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유혹 - 열혈 여행자 12인의 짜릿한 가출 일기
김진아 외 글 사진 / 좋은생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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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렸다. 여행자의 유혹, 열혈 여행자 12인의 짜릿한 가출 일기. 내가 골랐던 여느 여행기들과 마찬가지로 제목과 표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한 사람의 여행 이야기도 아니고, 한 곳의 여행 이야기도 아니고, 무려 열두 명의 세계 곳곳의 여행 이야기라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열두 명의 소개를 보면 그동안 재미있게 읽었던 여행책의 저자, 소개만으로도 끌리는 저자들이 다수 출동했다. 결혼 10주년을 맞아 전셋돈을 들고 아내와 배낭을 꾸린 분, 대기업 샐러리맨으로 살다가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고 싶어 길 위의 여행자가 된 분, 역마살 본능에 충실하고자 부부가 동반 사직을 하고 여행자의 삶을 시작한 분들 등 모두 대단한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는 길지 않다. 짤막한 에피소드를 들려 준다. 길지 않아서 지루하지 않지만 여운이 있고, 아쉬움이 있지만 즐거움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스스로 인상 깊게 혹은 관심을 갖고 읽었던 부분들을 말하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난하면서도 가장 삶을 즐기면서 사는 사람들이 러시아와 터키 사람이라는 생각이다.(34p)' 내년 4월쯤 터키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삶을 즐기며 사는 터키인들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진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계획된 일정을 비틀어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는 순간 더욱 즐거워지는.(129p)' 여행 전에 항상 계획을 세운다. 매일 돌아볼 일정을 짜고, 여행하면서 그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은 짜여진 일정대로가 아닌 발길 가는대로 여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어쩌면 터키에서 그런 여행을 하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터키인들이 하루를 보내는 법이다. "오투르! 오투르!"를 외치며 손님들을 소파에 붙들어 앉히고 차이를 대접하며 시시콜콜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터키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175p)', '갈라타 다리는 이스탄불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곳이다.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고깃배와 이를 환영하는 갈매기들의 날갯짓, 그리고 삐죽삐죽 이스탄불의 하늘을 받치고 선 모스크의 첨탑들이 그곳에 있다.(205p)' 많은 사람들이 좋았다고 말하는 그곳에 두 발로 섰을 때, 내 심장은 얼마나 빠르게 뛸까?

이 책을 읽으면, 여행자들의 유혹에 넘어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잘 지은 것 같다. 자그마한 책 한 권에 참으로 값진 여행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을 찾은 7월 초, 그곳은 추운 겨울이었고, 사이먼스타운에는 펭귄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다가 낭떠러지에서 죽을 뻔한 이야기. 에스토니아 국경을 통과하려면 '한국인 시험'에 백 점을 맞아야 하는데, 인순이의 직업, 여배우가 아닌 사람, 한글을 창제한 사람을 고르는 문제라는 이야기 등 여행하면서 직접 겪었을 그들만의 소중한 이야기다.  

베트남의 번잡한 호치민에서 포도 장수 아주머니의 넉넉한 표정을 보고 싶고, 인도의 허름한 식당에서 매콤새콤한 툭파와 모모를 먹어보고 싶다. 어지간한 명소는 걸어서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다는 프라하에서 동네 뒷골목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고 싶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작품들을 둘러 보고 싶다. 콜럼버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상낙원'이라고 극찬했던 땅 쿠바의 사람들은 음악이 흐르면 어디서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춤을 춘다고 한다. 그들의 모습은 얼마나 행복할까.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기억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기엔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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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떠나도 일본어는 남는다
조정순 지음 / 에디션더블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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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을 전공했고 호텔리어를 꿈꿨던 그녀가 스물여섯에 국내 일본어 교육시장에 새로운 돌풍을 불러왔다. 내가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던 2004년에 그녀가 '놀면서 배우는 일본어 놀이터'인 이스트원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것이다. 난 그때 용산에 위치한 일어 학원에 다니며 일어능력검정시험 2급을 보려고 공부중이었다. 시험은 합격했지만 회화나 듣기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일본어를 즐겁고 빠르게 익힐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그녀. 내가 한창 일어공부를 할 때 그녀를 알지 못한 것이 아쉽고, 그녀를 만났더라면 내 일어 실력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지 궁금하다. 

  

이 책은 일어 공부를 위한 책이 아니다. 유창한 회화로 일본인 친구들과 연락하며 지내고 싶어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그녀가, 일본과 일본어에 관한 일을 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 신민아, 박신양, 이준기의 일본어 전담교사로도 유명하다는데 그녀의 일어 프로그램이 더욱 궁금해진다.  

