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태조에서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의 군주가 되는 과정을 비롯하여 치세,사회상,그 영향력 등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조선은 뭐라고 해도 성리학을 기반으로 유교를 국체로 삼고 왕권과 신권이 날카롭게 대립하기도 하며,사색당파로 인해 군주의 생각과 이념이 이리 저리 흔들리기도 했다.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권문세가에 의해 정사가 좌지우지 되기도 했으며 구한말엔 외세의 침략과 개방압력으로 군주의 역량은 시험대에 오르기도 했다.실록과 사관이 알려주지 않은 비밀스러운 역사의 틈새가 저자에 의해 밝혀지는 것 같았다.
이한우저자는 통각(統覺 : 역사,시간 자체의 통일적인 감각)에 의해 이 글을 구상하고 집필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연대기나 인물 위주의 나열식 서술보다는 군주와 신료를 둘러싼 첨예한 심리대립과 결단력,고민과 갈등,오류와 대실수 등이 오늘을 사는 후세들에게 역사,권력은 과연 무엇인가도 새삼 느끼게 한다.특히 사농공상순으로 된 사회적 계층,이념이 조선시대 전반에 퍼져 있었기에 기술,실용과 같은 삶의 발전과 질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도 조선시대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사회적 기반이고 이념이었다고 본다.
'왕의 하'루는 대표적인 왕들의 취임식을 추체험하면서 왕의 심정과 그 날의 발생했던 일들을 살펴보고 있고,신하들과 맞서 정치력을 발휘해야 했던 왕들의 결단의 순간들을 '하루'하는 시간 속으로 복원하고,즉위식,제왕학 수련,묘호 제정,효와 불효,국혼 등을 통시적인 관점에서 왕실의 부침을 보여 주고 있다.
역사를 바꾼 운명의 하루에서는 이성계,연산군,광해군,소현세자,정조 임금의 하루를 보여 주고 있다.국왕으로 즉위하게 되면 파루에서 시작해 인정에서 끝나는 것이 일샹생황의 규칙이다.아침에 신료들과의 조강과 일과가 끝나는 석강이 있으며,은밀한 공간이자 유일한 '사적 영역'인 침전은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개국되면서 중국 역시 명이 탄생되었다.명은 조선에 사대교린과 조공외교를 펼치면서 일년삼사(一年三使)라는 외교 관계와 비정기 사행(使行)이 있었다.중종에 들어오면서 한명회 등의 신권이 강화되고 왕권과 신권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엿볼 수가 있다.또한 비운에 간 국왕들은 독살을 당했거나 독살당했을 가능성(예종,인종,선조,효종,현종,경종,정조,고종)과 권력투쟁의 희생자(소현세자,사도세자)가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국왕의 즉위식은 대부분 선왕이 서거하는 날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당파가 다시 남인,북인 그리고 노론과 소론,더 갈라져 나가 벽파와 시파로 나뉘어지는 조선의 사색 당파는 영,정조에 그 극치를 보여 준다.다시 서인은 공자의 문묘를 중요시하면서 종묘와 거리를 두게 되고 선조에 들어와 종묘의 기능을 끝났다고 생각하게 된다.어찌되었든 국왕의 권력에 누수현상이 생겼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왕의 즉위시기은 추대형과 승계형이 있다.정상적인 승계와 비정상적인 승계가 있으며,눈물의 즉위식은 정상적인 승계에서 볼 수가 있다.또한 부자 승계와 조손 승계(순조에서 헌종)가 있으며,국왕은 정실,계비 등을 통해 많은 자손을 낳지만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으로 인하여 안타깝게도 수명이 길지 않다는 점이다.
특이하게 다가오는 점은 국왕이 승하하면서 대행대왕의 시호와 묘호를 지어올렸는데 시호는 헌문정무인명(憲文定武仁明)이라 했다.헌은 선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사람을 치는 것이며,문은 자애로운 은혜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며,정은 백성을 편안하게 한 큰 계책을 세운 거서이며,무는 대위(大位)를 지켜 공을 이룬 것이며,인은 어짐을 베풀고 의를 행한 것이며,명은 사방을 두루 밝게 다스린 것이라고 한다.묘호는 '덕을 지키고 업을 높였다(秉德尊業)'해서 열조(烈祖)라 했다.
파루와 시작해서 인정으로 끝나는 국왕의 하루는 독불장군이듯 혼자서는 난국을 헤쳐 나갈 수가 없었기에 신료와 학문이 두터운 사대부들의 의견을 깊게 청취하는 덕장이 있는가 하면,국왕의 기질,원한,자질 등의 문제로 당대를 풍파로 몰아 넣은 왕도 있다.조선이 이씨 왕조라는 혈통에 의해 국왕이 만들어지고 성리학,유교,중국의 공맹사상 등에 몰입했던 점이 결국 나라의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던 요인이 아닌가 싶다.이한우저자의 꼼꼼한 통각적인 역사인식도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