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히스토리 - 한 권으로 읽는 모든 것의 역사
데이비드 크리스천 & 밥 베인 지음, 조지형 옮김 / 해나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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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는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학문 역시 융합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인간의 뇌는 한쪽만은 사용하게 되면 한쪽 분야로만 쏠리기에 생각과 감정,이성과 논리의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인문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골고루 지식을 쌓고 자신의 생활과 접목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복잡다기한 사회에서 자신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다고 본다.좁게는 문제해결력을 비롯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타인과의 소통과 교류에도 학문의 융합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크리스천,밤 베인 2인이 쓴 <빅 히스토리>는 기원전의 우주의 빅뱅부터 21세기 이후까지를 섭렵하고 예측해 보는 시간을 마련해 주어 개인적으로는 뜻있는 독서시간이 되어 주었다.특히 빌 게이츠가 추천까지 해주고 열렬히 응원해 주고 있기에 든든하기도 했다.인간의 뇌는 사용하면 할수록 더욱 발달하고 확장되어 간다.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자연과학,역사,경제에 이르는 학문을 하나의 띠로 연결시켜 살펴보고 우리 세대 이후까지를 생각하고 예측해 본다는 것은 인류의 문명발전과 인류의 삶까지를 폭넓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주기에 지금까지의 편협한 독서성향을 새롭게 해야겠다는 다짐이 일어났다.

 

 자연과학 분야는 흥미는 있지만 몇 백만년 전의 우주의 기원부터 지구,지구상의 생명,인간의 진화에 대한 것들이 과학자,인류학자,고고학자들의 추측과 감정에 의한 것들이기에 가끔은 믿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하고 회의마저 든다.그렇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면면히 흘러 오고 있는 천체의 현상과 인류의 기원에서 농경문화,탈산업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와 우주자연은 뗄래에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재인식하게 되었다.'빅 히스토리'가 복잡하다는 생각과 고정관념이 있었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느끼는 것은 간단명료하게 각분야에 대해 해설을 해주고 있다.또한 각분야에 대한 기초설명을 한다음 하단에 핵심 질문을 삽입하여 독자로 하여금 해당 분야에 대해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어떤 정보를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할 대 활용하는 결론은 단언 내지 대답인데 신뢰는 직관,권위,논리,증거라는 네 가지의 '주장의 신뢰성 판단기준'가운데 하나에 근거한다.나아가 영국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에 의해 '빅뱅 이론'이 명명되면서 우주의 기원과 에너지의 법칙 등이 시대와 문명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이론과 해석을 낳게 된다.에너지의 기본적인 네 가지의 힘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즉 중력,전자기력,강력,약력이 바로 그것인데 강력과 약력은 각각 원자핵을 형성하는 힘과 방사능의 원인이 되는 에너지이다.나아가 원소 주기율표를 보면 원소들은 대부분 죽어가는 별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폭발하는 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인간의 유전자 조직인 DNA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는 법을 천천히 배워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우주의 생물들은 네 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다.즉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는 세포로 만들어진다는 물질대사,물질대사를 통해 얻은 에너지와 물질을 활용하여 환경에서 일어나는 매우 작은 변화에라도 끊임없이 적응하려고 하는 능력인 항상성,개체가 죽는 경우,죽기 전에 자기 자신과 똑같은 복제본을 만들거나 DNA의 복제본을 만들어 놓고,주변에 복제본들을 뿌려놓은 생식,수세대를 거치면서 종(種)은 천천히 변화하며 적응할 수 있고,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다양화될 수 있는 적응을 들 수가 있다.

