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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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보다.자꾸만 옛 시절이 생각이 난다.조부모,부모,형제자매 열식구가 좁디 좁은 초가집에 옹색하게 살았던 시절이 엊그제만 같다.제대로 된 공부방도 없고 도서관도 흔치 않은 시절이었지만 산과 들,사계의 변화를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성장하던 시절은 시간도 더디게 흘러갔다.함께 놀던 고향의 친구들과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산산조각난 파편처럼 바람과 공기의 힘에 의해 어디론가 흩어져 버린 것과 같이 쓸쓸하기만 하다.조부모,아버지 모두 고인(故人)이 되어 어쩌다 꿈 속에서나 마주칠 뿐이다.명절이 찾아오면 고향에 내려가지만 개발도 인해 산천도 변하고 사람도 옛 사람이 아니다.타관에서 흘러 들어온 낯선 사람이 수두룩하다.옹색하고 불편했던 시골 생활이었지만 어린 시절 내게 꿈과 희망을 안겨 주었던 고향과 가족은 무언의 보물이고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에쿠니 가오리 작가 최신작 《포옹 또는 라이스에는 소금을》은 3대에 걸친 가족사를 그린 글이다.『냉정과 열정 사이』가 남.녀 간의 로맨스라는 좁은 범주를 그렸다면,이번 작품은 시간적,서사적으로 장중한 파노라마 성격을 띠고 있다.가족사가 홈 드라마와 같이 한지붕 아래에서 발생하는 정적인 면이 다분하지만,시간과 공간이 역동적이고 다수의 등장인물을 배치하여 지그재그식으로 스토리를 엮고 있는 점이 이번 작품의 특색이 아닐까 한다.러시아 혁명,(일본의)종전(終戰) 그후 후세들의 삶의 방식이 오밀조밀하게 묘사되고 있다.중년에 들어선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삶의 풍부한 경험과 이력이 3대에 걸친 가족사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가족을 소재로 글을 쓴 이유를 에쿠니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를 들어,학교라든지 가족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보내는 아이들의 시간을 어른들은 알지 못합니다.마찬가지로 어른들이 살아 온 시간을 아이들은 모릅니다.아주 가까이에 있는 한 가족임에도 서로 평생 알지 못하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그 점이 재미있게 다가왔고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이렇듯 패치워크 형식으로 써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p582 

 

 세대간의 갈등과 다툼,위화감도 서로의 삶을 진지하고 진실되게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법이다.윗세대는 아랫세대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아랫세대는 윗세대의 삶의 이력을 이해하면서 소통.대화하면서 가족이라는 혈육의 정,보살핌,사랑,희생,존경의 뜻을 조금씩 쌓아 나가야 한다.그러한 의미에서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은 3대 간의 미처 몰랐던 삶의 이력과 삶의 방식을 윗세대에서 아랫세대로 내려가는 순차적 방식이 아닌 가족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이 화자가 되는 교차식으로 그려 냈다.시간도 예스러움이 묻어나는 1960년대부터 포스트 모더니즘이 짙은 2006년대까지 스케치하고 있다.

 