 

그녀 조정순은 짧은 기간에 바로 성과가 보이는 일본어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이 진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일 것 같아 직접 공부했던 것을 정리하여 교재로 만들고, 커리큘럼도 짜서 사업을 준비했다. 이스트원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이 모두 그녀에게서 일본어 수업을 듣던 학생이었다니 정말 만남과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게 보인다. 일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카페에 혼자 앉아 지나다니는 일본인을 구경하는 것이라는 그녀 말에 소박하고 구수함이 느껴진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문장 순서가 똑같고, 어미가 닮았으며, 단어도 비슷해서 배우기가 쉽다. 나 역시 그 점 때문에 일본어 공부를 재미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면 학비 외에 생활비를 보태주지 않는다. 게다가 결혼 준비를 하면서 당사자끼리 마음에 들면 부모님에게 반대할 권리는 아예 없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거절을 잘 못한다고 하니 일본인을 만날 때 사소한 것에도 주의해야겠다.  

 

책에서 70개 정도의 단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짤막하게 단어 공부도 되지만, 일본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일본어 프로인 그녀의 도전과 열정은 참으로 유쾌했다. 책을 읽는 동안, 친한 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한 마음이었다. 이제 그녀의 미니홈피와 이스트원 홈페이지를 둘러볼 생각이다. 일어 공부와 일본 여행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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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탐정 동물기
야나기 코지 지음, 박현미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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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 아동교육문화연구회에서 펴낸 <파브르 곤충기>를 읽었다. 고학년이 되면서 동화가 아닌 이야기를 읽어야 할 것 같아 도서 목록을 보고 직접 고른 책이었다. 보통 여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곤충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지만, 그 전에 읽은 책들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책을 읽은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동생이 학창시절에 과제 때문에 산 책 <시튼 동물기>를 읽은 건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 10년도 더 지나서였을 것이다. 책을 읽고 싶은데 책장에 꽂힌 책은 모두 읽은 것이어서 오래전에 모은 책들 중 읽지 않은 책을 골라냈다. 생물에는 도무지 관심 없는 나인데 <시튼 동물기>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러 만난 책, <시튼 탐정 동물기>는 더운 날씨 때문에 잠 오지 않는 밤에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추리소설이다. 손바닥 만한 작고 가벼운 책이다. 야나기 코지의 소설은 처음인데, 늘 독특한 소재로 일본의 추리소설 마니아들을 설레게 하는 작가라고 한다. 그는 찰스 다윈, 마르코 폴로 등 역사상의 유명인이 주인공이 되어 수수께끼를 푸는 형식의 여러 작품을 썼다. 이 책 또한 어니스트 시튼이 탐정이 된 이야기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시튼이 탐정이 되었다?! 

처음부터 야생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시튼 씨를 취재했을 때 우연히 그가 젊은 시절에 접했던 이상한 사건들에 대해 듣게 되었는데, 야생동물이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었다는(실제로는 시튼 씨가 탐정역할을 맡아야 했지만) 이야기를 신문에 게재했더니 예상외의 호평을 받아서 편집장으로부터 속편을 쓰도록 명령을 받은 것이었다. 그 이후로 몇번인가 시튼 씨를 방문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선 시튼 씨는 야생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아주 자그마한 사실로부터 전체를 추리하는 뛰어난 과학자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이 아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자연주의자였다. 이런 평범하지 않은 두 개의 시점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에 시튼 씨는 지금까지 기묘한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왔다. (240p)

늑대왕 로보, 까마귀 실버스팟, 다람쥐, 고양이, 스컹크, 곰의 왕 잭 등 동물들과 관련한 살인사건, 도난사건을 <시튼 동물기>의 시튼이 멋지게 풀어나간다. 초호화 다이아몬드 밀실 도난사건('실버스팟')은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듯한 이야기였다. 파브르나 시튼 모두 이름은 알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튼 탐정 동물기>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흥미진진한 책들이 많이 출간된다면 그러한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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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킹 우드스탁
엘리엇 타이버.톰 몬테 지음, 성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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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 16, 17일 물병자리 시대를 여는 첫 대형 사건 ─ 이게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원래 이름이었다.  

