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부부의 한국 신혼여행 1904 - 저널리스트 차벨, 러일전쟁과 한국을 기록하다 그들이 본 우리 8
루돌프 차벨 지음, 이상희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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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구한말시대 러일전쟁의 전초전이 개시될 무렵,독일인 저널리스트 차벨은 러일전쟁의 취재청탁을 받아 신혼여행은 색다르게 시작된다.요즘 신혼여행은 각양각색으로 일반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는데 차벨이라는 분은 신부와 함께 배를 타고 여러 곳을 경유하면서 달콤한 사랑도 속삭이고,항해 도중 사기꾼 소굴도 만나며 기나긴 여정 끝에 전운이 감도는 홍콩을 경유,일본 요코하마에 닻을 내린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유신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정한론을 부르짖으며 조선을 호시탐탐 그들의 지배에 넣으려 하고 있고,때는 그들이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러시아와 일대 격전을 치르려 하고 있던 때라,차벨기자도 어떻게든 조선에 들어가 전황을 살피고 취재해 본국에 알리는 임무를 띠고,조선에 들어가 취재하라는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쉽게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데다 외국인 취재의 배당등이 일본측에 의해 더디게 진행되어 가고,생각지도 않은 일본인의 생활모습을 체득하면서 그들의 실상을 조금씩 익혀 가는데 일본군이 러시아군을 압록강 이북으로 퇴각시켰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일본군에 의해 종군기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접하게 된다.

 차벨신혼부부는 우여곡절 끝에 조선 여행을 결정하게 되면서,기나긴 선상에서 풍랑도 만나고 멀미도 생기면서 달콤한 여행이 아닌 악몽같은 여행이 지속되며 드디어 부산항에 도착하면서 산과 언덕에 나무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놀라며 부산에서의 조선의 면모를 알아가게 된다.우선 조선내륙으로의 기차여행을 통해 조선인의 모습,행동거지,산하의 모습은 하얀 광목 두루마기,치마,갓을 쓴 초로,어린아이를 젖에 물린채 어딘가 다녀오는 여인네의 모습,낙동강을 끼고 달리는 기차의 모습등이 그 시절의 평화로운 구한말시대의 모습인거 같았다.

 그리고 그는 부산과 블라디보스토크의 중간지인 원산항으로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몇일을 묵은 뒤,조선인 통역관을 끼고 조랑말을 타고 육로로 걷고 걸으며  조선의 산하,인습,농부들의 모습등을 그림 그리듯이 보여준다.서민 가옥,논베미에서 우연히 찰칵 찍힌 어머니와 딸의 무표정한 모습(아마 모내기무렵),가마로 여행하는 관원들의 모습,흰 띠를 머리에 동여매고 작업하는 주막집의 모습,모심기,서울~원산간 대로,툇마루 앞에서 외국인을 바라보는 구경꾼들,당시 사용되던 화폐,초가로 뒤덮힌 농촌 마을,한강나루의 모습등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다.그리고 도중에 그날 사용했던 비용명세서까지 보여주는데 차벨이라는 기자는 참으로 꼼꼼하고 세밀하다는 성격의 소유자인거 같다.

 이윽고 서울 주재 독일 변리공사관에 도착해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고,종군기자들이 늘 일본인의 농간에 치욕을 곱씹으며 차벨은 서둘러 제물포항에서 부산으로,부산에서 일본으로 귀항의 원칙을 세우고 본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게 된다.비록 차벨기자는 러일전쟁의 와중을 생생하게 취재는 못했지만 도서의 후반부에 실린 개항후의 한국,중국,일본의 외교사를 비롯 청일전쟁,시모노세키(下關)조약에서 러일전쟁,러일전쟁과 한일관계등을 사료로써 보여줌으로써 역사자료로써 가치가 크고 한 외국인에 의해 당시의 한국,일본의 실상을 알게 됨으로써 연대기적 서술식의 사건인식보다는 전반적인 그 당시의 외교,경제,풍물등을 접할 수가 있어 무엇보다 다행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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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에밀 부르다레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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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조선에 대한 서양세력의 침략과 그들의 각축장이 되었던 대한제국의 모습을 4년여의 기간 조선 각지를 누비고 보고 들은 것을 사진과 함께 멋지게 기록해 놓은,프랑스의 철도 기사 에밀 부르다레의 글을 읽으면서 기울어 가던 대한제국의 정황과 민초들의 생활 모습,외세의 역풍등을 알게 되었다.또한 역사서라고 하면 흔히 왕족 중심의 정사를 다룬 실록이나 편년체가 아니라,외국인의 눈으로 직접 그려 놓은 글이라 신뢰성과 함께 조선말기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좋은 사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프랑스 철도와 광산 개발에 관련된 기술자문,프랑스어 학교에서 일하는 가운데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하니,광산 개발에 따른 이익권을 쟁취하기 위한 관련국의 이권다툼,프랑스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학동들의 생각,꿈,희망등을 읽어 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당시 조선은 ’은자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서양 제국들에게 알려 지지 않은 봉건적이고 조상을 숭배하는 유교 국가였기에,외부 세력과의 개방과 개혁적인 사상보다는 내치를 다지고 기울어가는 국권을 다스리는데 몰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또한 그가 조선을 여행하고 떠날때쯤에는 불행한 역사,을씨년스러웠던 을사늑약이 체결된 해이기도 해서,이 도서를 읽으면서 참으로 마음이 어둡고 아팠다.