 

 현생 인류라고 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약 1만 년전에 세계 곳곳에 분포되어 살았던 인류 공동체들은 환경을 조작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식물들과 동물들이 더 많이 만들어 내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인류에 대한 발자취와 기록을 연구하는 고고학과 조상들의 사회와 매우 흡사한 현대 사회에 대한 연구는 인류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융합시켜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기만 하다.우주의 기원과 인간의 생활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가를 역사와 경제적인 측면까지 고려한다면 '빅 히스토리'는 인류의 삶과 문명이 어떻게 변모하고 발전해 왔는가를 가늠할 수가 있다.글로벌 시대에 접어 들면서 글로벌 교환 네트워크의 팽창과 열린 지구촌,경쟁적인 신자유주의 시장,그리고 에너지 사용의 확대를 생각케 볼 수가 있다.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는 인구와 산업화로 인한 기후온난화,식량문제,오존층 파괴 등은 생활의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안겨 주고 있지만 이 문제는 어느 한 국가가 나서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우주와 지구,경제와 인류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염려한다면 말이나 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의식있는 사람들,세상을 지배하고 리드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으면서 실행계획을 모색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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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드 -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의 위대한 작전들
미카엘 바르조하르 & 니심 미샬 지음, 채은진 옮김 / 말글빛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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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나라든 자국의 이익과 정보수집을 위해 정보기관들이 있다.한국에는 국정원이 있고 미국에는 CIA 구소련의 KGB 영국의 K15 등이 있다.그런데 미처 몰랐던 이스라엘의 모사드(Mossad)는 이스라엘의 비밀 정보기관으로서 1951년에 설립되었다.설립목적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 및 유대인 학살자 추적 그리고 해외정보 담당,비밀정치공작,대테러 활동을 꾸준히 수행해 오고 있다.이스라엘의 비밀정보기관인 모사드의 활동은 비밀스럽고도 초강력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실감을 하게 한다.

 

 모사드가 비밀리에 정보를 수집하고 대테러활동을 하는데 이들은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라는 성경구절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만큼 자국의 안전과 이익,오랜 세월 유럽강국에 떠밀리고 유랑생활을 했던 설움을 모사드에서 원없이 그들의 목적을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초대 루벤 실로아 모사드 국장부터 현재 타미르 파르도 국장에 이르기까지 모사드는 독자적이든 미국과의 공조관계를 통해서든 자국의 이익을 침해하고 장애물로 여겨지는 경우에는 가차없이 잘 훈련받은 특수요원들을 내세워 '가미가제식'의 행동을 불사르고 있다.

 

