사 속에는 왕권,교황권,군주 등에 의해 독단적인 잘못과 실책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역사의 분수령을 보여줄 만한 것들이 무능,자만,자존심,비겁함,근시안,후광의 부재,준비부족,착오 등에 의해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고 그로 인한 손해,희생은 고스란히 힘없는 백성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이 커다란 실책이고 현재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결국 누가 사회를 이끌어 가는지에 따라 당대의 사회,국가는 진보로 내딛을 것인가 아니면 담보내지 퇴행과 같은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인지가 판가름난다고 생각한다.특히 그것은 서구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엔 일인독재와 같은 전제주의 무소불위식 정치행태가 강했고 자만에 가까운 실수,오류투성이의 역사가 많았다는 점이다.물론 정치행태를 떠나 문명의 족적을 일궈낸 것들은 셀 수없이 많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

 

역사를 장식했던 인물들을 보면 통치하던 시절에는 마법에 걸린 사람마냥 무조건 따르고 영합을 하지만 그 당사자가 세상을 떠나면 그것은 한낱 수포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즉 정치권력은 무상하기만 하다.그래서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권력을 쥔 사람이 물러난다든지 불의에 세상을 뜬다든지 하면 그 뒤를 잇는 후임자는 전임자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전임자가 남겨 놓은 문제는 방치하고 무시한 채 새롭게 뜯어 고치려는 아류식의 정치색채를 띠기에 사회분열,사회구성원간의 위화감도 증가할 것이다.당연 사회지도자에 대한 존경심은 퇴색되지 않을까 한다.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 중에 가장 안타깝게 다가오는 사건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이 발표한 미국의 영향권이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미국의 영향권에 속하는 국가에 대한 공산국의 침략이나 공산화 혁명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였다.그런데 문제는 애치슨이 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일컬으며 언급 대상은 일본에 한정했다는 점이다.이를 놓칠세라 스탈린과 김일성은 에치슨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 남한은 미국의 보호를 받지 않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한국전쟁을 사전에 모의하고 획책했던 것이다.

 

"역사로부터 학습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또 다시 반복하게 된다." - 조지 산타야나 -

 

오늘날과 같이 다원화되면서 국민들의 의식수준,발언권이 강화되면서 일인 독재시대는 용납할 수가 없게 되었다.제도,시스템적,시대의 흐름은 그렇다해도 사회를 이끌어가는 데에 전체적인 줄기는 지도자의 선택과 용단이 필요할 것이다.그것은 절대 다수인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개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정책결정이 이루어졌을 때에 비로소 지도자에 대한 진가가 발휘되고 그 명망은 오래 간직되리라 생각한다.이 글에 서술된 100가지 실수는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숨겨진 비화,다양한 예시를 통해 지난 역사의 실수가 왜 일어났는지를 제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무척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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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비사 - 은이 지배한 동서양 화폐전쟁의 역사
융이 지음, 류방승 옮김, 박한진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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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본위제는 들어 봤어도 은본위제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번이 처음이다.금융 위기를 맞이하여 달러화의 하락과 더불어 중국 위안화 절상과 관심이 커지고 있는 시기에 중국의 경제학자인 융이는 은을 둘러싼 각국의 패권전쟁과 몰락 그리고 다시 서서히 은에 관심이 고조되어 가는 상황을 잘 그려 내고 있다.금과 은이 갖는 희귀성과 함께 경우에 따라서는 은이 한 나라의 재정을 대표하고 군사적 무기로도 사용되었으며 현대에는 각종 IT제품의 없어서는 안 될 재료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송나라 시절부터 명나라,청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화폐가 있었지만 은이 부의 상징이었고 은을 둘러싼 관료들의 이권 챙기기는 거의 500여 년간 지속되고 1935년 모택동에 의해 은의 장막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나아가 국제 정세를 보면 콜럼버스에 의해 서인도제도가 발견되면서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은이 제국주의의 수탈과 침탈의 대상이 되었으며,1840년대 영국과 중국 양국간에 벌어진 아편전쟁은 은을 둘러싼 양대국의 치열한 쟁탈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스페인 등이 은으로 한 몫 챙기면서 이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면서 스페인은 재정악화를 불러 오는 대신 영국,네덜란드 등은 무역을 통해 커다란 부를 축적하는 계기가 되는데,영국은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이기면서 해상무역의 기틀과 아프리카,아시아로의 제국주의의 길을 열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은 명말 대항해 시대를 열어 나가고 청대에 들어와서도 은은 제국주의의 침탈이 두려워 해금정책을 사용하면서 은이 화폐로서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부패한 관료와 실정을 일삼는 왕조 체제로 인하여 은은 제 빛을 발휘하지 못하게 됨을 알게 된다.즉 무능한 군주의 반복이 이어질 뿐이었던 것이다.이렇게 은이 중국을 대표하는 광물자원이었지만 적극 활용하지 못한 점이 두드러진다.