 야나기시마 일가의 이야기는 1930년대 영국 유학중이던 할아버지 다케지로는 피로 얼룩진 러시아 혁명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 온 할머니 기누를 만나 하나가 된다.일본이 종전을 맞이할 때까지 큰 딸 기쿠노,둘째 딸 유리 그리고 외동 아들 기리노스케를 낳는다.큰 딸 기쿠노는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워 노조미를 낳고,둘째 유리는 결혼을 하지만 병약하여 친정으로 쫓겨나다시피 했다.막내인 기리노스케는 노총각으로 남는다.큰 딸 기쿠노는 여행지에서 도요히코를 만나 결합을 하지만 도요히코 역시 아사미라는 여인과 관계를 갖고 우즈키를 낳는다.결국 기쿠노와 도요히코 사이에서 제대로 낳은 자식은 고이치와 리쿠코이다.문학상을 수상하고 역사소설을 준비하는 리쿠코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점이 눈에 띈다.무역상으로 시작한 다케지로 할아버지는 비단도매상을 승계하고 증조부가 남긴 서양식 대저택에 3대가 알콩달콩  살아가는 식이다.또한 야나기시마 일가는 3대라는 시간적 길이도 꽤 길고 가계(家係)가 꽤 복잡하다는 점이다.넋 놓고 대충 읽는다면 등장인물이 가족 구성원 가운데 어느 위치이고 어떠한 사람인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야나기시마 일가의 교육관은 공교육을 시키지 않고 실력과 신의가 있는 가정 교사를 채용하여 전인 교육을 시켜 나간다.짧은 기간 공교육에 발을 들여 놓지만 부적응 상태에서 밀착된 가정 교육을 받는다.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노조미는 베이징에 한의학을 전공하여 홍콩에 자리를 잡고,만년 노총각이었던 삼촌이 암으로 세상으로 떠난다.손자,손녀들이 모두 넓은 세상으로 떠나가고 대저택에는 할머니,기쿠노 어머니,유리 이모만이 남게 된다.북적북적한 가운데 사람 사는 재미와 힘겨운 시절이 있었던지 가족의 애환을 이렇게 늘어 놓는다.

 

 공기에 든 흰쌀밥 자체로 맛있어 보이지만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아 왠지 소금을 치고 싶어진다는 의미에서 "라이스에는 소금을!"이라 했고 등장인물간에 통용되는 '자유 만세!'이다. -본문-

 

 영원할 것 같았던 식구들과의 삶,친구들과의 우정 그리고 산천초목과의 호흡은 시.공간이 바뀌기를 반복하면서 그 옛날의 고향의 모습과 식구들은 바람과 구름처럼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무정하고 아려한 기억과 추억 뿐이다.이 작품 속에는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러시아 혁명,2차 세계대전이라는 서사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인간의 삶도 이러한 영향권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3대가 가고 나면 또 다시 4,5세대가 이어져 무궁무진한 민초의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마음으로 되뇌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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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코너스톤 세계문학 컬렉션 1
조지 오웰 지음, 이수정 옮김, 박경서 해설 / 코너스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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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권력의 타락을 그린 글로 세간에 잘 알려져 있는 고전 문학의 반열에 속한다.이렇게 유명한 작품을 돌고 돌아 이제야 접하게 되었다.익히 들었던 소문대로 정치 권력의 부패,타락상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작가 조지 오웰은 차마 서슬퍼런 정치적 칼날과 맞설 수가 없었는지 등장인물,정치 사회상을 동물농장의 동물들로 변형시키고 정치 사회상은 농장주,감독 등을 내세워 타락한 권력을 풍자하고 있다.조지 오웰은 영국이 버마 식민제국주의에 대한 부조리에 환멸을 느끼면서 스스로 밑바닥 생활을 전전해 오면서 글쓰기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다.

 