(150p)

 

공연 이벤트에 당첨되어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라이브 콘서트 <테이킹 우드스탁>에 갔었다. 도회적 감성의 밴드, 중성적 색깔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록밴드 등 흡입력 있는 무대를 선보였고, 공연은 인류의 사랑과 세계평화를 위한 첫걸음이 되고자 마련되었다고 한다. 세 시간 동안의 활기찬 공연이 참으로 인상깊었기 때문에 도서 '테이킹 우드스탁'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처음에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과 평화의 3일'이라고 칭한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실화였다. 1장에서 5장까지는 불황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 부모님의 모텔 이야기와 함께 엘리엇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6장에서부터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옮긴이의 말대로 이 책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가장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공연 자체를 다루지 않는, 그러면서도 페스티벌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는 회고담이다.

 

엘리엇은 '우드스탁과 그때 우리가 함께 엘 모나코에서 경험한 그 모든 짜릿한 모험에 대한 책'이라고 했다. 우드스탁의 가치는 사랑을 주고받을 자유를 설파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엘리엇은 자신을 찾고, 자신을 탈바꿈시켰다고 한다. 우드스탁을 개최한 것도 아니고, 콘서트 장소를 제공한 것도 아니지만 그가 있었기 때문에 우드스탁은 시작되었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는 난생처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고, 자유를 느꼈고,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람들과 연결되었음을 느꼈다. 자신의 꿈의 많은 부분이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우드스탁이 적어도 자신의 인생만큼은 극적으로 바꾸어놓았다니,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최고였던 게 분명하다.  

 

책의 '일러두기' 다음 페이지를 보면, 엘 모나코 모텔과 우드스탁 본부 주변의 약도를 그려 놓았는데, 뭔가 재미있어 보인다. 1969년 여름, 페스티벌 시작 당일에 비가 내렸지만 17번 B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야스거의 농장까지 걸었다. 우드스탁 콘서트가 계속 이어지는 3일 동안 일어난 특별한 일은 역사 속의 한 순간, 순전히 음악의 기쁨을 나누기 위한 젊은이들의 나라가 탄생한 것이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어떤 다른 뜻도 없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일치와 평화, 그리고 사랑이 그곳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 공연을 볼 때의 감정과 닮아 있다. 3일간의 열기를 세 시간으로 압축하여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했겠지만 이제 우드스탁이란 이름만으로도 열정의 도가니가 떠오를 것 같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안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테이킹 우드스탁'이 한국에서 곧 개봉될 예정이란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책으로 읽을 때는 쉽게 읽기가 어려워서 중간에 덮었는데, '테이킹 우드스탁'은 그래도 재미있게 읽은 걸 보면 영화도 볼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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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흩어진 날들
강한나 지음 / 큰나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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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겉모습만 보고 사랑에 관한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여행에세이와 다르게 제목에 여행을 연상케 하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듯한,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 표지의 아름다운 여인은 책을 쓴 그녀의 사진이었다. 제목 아래 작은 글씨로 쓰여진 '빈티지 감성 여행에세이, 일본'을 보고 소설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리고 꼭 읽고 싶었다. 오사카, 고베, 나라, 히로시마, 나가사키, 교토, 도쿄를 여행한 이야기인데 도쿄에만 다녀온 나로서는 나머지 여행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두 번째 일본 여행을 하게 된다면 간사이 지방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사카, 고베, 나라, 교토, 네 곳이 간사이 지방에 속하는 것도 책을 읽고 싶은 데에 한 몫 했다. 

새하얀 얼굴에 커다란 눈을 가진 그녀는 예뻤다. 여자가 봐도 너무 사랑스러워서 몇 번씩 다시 보았다. 오사카, 고베, 나라의 이야기가 끝나면 30페이지에 걸쳐 그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볼 수 있다. 사진과 함께 적힌 짤막한 문장들도 예쁘다. <우리 흩어진 날들>을 읽고 그녀를 처음 알았다. 쉬러 가는 여행보다 열심히 걸어다니는 여행을 좋아하고, 20살이 넘도록 밖에서 혼자 밥 먹는 걸 못 했고, 낡은 동네의 길을 좋아하는, 그녀와 나의 공통점 때문인지 책을 읽는 동안 (그녀의 바람대로) 내 마음이 평온해졌다. 

여행은 고달파야 한다. 내 여행의 고집스런 지론이다. 훗날 젊음이 변색될 기미를 보이면 모를까, 난 쉬러 가는 여행엔 관심이 별로 없다.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며 더 많은 세상을 품을 수 있다면 갑절의 고생도 반갑다. 그게 젊은 내가 여행을 하는 목적이고 가치일 테니 말이다. (64p)

그녀는 '만약 일본 열도 가운데 딱 한 곳에서 살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어느 곳을 고를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도쿄도 교토도 아니고, 오사카라면 조금 망설여지지만 고베라면 망설이지 않고 선택할 수 있겠다고 한다. 고베는 그 자체로도 살아보고 싶은 도시라고. 고베에서 살게 된다면, 하고 그녀가 상상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 또한 같은 상상을 하며 즐거워진다. 

