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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에 대한 그리움 - 잊혀져가는 거의 모든 것의 아름다운 풍경
김종태 지음 / 휘닉스드림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도서를 통해 선조들의 숨결과 지혜,혼맥이 살아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지난 시절의 고단했던 촌부들은 땀으로 온몸이 얼룩지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던 분들의 모습이 환영마냥 선연하게 다가온다.아침 잠도 없이 새벽닭이 "꼬끼오"하고 울어대면 어르신들은 잠에서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때론 논에 물꼬를 열고 논두럭에 자라난 풀이라고 깎기 위해 일찍 아침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선 길어 온 우물물에 싹싹 세수를 한 다음 아침 상에 앉아 맛있게 드시며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셨다.특히 할아버지는 잎담배로 장죽의 담뱃대에 집어 넣고 뻐끔뻐끔 연기를 날리며 호젓하게 피우시던 주름진 할아버지의 근엄한 모습이 새롭다.
저자는 구리시 인창동 배나무 골에서 1960년대의 추억을 되살리고 잊혀져 가는 옛 것들을 되살려 선조들의 삶을 반추하고 그 속에서 선조들의 순박하고 지혜로운 것들을 모아 편하면서도 바쁘게 돌아가는 현세태를 꼬집으면서 돈으로만 해결하려 하는 배금주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나이가 들어가는 나도 이 점에 대해 공감하고 찬성한다.
역사는 늘 변천과 발전의 반복을 거듭해 왔다.인류에게 안겨주는 혜택은 무궁무진하지만 역으로 인류가 깊게 성찰해야만 하는 것도 지나간 옛 시절의 옛 것은 무심하지만 잘 전달해 주고 있다.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잔소리와 시집살이로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고 끼니 때가 되면 집에 와서 삼시 세 끼를 준비해야 하고 또 다시 논과 밭으로 일을 해야 하며 밤이 되면 말린 광목 옷을 뜨겁게 달구어진 인두로 빳빳하게 다리고 남편,자식들의 옷가지를 개기도 한다.그러다 졸음에 겨워 그만 잠들기도 한다.그에 비하면 아버지는 육체적인 일만 했지 집에 오면 말 그대로 왕 대접을 받는다.어머니가 부엌간에서 끓이고 삶고 지지며 버무린 음식들을 먹고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 실은 고향 소식'이라든지 권투 시합 등을 경청하며 나름대로 흥겨워하고 몸과 마음이 들썩뜰썩 하시던 모습도 어제의 일마냥 생생하다.
나는 이 글에 나오는 옛 것들은 보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고 직접 몸으로 움직여 본 것들이 대부분이며 생소한 것도 있다.전형적인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어린 시절의 초가집과 호롱불,빗,넓다란 마당,헛간,광,지게,타작,작두,절구통,서까래,구들장,조황신,봉당,버선,쪽,시루,반닫이,조롱박,양은 그릇,뒤주,대바구니,맷돌,화로,다듬이,또아리,골무,조리,놋그릇,체,키,부지깽이,고무신,고수레,서낭당,개떡,막걸리,엿장수,장독대,멍석(덕석),창호지,온돌,뒷간,우물 등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집에서 늘 보고 저절로 친해졌던 사물이고 존재였다.또한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면서 '역전 상회'라는 곳에서 다양한 군것질 거리와 문구,간이 주막이 한 곳에 있었는데 또뽑기,달고나,눈깔사탕,뽀빠이 등을 자주 사먹고 물든 적이 있다.또뽑기에 우연히 당첨되어 멋진 만년필을 받게 되었는데 상회 주인의 늦장으로 몇 달 만에 내 품에 들어온 기억도 있다.그것도 갈 때마다 빨리 달라고 자주 졸랐기에 그나마 내 손에 들어온거 같다.