 조지 오웰 작가는 반(反)전체주의와 민주적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자이다.동물농장은 동물우화성 글로 러시아의 공산혁명,제2차 세계대전의 스탈린주의에 의해 추방,숙청,재건 등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스탈린이 저지른 온갖 만행을 동물들을 내세워 의인화하고 있다.이야기는 메이저 영감이 동물들에게 타락한 인간들의 만행을 조목조목 들려 주면서 삶다운 삶을 살아가자고 설파한다.동물들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동물들은 인간들에게 비참한 생활을 강요당하고 쉽게 죽임을 당하는 세태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한다.이것은 레닌이 러시아 공산혁명을 부르짖고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한 얘기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돼지,말,개,닭,당나귀,토끼,양 등이 동물로 등장하고 나폴레온(스탈린),스노우볼(트로츠키),프레더릭(히틀러),필컹턴(처칠) 등이 2차 세계대전 주역들로 분장하고 있다.동물농장은 본래 장원농장이고 주인은 존스(니콜라스 2세)였지만 돼지들(공산혁명의 지식인)의 반란으로 농물농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동물농장의 동물들은 일곱 계명이 있었는데,두 발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다와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모두 친구다를 늘 유념하면서 생존해 나가야 했다.그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은 당연 모든 자는 평등이다는 것이었다.나폴레온은 스노우볼과는 정치적 라이벌로 결국 그를 추방해 버렸다.스노우볼은 안타깝게도 정적에 의해 암살되었다.공산 혁명에 공훈을 세운 자에겐 각종 훈장이 수여되고 달걀을 빼앗겼다고 항의를 하는 닭들에겐 가차없이 숙청을 가했다.그외 나폴레온과 동맹의 분위기하에 필컹턴(처칠)이 나오고,독소연맹을 깨뜨리고 러시아를 침입한 프레더릭(히틀러),경제적,사회적 성취 등을 자랑삼아 반란을 선동하는 비둘기,동물농장과 인간 사회 사이의 중개인 휠퍼 등이 등장한다.나폴레온과 다수의 돼지들이 뜻과 의견이 맞지 않아 불안을 조성하기도 하는 등 러시아 공산혁명의 초기단계부터 2차 세계대전 스탈린이 저지른 숙청,추방,학살 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나폴레온(스탈린)의 공산 혁명은 과연 성공했는가? 그들의 사상적,이념적 종말(終末)은 버글버글한 흙더미처럼 무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인간이 먹고 입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정치 권력을 빙자하여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정치 권력자들은 달콤한 권력에 심취해 있다.그 종말은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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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부 선생님, 안녕 오사카 소년 탐정단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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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소년 탐정단》을 읽은 지가 오래 되지 않았는데 그 후속작으로 《시노부 선생님,안녕!》이 독자 곁에 왔다.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고향인 오사카를 주무대로 하고 있기에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작품이 아닌가 싶다.간사이 지방 최대 도시 오사카는 생활력이 강하고 활기를 띠는 곳이다.오사카는 방언도 세고 신조어(新造語)가 한 발 먼저 앞서가는 곳이라는 소리도 들었다.주인공이며 이십대 중반의 시노부 선생 역시 오사카가 삶의 주무대로 삼고 있어서인지 화통하고 생활력 강한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비록 픽션이지만 탐정 역할도 그녀에겐 딱 들어 맞는지도 모른다.

 

 히가시노 작가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단연 가독성이 크다는 점이다.다양한 소재와 입담으로 독자들을 현혹케 하는 마력이 있다.추리,스릴,최근 SF에 이르기까지 스토리는 치밀하게 전개되고 추리와 스릴을 만끽하게끔 하면서 결정적인 부분은 독자에게 맡기는 형식을 띠고 있다.이번 작품에서 시노부 선생님이 잠깐 초등학교를 휴직하고 국가 파견 유학제도 대학에 다니면서 우연히 한 회사에 스카우트 되면서 탐정 역할을 불사르고 있다.또한 그녀의 제자이면서 악동인 뎃페이와 이쿠오가 약방의 감초처럼 늘 따라 다닌다.둘은 중2 정도로 사춘기이지만 시노부 선생 앞에서는 늘 충성을 다하는 예스 맨이다.

 