 

금이 평가절하될 때마다 은이 자연스럽게 주목을 받고 부상하게 되는데,중국 학자 일각에서는 은본위제를 주장하고 있다.IT,환경,미래 산업에서 필수적인 은이 금융 위기를 맞고 있는 요즘 각국의 힘의 역할 관계에 따라 어떻게 은의 위치가 정립되어 갈 지가 주목된다.금과 은 중 무엇이 본위화폐 자리를 차지할 지도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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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진실에 대한 이야기의 이야기 -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앤 커소이스.존 도커 지음, 김민수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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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편독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연령대에 따라 관심 분야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는하지만 균형 잡힌 독서를 통해 이성과 논리,감성 등의 내면적인 면을 발전시켜 보고 싶고 넓은 세상에 대한 안목과 시각을 넓히려는 생각도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역사분야 만큼 사실에 입각한 사건과 인물의 생각과 감정,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개인적인 예리한 통찰력이 있는 역사 읽기는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안겨 준다.

 

기원전의 역사 이야기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역사 이야기는 글을 쓴 역사학자 및 문학작가에 의해 어느 정도 상상력과 추리,당대 사회의 이데올로기 등을 반영하고 있기에 다소 허구적일 수도 있어 독자들에겐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균형감각을 잃을 수도 있으리라 판단된다.그러하기에 역사 이야기를 읽는 독자가 어떠한 관점,어디에 초점을 둘 것인가를 두고 읽을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나 역시 역사학습이 될 만한 것들은 꼼꼼하게 읽으려 하고,픽션에 바탕을 둔 것들은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나름대로의 상상력과 개연성을 갖고 읽는 편이다.

 

앤커소이스.존도커 두 분이 쓴 이 도서는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얽힌 간략한 소개와 그들이 밝히고 있는 역사 이야기에 대한 관점과 해석으로부터 <문명의 붕괴>를 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밝히고 있다.단연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역사 이야기의 물꼬를 틔운 분들이라면 그 뒤를 이은 역사학자 및 철학자들은 이 두 분들의 영향을 받았다든지 아니면 역사학의 이론을 새롭게 펼쳐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는 역사적 진실의 문제,역사가와 과거의 관계,사실과 가치,해석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본문 -

 

서구 역사기술의 기틀릉 확립한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각각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사<역사>와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다루고 있는데,헤로도토스는 카니발적 열정과 우울한 정서,풍자적 유머와 이야기하기 자체의 즐거움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와 분위기를 통해 시의 경직성에 도전하고 그것을 전복시키고 있는가 하면,투키디데스는 전개가 빠르고 정확성을 추구하며,글의 방향성도 뚜렷하다.다분히 분석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헤로도토스는 이야기 자체를 즐기고 이를 신화적이고 허구적인 관점이 많다면 투키디데스는 철저하게 연대기적 서술방법을 활용하면서 사건을 연도,계절별로 구분하고 기록했다는 점이 대조적라고 할 수가 있다.

 

