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면
티에리 코엔 지음, 임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우울증,불안장애는 현대인에게 흔히 나타나고 있다.가벼운 감기와 같이 몸과 마음만 잘 추스리면 금방 나을 수도 있다.반면 깊숙이 내면을 뚫고 온몸으로 번져 나가는 바이러스성 우울증,불안장애는 혼자서는 치유하기가 힘들다.심리치료 및 약물복용,마음 다스리기를 꾸준히 하면서 반드시 원상 회복하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아울러 과거에 좋지 않은 일,씻기 어려울 정도의 트라우마와 같은 심인성 질환은 (어렵겠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불행한 일들을 잊고 전향적인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나 역시 중증은 아니지만 처해 있는 입장과 사회적 위치로 인해 불안과 초조,우울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내가 겪었던 우울증,불안장애는 과거사에 너무 집착해서 안되고 가능한 (의도적으로)잊고 비워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사람과의 관계도 원활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설의 영역이 다양하듯 이번 작품은 개인의 심리적 내면 세계를 다루고 있다.다소 무겁고 지루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심리 분야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있었던터라 나름 유익하고 스토리의 진행도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서 다행이었다.우울증,불안장애는 개인의 노력과 의지,기에 따라 치유의 시간이 길고 짧을 수가 있겠으나,반드시 정신과 전문의 및 정신질환 컨설턴트에게 진단과 조언을 받으면서 앓고 있는 증상이 심각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특히 한국인에게는 겉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불만,불안,걱정,우울증이 합쳐져 화병(火病)으로 번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이것은 혼자 해결하려고 하다 자초한 정신적 중증 질환이라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마흔 살이 가까워지면 자신이 늙는다고 느끼기 시작하죠.그런 감정은 그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이게  당시의 경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신은 매우 긴장되고 불안한 상태로 보여요.그런 해로운 감정들이 당신의 일상을 침범하게 놔두지 마세요.죽음에 대한 생각이 강박증으로 발전하기 전에 전문가를 찾아가 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P76

 

 어린시절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죽음이라는 공포증을 내내 마음에 두고 사는 주인공 노암의 이야기이다.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삶의 지표는 무엇인가를 깨달아 가는 이야기이다.죽음이라는 문제를 처음 접했던 것은 국민학교 시절 내 또래의 아이가 물놀이하다 익사(溺死)하고,나머지 두 명은 기혼 여성으로 남편에게 학대를 받다 그만 삶의 희망을 잃고 저수지에 몸을 던져 자살을 했다.국민학교 시절 보았던 시신들은 무섭고 소름이 끼치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순간적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그렇다고 죽음에 대해 골똘이 생각하고 고민하지는 않았다.시간이 흘러 혈족인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죽음이라는 것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죽으면 심장박동이 멈추고 의식이 사라지는 것으로 세상에 태어나기 전 단계로 회귀하는 꼴이다.주인공 노암은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멋진 이성을 만나게 되면서 평온한 삶을 살게 된다.

 

 인상적인 것은 노암 자신의 내면 세계를 일기 형식을 취해 고백하고 있다.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여서 내면 속의 속마음은 알게 모르게 누나,상담사,직장 동료,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불안장애를 극복해 나간다.이것은 198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촉진소통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정신 장애자들이 보이는 소통의 부재가 기능적 결함에서 기인한다는 것으로 컴퓨터 이동 유폐상태를 활용한다.자폐적 증상 가운데 하나인 불안증상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절대자인 신에게 귀의한다든지,실천가능한 삶의 목표를 세워 하나씩 성취해 나간다든지,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삶의 파트너로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유지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갑각류와 같이 단단한 껍질 속에 몸을 움크린다면 스스로 자초한 강박증에 시달려 삶의 질이 나락으로 빠질 것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왜냐면 내 삶을 사랑했기 때문이다.난 사랑했고 물려주었으며,나 자신을 만들어 나갔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었다.이제 난 이 삶의 결말을 받아들였다. -P330

 

 노암은 사랑하는 쥘리아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자신도 그녀의 곁으로 기꺼이 가고자 한다.삶과 죽음이 하나라도 되는 것처럼.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질병이 찾아와도 의학기술과 과학이 발달하여 수명을 연장시키고는 있지만,결국 인간은 무(無)의 세계로 가야 하는 숙명적인 존재이다.삶을 삶답게 후회없이 살아가려면 어떠한 삶을 가꿔나가야 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매일 매일을 허투루 살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죽음을 가장 평안하고 아름답게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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