 총 6편의 이야기 각각의 소재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시노부는 늘 사건의 내막을 둘러싸고 원인,진상이 무엇인가를 파헤치는 핵심인물이고,형사는 신도와 우루시자키가 탐문과 수사에 집중한다.특이한 것은 시노부를 중심으로 신도 형사와 혼마라는 남자가 시노부에게 애정 작업에 뛰어드는데 시노부에겐 신도가 더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다.결과는 결혼까지는 골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스토리가 막(幕)을 내렸지만 오사카 소년 탐정단 시리즈가 기적적으로 부활한다면 신도와 시노부 관계는 멋진 하트군(群)에 쌓여 달콤한 신혼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을까.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회사 직원이 4F에서 추락한 사건을 두고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형사,탐정 모두 그럴듯한 견해,주장을 내세우지만 자살인 것 같기도 하고 타살인  것 같기도 한 이야기를 두고 시노부는 나름 통찰력 있는 추리력을 과시한다.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한 결론은 없다! 운전 면허 교습과 관련하여 늙은 부부가 사는 집에 강도 사건과 교통사고 위장과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이야기는 시노부의 기민성과 추진력에 감탄케 한다.두 형사가 운전 면허증이 없어 시노부가 '임시 운전 면허증'으로 강도 용의자를 추격한다.시노부가 상경(도쿄로 올라가는 것)하면서 옛 제자의 남동생의 유괴사건을 두고 멋진 추리를 보여주는 시노부,충수염으로 입원하면서 신도 형사가 자주 병문안을 오면서 시노부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사랑의 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려 한다.한 남자 노파가 복명 강도에게 입에 재갈이 물리는 사건이 터지는데,이것은 위조지폐와의 연결선상에 있는데 과연 강도는 누구일까.시노부의 이사 문제와 내연 관계에 있던 사람이 타살된 점을 두고 시노부 특유의 치밀한 추리를 전개한다.결국 혐의자에겐 살인죄,살인교사(敎唆)가 적용된다.학교로 복직한 시노부 선생은 전임 야마시타 선생이 전근가게 된 이유에 대해 학생,학부모,당사자인 야마시타에게 사정을 청취한다.이것이 총 6편의 이야기의 간략 소개이다.

 

 시노부가 국가 파견 유학제도로 대학에 다니는 가운데 시노부에게 5건의 사건이 발생하고,나머지 1건은 학교 복직후에 불미스러운 사건의 내막을 청취하고 진상을 밝혀낸다.당차고 활달하면서 녹슬지 않을 듯한 추리력과 기동성까지 갖추었으니 시노부와 결혼하려는 신도 형사는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이야기가 흡인력 있게 빨리 전개되는 점은 히가시노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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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면
티에리 코엔 지음, 임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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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불안장애는 현대인에게 흔히 나타나고 있다.가벼운 감기와 같이 몸과 마음만 잘 추스리면 금방 나을 수도 있다.반면 깊숙이 내면을 뚫고 온몸으로 번져 나가는 바이러스성 우울증,불안장애는 혼자서는 치유하기가 힘들다.심리치료 및 약물복용,마음 다스리기를 꾸준히 하면서 반드시 원상 회복하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아울러 과거에 좋지 않은 일,씻기 어려울 정도의 트라우마와 같은 심인성 질환은 (어렵겠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불행한 일들을 잊고 전향적인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나 역시 중증은 아니지만 처해 있는 입장과 사회적 위치로 인해 불안과 초조,우울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내가 겪었던 우울증,불안장애는 과거사에 너무 집착해서 안되고 가능한 (의도적으로)잊고 비워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사람과의 관계도 원활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설의 영역이 다양하듯 이번 작품은 개인의 심리적 내면 세계를 다루고 있다.다소 무겁고 지루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심리 분야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있었던터라 나름 유익하고 스토리의 진행도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서 다행이었다.우울증,불안장애는 개인의 노력과 의지,기에 따라 치유의 시간이 길고 짧을 수가 있겠으나,반드시 정신과 전문의 및 정신질환 컨설턴트에게 진단과 조언을 받으면서 앓고 있는 증상이 심각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특히 한국인에게는 겉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불만,불안,걱정,우울증이 합쳐져 화병(火病)으로 번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이것은 혼자 해결하려고 하다 자초한 정신적 중증 질환이라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마흔 살이 가까워지면 자신이 늙는다고 느끼기 시작하죠.그런 감정은 그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이게  당시의 경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신은 매우 긴장되고 불안한 상태로 보여요.그런 해로운 감정들이 당신의 일상을 침범하게 놔두지 마세요.죽음에 대한 생각이 강박증으로 발전하기 전에 전문가를 찾아가 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P76

 