 이란이 페르시안 만 연안의 부시르에 원자로를 건설하기로 러시아와 합의하고 중국과는 규모면에서 그보다 작은 원자로 2기를 건설하기로 합의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이란에 팔린 폭탄과 이란에 고용된 소련의 실직 가학자들을 찾기 위해 특수요원들이 유럽 전역에 파견되면서 모사드의 활동은 기름에 불을 지핀듯 활활 타오르면서 그 행동반경을 넓혀 가고 때와 시기,상황에 맞게 그들의 목적과 취지를 이루어 나간다.특히 제2차 세계대전시 유대인 학살의 장본인 아돌프 아이히만을 재판정에 오르게 하고 사형에 처해 그 유해를 지중해에 흩뿌렸기도 했다.6백만 명의 유대인을 말살했다는 비극과 원한에 대한 원수를 갚은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여진다.러시아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유대인 요셀레의 실종사건도 긴장감을 더해 주고 이슬라엘인의 분노와 원망을 사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시오니즘에 입각한 유대교를 믿고 그 인접국인 이집트,시리아,이란,이라크 등은 코란을 절대신앙으로 믿는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이기에 이스라엘과 그 인접 중동아시아국들은 종교적으로도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를 않는다.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종교 및 영토전쟁은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릴 만큼 아직도 화약의 내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곳이다.이러한 비밀정보기관 안에는 늘 스파이 즉 첩자가 존재하는데 시리아의 스파이들은 음모자,국가의 적,이전 정권 지지자 등으로 분류되어 가차없이 교수형을 당하기도 한다.1950년대 이스라엘 총리를 지낸 골다 메이어여사의 침착하고 담대한 정치력은 매우 인상깊게 다가온다.모사드를 총지휘하는 여장부로서 자국의 이익과 백성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선수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요르단내 팔레스타인 수천 명을 학살한 '검은 9월'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후 모사드의 테러리스트들은 요르단 영토 및 암만의 지역들을 장악해 나가고 요르단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기도 했다.그외 욤 키루르 전쟁 등이 있었으며 이슬람 지하드의 목적이 테러이기에 모사드는 이에 철저하고도 빈틈없는 대응과 응징을 해나갔던 것이다.요근래에는 IT산업이 발달하여 적국의 컴퓨터 파일을 감시하고 복사하는 기술까지 생겨 모사드는 자국과 관련한 정보수집과 이익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이스라엘은 국가의 방위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남녀.모두가 군에 입대한다.수많은 세월 외세로부터 설움과 외침을 받은 만큼 그들은 국가 구성원 모두가 똘똘 뭉쳐 자국을 세상의 중심으로 삼아 새로운 국가의 운명을 세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한국도 이제는 국정원이라는 정보기관이 본래의 목적과 취지에 충실해 주었으면 한다.국내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국민의 원성과 불만을 사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대하는 바이다.이스라엘이라는 조국을 지켜 내기 위해 목숨을 초개와 생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사드의 어제와 오늘,내일을 이해하고 국가란 무엇인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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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연대기 2 - 프랑스 혁명전쟁부터 이란-이라크 전쟁까지 전쟁 연대기 2
조셉 커민스 지음, 김지원.김후 옮김 / 니케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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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연대기 1>에서 소개된 전쟁이 근대화 및 시민들의 힘이 국가를 지탱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대반전의 시기였다.프랑스 혁명 전쟁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고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프랑스가 유럽을 점령하면서 이후 세계대전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는 대서사적인 전쟁의 소용돌이로 돌입하게 된다.나아가 프랑스 혁명전쟁은 19세기 유럽에 치열한 권력 투쟁의 장이 되었으며 영국은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오세아니아에 대제국의 맹위를 떨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한편 아시아는 서구열강에 의해 개방의 압력과 식민통치를 받게 되는 불행한 역사를 안게 되었는데 이것은 수구적인 봉건제도와 군주와 관료들의 부패한 이권다툼이 서구열강에게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패배하고 그들의 통치를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그나긴 제국주의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피지배국의 백성들은 간난신고의 세월을 살아나가야 했던 것이다.역사는 힘과 권력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고 역학관계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우게 한다.

 

 18세기말부터 시작된 프랑스 혁명전쟁,봉건제국의 틀을 벗어나자는 태평천국의 난,크림전쟁,미국 남북 전쟁,러일전쟁,제1,2차 세계대전,중국 내전,에스파냐 내전,아랍-이스라엘 전쟁,베트남 전쟁,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란-이라크 전쟁 등으로 전쟁 연대기 1보다는 보다 객관적이고 생생한 전쟁의 현장을 목도하는 것과 같은 감각을 안겨 준다.전쟁에서 사용하는 총기류도 나날이 발전하여 화포류에서 신식무기로 발전해 나간다.세계대전에서는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여 대량 살육,살상이라는 인류의 참극,공포를 안겨 주었던 대비극의 전쟁 역사가 있었다.이념과 사상이라는 구습을 타파하여 새로운 '주의'를 목표로 했던 내전과 난리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영토확장이라는 것이 주가 된다.나아가 미국과 소련이 현대사에서 그들의 힘을 제3세계에 발휘해 보려는 무리한 꼼수가 승리로 이어가지를 못하고 만다.결국 탄탄한 내치가 중요한 것이지 빚좋은 개살구식의 허세는 결국 역사의 무대에서 이슬과 같이 사라진다는 것을 교훈으로 알려준다.