1972년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면서 초가는 차츰 사라지고 스레트 지붕과 기와가 줄을 잇고 1980년대가 되면서 양옥이 하나 둘 생기면서 시골 고향 마을도 차츰 변해 갔지만 동네 이웃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늘 정담이 오고 갔고 제사나 잔치가 있으면 앞뒤로 서너 집은 꼭 음식을 담아 심부름을 하던 기억도 있다.당시 화장실은 헛간 옆에 있어서 밤이 되면 소변은 요강에 누곤 했다.다음 날 꽉 찬 소변은 할머니께서 치우고 짚으로 요강 속을 싹싹 닦곤 했다.어릴 땐 큰 것은 혼자 가기 무서워 할머니나 어머니가 측간 옆에 계시도록 부탁을 하곤 했는데 측간 입구 버팀목에는 새끼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그 새끼줄에는 여기 저기에서 온 주황색에 가까운 얇은 봉투에 부고장이 엮어져 있었고 보름달이라도 뜨는 날은 그나마 달빛을 벗삼아 공포심이 사그라들기도 했다.
봄,여름,가을,겨울 바쁘게 살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몸을 사리지 않으시고 일에 매달리셨다.보리를 파종하고 보리싹이 틀 무렵이면 땅이 녹으면서 보리에 영향이 갈까봐 온 식구가 보리 논을 밟기도 하고 벼모가 자라고 모내기할 무렵이면 어두컴컴한 밤을 횃불로 밝히면서 동네 모꾼들이 모를 찔 때도 있었다.6월 여름이 시작되기에 논다랑이 물 속에는 풀들과 함께 거머리들이 자주 발목을 물기에 곤혹을 치르는 경우도 있었으며 한여름에는 벼 옆에 자라나는 피를 뽑고 아버지가 소독을 하시면 옆에서 줄을 이어주기도 하고 당기기도 했다.가을이 되면 식구와 놉(일꾼)이 하나가 되어 벼를 베고 한 켠에선 할머니나 어머니가 새참이나 점심을 또아리에 장방형의 광주리에 음식을 이고 오시고 바둑이도 쫄랑쫄랑 따라오던 시절도 기억이 난다.겨울에는 겨울나기를 위해 깊은 산 속에 부모님과 땔나무를 하러 간 적도 많다.이것도 모자라 아버지,어머니께서는 먼 타관에 가셔서 양은 그릇 장사를 하면서 생계와 경제자립도를 올리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전화와 텔레비젼,삐삐,핸드폰과 함께 편리한 세상을 맛보게 되었다.자식들은 장성하여 도회지로 이동하고 시골 마을에 남아 있는 분들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연로한 분들 뿐이다.간혹 성묘로 고향을 들르게 되면 경작하지 않는 논과 밭들이 무성한 풀로 가득차고 타지에서 이사 온 이방인들만 낯설기만 하다.돈을 벌고 출세를 하기 위해 도회지로 이동했지만 모두가 돈을 잘 벌고 출세를 하는 것은 아니다.돈에 눈이 멀고 출세의 줄에 서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젊은 청춘 남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도 냉혹한 세파의 늪에서 헤어나올 줄 모른다.때론 가련하게 보이기도 하다.시대가 변하고 생각과 주의가 다르겠지만 불과 몇 십년 전의 동화와 수채화같은 어린 시절의 정경은 다소 불편했지만 그 삶 속에는 돈으로 해결해 줄 수 없는 인간다움의 정과 행복,연민,동정,공동체의 진정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고 자식들을 기르는 입장에 서고 보니 어른들이 우리들을 위해 각고의 열과 성을 보여준 것에 십분의 일도 못따라 가는거 같다.그것은 돈으로 해결하려 하고 편하게 살려는 보신주의가 뇌리에 가득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비위생적이고 비실용적인 것이 그 옛날엔 많았지만 지금의 삶은 주거와 삶의 양식,행태가 거의 획일적이고 계산적이며 물질과 힘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기준을 삼기에 지난 시절의 선조들의 지혜와 수고,자애심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오늘날의 세태와 비교할 때 훨씬 값지고 영원하며 존귀한 것이 아닐 수가 없다.
지금은 어머니만 남으시고 모두 작고하셨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내내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마을 이웃들의 동정(動靜),산하의 고요함,평화,순리,공동체의 삶,상부상조의 정신을 되살리게 되고 그 분들이 나에게 보이지 않은 고귀한 지혜와 인내,자비심을 주신 것에 대해 가슴 가득히 감사할 뿐이다.지난 시절의 우리의 것을 제대로 알아야 내일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제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