 어린시절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죽음이라는 공포증을 내내 마음에 두고 사는 주인공 노암의 이야기이다.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삶의 지표는 무엇인가를 깨달아 가는 이야기이다.죽음이라는 문제를 처음 접했던 것은 국민학교 시절 내 또래의 아이가 물놀이하다 익사(溺死)하고,나머지 두 명은 기혼 여성으로 남편에게 학대를 받다 그만 삶의 희망을 잃고 저수지에 몸을 던져 자살을 했다.국민학교 시절 보았던 시신들은 무섭고 소름이 끼치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순간적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그렇다고 죽음에 대해 골똘이 생각하고 고민하지는 않았다.시간이 흘러 혈족인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죽음이라는 것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죽으면 심장박동이 멈추고 의식이 사라지는 것으로 세상에 태어나기 전 단계로 회귀하는 꼴이다.주인공 노암은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멋진 이성을 만나게 되면서 평온한 삶을 살게 된다.

 

 인상적인 것은 노암 자신의 내면 세계를 일기 형식을 취해 고백하고 있다.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여서 내면 속의 속마음은 알게 모르게 누나,상담사,직장 동료,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불안장애를 극복해 나간다.이것은 198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촉진소통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정신 장애자들이 보이는 소통의 부재가 기능적 결함에서 기인한다는 것으로 컴퓨터 이동 유폐상태를 활용한다.자폐적 증상 가운데 하나인 불안증상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절대자인 신에게 귀의한다든지,실천가능한 삶의 목표를 세워 하나씩 성취해 나간다든지,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삶의 파트너로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유지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갑각류와 같이 단단한 껍질 속에 몸을 움크린다면 스스로 자초한 강박증에 시달려 삶의 질이 나락으로 빠질 것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왜냐면 내 삶을 사랑했기 때문이다.난 사랑했고 물려주었으며,나 자신을 만들어 나갔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었다.이제 난 이 삶의 결말을 받아들였다. -P330

 

 노암은 사랑하는 쥘리아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자신도 그녀의 곁으로 기꺼이 가고자 한다.삶과 죽음이 하나라도 되는 것처럼.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질병이 찾아와도 의학기술과 과학이 발달하여 수명을 연장시키고는 있지만,결국 인간은 무(無)의 세계로 가야 하는 숙명적인 존재이다.삶을 삶답게 후회없이 살아가려면 어떠한 삶을 가꿔나가야 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매일 매일을 허투루 살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죽음을 가장 평안하고 아름답게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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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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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정과 사회,국가라는 단위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존재이다.좋든 싫든 소속 단위에 지긋하게 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마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빈촌에서 부촌으로 이사하는 부류와 같이 자주 옮겨 다니는 사람도 주위엔 꽤 많다.질좋은 교육을 위해,부자행세를 하기 위해,나름 뭔가 간지나는 삶을 다수에게 보여주기 위해 등 이유는 다양하다.그러한 측면에서 인간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 한곳에 머물지 않고 여건과 환경에 따라 이동(移動)하는 동물인가 보다.현재의 삶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불만과 불안으로 인해 이동하고 떠나는 타환경은 과연 얼마만큼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행복지수까지 덩달아 따라 오겠는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뼈를 묻는 것이 이젠 예스럽고 진부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한국이라는 사회풍토,정치환경이 일부 소수에겐 천국(Paradise)와 같고 대다수에겐 지옥(Hell)와 같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속칭 아둥바둥 살다 머리 허옇게 되고 병이 들어 좋은 세상 향유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 것이다.여기에는 돈과 자본의 권력과 뗄레야 뗄 수 없기 마련인데,부유층은 더 많이 갖으려고 탐욕을 일삼고 빈곤층은 일상의 생계 및 부과된 고정지출을 갚아 나가기도 벅찬 실정이다.그래서일까,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34개국 가운데 한국은 행복지수,자살율,불평등 요인 등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이것은 누구의 책임일까.단지 노력하지 않고 운이 없는 개인에게 전적으로 돌려야 할까.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이와 관련 플라톤은 국가 구성의 원칙으로 '올바름'을 제시했다.