 

 근.현대의 전쟁과 내전은 많은 내홍과 후유증을 안게 되고 두 개의 이데올로기로 분할되면서 미.소가 세계무대의 G2로 자리매김한다.획일적이고 비생산적이며 백성의 질적인 삶이 나아지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는 독일의 통일로 인해 구소련의 연방국이 해체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이렇게 이념의 갈등과 대치가 사라지면서 전세계는 보호무역과 신자유주의라는 커다란 장막을 내세우면서 경제전쟁에 돌입하고 있다.소리없는 총성이 아직도 들려오고 있는 것은 힘의 역학에 의해 미국,중국과 같은 경제대국은 약소국들을 경제식민지화 하려는 모략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특히 20세기 말 IMF의 경제한파 및 금융위기에 몰린 전세계는 제자리 걸음의 경제성장을 보이고 그 탈출구와 해법은 무엇인지 아직도 안개속이다.특히 신자유주의가 상징하는 일부 소수계층 감싸주고 배채우기 식의 논리가 빈자들과 소외계층에게는 무한한 허탈감과 삶의 의미와 가치마저 상실케 하고 있다.

 

 <전쟁 연대기 2>의 겉표지 그림은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사진이다.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사람들을 배치하는 구도로 처형 장면을 묘사했다.전쟁은 나라와 나라간의 상흔의 후유증을 오래도록 안겨 준다.전쟁이라는 살육전에는 으례 힘없는 백성들만 희생이 될 뿐이다.너무나 유명한 독일의 나치즘(아리안족의 우수성과 아리안족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에 의해 무수한 유대인이 생화학 등에 의해 무참하게 희생되고,일제는 생체실험(마루타)이라는 명목으로 관동군 731부대가 조선인 및 중국인을 사물 다루듯 끔찍한 방법으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실험과 죽음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과거의 전쟁이나 현재의 전쟁 모두 권력을 잡은 이들의 오판과 비이성적인 판단이 온세계를 공포와 전율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다시는 총성과 미사일,원폭,수폭 등의 교전과 난전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란다.인류가 살아가는 길은 무엇이고 왜 인류가 존재해야 하는가를 생각한다면 전쟁과 내전보다는 기후변화,오존층 파괴,생태계 파괴,식량 문제 등에 보다 더 심도있는 연구,심포지엄,해법을 내놓아야 한다.인류문명의 발전을 꾀하기 위해 이룩해 놓은 결과물이 과연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는가를 의식있는 지도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성찰을 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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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연대기 1 - 그리스-페르시아 전쟁부터 미국 독립 전쟁까지 전쟁 연대기 1
조셉 커민스 지음, 김지원.김후 옮김 / 니케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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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부족과 부족간의 내전과 갈등은 끊임없이 자행되어 왔다.전쟁의 발달은 여러가지이겠지만 전쟁 용사의 영웅심을 비롯하여 영토확장을 꾀하여 제국의 시대를 맞이하려 했던 것이 많다.전쟁으로 인하여 승자와 패자 사이에는 두터운 앙금이 생겨 훗날 다시 복수전을 벌이는 양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전쟁은 승자나 패자 모두 상처와 고통이라는 후유증을 남겼는데 사라져 버린 국가,부족,언어가 전쟁으로 말미암아 소멸되어 가고 새로운 국가세력이 일정기간 유지되다 또 다른 전쟁의 도화선이 되어 전쟁으로 인한 인명,재산피해,피해국에 대한 보상 등으로 국가의 위상도 엎치락 뒤치락 했던 과거의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현대는 이념과 사상이 사라지고 대신 먹고 사는 경제문제에 전세계가 혈안이 되어 가고 있다.미국은 글로벌 G2국가이지만 언제 중국에게 그 위상을 빼앗길지 모르는 치열한 경쟁의 도가니에 돌입하고 있으며 그들이 당면한 경제위기 돌파구를 찾기 위해 경제협력의 루트를 동북아 및 동남아 쪽으로 손을 뻗고 있는게 작금의 현실이다.경제라는 문제 역시 힘과 권력의 역학관계로 저울질하기에 약소국인 경우에는 경제를 비롯한 첨단산업,과학,문화 등에 종속될 우려도 없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중국이 G2국가로 화려한 변신을 하면서 명목상으로는 선린우호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들이 어떠한 계략으로 한반도를 탐식하려고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동북아의 중간지점에 있는 한국으로서는 이웃나라들과의 공고하고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외교관계를 전개해 나가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전쟁의 역사를 기원전부터 미국 독립 전쟁에 이르기까지 장장 2,200여 년간의 22개의 대정복,대전쟁을 들려 주고 있는 <전쟁 연대기 1>를 읽으면서 전쟁의 역사를 새롭게 살펴보면서 왜 전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를 담담하게 이해하고 학습하는 계기가 되었다.기원전 최초의 전쟁인 그리스-페르시아 전쟁부터 영국의 세력과 영국 식민주의가 종지부를 찍게 되는 미국 독립 전쟁까지의 전쟁의 파노라마는 전쟁과 관련한 삽화 및 전쟁 영웅의 에피소드,교훈 등을 세밀하고도 정교하게 전개되고 있다.조셉 커민스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전쟁 연대기를 엮어 놓은 이 글은 고대,중세,근대에 이르는 전쟁 연대기를 짜임새 있게 엮어 놓았다.전쟁의 의미 요약,교전국,전쟁터,사상자 수,주요 인물에 관한 간단 목록,전쟁의 역사적 특수성을 정리한  개요,전쟁 기간과 진쟁 과정에 대한 연표 그리고 연대기,전환점,지휘관,돋보기순으로 해당 전쟁에 대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고 있어 동.서양사를 이해하는데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도 남는다.