그 뒤를 이은 랑케,부르크하르트,니체,액턴,크로체,마르크스,월터 스콧 경,푸코,스팀슨,토인비,딜릭,다이아몬드 등의 작품을 해석하고 있다.역사가 단순히 허구적일 수도 있지만 각각의 역사는 삶과 연관지어 인간에 대한 믿음,세대와 세대 간의 위대함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 결속력과 지속성을 띠어야 한다는 대목도 인상적이다.특히 니체는 역사를 기념비적 역사,고고학적 역사,비판적 역사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충분한 증거,자료에 의거한 역사일지라도 역사 이야기를 저술한 학자의 견해,당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것이라면 비객관적이어 왜곡된 역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즉 권력자의 편에 서서 역사 이야기를 쓴다면 후대들의 삶에 커다란 인지 부조화와 오류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인류의 진화와 역사,그리고 사회의 변화 속에서가부장적 사회제도하에서 억압되었던 여성들의 사회.문화 참여가 두드러지고,지배 권력을 비판하고,국가에 맞서 반대의견을 펼치기도 하며,2차세계대전 막바지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미국이 러시아와의 냉전 외교를 위한 최초의 주요작전이었다는 증언,개별 문명에 초점을 맞춘 토인비와 대조를 이루는 맥닐은 각 문명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 커다란 차이점이다.나아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인류의 운명에 우려와 관심을 표명하면서 <문명의 붕괴>에서는 사회의 붕괴 원인을 환경적 요인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고 있다는 것을 커다란 줄거리로 내세울 수가 있다.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학자들에 의해 역사 이야기가 쓰여지고 있다.흔히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말이 있는데,역사는 증거와 사료에 바탕을 두되 어느 정도 학자의 상상력과 통찰력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나아가 현대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 변화,자연 생태계 파괴,자원 고갈 등의 문제를 직시하고 "지구의 이익을 위한 인류의 협동에 기여한다"라는 슬로건으로 인류 상생의 역사 이야기가 전개되었으면 한다.역사는 허구와 과학의 중간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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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의 하루 - 오늘, 일본 황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요네쿠보 아케미 지음, 정순분 옮김 / 김영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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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터운 베일에 가려 세인들에게 신비함과 경원감을 느끼게 하는 일본 황궁의 내막을 들려 주는 <천황의 하루>는 일본을 총체적으로 상징하는 천황가의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천황,황후,황태자를 비롯하여 그 휘하에서 일하는 신하들의 면면도 자세하게 들려 주고 있기에 일본 황궁의 제도,시스템,당시 사용하던 용어 등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황의 하루는 여관이었던 권전시의 기상을 알리는 오히루부터 시작되었다.그러면 약간 어두침침한 침전에서 취침하던 천황과 황후는 여관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기상을 하게 되고 세수,식사,하루의 일정,대외 업무,귀궁,취침 전까지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이 나열되고 있다.현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보면 천황의 하루는 매우 진부하고 권위적이며 신격화된 존재이기에 일본내에서도 불협화음이 일어날 법한 것들인데 최근 일본에서 황실전법의 개정 논란과 더불어 천황의 위상은 예전같지는 않은 것 같다.

 

이 글은 일본 메이지 천황의 하루가 주가 되고 다이쇼 천황,쇼와 천황의 얘기가 간략하게 서술이 되어 있다.<메이지 천황기 담화기록집성>을 인용하고 일본 근대 궁정 시스템의 의식과 예법에 연구를 해 오고 있는 저자 요네쿠보 아케미는 메이지 천황가가 교토에서 도쿄로 옮겨지는 순간부터 메이지 시대의 일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당시 조선은 구한말 일본으로부터 강제적인 개항압력과 침략이 있었기에 읽는 도중 불편한 구석도 없지 않았지만 정치적인 상황보다는 천황을 비롯한 황후,황태자,신하들의 얘기가 주가 되어 어느 정도 인간적인 면모나 성격,기질을 이해할 수 있어 의의가 크다.

 

궁궐 내에서 근무하는 신하도 있는가 하면 일정 기간만 궁궐에서 근무하는 형태를 띤 신하도 있다.그들은 업무를 서로 협력하여 처리하기도 한다.정규 업무는 주로 목요일에 행해지며 천황을 알현하는 규칙이 까다로운 점이 인상적이다.시종들만 천황의 출어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대신,장군들도 복도 의자에 진을 치고 천황의 판단이나 재가를 구하고자 알현을 기다리는 경우도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이러한 궁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나이기(內儀)라고 한다.

 

에도 시대 막부에게 막강한 권력이 있었으나 대정봉환이 이루어지면서 천황의 권위는 막강하고 이는 근대부터 종전(終戰)까지 보여 주었던 일본 천황의 무소불위의 힘과 권력가 현대에 들어서면서 그 힘과 권력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일본을 상징하는 존재로 비춰지고 있다.듣기로는 일본 천황의 시조가 한반도에서 건너 갔다는 설(說)이 있다.메이지 천황의 일상이 잠자리,목욕,옷시중,식사 등을 비롯하여 황후,황태자 등의 일상,예법을 통해 근대 일본 역사를 단편적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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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뒤집어본 중국 지식의 비타민 2
지식활동가그룹21 지음 / 문화발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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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숨겨진 면모를 제대로 알려면 가장 후미지고 소외된 곳을 찾아 누비면서 그 면모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사람들이 살아 가는 일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그 일상의 모습 속에는 관습과 습관,생각과 사고 방식을 넘어 문화적인 수준까지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중국은 오랜 역사와 '중화사상'이라는 중국인만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갖고 있지만,오랜 봉건적 제도와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살다 보니 그들 가슴 깊은 곳까지는 아직은 세련된 서구적인 체제와 질서,메너가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 거 같다.'피의 숙청'이라 불리고 중국의 발전을 더디게 한 문화대혁명을 지켜 보면서 중국인의 머리 속에는 조용히 지켜 보고 속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함부로 나대 봤자 이익볼 것이 없기 때문이고 몸과 마음을 다치기 때문일 것이다.