역시, 산다는 것의 가치와 여행한다는 행위는 정말 다른 거였다. 고베에서의 여행은 추억하기엔 미비했고 그리워하기엔 잔잔했건만, 산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행복해지는 곳이니 말이다. (149p)

그녀가 본 처음 일본은 도쿄가 아니라 히로시마였다. 일본이 참 수수했고, 평온했고, 기대를 저버릴 만큼 낡았다는 느낌을 준 히로시마가 일본에서의 첫 기억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다고 한다. 난 처음 가는 일본이니 도쿄를 제일 먼저 여행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대학은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는 의식이 박혀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서울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고 도쿄에 갔다. 결혼하면 시골에서 살고 싶은 소망을 가진 나는, 도쿄 여행을 하면서 사람으로 북적이고 활기찬 긴자나 시부야는 별로였다. 도쿄에 도착한 다음 날, 오전에는 아사쿠사와 우에노를 둘러보고 오후에 이케부쿠로에서 친구를 만날 예정이었다. 월요일이어서 미술관이 모두 휴관이라 시간이 많이 남은 나는 좀 걷기로 했다. 이강훈 소설 <도쿄 펄프픽션>을 읽으며 가보고 싶었던 야나카에 가기로 했다. 넓디 넓은 우에노 공원을 나와서 지도와 표지판을 보며 '야나카영원'으로 향했다. 그녀의 도쿄 이야기에 한 부분으로 야나카영원이 등장해 반가웠다. 계속 걷다가 닛포리역에 도착하여 모스버거로 허기를 달래고, 니시닛포리를 지나 타바토역 츠타야 서점에서 책구경을 하며 잠시 쉬었다. JR 노선을 보며,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코마고메역까지 걸었고, 거기서 이케부쿠로 가는 전철을 탔다. 일본 여행하며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그 조용한 마을을 걷던 시간이다.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동네였고, 시장을 지나가다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알려주시던 할머니 모습이 정겨웠던 동네였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디가 좋았냐는 질문에 내가 거침없이 처음 대답하는 곳, 구라시키. 낡고 오래됨이 유독 더 자연스러운 곳. 때 묻지 않은 일본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유난히 평화로워 보이는 동네. 몇십 년 된 핸드드립 커피숍과 레스토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 문화가 흐르고, 전통이 머물며, 고풍스러움이 잘 간직된 곳. 낮의 햇살에도 아름답고, 밤의 달빛에도 눈부신 곳. 또한 낡은 일본을 여행하고 싶게 만든 내 첫 번째 동기부여. 시간이 멈춰 있는 곳. 때문에 내 잃어버린 시간도 찾아줄 것 같은 느낌. 아주 먼 어느 날, 진심으로 꼭 한 번 다시 찾고 싶은 곳. (262p)

맛있는 건 죄다 모인 오사카, 오사카 중에서도 마치 보물섬에 놀러 온 기분이라는 도톤보리와 난바 지역에 가보고 싶다. 빵이 제일 맛있기로 소문난 고베의, 이쿠타 로드에서 빵집 순례도 해보고 싶고, 거대한 명작이 전시되어 있는, 작은 도시 구라시키의 '오하라 미술관'에도 가고 싶다. 나가사키에서 먹는 나가사키 짬뽕맛은 어떨까? 교토를 돌아다니다 말린 청어를 넣어 먹는 '니신소바'도 맛보고 싶고, 거리에서 게이샤와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고 싶다.

여행에서 가장 찌릿한 순간은, 지도를 펼쳐들 때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그 광대한 영역 중 내 발길이 닿는 땅에 추억이 생겨난다고 생각하면 그 흥미가 더하다.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가며 가고 싶은 곳을 결정짓는 것도 신이 나고, 마음에 안 들면 중간에 방향을 틀어도 되니 지도만 익히면 아무 문제없다. (194p)

나도 지도를 펼쳐놓고 여행을 계획할 때가 가장 신 난다. 그녀의 '낡은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읽고서 일본 전역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일본 전도(全圖)부터 구해야겠다. 책을 덮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낡은 사랑'은 어떤 사람일까. 혹시 책 중간의 사진 화보를 위해 도쿄에서 함께 동분서주했다는, 이 책을 쓰도록 응원해준 그 사람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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