 

 <전쟁 연대기 1>에는 특이하게도 임진왜란이 실려 있어 시선이 오래도록 멈추고 말았다.통신사로 일본에 건너간 이들이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정한론에 대한 의견을 선조가 잘못 인식하여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안타까운 역사를 씁쓸하게 음미하게 된다.주지하다시피 다행히도 이순신장군에 의해 한산도대첩,명랑대첩 등 왜적을 대첩으로 몰고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죽음과 함께 이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된다.그러한 국가간 전쟁의 과정 속에서 일국의 수장 및 필드를 통제.지휘하는 장수의 국가관 및 미래예측력,통찰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주로 서구의 전쟁사가 중심이 되고 동북아에서는 임진왜란,몽골 족의 정복,만주족의 중국 정복 등이 그나마 동양의 전쟁사 및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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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 문명의 중심
프랜시스 우드 지음, 박세욱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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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화사의 발자취를 보면 유구하게 이어져 오는 경우보다는 실이 툭 끊어지는 것처럼 얼마간의 시간 속에서 번창하고 멸하여 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특히 산업혁명이 시작되기전 사람이 두 발로 걷고 낙타와 말이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경제활동을 했던 적이 있다.그 시대는 화폐로서 물건을 주고 받는 것보다는 물물교환이 주가 되었다.문화인류사에 족적을 남기고 문명의 광휘를 빛낸 것이 실크로드라고 생각한다.동서양의 문화가 시작되는 시발점이고 실크로드를 따라 카라반(대상인)들이 모래먼지 나는 사막 위를 걷고 고산지를 넘으면서 문물을 전파하고 교류를 했던 것이다.

 

동서양 문물의 교류가 러시아와 영국이 주도한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의 결과물과 돈황 석굴의 유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과 연구,호기심을 더욱 증폭해 나갔다.실크로드는 중국 한나라 수도 시안을 시발점으로 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로마에 이르는 광대역의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기에 동서양의 문화,역사,소통과 상생의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본다.

 

 

유럽에서 중국으로 오기도 하고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서남아시아,인도 등을 왕래하고 교류하는 사이에 오아시스 도시가 형성되기도 했으며 중국의 비단을 주로 사갔다.이러한 교역이 7~10세기 초반에 이루어졌다.특히 돈황은 오아시스 도시로서 4~10세까지 중국의 불교 중심지였으며 러시아와 영국의 탐험대에 의해 돈황석굴이 발견되면서 잊혀졌던 실크로드의 문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일부는 제국에 의해 약탈을 당하기도 했다.중국이 자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한 소이였던 것이며 그 소중함을 깨닫고부터는 외세,외국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기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여진다.