 

 

출장 형식으로 1990년대 중반 중국 산동성 지역을 다녀 온 것이 중국 현지에 대한 생생한 경험이고 그 경험이 오래도록 머리에 남아 있다.대외 관계가 많아지면서 중국과 중국인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겠지만 아직도 공산주의의 인습이 남아 있어서인지 열심히 일을 해서 많이 가져 가야겠다라는 경제주의 사고 방식은 덜 물들어 있는 거 같다.

 

 

내가 중국 땅에 발을 내딛고 체제하면서 느낀 것은 다양하기만 하다.외국인이라고 생각되면 달러매입을 하려는 호객행위와 택시를 타게 되면 터무니 없게 가격을 부르고,(바이어 대접하는 차원에서)대낮에도 도수 높은 중국술을 권한다.마시지 못해도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협상과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에 조금은 마셔 주는 것이 좋다.그리고 지방 도시 시외버스 터미널의 화장실을 가려다 황당무계한 일을 목도한 적이 있다.화장실 바닥이 운동장과 같이 넓었는데 대소변을 한 곳에서 남녀 모두가 적당하게 보는 것이었다.나도 모르게 진저리가 쳐진 경험이 있다.

 

 

중국인 앞에서는 계약과 납기,규정을 앞세우기 전에(물론 본사에서 납기,품질 등 닥달하기에) 그들과의 책임자와의 관계를 인간적으로 잘 맺어 그들이 자신들을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먼저이다.납기를 재촉하다 보면 품질은 엉망이 되어 버리고 책임자는 간혹 출장을 핑계로 나타나지 않은 경우도 있어 업무상 곤혹을 치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특히 회사 책임자급이면 공산당원일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그들에게 혼을 내고 면박을 주는 경우에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수도 있기에 유념해야 한다.

 

 

중국인의 월 급여 수준이 한국 돈 18만원(인민폐 1,000위안) 정도이다 보니 식료품과 생활비에 빠듯하다는 것을 느낀다.출퇴근의 경우에는 대부분 자전거로 하고 버스(궁궁치처)로 하는 경우도 있으며 자가용은 대부분 관용(官用)인 경우가 많다.식사는 공장 노동자인 경우에는 식권을 발급받는데 바오즈(한국식 만두인데 속엔 아무 것도 없음) 2개 정도에 돼지고기와 야채를 섞어 볶은 반찬이 전부이며 식사 후에는 으례 중국식 차를 마시면서 디저트로 가름한다.여름 날엔 더위 때문인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휴식시간이었던 기억이 난다.그만큼 생산성과 수익성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아침이 되면 태극권으로 노인들이 고요한 아침 이슬을 맞으며 태극권의 내공을 뽐내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중국의 모습이다.통근,통학시간이 될 무렵에는 자전거와 자동차가 뒤섞이고 매연마저 시커멓게 내려 앉는 중국 거리는 활기차기만 하다.일을 마치고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백화점(상창) 등을 잠깐 들르게 되는데 상품은 조잡하기만 하다.또한 판매원(복무원)이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무뚝뚝하기만 하다.'살라면 사고 말라면 말아라' 식이다.그들은 거리에서 심심풀이로 볶은 해바라기씨를 자주 까먹는다.그리고 껍질을 바닥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버리는데 이러한 모습은 식당에서도 자주 목격된다.음식물 찌꺼기 등이 식탁과 바닥에 수북하게 버려지고 새로운 손님이 오면 몇 년 묵은 행주로 슥삭 닦는 시늉으로 끝나는 것을 보고 위생관념,청결의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보증금 제도가 발달된 나라이다.여관,호텔에 묵을려면 반드시 보증금과 숙박비를 선불로 내야 한다.수많은 외침 속에서 남에게 당하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중국인의 심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거 같다.그 외 보증금을 요구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56개 소수민족에 14억에 가까운 중국은 이제 많이 달라져 가고 있다.문화대혁명 당시 하방운동으로 몰렸던 지식청년들이 이제는 중국을 이끄는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높은 경제 성장률 뒤에 그들이 안고 있는 빈부격차 문제와 실업문제,환경 오염 문제,인권문제 등이 그들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고 1인 자녀를 국가정책으로 하는 중국은 기회 균등과 자유 경쟁이라는 시대를 맞고 있다.하지만 중국에서의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결정은 계약 등과 같은 약속보다는 그들 속에 깊게 자리잡은 관계(꽌시)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지금은 중국식의 사고방식 반,서구식 사고방식 반 정도의 과도기에 놓여 있는 중국의 현주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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