 

 올바름이란 '각자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이것은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영혼에도 적용된다.국가의 올바름은 국가를 구성하는 통치자,수호자,생산자가 저마다 자신에게 적합한 일을 하며 조화로울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나아가 플라톤은 훌륭한 국가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혜.용기.절제.정의라는 네가지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플라톤의 국가,정의를 꿈꾸다/사계절

 

 현대 사회는 신자유주의시대이다.돈과 자본의 힘이 세고 사회적 신분이 높아야만 사회적 대접을 받고 사회적 행세를 할 수가 있다.사실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가정환경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중산층 이상의 자산과 현금이 있어야 유아기부터 최고급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가능하고,좋은 직장 역시 화려한 스펙과 스토리텔링도 돈으로 해결되는 세상이다.DNA적으로 머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돈의 돈에 의한 돈을 위해 만사가 척척 해결되어 버린다.반대로 잠재력과 노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데 가정 형편상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부유층들의 흉내를 어떻게 낼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한국 사회는 교육 환경이 줄서기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로 변해 버렸다.그리고 한국 사회의 주요 특징인 '끼리끼리'문화가 매우 고질적으로 천착되어 쉽게 용해되기 어려운 실정이다.가난하고 사회적 신분이 별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불만,불안,우울함,열패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장강명 작가가 그린 《한국이 싫어서》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사회성 농후한 작품이다.카드회사 신용관리팀 승인실에서 근무하던 주인공 계나가 보여 주는 한국을 떠나 호주에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 현실적,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한국을 떠나려 했던 이유는 그저 '한국이 싫어서','여기서는 못 살겠어서'이다.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부유한 집안도 아니고,미모가 뒷받침되지도 않은 계나는 일종의 사육(飼育)의 현장을 뛰쳐 나가 스스로 정글(Jungle)의 현장에 몸을 맡긴 셈이다.사육장의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고 어느 정도 성장이 되면 돈으로 환산되어 이익은 온전이 주인이 갖어가 버리는 것이 사육장의 주인이고 한국 사회의 갑의 입장에 있는 자들의 행세이다.옳고 그르고를 떠나 계나가 호주라는 드넓은 나라로 몸을 옮겼다는 자체가 가상스럽기까지하다.호주는 OECD국가 가운데 복지제도가 발달한 나라로서 한국과 같이 서열을 매기고 신분 차이로 인해 개개인이 겪는 굴욕과 좌절감이 심하지 않아 평소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작년 심혈관 질환으로 대수술을 받고 입원실에 있을 때,알게 되었던 호주 이민자는 아둥바둥 살지 않아서 좋고,나라에서 개개인에게 부여하는 복지제도가 발달하여 삶의 불안,근심,걱정,초조감이 덜해서 좋다고 했다.대학생에게 생활비,교육비까지 지원하고 실업연금,노후문제,의료혜택 문제 등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한국과 비교하여 천양지차라면서 기회를 만들어 꼭 호주에 와서 제반 상황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주인공 계나는 조국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털어 놓는다.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지켜 줬다고 하던데,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것 다 했어. -P170

 

 계나는 일류기업은 아니어도 착실하게 카드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모아 호주 이민 자금으로 쓰려고 했다.또한 남친 지명이는 근래 보기 드물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로 삶의 파트너로 살아갈 수도 있으련만 계나는 먹고 사는 데 급급하는 생존법에서 탈출하여 삶의 질이 높은 행복을 찾으러 떠난 것이다.장강명 작가는 실제 호주 이민자들의 이민담을 인터뷰하여 호주 이민 팁(Tip)을 현실에 맞게 들려주기도 한다.호주 이민을 꿈꾼다면 젊은 나이,호주 영어(아이엘츠)시험,호주에서 인정하는 부족 직업군에 속해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다.계나의 호주 생활 이력도 꽤 볼 만하다.한국이 싫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한국이라는 나라는 아직은 돈과 물질의 자본력,사회적 신분이 높은 소수 계층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으로 꽉 차 있다.힘없는 톰슨가젤이 사자랑 맞짱뜰 수 없으니,톰슨가젤과 사자랑 연대해서 우리(Cage)를 부숴버리는 것이 사육장 너머를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가 아닐런지.그렇지 않으면 주어진 여건,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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