 

실크로드 문화의 중심지 돈황에서 중앙아시아,남부 인도를 가려면 만년설로 유명한 고지대 및 사막들이 산재되어 있는데 그 험난하고 위험한 지형을 극복하고 동서양의 문물교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톈산산맥,쿤룬산맥,티베트 고원,파미르 고원(세계지붕이라고 일컬어짐)을 비롯하여 타클라마칸 사막,고비사막 등의 요새와 같은 험난한 지형들로 이루어져 있다.베일에 가려진 돈황석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잊혀지고 사라진 제국들을 비롯하여 문물의 교류가 매우 방대하고 다양한 교류라인에 또 한 번 경이롭기만 하다.혹독한 기후 특히 8개월간 혹한이 지속되는 중앙아시아와 오아시스의 도시들의 기후는 황량하고 맹렬하기만 하다.

 

비단의 원료인 명주실을 짜기 위해서는 뽕나무와 누에가 필요한데 비단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전설상의 황제 부인인 누조(嫘祖)이며 중국 비단이 지중해에 전해진 것은 기원전 2세기경이라고 한다.실로 비단의 교류가 유구하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으며,그리스.로마의 작가들은 비단을 쾌락과 퇴폐와 연관짓기도 했다.속칭 비단옷은 야시야시한 느낌이 없지 않다.명주실을 이용한 다양한 화집을 통해 중국의 공예기술,수준이 높다는 것도 말해 주고 있다.누에 및 뽕나무 산지는 중국 남서부부터 산동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에서 골고루 생산되지만 주로 양자강 삼각주 지역이 주산지이다.

 

 

중국의 비단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그리스.로마로 전래되고 중국은 서역에서 생산되는 참깨,완두콩,양파,고수풀,오이 등을 일찍이 한나라 시기에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이렇게 물자 교역이 빈번하면서 중국은 교역과 이동을 통제하고 상품이 유입될 때 일종의 관세를 부과하며 밀수방지책도 마련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육로를 통한 교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바닷길을 통한 교역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품목이 진주,별갑,상아,무소뿔 등이다.몇 명이 무리를 이룬 상인들이 있는가 하면 보따리 장수와 같은 사무역을 행하는 이들도 있었다.

 

 

동서양의 문물교역의 정점인 돈황석굴과 천불동은 불교문화가 융성하였음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그 주위는 황량하고 건조한 기후 탓인지 목화밭,양,염소들이 많다.돈황설굴 안에는 다채로운 불상과 불탑,문서,그림들이 수장(收藏)되어 있는데 불교자료들이 위주가 된다.놀라운 것은 다양한 언어가 발견되고 다양한 종교의 문헌도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서 돈황석굴은 실로 동서양의 문물교류의 보고(寶庫)가 아닐 수가 없다.이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각종 문물과 문서들이 돈황석굴 안에 숨겨져 있었고 그 석굴을 폐쇄한 이유가 무엇일까.그것은 서하(西夏)왕국을 세운 탕구트족이 위협해 올 무렵,아니면 1000년에서 1010년 사이에 닫혔을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19세기 러시아 및 영국 탐험대에 의해 돈황석굴이 알려지면서 폐허가 되다시피한 그곳에서 다양한 문물과 문서,가치있는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왕의 폐허 별장,땅 속에서 건져 올린 부처 두상과 괴수상 등이 관심을 끌게 한다.중국역사 전문학자이면서 영국 국립도서관 중국문헌 큐레이터인 프랜시스 우드저자 의해 동서문물 교류의 역사와 문화,언어,그림과 문서,탐험일지를 비롯하여 중국에 종교전파를 위한 흔적의 일환으로 다양한 종교자료도 돈황석굴에서 발견되어 인류학,고고학,종교학적인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꼼꼼하고 정교한 자료 및 해설이 이 글의 완성도를 높여 주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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