 사진으로 보는 구한말의 각지의 모습도 아련하고 조상들의 삶의 흔적과 숨결이 물씬 전해져 옴을 느끼게 되었고,선조들의 일상과 국운이 마치 회색빛에 물든 나머지 금방이라도 소각되어 없어질 듯한 아찔함도 있었고,너무나도 세상 물정 모르는 순박한 백성들의 웃는 모습,서양인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모습등이 닫혀 있던 쇄국의 분위기를 더욱 자아내게 하였다.

 개항초의 제물포항구의 초가집들,적산 가옥들,바다위에 떠있는 돛단배의 한적한 모습들,서대문의 위용과 프랑스 공사관을 두고 멀찍이 보이는 목멱산,남산의 자태,쓰개치마를 입고 어디론가 총총히 걷는 아낙네의 모습,상투와 수염을 기른 장정들의 거무잡잡하고 생기잃은 모습,꽃상여를 이끌고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장례식 모습,서낭당과 무당들을 통해 잡귀와 행운을 기원하는 샤머니즘의 사상등이 익숙한 장면이면서도 그 시절의 일반적인 살아가는 방법이고 모습이었던 거같다.

 저자 에밀 부르다레는 서울부터 시작하여 기차를 타고 제물로 가고,다시 송도의 일상의 모습을 남겼으며,서북부의 도읍지 평양의 모란봉과 금강산 유점사등을 통해서 명승지와 고적지를 읽어 갔을 것이며,마지막 여정 바람,물,여자가 많은 제주도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국운이 쇠하여 가고 민초들의 삶도 그다지 밝지 않았지만,조상들의 일상은 순박하고 남을 해코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었던 거같다.다만 양반과 상민은 존재했으리라.말을 탄 양반의 단정하고 말쑥한 옷매무새가 옆에서 시중들고 양반의 비위를 맞추며 길 떠나는 이들의 표정과 옷매무새는 너무나도 상이함을 느끼게 된다.

 어둡고 힘들었던 그 시절의 객관적인 여행 에세이를 진흙 속에서 진주를 캔듯,내 마음은 참으로 흡족했다.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투명하고 실재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고,이러한 자료를 오래도록 소장하고 자식들에게도 물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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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 사진으로 기록한 재일동포 1세들의 마지막 초상
이붕언 지음, 윤상인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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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제강점기를 역사 교과서 및 조부,부모님으로부터 간접적인 이야기만 듣 고 자랐다.일제 강점기가 갖어다  준 배고름과 차별 의식,낮은 생활 수준등은 이야기를 듣는 자체만으로 불행한 한 시대였고,고통을 밥먹듯이 씹어 삼켰구나라는 비애만이 남았다.

 일제 강점기가 한창 맹위를 떨치던 1930년대부터 1940년대초 일본제국은 탄광촌이나 항만 해역등 잡역이 필요했는데,현지인보다는 식민국가의 젊은이들을 강제적으로 배에 싣고 간몬 해협을 통과하여 일본땅에 떨구면서 조선의 젊은 청년,처녀들은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을 일궈가야만 했다.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1923년 제주에서 시모노세키라고 한다.

 이 도서는 재일교포 3세 사진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오에겐자부로씨가 건네 준 재일교포 1세들의 사진첩을 보면서,5년간에 걸쳐 일본 전국에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의 발자취를 어렵게 탐방하여 취재하고 기록한 결과물이며 구술담의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취재에 응해 준 교포 1세들은 짐승만도 못한 대우에다 무관심,차별등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 들이면서 젊은 시절 제국 본토에서 청춘을 바쳤을 것이다.중일전쟁,2차 대전이 끝나면서 200만에 이르던 재일교포 1세들은 140만이 조국,조선으로 돌아오지만 나머지 10만은 생계가 일본만 못해 재차 일본으로 돌아가 삶의 터전을 내내 그곳에서 영위하며 살아 왔던 것이다.

 기나긴 세월만큼 그들의 얼굴에는 깊게 팬 주름과 투박하고 거칠어진 손마디에는 그들이 일본에서 살아 왔던 기나긴 여정을 전해주고 있는거 같았다.저자가 전하고 있듯이 탐방 취재는 그다지 용이하지 않았던 것같다.일본인이 아닌 식민지 땅의 사람들이기에 말할 수 없는 차별과 부당한 처우,무관심등이 가슴 속에 피먹이 들고 아물줄 모르는 상처를 뭐가 좋다고 입밖에 내고 싶었겠는가?!

 흘러간 일제 강점기는 우리 역사에 크나 큰 상처와 고통을 안기고,아직까지도 겸허하고 솔직한 자세로 나오지 않은 일본의 고자세와 비겁한 사과가 일본에 사는 교포 1세에게는 그냥 목숨이 붙어 있기에 살아가는 자체일 것이다.

 91명의 교포1세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 모진 세월 속에서 그들이 삶의 한 방편으로만 살아와야만 기구한 운명을 이제는 그들의 후손인 우리 세대가 제대로 알고 그들을 위로하며 남은 삶 속에서 억장 무너지는 세월을 감소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또한 소위 자이니치(재일교포들이 그들을 지칭하는)들에 대해서 우리 세대가 복원해야만 할 역사가 남아 있음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때라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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